<뱀 4 - 생명의 강>
세상을 산 지혜는 보기보다 느낌이라. 역시 뱀이란 놈은 느낌만도 섬뜩한지. 무덤덤한 담장 틈에 으스스한 낌새 있어 혹시나? 눈여겨보다 딱, 마주친 뱀 대가리!
그동안 쌓은 경험 스스로 다독이며 침착, 진정, 흥분 말고! 저놈들 출몰 이후 곳곳 세운 막대 찾아 대갈통 꾸욱 눌렀으니 너는 이제 죽은 목숨. 젖 먹던 힘을 다해 아동바동 누르는데 온몸을 비비틀며 막대를 감는 괴력怪力! 어둠을 휘감는 힘이 무한궤도로 조여 온다.
허벅지 휘어감는 개여울 물살 같은, 썰물에 빨려드는 샛강물 조류潮流 같은, 강둑에 태풍 불던 날 등 떼미는 바람 같은….
눈앞에 맞닥뜨리면 오금 먼저 저린 세월. 아무리 흉측해도 저놈과 한판 승부 인간이 유리하지. 오늘은 명명백백 승리의 예감 있어 알록달록 고명 얹은 요리법이 즐겁구나.
살아있는 비아그라 네놈이 특효라니. 장작불 무쇠솥에 와글바글 뱀탕 끓여 오늘은 참, 오랜만에 밤에 힘 좀 써 볼까. 막대를 칭칭 감은 이대로 들고 가서 시뻘건 장작불에 곱슬곱슬 구워 먹으면 고소한 입내도 좋아 임도 보고 뽕도 딸까. 삼각형 대갈통에 열십자 칼금 그어 껍질을 꽉 잡고서 홀라당 벗긴 후에 속살을 회膾 쳐 먹고는 알몸 사냥 나가볼까.
누르고 휘어감는 결사항전 긴 시간 후 온몸 오그라드는 힘겨루기 끝이 보인다. 팽팽한 허연 배에 바람이 빠질 무렵 막대기 묵직한 끝의 천근 쇠가 떨어지네. 물결무늬 긴 몸통이 허물허물 늘어지자 온몸이 땀에 절인 내 다리도 접질리고 늦가을 하류下流를 기는 샛강물도 풀어졌다.
안 보이면 궁금하고 부딪히면 치떨려서 애증이 뒤엉긴 뱀. 싫어서, 저놈 싫어 징그런 뱀 싫어서 김해공항 비행기로 공중에 도망을 가니 또 한 놈 거대한 뱀이 몸을 틀며 일어선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람물결 비늘 세워 한반도 산과 들에 용틀임 후리치며 낙동강 천삼백 리가 뱀이 되어 따라온다. 태백산 깊은 골에 꼬리를 적셔놓고 구미龜尾 찍고 남지 밟고 삼랑진 휘돌아서 길고 긴 몸뚱아리로 산과 들을 감고 온다. 형님 이쪽, 아우 저쪽 서낙동강 휘어지니 구포龜浦 너머 강서江西 들[野]은 저놈 머리 되고 칠점산七点山과 덕도산德島山은 두 눈알로 박혔다.
고공에서 내려보니 영락없는 용이로다. 여의주如意珠 굴리는 듯 을숙도를 입에 물고 아가리 쫙- 벌리자 하구河口의 모래섬들 혀가 되어 낼름대고. 임진년 낟가리로 왜군을 물린 전설은 뭉툭한 콧잔등의 노적봉露積峯에 쌓았구나. 남해바다 물길에는 파고波高도 높게 일어 호시탐탐 기웃대는 외적들 노려보며 가덕도 용뿔로 세워 한반도를 막아섰다.
때맞춰 변신變身을 하며 굽이굽이 흐르는 강. 아침은 금빛으로 저녁은 은빛으로, 달 뜨면 달빛으로 그믐에는 별빛이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한데 계절 감각 없을쏘냐. 봄 여름 가을 겨울 화사花蛇 흑사黑蛇 독사毒蛇 백사白蛇로 산과 들을 촉촉 적셔 유유자적 흘러간다.
강마을 감돌아서 옹기종기 알을 품고 물머리 치켜들고 바다로 가는 저놈. 남해와 백두대간의 생명줄을 잇는구나. 뱀에 기겁도 하고 뱀도 때려잡으면서 뱀 같은 강줄기에 평생을 살다보니 뱀도 강도 정이 들어 깊은 뜻을 알겠구나.
그래, 그랬구나. 저 강이 뱀이구나. 도랑이든 개천이든 샛강이든 대하大河이든, 사람은 뱀 옆구리에 붙어 꽃이 되어 사는구나.
첫댓글 이 글은 오래 전의 시조를 수필로 재구성한 것으로 고전문학의 사설시조, 가사, 판소리 문체를 담고 있습니다.
이유는
1. 잃어버린 전통문체의 리듬 회복의 묘미 소개(기미독립선언문, 청춘예찬 등)
2. 엄숙주의에 경도된 수필에서 벗어난 재미 소개
*그냥 별종으로 가볍게 읽어주세요.^^
그래서 시의 운율이 곳곳에서 느껴졌나 봅니다.
선생님의 창작의 묘미는 늘 경이롭습니다.
잘 배우고 뒷목 잡습니다.
늘 ~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