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제호 야고보 신부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14,5-18 요한 14,21-26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계명 실천으로
부활 5주를 맞이하는 교회는 부활축제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두움과 절망의 끝에 서서 모든 희망을 포기하려 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산을 넘어서야 하는 단련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삶의 전부이신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절망감이 찾아오는 그 순간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제촉 하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심지어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할 순간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가질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당신과 성령께서 늘 함께 하여 주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선포된 말씀에서 예수님은 두 번째 고별 담론을 통해 성령의 보내심과
주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만이 그 제자 됨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주님께 대한 믿음과 일치합니다.
나아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힘이 된다고 하십니다(15절).
즉 예수님의 계명은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던 사랑의 실천, 제자들이 체험한 사랑의 실천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계명에 따라 사랑을 실천한다면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힘겹고 마치 멍에처럼 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마치 계명의 실천이 나의 자유와 의지를 구속하는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자기변명을 준비해두고 일탈의 삶에서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고자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늘 소극적으로 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시는 분이
아니라 더 크고 완전한 자유의 삶을 선물하시는 분입니다.
사랑을 통한 진정한 친교는 우리의 삶을 더욱 더 풍요롭고 축복되게 합니다.
사랑을 살지 않는 이에게는 계명은 그냥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멍에이지만,
사랑의 가치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이라면 계명은 너무나도 가볍고 편한 멍에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주님을 선포함에 조금의 주저함이 없습니다.
필립보는 낮선 사마리아지방으로 달려가 예수님을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복음을 선포함에서 더 큰 기쁨을 알게 하며,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가지게 합니다(1독서).
우리는 생명에로 초대받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사랑의 증거만이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은 늘 우리의 사랑 고백보다 먼저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부산교구 송제호 야고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