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게 무서운 사나이 [37 회]
무림맹은 그 큰 규모 때문에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 그들의 일 년 예산이 어지간한 성도의 예산과 맞먹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무림맹에서는 다각도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단지 다른 문파나 상단으로부터 받는 기부금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령상단도 무림맹이 안정적인 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만든 상단이다. 무림맹의 수많은 자금줄 중 가장 큰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고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무령상단이다. 일수만상(一手萬商) 나주목은 무령상단의 주인으로 무림맹에서도 꽤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자였다. 나주목은 상단 대 회의를 아침부터 소집했다. 그의 앞에는 상단의 여러 책임자들이 긴 탁자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른 아침부터 소집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요즘 그들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가 더욱컸다. 나주목은 그들의 얼굴을 쭉 살펴보다 한숨을 내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남, 안휘, 절강, 강소, 그 어느 곳 하나 수월하게 풀리는 곳이 없어. 각지의 상인들은 우리와 등을 돌리고 있고, 대문에 물건이 안 돌다보니 자금의 회전이 원활하지 않아.”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요즘 들어 무령상단의 일이 자꾸 막히고 있다. 중원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들의 지부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은 하나같이 좋은 소식이 못된다. 그것이 나주목의 마음을 답답하게 말들었다. “.........” 그러나 그런 나주목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다들 묵묵부답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이냐? 무엇 대문에 이제까지 잘 거래하던 상인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냔 말이야?” 그의 고함이 점점 커졌다. 그러자 사람들의 목이 마치 자리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만 볼뿐 누구 하나 쉽게 나서지 못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 후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자가 용기를 내어 일어서며 말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서단주!” 일어난 자의 이름은 서종관, 무령상단의 하남성 책임자로 평소에도 심계가 깊기로 소문난 자였다. 나주목의 허락이 떨어지자 서종관이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그동안 이번 일에 관해 따로 조사를 하봤습니다.” “오.....! 그런가?” 서종관의 말에 나주목은 기대감을 드러내었고 다른 남자들의 얼굴은 소태 씹은 것 마냥 일그러졌다. ‘여우 같은 놈. 그럼 미리 조사를 했으면서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단 말이야?’ 모두가 경쟁자이다. 분명 무령상단이라는 거대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 성을 책임지고 있는 단주들은 모두 자신들끼리 실적을 겨룬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고급정보는 지금처럼 자신들끼리도 발설하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서종관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제까지 저희들과 계약했던 상인들이 저희보다 삼 할을 더 받기로 하고 다른 상단과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삼 할이나?” “예! 정확히 저희보다 삼 할을 더 준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현금결제를 원칙으로 한다고 합니다. 삼 할을 더 주는데다 현금으로 결제를 하니 상인들이 당연히 그쪽으로 빠져 나가는 겁니다.” “음.......!” 그의 말에 모두들 침음성을 삼켰다. 삼할, 말이 좋아 삼 할이지 열 냥 이익이 남는 장사라면 세 냥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일 규모가 커져 만 냥의 이익이 남는 장사라면 삼천냥을 더 벌 수 있다. 그러니 어느 상인이 그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단 말이가? 이 정도라면 현재 무령상단의 체제로는 절대 경영이 될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이 누구란 말인가? 삼 할을 더 준다는 그 상단이 말이야.” “황주상단(黃州商團)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등장한 신흥 상단인데 자금의 출처가 어딘지 모르지만 막대한 금액을 뿌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순간 나주목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그들의 의도는 알아냈느냐?” “그것이 아무래도 저희 상단이 목표인 것 같습니다.. 현재 진행되가는 상황을 살펴보면 아주 작정을 하고 저희와 거래를 하는 상인들을 빼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태로 간다면 솔직히 저희 무령상단의 자금력으로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서종관의 말에 나주목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주먹에는 굵은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와 그가 얼마만큼 분노를 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감히 작정을 하고 우리를 건드린단 말이지? 그들의 배후에 어떤 세력이 있는지는 확인해 보았나? 아무리 황주상단의 자금력이 풍부하다 해도 무림맹을 뒤에 업고 있는 우리들을 상대로 무모하게 도전해올 리 없다.” “황주상단이란 이름 이외에는 현재 알아낸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본 단의 인물 중 몇 명을 붙여준다면 알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좋다! 자네에게 본 단의 비밀고수 몇 명을 보내 주겠다. 그들을 이용해 황주상단의 의도와 배후세력, 그리고 그들의 자금출처까지 모두 파악해 내도록. 나는 이 사실을 맹에 알리겠다.” “옛! 알겠습니다.” 나주목은 작금의 사태를 무령상단과 무림맹을 노리는 배후세려의 도전이라 규정했다. 그렇지 않고서 자신들과 거래하는 상인들만 골라 그토록 거액을 보장해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무림맹에서도 당금 무림에 기이한 암류가 흐르로 있다고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나주목은 이 일이 무림맹에서 주시하고 있는 암류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놈이 감히 무림맹에 도전한단 말인가?’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신황은 아침햇살을 받으며 길을 걸었다. 그의 등 뒤로 초씨 숙질이 조용히 따랐다. 누구의 배웅도 없이 조용히 나서는 길이다. 팽가의 누구도 신황 일행이 이렇게 일찍 길을 나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아무도 그들이 없어진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신황은 잠시 멈춰 서서 팽가의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높은 담 너머 그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다시 볼 때가지 건강 하거라.’ 신황의 눈에 따뜻한 기운이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휴우~! 그렇게 미련이 남으면서 아침 일찍 출발합니까? 나중에 무이가 깨어나면 얼마나 서운해 하겠습니까?” “아주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 없다. 그러는 게 오히려 더 무이를 힘들게 할 뿐이다.” “하여간 형님의 심보는 알아주어야겠군요.” 신황의 말에 초풍영이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러나 신황은 그런 초풍영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부지런히 걸어 마시장으로 향했다. 먼 길을 더나기에 앞서 우선 말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서 무림맹이 있는 호북까지 가는 동안 필요한 물품도 미리 구비해야 했다. “음?” 어느 순간 앞장서 가던 신황이 걸음을 멈췄다. 그에 따라 초관염과 초풍영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들은 신황이 왜 멈췄는지 곧 알게 됐다.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골목길에 누군가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팽가를 떠나는 건가요?”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다 다른이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목소리지만 신황의 기억에는 무척이나 또렷하게 남아있는 목소리. 신황의 눈이 좁아지며 입술에서 나직하게 누군가의 이름이 나왔다. “홍.....염화!” “기억하고 있군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잊어 버렸는지 알았는데.” 이제 떠오르는 햇빛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여인, 자그만 체구에 활달한 인상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여인, 그녀는 바로 예전에 신황과 싸운 적이 있던 홍염화였다. “이 시간에 당신이 무슨 일이지?” “당신을 보려고 왔어요?” “..........” “당신은 나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난 아니예요. 난 꿈에서도 당신 생각을 했어요. 당신을 이기기 위해........” 홍염화의 얼굴에는 결의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초풍영은 신황과 홍염화를 번갈아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거참~! 밖에는 한 발짝도 안 나간 양반이 도대체 저런 미인을 어디서 만난거야?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또 뭐고? 원래 남녀가 만나면 춘풍이 불고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 남녀가 만났는데 이런 냉랭한 분위기라니, 아~! 정말 싫다.’ 그런 초풍영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황과 홍염화의 싸늘한 분위기는 계속됐다. 신황은 한참을 홍염화를 보다 말을 꺼냈다. “무슨 용건이지?” “당신과 비무 하러 왔어요.” “난 바쁘오.” “이기고 도망가겠다는 건가요?” “시간이 없을 뿐이오.” 말과 함께 신황은 그녀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순간 홍염화가 입술을 잘근 개물고는 악을 썼다. “당신은 이겼으니 더 이상 관심도 없겠지요. 하지만 난 아니에요. 하루에도 수십 번은 더 당신을 이길 생각을 하고, 꿈속에서조차 당신을 상대로 비무를 했어요. 난 그렇게 지난 몇 달을 보냈어요. 당신이랑 망령 속에서. 이제 난 당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홍염화의 눈가에는 한 방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유난히 호승심이 강한 그녀다. 뿐만 아니라 재능도 뀌어나 어려서부터 천재소리까지 들었다. 거기에다 무공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수련에만 열중했다. 여자나이 스물이 훨씬 넘어가도록 남자라고 모르고 오로지 무공에만 일로정진 했는데 어느 날 낯선 남자가 나타나 그녀의 무공을, 그녀의 자부심을 송두리째 박살냈다. 비록 밀실에서 익힌 무공이지만 비무도 충분히 했고, 대륙십강의 일인인 그녀의 사부로부터 무공지도를 받았다. 고아로 떠돌던 자신을 거둬주고 자신의 성까지 내려준 사부의 은혜를 갚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을 했는데 신황에 의해서 그녀의 자부성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이다. 홍염화에게 있어 신황은 꿈과 자존심을 송두리째 앗아간 악당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너무나 승리를 갈망하면서 꿈속에서조차 신황을 떠올리다 보니 이젠 신황의 망령에 시달렸다. 이젠 정말 그런 망령을 덜쳐버리고 싶었다. 신황은 홍염화를 보며 무심히 말을 했다. “그래서....날 이길 자신이 있나?” “아니요! 하지만, 그래도 난 싸워야 해요. 오늘 당신을 떨쳐내지 못하면 난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으니까.” 단호한 목소리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이나 후회따위는 보이지 않았다.신황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좋아! 비무를 받아주지.” 무인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 비록 안 된다는 것을 알아도,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아도 해야 할 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 그것이 신황이 비무를 받아주는 이유이다. 지금 신황은 홍염화를 여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무인으로 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그럼 여기서..............” "지금은 곤란해. 우리는 이곳을 떠나야하거든." "알아요. 그래서 내가 이리 온 것이니까." "우리가 이곳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한적한 곳을 찾아서 그때 싸우지." "고마워요~!" 인사까지 꾸벅하는 홍화염였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 전의 분함이나 결의 같은 것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오직 대결을 한다는 흥분만이 떠올라 있었다. '거~참! 성격이 좋은 건가? 아니면 단순무식한건가?' 초풍영이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그때 초관염이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처자는 누구신가? 무이의 백부와는 아는 것 같은데 이 늙은이는 도통 처자가 누구인지 모르겠구만." "아....! 전 홍염화라고 합니다. 환영루의 주인이신 환존(幻尊) 홍연후 여협께서 저의 사부이십니다." "아....!" 초관염과 초풍염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호의 경험이 많은 초관염은 물론 초풍영도 환존이 강호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고 있었다. "환존의 제자리니.....? 아, 저는 무당의 삼 제자인 초풍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초소협! 아까는 미쳐 경황이 없어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 불한당 같은 인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예?" 초풍영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떡 벌어졌다. 신황을 보고 불한당이라고 직접적으로 대놓고 이야기하는 인간이 있다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황을 흘깃 살폈다. 그러나 여전히 신황의 표정은 무심 그 자체,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초풍영의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지 홍염화는 이어 초관염에게도 인사를 했다. "성수신의께 인사를 드립니다. 홍염화라고 합니다." "아...! 반갑네" "예~! 저도 반갑습니다. 보고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동안 팽가의 문이 워낙 굳게 닫혀 있어 인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으....응! 그런가?" "넷~!" 정말 변화무쌍한 성격이었다. 조금 전에 신황이 비무를 안 해준다고 방방 뛰더니 이제는 언제 그랬냐 싶게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사근사근한 얼굴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중인들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때 신황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습니다." 최소한 오늘 중에는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무이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했다. 크르르~! 설아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나직이 으르릉 거렸다. "어머! 귀여운 고양이네."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온 홍염화가 설아를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신황의 품에서 고개만 꺼내놓고 나직이 으르렁거리는 설아의 모습을 처음 보는 홍염화로써는 매우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었다. 크르릉~! 설아가 홍염화를 발견하고 신황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신황이 고개를 저었다. 쑥! 가차없이 신황의 품으로 기어들어가는 설아, 그 모습에 홍염화의 입이 쑥 튀어 나왔다. "너무해!" 그녀는 자신을 외면하는 설아에게 투덜거리면서 신황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고개를 설래 흔들며 초씨 숙질이 따랐다. 신황과 일행은 이곳에서 가장 큰 마시장을 찾았다. 이곳을 안내한 사람은 바로 홍염화였다. 이곳 마시장은 바로 환영루의 알려지지 않은 재산중의 하나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신황 일행은 편하게 좋은 말을 구할 수 있었다. 신황 일행은 말을 몰고 관도를 탔다. 북경은 너무나 번잡해 비무를 할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그들은 신황과 홍염화는 북경외곽으로 나가는 관도 근처의 야산에서 비무를 하기로 했다. 길을 가는 내내 초풍영과 홍염화는 꽤나 짧은 수다를 떨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그런 면에 있어서는 무척 죽이 잘 맞는 듯 했다. 사실 이제까지 초풍영의 성격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도 꽤나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본래 그의 천성은 유쾌하면서도 무척이나 말이 많은 편인데 비슷한 성격의 홍염화를 만나자 봇물이 터진 것처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쯧쯧~! 저래가지고 여태까지 어떻게 참았나 몰라." 뒤에서 초관염이 초풍영의 그런 형태를 보며 혀를 찼다.신황은 한적한 야산에 이르자 말을 멈쳤다. "이곳에서 하지. 마침 사람도 없는 것 같으니." "좋아요!" 대답을 하는 홍염화의 눈이 무척이나 맑게 반짝거렸다. 가벼운 흥분으로 홍조까지 떠오르는 홍염화의 얼굴, 그 모습을 보며 초풍영이 중얼거렸다. "분명 아까는 망령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 않았나? 저게 어디 망령을 떨쳐내려고 싸우는 사람의 얼굴이야! 아무리 봐도 싸움을 즐기는 것 같은데. 정말 두 얼굴의 아가씨네." 그의 투덜거림처럼 분명 홍염화는 정말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황염화의 얼굴을 보는 신황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들의 몸에서는 어떤 기운도 뿜어 나오지 않았다. 단지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홍염화의 얼굴은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비록 그녀가 예측불허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공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짜였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오직 신황만이 들어왔다. 그 이외의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스르륵~! 홍염화의 허리에 채대가 뱀처럼 스르륵 흘러 내렸다. 마치 똬리를 틀고 있는 뱀처럼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채대. 주르륵~! 순간 홍염화의 뺨 위로 한줄기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하고 다르다.' 예전에 그녀와 겨뤘을 때도 무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떤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신황의 몸에서는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그녀가 감각을 활성화 시켜도 신황의 몸에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철저한 무(無), 그 자체였다. 초풍영 역시 신황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동안 폐관 수련 하면서 또다시 무(武)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것인가?' 무공이 일천한 초관염이야 지금 신황의 모습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알 턱이 없었지만 이미 후기지수중 수위에 올라있는 초풍영이나 홍염화는 지금 신황의 몸에서 느껴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다. '위험하다' 초풍영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비록 홍염화가 호기롭게 신황과 싸우겠다고 나섰지만 그가 보기에는 이것은 완전히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었다. 이미 신황은 홍염화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경지를 걷는 것이다. 물론 신황이 홍염화를 죽일 리는 없지만 만약 이번에도 홍염화가 꺾인다면 그녀는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을지도 몰랐다. 신황은 무심히 홍염화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에는 거역하지 못할 절대적인 힘이 느껴졌다. "지.......지 않아!" 홍염화의 입에서 나작이 흘러나오는 소리. 그녀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어차피 시작한 싸움, 기세에서 밀렸다고 포기한다면 지난 시간 신황을 목표로 노력해온 시간이 아깝다. 그녀의 입에서 다시 앓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난.....지지 않아!" 촤르륵~! 순간 홍염화의 채대가 마치 창처럼 꼿꼿이 섰다. 부~~웅! 그리고는 마치 실제 창처럼 회전을 했다. 그녀는 그렇게 채대를 돌리며 신황의 주위를 돌았다. 그녀는 신황의 눈을 주시했다. 그의 눈에서 그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 사람 날 보고 있지 않다. 무시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른다. 아무리 자신이 눈에 안차도 그렇지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된단 말인가? 그녀는 이를 잘근 깨물었다. 실제로 신황은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홍염화의 너머를 보고 있었다. 탓~! 순간 홍염화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녀는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신황을 향해 채대를 날렸다. 그러자 날아오는 채대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혀 빛을 발했다. 그러나 신황은 채대가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오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그의 눈은 여전히 홍염화를 보지 않았다. 쉬리릭! 순간 채대가 신황의 눈앞에서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마치 하얀 눈꽃이 바람에 흩날리듯 휘날리는 홍염화의 채찍.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도저히 구별이 가지 않았다. 하얀 눈꽃이 신황의 주위를 돌며 칼바람을 만들어냈다. 채대를 이용하는 무공인 혈산화(血散花)의 일초식인 설무화(雪霧花)였다. "흥! 이래도 움직이지 않을 건가요?" 홍염화가 채대를 조정하며 냉랭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화르르륵! 신황의 몸을 조여 오는 홍염화의 채대, 만약 이대로 당한다면 신황의 몸은 그야말로 갈가리 찢기고 말 것이다. 쉬익~! 그 순간 신황이 움직였다. 그는 홍염화가 있는 허공을 향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촤~아~앙! 그의 몸에 걸친 장포가 마치 칼날처럼 일어섰다. 월영갑이 펼쳐진 것이다. 마치 갑옷을 걸친 것처럼 변한 신황을 보는 홍염화의 눈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채대를 움직이며 신황의 등을 압박하는 동시에 만화미인수를 펼쳐냈다. 파바방~! 그녀가 펼쳐낸 초식이 고스란히 신황의 몸에 적중했다. 놀랍게도 신황이 피하지 않고 그녀의 초식을 몸으로 받아낸 것이다. "앗!" 그녀가 놀라는 사이 어느새 신황은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홍염화는 급히 채대를 회수하고 다시 설리연을 펼쳐내려 했다. 하지만, 신황은 마치 뱀처럼 그녀의 눈앞에서 몸을 움직여 그녀의 뒤를 점유했다. "이런!" 그녀가 놀라 다른 초식을 펼쳐내려 하는데 갑자기 신황이 뒤에서 그녀를 꽉 껴안았다. "아~!" 순간 그녀의 입에서 묘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등 뒤에서 물씬 느껴지는 남자의 강한 채취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신황의 손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신황의 팔은 마치 강철 족쇄처럼 억세어 그녀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 신황이 그녀의 귀에 나직이 속삭이며 천근추를 펼쳤다. 때문에 그들의 몸이 급속히 하강했다. 순간 홍염화는 전신에 전율이 흐르며 몸의 힘이 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신황의 등 뒤로 무언가 나타났다. 근처의 숲에서 던진듯한데 마치 둥근 공처럼 생긴 모양의 물체에서는 무언가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신황이 외쳤다. "모두 피햇!" 순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낀 초풍영이 초관염을 데리고 금히 몸을 날렸다. 순간 둥근 물체가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파파파팟~! 동시에 둥근 물체에서 마치 폭우처럼 날카로운 침들이 비산했다. 초풍영과 초관염은 비산하는 침들의 전란에서 벗어났으나 신황과 홍염화는 그렇지 못했다. 대신 신황은 등 뒤에서 홍염화를 꼭 껴안으며 월영갑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티티티팅~! 그의 월영갑에 부딪치며 비침들이 요란하게 튕겨나갔다. 침의 끝에는 미세한 홈이 파여져 있고 터한 강력한 회전이 걸려 있었지만, 신황의 월영갑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침들의 폭풍이 지나간 후 신황이 일어섰다. 이제까지 무심함을 유지하던 신황의 눈에 한줄기 살기가 스쳐지나갔다. 홍염화와 비무를 하려던 순간 신황은 알았다. 자신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기이한 암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비록 숨을 죽이고 자신들의 기척을 철저히 숨겼지만 신황의 감각은 그들을 잡아냈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이 바로 홍염화가 공격을 개시한 순간이다. 때문에 신황은 무방비 상태로 등을 노출하고 있던 그녀를 감싸 안은 것이다. 신황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비무는 나중에 하지." 그 말을 남긴 채 그는 비침이 날아온 숲 속으로 몸을 날렸다. 신황이 그렇게 사라진 후 홍염화는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만...졌어!"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신황의 손이 그녀를 감싸 안고 바닥에 착지하면서 홍염화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느낌도 거의 없었기에 신황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당사자인 홍염화는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한편 초풍영은 숲 속에서 초관염을 데리고 나오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홍염화가 있는 자리만 둥글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그 밖의 다른 부분은 바위고 나무고 할 것 없이 완전히 초토화된 모습이었다. 더구나 비침에 맞은 부분들은 악취를 내며 시꺼멓게 썩어가고 있었다. "설마 이화폭우정(利和暴雨釘)이란 말인가?" 초관염이 사슴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비침을 하나 주워들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화폭우정이 뭐예요?" 옆에서 초풍영이 묻는다. 하지만 초관염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혼자 중얼거렸을 뿐이다. '이화폭우정은 당문의 금용암기중 하나로 당문의 원수나 배신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도록 당문의 법으로 규제되어 있다. 때문에 이제까지 조용히 봉인돼 있는 물건인데.' 그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이화폭우정이 출현했다는 말은 당문이 출현했다는 말과 마찬가지이고, 그것은 그들이 아직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팽가라는 안락한 요새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다보니 자신이 당가에 쫓기는 몸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화폭우정을 보게 되니 새삼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다. '당문! 하긴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할 집안이지.' 초관염이 어두운 얼굴로 신황이 사라진 수풀을 바라보았다. 신황은 수풀을 헤치며 질주했다. 이미 이화폭우정을 날린 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설아란 명물이 있었다. 설아가 공기 중에 흩어져 있는 습격자의 채취를 맡아 신황에게 방향을 알려줬다. 덕분에 보이진 않아도 신황은 습격자와의 거리를 확실히 좁혀가고 있었다. 순간 신황의 양쪽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모두 얼굴에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복면인들은 신황의 속도에 맞춰 양쪽으로 달리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미끼란 말이군." 신황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분명 적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때 검은 그림자들이 품에서 예의 둥근 물체를 꺼내들었다. 이화폭우정이다.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열 개나 되는 이화폭우정이었다. 단 하나의 폭발력으로 방원 오장을 완벽하게 초토화시켰다. 그런데 열 개가 한꺼번에 터진다면 그 위력이 어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씨익~! 복면인들의 드러난 눈가에 곡선이 그려졌다. 득의의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다. 쉬이익~! 허공에 이화폭우정이 뿌려졌다. 신황이 피할 방위까지 모두 계산하고 펼친 것이기에 피할 곳은 전혀 없었다. 이화폭우정 하나는 어찌 막았을지 모르지만 열 개의 이화폭우정이라면 절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복면인들이 자신하는 바였다. 콰콰콰콰~! 열 개의 이화폭우정이 동시에 폭발을 일으켰다. 신황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폭발에 휘말리고 말았다. 가공할만한 폭발에 휘말린 신황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대신 그 자리를 비침들이 차지했다. 폭발의 여파가 어찌나 거센지 주위의 나무들이 기둥 째 터져 나가고 수풀이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또한 근처의 바위마저 깨지고 부서지며 파편을 사방으로 흩날렸다. "됐다." "성공이다." 복면인들의 입에서 기쁨의 탄성이 토해져 나왔다. 오늘을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그들은 팽가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오늘 신황이 나오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지금의 일을 계획했다. 그리고 계획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기쁨을 표현하기도 전에 기이한 소리가 숲 속을 울렸따. 기이이잉~! 마치 수만 마리의 벌 때가 동시에 날개짓하는 듯한 소리가 숲에서 메아리쳤다. "뭐.....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복면인들이 당혹해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중간에서 터져나간 나무들의 밑둥을 깨끗이 절단하며 날아오는 흐릿한 형태의 원반을. 슈우우~! 원반은 거침없이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 넘기며 복면인들에게 날아왔다. 그에 복면인들은 비상하는 기러기 떼처럼 급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원반의 궤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그들의 눈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순간 원반이 궤도를 바꾸며 복면인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피햇!" 누군가 급히 소리를 지르고 다시 그들이 피하려는 순간 그들의 전면에 갑자기 허깨비처럼 누군가 모습을 나타냈다. 무심히 가라앉은 눈과 무표정한 얼굴, 그가 나타나기 전에는 미처 존재감 자체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그 얼굴을 지척에서 보니 지독한 한기가 몸을 지배했다. 시~이익! 순간 신황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동시에 몇 명의 몸에서 피보라가 솟구쳐 올랐다. 신황의 월영인이 그들의 몸을 일자로 긋고 자나간 것이다. 한편 신황을 피해 몸을 날렸던 복면인들 역시 무사한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어느샌가 그들의 뒤를 쫒아온 월영륜이 그들의 몸을 할퀴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복면인들은 급히 근처의 나뭇가지 위로 몸을 날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기보다는 신황이 어떻게 이화폭우정의 폭발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가 더욱 궁금했다. 그들의 앞에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안착하는 신황, 그의 장포에는 그들이 날린 이화폭우정의 비침이 부딪쳤던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신황의 장포를 뚫지는 못했다. 비록 이화폭우정이 가공했지만 신황의 월영갑은 그것을 충분히 상쇄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신황의 눈가에 희미한 곡선이 그려졌다. '이로써 당신에게 한발 더 다가갔습니다. 아버지!' 그동안 신황은 공격력은 최강을 자랑했지만 방어력에서는 여러가지 약점을 드러냈었다. 그의 성격과 무공자체가 워낙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냈기에 일어난 현상이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지만 월영갑을 펼쳐낼 수 있게 됨에 따라 방어력을 높이고, 또한 월영갑을 응용한 공격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목표인 아버지에게 한발 더 근접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신황의 모습을 바라보는 복면인들의 눈동자에는 질렸다는 빛이 역력히 떠올랐다. 이화폭우정을 맨몸으로 막아내는 인간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그런 인간을 봤다. 그러니 질릴 수밖에, 그들이 보기에 신황은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건 이야기로 들었던 것보다 오히려 더 하지 않은가? 복면인들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나뭇가지에서 물러나봐야 얼마나 가겠는가? 그들은 곧 커다란 나무기둥에 등을 부딪치고 말았다. 신황은 그런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당문에서 왔나?" "........" 그러나 복면인들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신황의 입가에 흐릿한 곡선이 그려졌다. 분명 웃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습을 보는 복면인들은 전신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순간 신황이 그들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대답하지 않아도 돼. 별로 듣고 싶지도 않거든." 이번엔 복면인들의 말문이 막혔다. 원래 이야기를 할 생각도 없었지만 막상 상대의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실낱같던 희망마저도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살아남은 복면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이빨을 질근 깨물었다. "허억!" "크~헉!" 그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들의 몸이 균형을 잃고 나무 밑으로 떨어졌다. 그들의 이빨에는 극독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신황은 그들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어차피 물어본다고 대답해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보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죽음으로 자신들의 비밀을 지키는 것으로 보아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집단에 속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집단은 둘....아니 셋인가?" 무림맹과 당문 그리고 천산파의 인물들까지 신황에게 원한을 졌다. 아마 그 세 단체 중의 한곳에서 보낸 인물들일 것이다. 정황으로 보아 당문에 더욱 혐의가 가지만 다른 집단이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무림맹에 도착한다면 알게 될 것이다. 크르릉~! 품 속에서 설아가 꿈틀거렸다. 아마 돌아가자는 재촉 같았다. 신황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신황이 사라지고 한참 후, 복면인들의 시체 곁에 마찬가지로 검은 복장을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복면인들의 시체에 남은 상처를 일일이 확인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시간을 보낸 복면인은 마침내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그새 더 발전을 했단 말인가?" 예전 신황에게 당한 사람들의 시신에 남겨진 상처도 정말 예리하게 베여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래도 약간의 거친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지고 오직 수정의 단면 같은 매끄러운 면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신황의 무공이 발전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였다.그는 신황이 사라진 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너의 죽음에는 변함이 없다. 감히 무림맹과 당문에 적을 두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당문은 기필코 추적해 널 죽이고 말 것이다." 그는 이어 품속에서 화골산을 꺼내 시체들에 뿌렸다. 그러자 시체들이 지독한 연기를 내며 녹아내렸다. 이윽고 시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그는 망설임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숲 속에 그를 주시하던 그림자가 있었음을. 크르르~! "그래! 역시 그들이구나." 그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렇게 사라졌다. 초씨 숙질과 홍염화는 자리에 앉아서 신황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전에 지독했던 습격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초풍영은 신이 나서 신황에 대한 것들을 홍염화에게 떠들고 있었다. "형님이 아마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분명 도살장에서 소를 잡고 있었을 겁니다. 도대체 그 양반 한 번 손을 쓰면 눈에 보이는 것 없이 가차없이 움직이니 어떤 대는 오만가지 정이 다 떨어 진다니까요." "호호~! 정말요?" 초풍영은 신황의 얼굴표정까지 흉내를 내며 떠들었다. 그에 홍염화는 꺄르르 웃고 초관염은 고개를 그저 흔들었다. 초풍영의 이야기는 갈수록 과장되고 신황이 마치 삼두육비의 외모에 인간의 마음이라고는 전혀 없는 괴물처럼 묘사해갔다. 초관염은 그렇게 떠드는 자신의 조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분명 저러다 큰 코 다치고 말지.' 그리고 그의 걱정은 현실로 일어났다. "난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게 바로 형님의 무공에 관한 부분인데 도대체 무슨 그따위 무공이 있냔 말이예요. 손발로 검기를 뽑아내는 게 말이 됩니까? 또 이번에 보니 장포가 무슨 갑옷처럼 일어서던데 그게 고슴도치지 어디 사람입니까? 하여간 사람 죽이는 기술은 천부적이로 타고난 사람이예요. 그래서 난.........." "난?"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무심한 목소리. "나.....난 우리 형님을 존경합니다. 헤헤헤! 형님 오셨습니까?"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던 초풍영이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자라처럼 움츠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언제 도착했는지 신황의 모습이 보였다. 하여간 눈치 하나만큼은 귀신같은 초풍영이었다.초관염은 그런 초풍영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며 신황에게 말했다. "습격자의 정체는 알아냈는가?" 그의 말에 초풍영과 홍염화가 귀를 쫑긋하며 기울였다.신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역시 그곳인가?" "예!" 신황의 말에 초관염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만약 자신이 당문의 일을 대외에 발표를 해버린다면 당문은 명성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물론 당문의 명성이 워낙 굳건해 누구도 앞으로 나서 말을 하지 못할지 모르나 그래도 장기적으로 볼 때 당문에 치명적인 타격임이 분명했다. 때문에 그들은 앞으로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들의 앞을 막을 것이 분명했다. "휴~! 앞으로도 쉽지가 않겠군. 이곳에서 아무리 빨리 말을 달려봐야 한 달 정도가 걸릴 텐데 말이야.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도저히 안심할 수 없겠어." "앞으로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겁니다." 신황의 말에 초관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늘 웃음만 짓고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초풍영의 얼굴에도 심각한 빛이 떠올랐다. 늘 웃고 떠들지만 초풍영 역시 작금의 무림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림맹, 이미 오래전에 거대문파들이 운영에서 손을 떼고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기에 이제 와서 소림이나 무당 같은 문파들이 운영에 간섭할 권한 따위는 없다. 때문에 내부의 사정을 알 수 없어 도대체 무림맹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보가 부족했다. "휴~! 어쨋거나 천하대회의가 열린다면 무림맹에서 많은 사람을 볼 수 있겠군요. 오랜만에 열리는 천하대회의니까 많은 문파들이 참석할 겁니다." "음! 우리가 무사히 도착한다면 그리 되겠지 이제는 너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될게야." "아....아! 물론입니다. 숙부님! 걱정은 딱 붙들어 놓으라구요. 이제부터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초관염의 질책 섞인 말에 초풍영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큰 소리를 쳤다. 그때 홍염화가 눈빛을 반짝이면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금 천하대회의라고 하셨나요?" "예! 그런데요." "그럼 천하의 많은 문파들과 사람들이 몰려들겠네요?" "물론 그렇겠죠! 그래도 명색이 천하문파의 대화합이라는 거창한 구호아래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영문도 모르고 초풍영이 순순히 대답해줬다. 그러자 홍염화의 눈에 서린 빛이 더욱 반짝였다. '뭐....뭐야? 이런 눈빛은.' 초풍영이 그런 홍염화의 눈빛에 얼굴을 붉혔다. 홍염화의 얼굴은 강호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미인들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하나의 매력이 있었으니 바로 맑으면서도 활력이 넘치는 눈빛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단번에 ㅇ표가 날 정도로 그녀의 눈빛은 매력적이었다. 물론 초풍영은 도인이었기에 그녀에게 다른 마음이 들었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홍염화의 눈빛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순간 홍염화의 입이 좌우로 벌어지며 눈부시게 흰 이가 드러났다. 또한 그녀의 눈이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을 눈앞에 둔 개구쟁이의 눈빛처럼 빛났다. 홍염화가 초풍영을 보며 말했다. "저....초소협! 저도 천화대회의라는 것을 구경하고 싶은데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예? 아....그게!" 뜻밖의 홍염화의 말에 초풍영이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짐이 되지 않게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저도 데려가 주세요." "그게 ....저도 그러고 싶지만 우리 일행의 실질적인 대장은 형님이라서 좀 곤란한데요." "그래요?" 홍염화의 눈빛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기에 초풍영은 신황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그런 초풍영의 작전은 적중을 했는지 홍염화는 초풍영에게서 시선을 돌려 신황에게 다가갔다. 신황은 홍염화가 다가오는 광경을 무심히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라면 상당히 부담스러워할 모습이다. 하지만 신황을 향해 다가오는 홍염화의 모습에는 전혀 우축된 빛이 없었다. 오히려 눈가에 어린 웃음만 짙어졌을 뿐이다. 그것은 매우 친근한 모습이었다. 홍염화는 신황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신대협!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 "저도 같이 가게 해주세요. 저도 이번 기회에 견문을 넓히고 싶어요." 신황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척이나 부담스런 홍연화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잠시 인상을 찡그리다 단호히 말했다. "안되오" "예?" "우리는 놀러가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유쾌한 길은 아니오." 어떤 혈로가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림맹과 당문이 그의 적이다. 초씨 숙질이야 그들과 은원관계가 얽매여 있기에 별 문제가 없지만 홍염화가 합류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녀는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바로 환영루의 이제자라는 지고한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홍염화와 신황은 아무런 안면이 없었다. 단지 한번 겨룬 것 가지고 그녀를 일행으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신황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안......되나요?" 갑자기 홍염화의 눈빛이 처량해졌다. 순간 신황의 눈이 곤혹스러워졌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눈빛, 어디선가 한번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 신황에게 졌을 때 보였던 그 표정이다. 세상 두려울 것 없이 자신만만하던 그때 난생 처음 신화에게 지고 난 뒤 지었던 표정. 하지만 신황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천하대회의에 참석하려면 당신의 사부와 참가하시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히 되니까. 하지만 우리는 당신까지 데리고 갈 여유가 없소. 그리고 남자 셋이 가는 모임에 여자 한명이 끼어있다면 누가 봐도 좋게 보지 않을 것이오." 무척이나 냉정한 말이다. 보통 강호의 남녀는 일반 사람들보다 남녀의 차별이 적어 많이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또한 행동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뭐라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것이 강호인이다. 그러나 신황은 달랐다. 그는 별다른 이유나 인연이 없는데도 남녀가 같이 움직인다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여인과 단둘이 움직이는 일이 있다면 그 여인과 인연이 맺어졌을 때뿐이다. 그것이 신황의 생각이었다. 단호한 신황의 말에 홍염화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무를 썰듯 단호하게 말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너무나 냉정한 신황의 말에 옆에 있던 초씨 숙질의 얼굴이 다 머쓱해졌다. 비록 그들 역시 홍염화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지만 오늘 하루 같이 움직이면서 매우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녀의 활달한 성격에 많은 호감이 들었다. 때문에 비록 일행이 된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저런 신황의 말을 듣자 홍염화에게 동정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홍염화가 신황에게 애절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안 되나요?" "미안하오!" 그러나 신황은 무정하게도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어떤 대화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홍염화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런 홍염화의 모습을 보던 초풍영이 할 수 없이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홍염화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얼굴을 붉게 상기시킨 채 소리쳤다. "좋아요!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저도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아요." 우뚝! 신황이 멈췄다. 그러자 홍염화가 더욱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까 미처 못 했던 비무를 다시 청합니다. 그 대신 그냥 비무를 하면 무언가 미진하니 내기를 하지요." 그 말에 앞으로 나서려던 초풍영은 흥미로운 눈으로 신황을 응시했다. 그가 아는 신황은 절대 어떤 경우에도 비무 요청을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무의 성격에 따라 손을 쓰는 강도가 틀려지긴 했지만. 초풍영의 생각은 딱 맞아떨어졌다. 신황이 다시 고개를 돌린 것이다. 신황은 홍염화를 보며 말했다. "내기라?" "그래요! 내기에 이기는 사람이 지는 사람의 조건을 들어주는 것으로." 신황은 홍염화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그녀의 눈 속에서 생각을 읽으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신황의 시선을 받는 홍염화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신황의 시선을 받자 아까 전의 상황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이다. 홍염화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두 손으로 가렸다. 신황은 그런 홍염화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조건은?" "제가 거는 조건은 간단해요. 당신이 날 인정한다면......당신이 보기에 인정할 수 있는 실력이라면 내가 내기에 이기는 거예요." "내가 무척이나 불리한 조건이군. 내가 인정하는 것이라.......만약 내가 인정하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다면?" "전 천하의 이름이 높은 신대협이 그렇게 옹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신황의 얼굴에 흐릿한 웃음이 걸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홍염화의 얼굴에 홍조가 더욱 짙어졌다. 너무나 냉정한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라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아까전에 신체 접촉이 있었기 때문일까? 하여튼 홍염화는 신황의 그런 미소가 무척이나 눈이 부신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들이 하는 대화를 한쪽에서 듣고 있던 초관염은 홍염화가 보기보다 머리가 무척 좋다고 생각했다. '무이 백부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했구나. 보아하니 전에 한번 만나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 것 같은데, 단 두 번 만에 무이 백부의 성격을 파악했다면 무척 똑똑한 여자구나.' 신황은 절대 외적인 요인에 의해서 자신의 의견을 번복하지 않는다. 반드시 타당한 이유가 있고 스스로 납득을 해야만 승복을 하고 움직인다. 때문에 신황을 움직이려면 외부의 압박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지금의 경우처럼 말이다. 신황은 잠시간 떠올렸던 흐릿한 미소를 지우며 입을 열었다. "좋소! 어차피 하려던 비무였으니 내기에 응하지." "고마워요!" "만약 당신이 나의 옷자락에 상처를 낼 수 있다면 당신을 인정하지." "......." 신황의 말에 홍염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염화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당신 그 말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줄 꺼에요." "기대하겠소!" 간혹 사람은 별것도 아닌 일에 상처를 받는다. 지금 홍염화도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평소라면 그리 화날 일도 아니었건만 방금전까지 신황에게 마음이 흔들렸던 홍염화에게는 신황의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 커다란 상처로 다가왔다. 그러나 신황은 홍염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도전을 하는 것이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배수진을 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시험해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홍염화는 전의를 불태우며 신황을 노려보았다. "거참 분위기 요상하게 돌아가는구나." 초풍영이 신황과 홍염화 사이에서 풍기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옆에서 초관염이 한마디 거들었다. "남녀 사이란 것은 원래 알다가도 모르는 법이지. 저렇게 싸우다가 정이 들지도 모르고......." 초관염의 말에 순간 홍염화의 어깨가 움찔했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시작합니다.!" "이번엔 만만치 않을 거예요." 그렇게 이름 모를 야산에서 두 사람의 비무가 펼쳐졌다. 그날 비무가 어떻게 결과가 났는지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 이외에는 알지 못했다. 단지 남자 셋이서만 가던 삭막한 모임에 홍염화라는 홍일점이 참여를 했고, 신황은 약간 잘려나간 자신의 소맷자락을 보며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 변했다면 변한 광경이었다. 휘~이잉! 바람이 불자 머리가 휘날리며 홍염화의 얼굴 한쪽에 흐릿한 자상이 보였다. 아직 딱지가 채 아물지 않은 상처, 그러나 홍염화는 그에 전혀 개의치 않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