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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학당 공부방 스크랩 고구려 왕계도
모학당 추천 0 조회 204 08.01.20 19: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 고조선, 부여, 가야. 앞의 국가들은 왕위계승표가 확실하나 뒤의 국가들은 확실하지가 않다. 고구려는 705년의 역사에 28왕, 백제는 678년의 역사에 31왕, 신라는 992년의 역사에 56왕, 발해는 228년의 역사에 15왕, 고려는 474년의 역사에 34왕, 조선은 505년의 역사에 26왕, 대한제국은 13년의 역사에 2황제가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보다 역사가 짧으나 왕들은 더 많이 즉위했다. 이는 백제와 조선을 비교해도 마찬가지이다. 왕들의 재위기간은 보통 20년~30년 정도로 수명 또한 40세 정도이다. 고구려의 태조왕 93년간 즉위하여 105세에 승하하였다.

 

  흔히 조선의 역대왕들을 외면 태정태세문단세... 로 외우기 일쑤다. 하지만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등으로 외우는 경우는 거의 없고 '문'이 몇번째 왕이라는 말에 쉽게 대답하는 사람들 조차 없다. 백제의 전성기를 이룬 근초고왕은 몇 대 왕이냐는 말 역시 대답하기는 어렵다. 이러한데 한을 품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대 왕조 계보를 작성하고자 해본다. 하지만 작성자의 컴퓨터 실력이 안 되는 관계로 글로 설명하고자 하니 이해 해주기 바란다.

 

  고구려의 왕이 칭했던 성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시조인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국호의 첫글자인 고씨를 왕의 성씨로 한 것이 있다. 즉, 고씨(1대 왕)가 왕의 성이 된 것인데 해씨(2대 왕~6대 왕)가 중간에 왕위를 계승하는 현상도 보이나 성씨를 고친 것처럼 보인다. 이후 다시 고씨(7대 왕~28대 왕)가 왕위를 계승한다.

 

  고구려 1대 왕은 동명성왕이다. 동명왕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주몽, 추모, 상해 등이다. 재위 기간은 BC 37년~BC 19년이며 BC 38년에 태어났고 BC 19년, 4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부인은 예씨 부인과 졸본부여왕 2녀(흔히 말하는 소서노)가 있다. 예씨 부인은 동부여에 있을 때 결혼했으며 아들 유리명왕도 동부여에서 낳았다. 졸본부여왕 2녀는 주몽이 졸본부여를 점령하고 당시의 왕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그 왕의 딸이 바로 졸본부여왕 2녀인 소서노이다. 예씨 부인의 소생은 2대왕인 유리명왕이 있으며 졸본부여왕 2녀의 소생은 비류와 온조가 있다.

 

  즉위 14년인 BC 24년에는 왕모인 유화부인이 동부여에서 사망하였으며 금와왕이 태후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즉위 19년인 BC 19년에는 아들 유리와 부인 예씨가 동부여에서 도망쳐 나오고 유리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고구려 2대 왕은 유리명왕이다. 동명성왕의 장남이고 유리왕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유리, 유류, 누리 등이다. 재위 기간은 BC 19년~AD 18년이다. 부인은 다물국왕 송양의 딸인 송씨 부인, 골천 사람인 화희와 중국 한인인 치희가 있다. 화희는 치희와 유리명왕을 차지하기 위해 곧잘 세력다툼을 벌이곤 했는데 천한 출신인 화희가 언제나 번번히 졌고 결국은 왕궁을 떠나가기도 하였다. 송씨 부인의 소생은 도절, 해명, 대무신왕, 여진, 민중왕, 재사가 있으며 화희와 치희는 소생이 없다. 도절은 어린 나이에 요절하며 해명은 한나라가 보내준 활의 시위를 꺾어 한나라를 우롱했다는 죄로 아버지에게 죽을 신세가 되자 스스로 자살하였다. 여진과 재사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즉위 22년인 AD 3년에 국내성으로 천도하였고 즉위 31년인 12년에는 신라가 흉노정벌에 동원을 요구하나 이에 불응하여 신라의 변방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부여를 침공하였고 왕자 무휼이 학반령에서 부여군을 격퇴하였다.

 

  고구려 3대 왕은 대무신왕이다. 유리명왕의 3남이고 이름은 무휼이며 재위 기간은 18년~44년이다. 부인은 원비와 갈사왕의 소녀인 차비가 있다. 원비는 모본왕을 낳았으며 차비는 호동왕자를 낳았다. 호동왕자는 후에 낙랑국 최리의 딸인 낙랑공주와 결혼을 하나 원비의 모함으로 죽고 만다.

  대무신왕은 즉위 11년인 28년에 한나라의 요동태수가 위나암성을 포위, 공격을 했으며 즉위 15년인 32년에는 호동왕자가 낙랑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고구려 4대 왕은 민중왕이다. 그는 유리명왕의 5남이며 대무신왕의 아들 우가 나이가 어려 왕위에 즉위 못하여 그를 대신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색주이며 재위 기간은 44년~48년이다. 부인도 없어 아들 또한 없다.

 

  고구려 5대 왕은 모본왕이다. 이름은 우, 또는 애루이며 재위 기간은 48년~53년이다. 원래 아버지 대무신왕의 왕위를 이어 즉위해야 했으나 나이가 어려 즉위하지 못했다. 이후 민중왕이 소생 없이 죽자 그에게 왕위가 돌아왔다. 그는 대무신왕의 장남으로 고구려의 폭군으로 유명하며 신하에게 죽은 고구려 최초의 왕이다. 그는 시종인 두로에게 죽었다. 부인은 워비가 있으며 소생은 익이 있다.

 

  고구려 6대 왕은 태조왕이다. 그는 유리명왕의 6남인 재사의 아들이다. 재사와 부여 여자에게서 난 장남으로 이름은 궁, 어수이며 재위 기간은 53년~146년으로 고구려에서 오랫동안 왕위를 지켰으며 장수한 왕이다. 부인은 한 명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막근과 막덕을 낳았다.

 

  즉위 53년인 105년에 한의 요동 현을 공략하였으나 요동태수에게 격퇴당했다. 즉위 80년인 132년에는 강유 등이 왕의 아우인 수성에게 왕의 찬탈을 권유한다. 이에 태조왕은 즉위 94년인 146년에 아우 수성에게 왕위를 넘겨준다.

 

  고구려 7대 왕은 차대왕이다. 이름은 수성이며 재위 기간은 146년~165년이다. 재사의 차남으로 태조왕의 아우이다. 부인은 한 명이며 아들은 추안이 있다.

  그는 원래 132년에 강유 등의 말을 듣고 왕위 찬탈을 하려 했으나 더 기다리기로 하였다. 원래 이전부터 왕이 오래 살았으니 언제 죽을지 몰라 폭동을 대비하여 왕위 찬탈을 마음 먹었으나 언제나 뒤로 미루었다. 왕위에 욕심은 많았으나 결국 평화적으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즉위 20년인 165년에 연나부의 명림답부에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폭군이었던 것은 아닌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8대 왕은 신대왕이다. 이름은 백고, 백구이며 165년에 즉위하여 179년에 승하하였다. 재사의 3남으로 차대왕의 아우이다. 왕비는 위의 형들과 같이 1명이었으며 소생은 발기, 고국천왕, 산상왕, 계수가 있었다.

  즉위 2년인 166년에는 자신의 형이자 부왕인 차대왕을 살해한 명림답부를 국상에 임명하고 좌보와 우보를 구상으로 고쳤다. 즉위 8년인 172년에는 명림답부가 후한의 침략군을 격멸시켰다. 신대왕이 죽던 즉위 15년 179년에 명림답부도 사망하였다.

 

  고구려 9대 왕은 고국천왕으로 신대왕의 차남이다. 이름은 남무이고 179년부터 197년까지가 그의 재위 기간이다. 원래 그에게는 발기라는 형이 있었으나 신대왕이 죽은 후 열린 제가회의에서 발기는 불초하다는 이유로 왕위계승에서 물러나 남무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부인은 우소의 딸인 우씨가 있으며 소생은 없었다.

 

  즉위 6년인 184년에 요동태수가 침입해오자 왕자 계수가 나서서 토벌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왕이 직접 나서 격파하였다. 즉위 12년인 190년에는 좌가려 등이 모반을 꾸몄다가 들켰으며 이에 오랫동안 내분이 진행되다가 즉위 13년인 191년에 반란을 진압하였고 을파소를 국상에 임명하였다. 이후 즉위 16년인 194년에 을파소가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고구려 10대 왕은 산상왕이다. 신대왕의 3남이며 이름은 영우, 이이모이고 재위 기간은 197년~227년이었다. 그는 즉위년에 자신의 큰 형인 발기가 반란을 일으키나 곧 살해된다. 그리고 자신의 형인 고국천왕의 부인인 우씨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는 기묘한 현상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소생이 없었다. 그 외에도 주통촌 여인인 차비가 있었다. 차비는 동천왕을 낳는다.

  즉위 13년인 209년에 도읍을 환도성으로 옮기는 업적 외에는 별 다른 것이 없다.

 

  고구려 11대 왕은 동천왕이다. 산상왕의 장남이며 이름은 교체, 우위거이다. 재위 기간은 227년부터 248년이며 부인은 한 명 있었고 중천왕, 예물, 사구 등을 낳았다.

  즉위 8년인 234년에는 오나라와 화친을 맺고 즉위 11년인 237년에는 위나라의 연호인 하례를 쓴다. 즉위 21년인 247년에는 평양성(장수왕 때의 평양성과는 다르다)을 축조하여 이거한다.

 

  고구려 12대 왕은 중천왕이다. 동천왕의 장남이며 이름은 연불, 재위기간은 248년~270년이다. 부인은 연씨 부인과 관나부인이 있다. 관나부인은 소생이 없었으며 중천왕의 장남의 이름은 기록되어있찌 않다. 차남은 서천왕이다. 그리고 그 밑으로 안국군 달가, 일우, 소발 등이 있었다.

  즉위 26년인 260년에는 6좌평과 관위 16품을 정하고 공복 제도를 실시하였다.

 

  고구려 13대 왕은 서천왕으로 중천왕의 차남이다. 이름은 약료, 또는 약우이며 재위 기간은 270년~292년이다. 부인은 우수의 딸인 우씨가 있으며 소생으로는 봉상왕과 돌고가 있다.

  즉위 17년인 286년에는 왕의 아우인 일우와 소발 등이 모반을 하였으나 곧 들켜 처형되었다.

 

  고구려 14대 왕은 봉상왕이다. 서천왕의 장남이며 치갈왕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상부, 삽시루이며 292년에 즉위하여 300년에 죽었다. 부인과 소생은 없었다.

  그는 고구려의 폭군으로 즉위 3년인 294년에 자신이 국상에 임명한 창조리에게 왕위를 빼앗겨 자살한다.

 

  고구려 15대 왕은 미천왕으로 서천왕의 차남인 돌고의 장남이다. 호양왕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을불, 우블이며 재위 기간은 300년~331년이다. 자신의 아버지 돌고는 봉상왕이 왕위에 즉위했을 때 왕위 찬탈의 가능성이 있다 하여 죽였으며 그의 부인과 아들들까지 다 죽였다. 하지마 을불은 도망쳐 소금장수로 살았다가 봉상왕이 죽자 왕위로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치적은 없다. 부인은 주씨가 있으며 소생은 고국원왕과 무가 있다.

 

  고구려 16대 왕은 고국원왕으로 국상상왕이라고도 한다. 미천왕의 장남으로 이름은 소, 사유이며 재위 기간은 331년~371년이다. 부인은 비가 있으며 소생은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있다.

  즉위 12년인 342년에는 연나라가 미천왕릉을 도굴하며 환도성을 함락시킨다. 이에 다음 해에 왕의 아우를 연나라에 보내 조공을 하며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받는다. 하지만 같이 볼모로 잡힌 왕모 주씨는 즉위 25년인 355년에 돌아온다. 즉위 41년인 371년에는 백제의 태자인 근구수가 평양성을 공격하였고 이에 맞선 고국원왕은 전사하고 만다.

 

  고구려 17대 왕은 소수림왕으로 소해주류왕, 해미류왕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구부이며 재위 기간은 371년~384년이다. 고국원왕의 장남으로 부왕이 전사하자 왕위에 올랐다. 부인은 없었다.

  즉위 2년인 372년에 태학을 설립하고 다음 해에는 율령을 반포하였다. 즉위 5년인 375년에는 불교를 공인하고 사찰을 창건하였다.

 

  고구려 18대 왕은 고국양왕으로 이름은 이련, 이지지이다. 고국원왕의 차남으로 재위 기간은 384년부터 391년까지이다. 부인은 한명이며 소생은 광개토왕 뿐이었다.

  즉위 2년인 385년에 요동과 현도를 공격하였으나 연나라의 반격으로 다시 빼앗겼다.

 

  고구려 19대 왕은 광개토왕이다. 이름은 담덕, 안이며 재위 기간은 391년~413년이다. 고국양왕의 소생이며 부인은 한명이며 소생은 장수왕과 승평이 있다.

  즉위 2년인 392년에 백제를 빈번하게 공격하고 고구려의 전성기를 마련한다.

 

  고구려 20대 왕은 장수왕이다. 이름은 거련으로 재위 기간은 413년~491년이다. 광개토왕의 소생이며 부인은 한 명 있었다. 소생은 조다가 있다.

  즉위 15년인 427년에 수도를 평양성으로 천도하고 즉위 43년인 455년에 백제를 공격한다. 즉위 63년인 475년에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살해한다.

 

  고구려 21대 왕은 문자명왕으로 장수왕의 아들인 조다의 아들로 장수왕의 손자이다. 할아버지인 장수왕이 너무 오랫동안 재위한 덕에 아들 조다가 먼저 죽었으며 장수왕이 죽자 소생인 조다가 죽은 덕에 그의 손자인 문자명왕이 즉위했다. 문자명왕의 이름은 나운으로 재위 기간은 492년~519년이다. 장수왕은 즉위 79년인 491년 12월에 사망하였고 문자명왕은 다음해에 즉위하였다. 부인은 한 명이며 소생은 안장왕과 안원왕이 있다.

  즉위 12년에 백제가 수곡성을 침범한다.

 

  고구려 22대 왕은 안장왕으로 이름은 흥안이고, 아버지는 문자명왕이다. 재위 기간은 519년~531년, 부인과 소생은 없었다.

 

  고구려 23대 왕은 안원왕으로 이름은 보연이며, 아버지는 문자명왕, 재위 기간은 531년~545년이며 부인은 비, 추군, 세군 등 3명이 있었으며 이들 중 비와 세군은 소생이 없었고 추군도 소생은 양원왕 한 명 뿐이었다.

  즉위 10년인 540년에 백제가 우산성을 침략하였다.

 

  고구려 24대 왕은 양원왕으로 안원왕의 장남이다. 이름은 평성, 재위 기간은 545년~559년이다. 부인은 한 명이며 소생도 평원왕, 한 명이다.

  즉위 10년인 554년에 백제의 웅천성을 공격하였다.

 

  고구려 25대 왕은 평원왕으로 이름은 양성, 탕성이며 평강왕이라고도 한다. 양원왕의 장남이며 재위 기간은 559년~590년이다. 부인은 워비와 차비, 두 명이며 소생은 영양왕, 영류왕, 대양왕이 있다.

  즉위 28년인 586년에 평양 장안성으로 천도하였다.

 

  고구려 26대 왕은 영양왕으로 평원왕의 장남이다. 이름은 원, 대원이며 재위 기간은 590년~618년이다. 부인은 한 명이며 소생은 환치가 있다.

  즉위 11년인 600년에 이문진이 신집 5권을 편찬하였으며 즉위 23년인 612년에는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의 군대를 섬멸하였다. 이를 살수 대첩이라고 한다.

 

  고구려 27대 왕은 영류왕으로 평원왕의 차남이다. 이름은 건무, 성이며 재위 기간은 168년~642년이다. 부인과 소생은 없다.

  즉위 9년인 626년에 당나라 사신이 삼국의 화해를 권유하는데 이는 신라의 권유로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고구려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당의 침입을 예상하며 즉위 14년인 631년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그리고 즉위 25년인 642년에 연개소무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만다.

 

  고구려 28대 왕은 보장왕으로 이름은 보장, 장이다. 나라를 잃은 왕이라 시호가 없어 이름을 따서 보장왕이라고 하였다. 재위 기간은 642년~688년이며 평원왕의 3남인 대양왕의 장남으로 평원왕의 손자이다. 부인은 원비와 차비가 있으며 원비는 복남, 덕무를 낳았고 차비는 안승을 낳았다.

 

  재위 4년인 645년에서 당나라가 안시성을 공격하였으나 물리쳤다. 이를 안시성 싸움이라 한다. 내년에는 영류왕 때 부터 짓던 천리장성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다시 다음 해에 당나라의 침공을 받았으며 즉위 19년인 660년에는 신라의 칠중성을 공격했다. 다음 해에는 당나라 군대의 공격이 있었으며 평양성을 포위하고 압록강에거 격전을 벌였으나 당나라가 패배했다. 다시 다음 해에는 연개소문에 사수에서 당나라 군을 대파했으며 2년 후에는 돌사성을 신라에게 점령당했다. 즉위 25년인 666년에는 연개소문이 사망하였고 아들간의 권력투쟁이 벌여졌다.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가 남부의 12성을 들고 신라에 투항하였다. 즉위 27년인 668년에는 나당연합군에 항복을 요청하였으며 왕과 함께 대신 등 20만 명이 당나라로 강제 이주를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고구려가 멸망하였다.

 

  669년에는 당나라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자 이에 대항하여 670년에 검모잠이 한성에서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추대하였다. 이후 신라와 연합하여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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