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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문화자료 스크랩 간다라 불상 1> 영광 불교도래지와 간다라 미술...080720
법산 서남교 추천 0 조회 113 10.02.18 14:37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1. 간다라 불상을 접하면서 시작하는 몇가지 의문...

2. 영광의 불교 도래지와 간다라 미술의 관련성...

3. 고대 인도의 역사지리와 종교.

4. 대승불교와 간다라 지역의 의미.

5. 간다라 불상과 마투라 불상, 그리고 굽타양식...

6. 내가 좋아하는 불상들과 용산 중앙박물관에서 본 간다라 미륵보살상.

7. 정리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완수씨의 <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대원사/2002년~2007년>란 책을 통해 접하게 된

<간다라 불상>을 보며 내 눈으로 직접 불상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왜냐고? 멋있어 보였으니까...^^

근데,,, 오늘,,, 박물관에서,,,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그 불상을 보고 있다.


비록 입상 1구와 두상 몇 개의 불상을 보면서

간다라 불상에 대해 충분히 봤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실체의 모습을 내가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리바롤에서 출토되어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에 소장된 비슷한 모습의 불상들,

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되어 파키스탄의 라호르 박물관을 비롯해,

인도의 뉴델리/캘커타박물관, 프랑스, 일본, 미국, 영국 등

세계각지에 흩어진 간다라 불상들과 비교하기 쉽지 않지만,

직접 본 불상을 사진도판들과 비교해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은 <간다라 불상>에 대해 이것저것 정리해 보려 한다.




1. 간다라 불상을 접하면서 시작하는 몇가지 의문...


간다라 지역의 불상을 보면서 몇가지 의문들을 메모해 보았다.

1) 왜 그런 모습을 갖추었을까?

2) 왜 간다라 지역에서 불상 조성이 시작되었을까?

3) 간다라 지역과, 그 문명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지?

4) 간다라 지역의 불상이 인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지?

5) 그 지역의 불상은 우리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주었을까?

만만치 않은 질문들...

 

 


그러다보니 자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1) 내가 좋아하는 불상은 무엇이지?

2) 인도에서 불교는 어떤 의미일까?

3)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된 이유가 뭘까?

후후... 점점 깊어지는 의문들...


이에 대한 충실한 답을 나는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지식과 노력으로 그 방대한 내용에 접근하려 한다는 게 애초 무리이니까...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 불상들을 볼 기회가 있을 것이고,

오늘처럼 색시와 햇살이에게 간다라 불상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사전조사 정도로 시작하고자 한다...




2. 영광의 불교 도래지와 간다라 미술의 관련성...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간다라 불상에 대한 지식의 출발은

고등학교 때의 교과서가 전부가 아닐까 싶다.

<헬레니즘의 영향>과 <고행하는 부처상> 같은 사실적 조각이라는 점...

나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와는 무관(!)한 정말 시험답안용 암기사항들이 전부였다.

 

<영광 불교 도래지 옆으로 돌아간 백석해안/07년... 빙빙 돌아가느라 석양을 놓쳤었다...ㅠㅠ 참 좋았을 것이라 생각되는 곳...> 


몇 년전 전남 영광의 불교 도래지라는 곳에 간적이 있다.

문살로 이름 있는 갑사와 석양이 좋다는 백석 해안도로를 찾는 길에 들렀던 곳...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지역이지만,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에 위치해 있는데,

간다라 미술관이 있고, 간다라 불상에 대한 복제 혹은 재현조각들이 조성되어 있다.


복제, 재현품에 대해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나로서는

(완벽하게 재현을 하든지, 창조를 위한 출발로서의 모방은 인정한다...^^)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384년 최초로 백제지역에 불교를 전파했다는 의미 외에

왜 굳이 인도의 간다라풍으로 불상을 재현하고 탑파를 조성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었다.

 

<영광 불교도래지/07년... 고행상의 복제? 맛이 없다... 게다가 간다라 미술중 한 유형에 불과하다...> 


물론 후한제국의 멸망이후, 위-촉-오로 분열되고 북위로 부분적으로 통일되었다가

5호16국-남북조시대, 소위 이민족들이 중국에 득세하던 시기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불교가

고구려를 통해, 중국화된 불교가 백제에 전승되었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불교의 성지, 인도의 승려를 통해 직접 전래되었다는 연관성을 강조한 것은 이해를 하지만,

간다라지역의 불상들이 아무런 매개와 여과 없이 이곳에 조성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유일한 흔적이라면 불사(佛舍)에 시작을 의미하는 갑(甲)자가 들어간 불갑사란 명칭 외에

간다라 미술과 불상이 백제지역의 불교 전래와 부흥에 어떤 의미가 있지?

내가 영광이라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지역을 특화시키려는 노력에 딴지를 거는 것은,

그 성의와 애정을 탓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실체에 대한 혼돈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영광 불갑사 대웅전/07년...> 




사실, 삼국시대 한반도에 전래된 불교는 고구려와 직접적으로 대치한 전진(前秦)의 영향이 크고,

중국의 불교는 한족(유교)과 거리가 먼 동이족 계열의 북방이민족에 의해 수용, 번성하였고,

특히 고구려의 승랑 같은 이를 통해 오히려 중국(수나라)의 불교는 정돈되고, 그 맥이 일본에 이어졌으며,

(고구려 불교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으로 승랑의 <삼론종>은 쇼토쿠태자까지 이어진다)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불상은 뚝섬에서 출토된 선정인류(중앙박물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불교든 어떠한 사상이든 그 전래는 사람, 교리와 격식(경전), 그리고 그에 따른 상징물을 포함한다.

백제로의 불교 전파도 이 내용과 수순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가 만약 인도의 불교를 전파했다면

4세기후반, 5세기 초 간다라와 미투라 양식이 통합된 굽타양식의 불상이 직수입되어야 한다.

육계와 나발이 분명하고, 삼도에 귓불도 늘어지고, 미투라식 투박의에 간다라식 통견의 불상형태가.

그러나 이시기 백제를 포함해 한반도, 심지어 중국 어디에도 그러한 양식의 불상이 조성된 바가 없다.

 

<경주 남산 불곡 선정불좌상 /97년... 흔히 감실부처라 불리는데, 최완수씨는 운강,용문석굴의 불상과 비교하면서, 포복식불의와 포수좌를 근거로 6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얼굴은 백제식이라 설명하고... 개인적으로는 훨씬 앞선 시기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왜냐면 뚝섬출토 불상이 5세기초이고, 6세기 후반이며 상당한 수준의 반가사유상이 신라인의 힘으로 직접 조성된다고 그 자신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제인의 얼굴에 백제인의 손길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김씨 왕들이 본격적으로 세습이 시작되던 5세기초엽에 이미 고구려의 불교가 신라에 들어왔고, 5세기 후반이면 신라왕의 칭호는 불교식으로 바뀌게 된다는 점에서 이 감실부처가 조성된 시기는 늦어도 5세기 후반, 6세기 초를 넘기지 않았을까 생각을...^^> 

 


 

오히려 중국에서 처음으로 조성된 불상은 인도처럼 시무외인 불상이 아니라 <선정인> 형식이다.

이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불교의 발전과정이 중국 등의 또 다른 문명에 적응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석가모니 사후 600년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불상은 대승불교의 정착과 궤를 같이 한다.

<두려워 마라!>는 의미의 시무외인으로 시작한 불상조성은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지만,

4세기를 전후한 중국이나 한국의 수준은 대승불교에 대한 이해와 국가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이제야 중국풍의 불상들이 중국인, 황인종의 모습으로 조성되기 시작하던 때에 불과하다.


불교가 3세기 전기(후한의 멸망) 중국에 전파되면서 처음으로 조성된 양식은 선정인의 모습이고,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불상의 형태도 뚝섬 출토 불상과 경주 남산 불곡처럼 선정인 양식으로,

선정인(禪定印)은 불교의 근본적 이해를 기초로 조성되었다기 보다는 개인적 호신불의 수요와

예배의 대상이라는 의미에 한정된, 중국(3세기)과 한국(5세기초) 초기 불상의 시원 양식이라 생각된다.

 

<예산 사면석불, 태안 삼존불에 이어 백제의 특성이 잘 나타난 서산마애불 /97년... 완벽한 시무외인을 갖추고 있다...>  


이후 불교와 대승불교에 대한 이해와 수준이 깊어지고, 승단이 국가적인 조직체계를 갖추면서

<시무외인> 불상이 나타나고, <삼존불>이 이제야 주류를 이루게 된다.

대립과 전란의 혼란기를 겪은 중국과 한반도에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되며,

이후 <아미타삼존불과 관세음보살>이,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 <미륵불과 석가불, 비로자나불>이 조성된다.

결국 불상의 양식은 시대의 흐름과 요구, 그리고 불교의 이해에 대한 깊이를 결코 뛰어넘지 못한다.




4세기 후반, 영광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지역에 (기록상!!!)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했다.

그 형식과 내용은 중국화된 불교(동진/남중국)의 한흐름에 불과하지 인도의 간다라 풍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적 불교의 정착은 광개토대왕-장수왕, 동성왕-무령왕 등을 통해 중국의 흐름과 동화된다.

중국과의 동조현상도 처음에 200여년의 간격이, 이 시대에 들어와 3~50년의 시차로 좁혀진다.

또한 이 땅에 정착된 불교의 백제식 해석은 <사방불>이라는 독창적인 형태라 생각한다.

영광의 불교 도래지와 간다라 미술에는 아무런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경주 남산 칠불암 사면석불과 마애삼존불/97년... 최완수씨는 성덕왕에서 경덕왕으로 이어지는 8세기 초중반에 조성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의 초기형태인 사면석불과 삼존불이 동시에 조성된 모습이어서 골라보았다...^^>  


생각해보라. 100여년 전의 실패를 딛고 한국전쟁 이후에 급속히 확산된 기독교 전파과정을...

이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농사짓는 사람들을 앉혀 놓고 기독교의 종류는 구교와 신교가 있고,

다시 정교,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으로 나뉘는데, 십자가 조성방식은 다르다며 포교했을까?

믿어라, 그러면 구원받을 것이니... 마라난타의 포교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미 수십년전부터 백제지역에도 불교는 충분히 알려져 있었고, 마라난타는 이를 조직한 선교사다.

게다가 그는 인도를 출발하면서 가져온 대부분의 불상은 중국(동진)에 놓고 몸만 왔을지 모른다.

인도출신만 강조한 마라난타가, 영광을 간다라 미술과 연결시킨 오늘날의 큐레이터보다 한수 위다...^^


영광의 불교 도래지에 조성된 간다라 미술관과 그 조성 의도에 대해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차라리 백제와 인도를 연결하는데 급급할 게 아니라 간다라 미술에 대해 깊이 있게 안내를 하든지,

아니면 백제에 불교가 수용되는 의미와 과정에 대해 충실히 설명을 하든지,

그도 아니면 당시의 인도와 중국, 백제의 불교미술의 수준에 대해 비교를 하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영광 불교 도래지/07년... 무표정하고 무미건조한 모습들... 너무 가볍고 들떠 있지 않은가? 내가 너무 심하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ㅠㅠ> 


게다가 내가 불행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도 불교에 대해서도 충분한 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간다라 불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느끼기에 너무 부족함이 많았고,

여전히 간다라 지역에서 꽃피운 불교 미술에 대한 편협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인도미술을 간다라 미술로 대체시키는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모습까지 강요받았다는 느낌이다.

그런면에서 영광의 불교 도래지 조성사업은 부실한 내용을 과대포장한 문화상품에 불과하다.

 

<영광 불교 도래지/07년... 법성포를 바라보는 해안가에 조성되어 있고, 사진의 오른편에 있는 건물이 간다라 미술관이다... 아무튼 마라난타에 대한 기록이 있어, 순도조려(고구려는 순도) / 난타벽제(마라난타는 백제) / 아도기라(아도는 신라) 유래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참고로, 혹자는 수로왕과 허황후의 설화를 근거로 남방도래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AD100년을, 금강산 유점사의 설화를 근거하는 이들은 AD 4년설을 주장하지만, 후자의 경우 AD 4년이면 인도에서도 불상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시기이니 근거있는 주장이라 납득하기는 어렵고, 수로왕설화는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즉 불교는 2세기 전후 중국과 한반도에 이미 들어왔고, 국가에서 공인하고 번성한 시기는 그 후대가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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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0.02.18 14:37

    첫댓글 간다라불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과 글들이 의미가 있어 보여서 올려 봅니다. 한번쯤 고민해볼 만한 주제가 아닌가 하네요.

  • 10.02.18 15:46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10.02.23 19:02

    고맙습니다~ 도움이 많이 되군요~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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