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지역 여행기
글 차영섭
쌍 십일 0655, 아침 일찍이 순천행 버스를 타고 여행을 출발했다. 순천 시청에서 운영하는 City Tour를 하기 위해서다. 여행은 드라마 세트장, 선암사, 낙안읍성 민속 마을, 순천만 자연 생태 공원 총 4개 지역이다. 이른 아침이라 산과 들과 마을엔 옅은 안개가 끼었고, 잠이 아직 덜 깼는지 마냥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 1969년 월남에서 귀국하여 강원 철원 신수리에서 근무할 때, 가끔씩 서울 다녀오다 보면 올망졸망한 촌락이 저녁밥을 짓느라고 굴뚝에서 연기를 모락모락 뿜어내는 것이 마치 용이 꿈틀꿈틀 숨 쉬는 것만 같았는데, 굴뚝이 없는 오늘의 시골 풍경은 뭔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몸은 남도의 남쪽으로 달리고 생각은 북녘의 끝으로 이어지고
그렇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앞만 보고 달렸다. 가만히 생각을 잡아보면 아름답다는 것은 마음을 흩어지게 하는가 보다. 마음이 흩어지면 정신이 모호해지고, 정신이 모호해지면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아름다운 것은 상대를 혼미한 곳으로 몰아넣고 자신에게로 끌어당기지나 않나 싶다. 꽃이 나비를, 풍경과 사랑이 그 무엇을 끌어안듯이 말이야. 아름다운 거래는 아름다운 것을 낳지만, 그렇지 아니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차는 순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고, 약 15분을 걸어서 순천역으로 갔다. 9시 30분이 되어서야 여행 버스 2대가 왔다.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드라마세트장으로 출발했다. 60년, 70년대의 가난했던 시절을 되뇌게 하는 달동네 현실이었다. 추억이 너무 가까이 왔음으로 나는 신바람이 나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 젊은이나 어린이들은 아마 어느 가난한 나라의 풍경인 줄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 그것이 내 청춘 이전의 그림이었으니 불과 몇 십 년에 오늘처럼 풍요로움을 이룬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기적 같은 열정을 큰 박수로 찬양하고 싶었고, 뿌듯한 가슴 자랑스러웠다.
다음 코스는 선암사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올라 선암사로 달렸다. 승주 I.C를 지나니 가을은 더욱 깊게 깔려 들은 더욱 노랗고, 가로수엔 홍시를 단 감나무가 멋들어지게 우리 일행을 반겨주고 있었다. 집이란 집은 한 두 그루의 감나무를 안고 있는 이곳은 감의 고장이다. 가로수의 감도 얕게 너울져 있건만 누구 하나 손대지 않고 있다. 그림이 펼쳐 있다. 버스에서 내려 약 1.5km를 걸어서 선암사로 가는데 길은 옛 모습그대로 흙길이고 길 양쪽엔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단풍나무들이 하늘을 가렸고 그 밑으로 조릿대나무가 늘어서 있어 마치 나무들이 환영해 주는 것만 같았다. 개중에는 몇백 년을 살았는지 죽은 나무도 고스란히 정렬되어 있다. 조계산 좌우로 있는 송광사와 선암사는 아래로 주암댐과 상사댐을 거느리고 있고, 서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왕래가 용이하다. 선암사는 천년의 고찰로 신라 법흥왕 때 아도화상이 청량산 해인사를 창건하고 신라 도선국사가 이곳에 대가람을 일으켜 선암사라 하고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하였으며, 그 후 고려 선종에 대각국사 의천이 산이름을 조계산이라 하고 선(禪)과 교(敎)로 융합하였다. 국가지정문화재만도 12점에 이른다. 절에 오르다 보면, 비석과 부도가 밭을 이루고 있고 그 주위엔 편백나무가 숲을 이뤄 잡균을 몰아내고 있다. 사찰 주변에는 동백나무가 많은데 이는, 동백나무가 겨울에도 마르지 아니하고 물을 먹어 화재도 예방하고, 동백열매를 따서 기름으로 사용하여 호롱불을 켜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겨울 내내 꽃이 피니 동백나무처럼 겨울이란 추위를 이기고 사람도 고통 속에서 꽃을 피우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배롱나무도 있고, 편백나무 숲에는 야생녹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하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니 상봉수라 했다. 상사화가 꽃과 열매가 만나지 못함에 비유해서 이름을 붙였을까. 350도의 솥에서 덖어(볶아) 사용한다해서 덖음차라고도 한다. 숲속에서 자라면서 햇볕과 그늘의 적절한 조화로 한결 질 좋은 차가 된다고 한다. 진입로에는 이 외에도 할아버지 장승과 신선이 내려와 옆 개울에서 목욕했다는 강선루(降仙樓), 용머리를 닮은 승선교가 있고 정조대왕의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우리나라에 타원형의 연못이 3군데 있는데, 이곳 선암사와 불국사, 통도사라 한다. 절 입구에 들어서니 은목서 꽃이 만발하고 그 향기가 조계산을 춤 추게 한다. 뒤편에 있는 금목서와 함께 절 안에 많은 꽃나무들이 있다. 오백살 흰철쭉나무며, 500살 백매화(국가천연기념물 지정)며, 무우전(無憂殿)돌담에는 깊어가는 가을을 수놓고 홍매화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 황실의 기도처로 이용했다는 대복전이 있고 大福田이란 선조대왕의 친필이 붙여져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해후소가 T자형으로 있고 ㅅ간뒤란 간판이 붙어있다. 싸 간 점심을 여기서 하고 1330에 낙안읍성민속마을로 출발했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성, 동헌, 객사,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국내 최초로 사적 제 302호로 지정되었다. 조선태조 6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김빈길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섰고 300년 후 인조 4년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 성내에는 지금 90여 가구가 살고 있고 우리나라 유일의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400살 먹은 은행나무 2님이 마을을 감시하고 있고 집은 옛 우리 초가집으로 돌과 황토로 벽을 바르고 담을 쌓았다. 성벽은 마을의 달걀마냥 감싸고 있고 성벽 밖 10여 미터 앞에는 참호와 교통호를 파서 적군의 진출을 막고 집중 공격에 용이하도록 되어있으며 성 안으로 교통호로 연결된 현대식 작전계획으로 된 잘 된 진지라고 보아진다. 성 위를 걸어서 관찰해 보니 선조들의 지혜가 별처럼 빛났다. 감나무들이 홍시를 젖가슴처럼 내밀고 모처럼 순천시에서 주관하고 있는 먹거리 행사에 한층 맛을 고무시키고 있다. 어렸을 적에나 보았을 목화송이가 하얗게 피어있는데 밭에 가서 만져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그 목화밭에 있는 감나무가 떨어트려 놓은 홍시 한 알을 주워 먹어보니 단맛도 여러 가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탕 맛도 아니요, 꿀맛도 아니요, 포도 맛도 아니요, 감나무가 햇볕으로 스스로 몸에서 만들어 낸 고유의 단맛이 일품이었으니....아내와 절반씩 쏘옥 빨아먹었다.
가을을 잔치하는 할머니들이 집에서 기른 토종 열매들을 길거리에 펼쳐놓고 파는데 토란과 노랑 콩을 샀고, 한 할머니가 홍시 4개에 천원이라 하시는데 가져올 수도 먹을 수도 없어서 사지 않았는데 왠지 마음이 꺼림직 했다. 그냥 천원을 드릴 것을 그랬나 봐서.
이내 일행은 순천만으로 출발했다. 아직 남도음식 문화 잔치가 한창이지만 시간에 쫓겨 벌교를 지나 메스컴에서 보고 오고자 했던 순천만에 이르니 사람들과 갈대와 각종 새들과 갯벌에 동물들이 어우러져 축제의 분위기였다. 갯벌에는 보이지 않는 동물들이 서로 도우며 공생하고 있다. 얼른 보아도 붉은발 사각게, 붉은발 농게, 장둥어, 갯지렁이, 개개비, 붉은머리오목눈이, 큰 고니, 방게 등 동물과 갈대, 일 년에 7번 색깔을 바꾼다는 칠면초, 퉁퉁마디풀 그리고 파도와 바람이 조화를 잘 이뤄 갯벌이 송송 구멍이 나 숨을 쉬는 곳. 그래서 썩지 않고 살아있는 갯벌로서 세계 5대 연안 습지의 하나로 위용을 과시하는 곳. 이런 환경이 우리나라 삼천리 곳곳에서 보존되었으면 하는 꿈을 가져 보았다. 4명이 한 가족으로 가족단위로 날아다니는 흑두루미가 날아간다. 더러 결손으로 3명이, 입양으로 5명이 다닐 수도 있지만 기본은 4명이라 한다. 하늘에는 새 가족, 갯벌에는 사람 가족 참 보기에 좋았다.
여행을 마치고 해는 뉘엿뉘엿, 순천역으로 돌아오는데 동천 양 언덕을 따라 핀 양미역취 꽃이 노랗게 익었는데 황혼 빛에 더욱 빛났고 낮달은 순천(順天) 위에 떠서 하늘에 순한 사람들을 살며시 굽어보고 있었다. 끝.
첫댓글 차영섭수필가님,너무 고맙습니다, 제가뭐라고 표현 할수 없을정도로 감명 깊다보니,너무 좋습니다 좋은작품 감상할수있게 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의말씀을전합니다,
오늘도 하루를 힘차게 사시길... 감사합니다. 미소님
가을 산행...여행 너무 좋은 여정이네요. 여기 있으면 님께서 여행을 해주니 감사 드립니다.
훌륭한 기행수필입니다. 순천만에 가보고싶었는데 앉아서 다 가본것 같군요. 그럼.
태김님, 남천님, 감사드립니다. 어느새 구면이 됐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