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달란트 이웃과 나눠
현창일 바오로 제주시 정결하신 정녀 Co. 단장
저는 평범한 가정의 7남매 중 6번째로 태어났다. 취학 전에 서귀포시 정방동에 소재한 골목길에 살다가 취학할 당시에는 현재 서귀복자성당 인근 동홍동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친구들과 취학하게 되었다.
1970~80년대 당시 어린 시절, 동네 친척들은 모두가 집, 과수원이 있는데 내가 살았던 집은 우리 가족 소유가 아니었다. 동네 삼촌이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래?” 하면 “어른이 되면 꼭 집, 밭을 바다만큼 사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도 남들은 우리 가족들이 성실하고 남달라서 부러워했다.
개신교 교회가 동네 인근에 있어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주일학교, 성가대 활동, 성경암송대회와 합창대회에서 우승도 하면서 나름대로 저의 신앙생활의 믿음이 점점 쌓이면서 젊은 학창시절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었다.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성당 다니던 누나가 나에게 성당에 나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어서 아무 때나 성당에 갈 수 없어서 미안해요.”라고 말했는데도 누나의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바오로”라는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엊그제 같은데 세례받고 견진성사까지 받은 지 벌써 17년 이상 되었다. 그동안 청년 시절, 직장생활을 하기까지도 성모님은 세례받은 바오로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청년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어 제주시 광양성당으로 교적을 옮기고 레지오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레지오 단원으로 선서하는 시기부터 Pr. 서기직을 수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Pr. 단장직을 수행하다가 신설 김기량성당이 분리해 나가며 Pr. 단장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얼마 후 상급 Co.으로 파견 나가게 됐는데 2019년 파견 5개월 만에 평의회 의원의 추천으로 Co. 부단장 임무을 수행하다가 전 단장의 임기 만료로 Co. 단장직을 맡은 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가는 중이다.
우리 성모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그냥 두지 않고 주님의 도구로 쓰이도록 하신다. Co. 4간부가 모여서 오전에 김기량성당 Cu. 방문 후 식사하고 나서 김녕·세화성당 Cu. 방문한 바도 있었고, 1000차, 2000차 주회를 맞이하는 Pr. 방문 등 우리 4간부들은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제주시 정결하신 정녀 Co. 4간부에게도 지혜와 용기를 청하며, 자전거 두 바퀴처럼 넘어지지 않도록 힘을 낼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을 청해 본다.
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자 가정 봉사
주 5일제도 시행으로 제주 시내 황사평마을에 있는 장애우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애덕의 집에서 이용인들과 함께 박물관 견학, 시장 견학, 예초 작업, 애덕의 집 장애우들과 함께 주말농장 운영, 목욕 봉사 활동 등 갖가지 봉사를 하며 재미있게 보냈다.
두 번째로는 내가 속해 있는 제주 성 다미안회에서 매년 7월이 되면 전남 고흥군의 국립 소록도병원(한센병 환자촌)에서 하는 봉사 활동이었다.
1년 중 가장 무더운 7월 말에 250여 명이 낮에는 각 가정 집안 살림 하나하나 옮겨가면서 도배하고 장판을 깔아주고, 집 안 대청소며 예초 작업을 하다 보면 온몸이 녹초가 되고 밤에는 공회당 건물에 모기장을 치고 콧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던 일은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때가 차자 2014년 100세 되던 해에 신부님 앞에서 루시아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고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어머니는 모든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하느님 나라로 가셨다.
“편히 쉽써 예, 어머님 사랑합니다.”
늘 주님 안에서 평안하고 행복이 충전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어머니의 아들인 저는 주님과 함께 가면서 부족한 종이 앞으로 주어진 작은 소명과 책임과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건강을 청하여 본다.
은퇴후 요양 병원 환자 돌보며 나누는 삶 살아가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희생과 봉사하며 부지런하게 실천하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달란트를 받아 든 청지기처럼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며 모든 일들을 성모님 안에서 감사하며 살아가렵니다.
오랜 직장생활을 하며 은퇴 후에 무엇을 하며 보낼까 고민하다 50세쯤 35년 이상 한 길로 걸어와서 직장퇴사 후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한 덕에 은퇴 설계를 해봤다.
명예 퇴임 후 노인 요양 병원 입사해 생활이 바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퇴 후 생활에 만족한다.
요양 병원 환자들을 돌보는 일과 중 미래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른이 되었다가 다시 어린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게 우리 인생 삶이 아닌가 한다.
작은 텃밭에서 자라나는 작물들과 농장 밭에서 하루하루 보내는 사랑이, 믿음이 반려견를 돌보는 나의 생활은 주님이 주신 복이라 생각한다. 돌담 가에 콩을 심어서 이웃과 마라톤동아리 형제자매들과 수확한 콩을 나누며 먹는 기쁨에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지금 하는 것만큼 ‘제주농협 애덕회 봉사 활동’과 ‘제주 성 다미안회’에서 함께 할 때 늘 주님 은총 안에서 능력을 주시고, 또한 ‘제주 가톨릭 마라톤회’에서도 형제자매들과 나눔과 마라톤 연습과 활동들을 통해 주님 안에서 늘 겸손하고 마음과 몸이 튼튼하고 참되게 하소서.
지금까지 내가 본대로, 내가 느낀 대로, 내가 경험한 대로, 소록도 환우님들과의 하루하루 삶 속에서 이웃 소공동체에서 쓰이는 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