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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수원의 풍수
작은여유 추천 0 조회 111 08.05.22 11: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화성행궁의 풍수적 평가 

[화성 행궁의 풍수적 입지] 
한남정맥의 중조산인 광교산과 백운산의 계곡에서 발원한 물은 남진하여서 광교저수지에 모이고, 이 물은 다시 수원성의 중심부를 관통하며 수원천으로 남진해 서해로 흘러든다.

수원성의 서쪽에 팔달산이 있고, 반대쪽인 동쪽에는 나지막한 구릉이 있고, 수원천 가로 약간의 평지가 펼쳐져있다. 

행궁이 자리한 팔달산은 백운산을 떠난 정맥이 지지대 고개로 뻗어가는 도중 한 기맥은 남진시키고, 이 기맥은 남동진하며 광교저수지 서쪽으로 바짝 붙어 뻗고, 이 후 몸을 남서진을 바꾸어 영화동의 장안문에서 성곽을 따라 팔달산으로 이어졌다. 

수원천 동쪽의 지맥은 한남정맥의 버들고개를 지난 정맥이 광교산으로 뻗어가는 도중, 한 기맥을 남진시키고, 이 기맥은 광교터널 위를 지나 경기대학교의 앞산을 거쳐 수원천을 따라 남서진한다.

따라서 팔달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행궁의 터는 속리산이 태조산이고, 칠현산이 중조산이고, 광교산이 소조산이며, 팔달산이 주산이다. 

하지만 행궁은 팔달산의 급사면과 완사면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용맥이 짧아 지기는 왕성치는 못하나 물이 癸方에서 득수하여 수구가 巳方이고, 이 때 내룡은 평지룡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은 庚酉龍으로 지질은 단단하면서도 생기를 품을 만한 흙이다. 

이때 행궁의 좌향을 庚坐甲向으로 놓으면, 향상으로 木局의 冠帶水가 病方을 충파함으로 신동이 태어나도 단명하고 과숙하는데, (화성성역의궤)의 (화성전도)를 보면, 행궁은 정문인 신풍루에서 정당인 봉수당까지 하나의 중심축을 이루면서, 신풍루·좌선문·중앙문·봉수당으로 연결되고, 몇 개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거치는데, 동향인 庚坐甲向을 놓은 것을 판단된다.

하지만 이곳은 水局의 墓向은 戌坐辰向을 놓아야 대부대귀하고 발복한 땅이 된다. 

[화성 행궁의 과거와 현재] 
화성 행궁이 결정적으로 파괴된 것은 20세기 초로 보인다.

수원에 최초의 사양식 의료기관인 자혜의원(현재 도립병원)이 행궁터에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1910년에 지혜의원의 증설에 필요한 돈을 62.500환을 나라에서 지출했다는 기록이 전해, 자혜의원은 그 이전이 이미 들어선 것으로 보이고, 이 때에는 이미 행궁의 건물 대부분이 철거된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화성 행궁은 도립병원으로 바뀌고, 주변에는 경찰서와 민가가 들어서 행궁의 자취는 거의 잃게 되었다. 유일한 행궁의 건물은 신풍초등학교 교정 한 소서리에 남은 낙남헌뿐이다. 

[없어진 행궁의 건물들]
     봉수당(奉壽堂)--행궁의 정당으로 왕이나 수원 유수부가 정무를 보던 건물
     장락당(長樂堂)--공적인 업무를 보던 건물(방에 온돌이 깔림)
     낙남헌(洛南軒)--왕이 활을 시범적으로 쏘았다는 기록에서 장병을 지휘하던 곳(현재까지 전함)
경용관(景龍館)
     북내당(福內堂)--잠을 자는 내당
     유여택(維與宅)--잠을 자거나 쉬었던 별당(온돌이 깔리고, 돌출한 누마루가 있어 사랑채였을
                             가능성이 높음)
     득중정(得中亭)--잡무를 놓고 쉬던 곳
     신풍루(新豊樓--행궁의 정문

수원의 개발과 공존 
[수원의 개발현황] 
수원의 지형은 대체로 동북쪽이 높고 남서방이 낮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중심부에 팔달산이 위치한다.    따라서 높은 산이 둘러싼 북쪽은 개발이 불가하고, 낮은 구릉과 평지인 중심부은 상업, 낭동방은 삼성전자의 산업단지가, 그리고 근래에 들어서 동남쪽인 영통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 서울의 위성도시로써 역할이 강화되었다. 

현재 개발이 가능한 지역은 칠보산 동쪽 기슭인 금곡동과 호매실동 그리고 권선구의 장지동과 애황교동이 남아 있으나, 이곳 역시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며 개발이 한계에 다달았다.

수원은 북고남저에 동서쪽에도 낮은 구릉이 자리잡아 남쪽만이 낮은 지형이고, 큰 강을 끼지 못한 점도 발전에 장애요인이 된다.    수원은 "효의 고장"이란 슬로건을 내 걸고, 대대적으로 효와 관련된 행사를 벌리나, 국민적 호응은 얻지 못하고, 월드컵 경기장을 유치해 그나마 체면을 차린 격이 되었다.

풍수적 개발방안 
수원의 개발을 위해서는 수원의 서쪽과 남서방에 자리한 화성시와 통합되어야 좁은 땅에 숨이 트일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수원에서 더 이상 개발할 땅은 남아있지 못하니, 효와 관련된 확실한 이미지를 실어 효를 배우는 교육과 관광의 도시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수원팔경은 정조가 찬양한 여덟 군데이다.

첫째는 수원 북쪽 광교산에 눈이 내려 나무에 눈꽃이 핀 아름다움이고(光敎積雪),

둘째는 장안문 북쪽 북지(北池)에 흰색, 붉은색 연꽃이 우아하게 핀 것이고(北池賞蓮),

셋째는 광교산의 깊은 골에서 흘러 온 광교천 물이 이 곳 화홍문 일곱 수문을 지나면서 폭포수에 무지개가 피는 것이며(華虹觀漲),

넷째는 화홍문·방화수류정과 어울린 용지에서 동쪽으로 부터 떠오르는 달을 기다리는 것이며(龍池待月), 다섯째는 화홍문에서 화산릉 앞까지 이르는 수원천의 긴 제방[南堤]에 수양버들이 연달아 늘어진 풍경이며(南堤長柳),

여섯째는 산은 낮지만 아름드리 나무가 많아 화창한 날에 산기가 아물거려 안개가 서리는 광경이며(八達晴嵐),

일곱째는 여기산의 그림자가 드리운 서호(西湖)에 석양이 들어 수면이 황금빛으로 물든 모양과(西湖落照), 마지막으로는 화산에 봄이 와 산이 온통 붉은 진달래로 물든 풍경(花山杜鵑)을 이른다.

[사진 : 수원의 방화수류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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