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장. 爲無爲(위무위)
- 백서본 제26장
남회근 : 평담하게 일을 처리하는 일류 인재
장치청 : 무위를 행한다
주춘재 : 무위의 성인은 큰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톨스토이 : 모든 이는 무위 상태여야
오강남 : 어려운 일은 쉬울 때 해야 – 실기失機하지 않는 자세
도올 김용옥 : 함이 없음을 함으로 삼고
여운 이준호 :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 다스려지는 도
63.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 必作於易。天下大事, 必作於細。是以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無爲) 다스려지고(爲), 섬기려 하지 않아도(無事) 섬겨지니(事), 맛보려 하지 않아도(無味) 맛을 느끼게 된다(味). 크던 작든(大小) 많고 적어도(多少), 죗값을 치른(報) 원한은(怨) 덕을 베풀어야 한다(以德). 어려울수록(難於) 그 쉬운 것부터(其易) 그려나가고(圖), 커다랄수록(大於) 그 미미한 것부터(其細) 다스려 나간다(爲). 천하의(天下) 어려움도(難事) 반드시(必) 쉬운 것으로부터 일어나니(作於易), 천하의(天下) 큰일도(大事) 필히(必) 미미한 것부터 일어나는 것이다(作於細). 그러므로(是以) 성인은(聖人) 크게 다스리려 하지 않기에(不爲大) 이룰 수 있고(終), 도리어(故) 그 큰 것부터(其大)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能成). 대저(夫) 가벼이 응하는 것은(輕諾) 필히(必) 믿기 어렵고(寡信), 지나치게 손쉬운 것은(多易) 반드시(必) 어려움이 많아진다(多難). 그러므로(是以) 성인은(聖人) 오히려(猶) 매사를 어렵게 여기니(難之), 도리어(故)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도다(終無難矣)!
(It is the way of the Tao) to act without (thinking of) acting; to conduct affairs without (feeling the) trouble of them; to taste without discerning any flavour; to consider what is small as great, and a few as many; and to recompense injury with kindness.
(The master of it) anticipates things that are difficult while they are easy, and does things that would become great while they are small.
All difficult things in the world are sure to arise from a previous state in which they were easy, and all great things from one in which they were small.
Therefore the sage, while he never does what is great, is able on that account to accomplish the greatest things.
He who lightly promises is sure to keep but little faith; he who is continually thinking things easy is sure to find them difficult.
Therefore the sage sees difficulty even in what seems easy, and so never has any difficulties.
爲無爲(위무위), 事無事(사무사), 味無味(미무미)。大小多少(대소다소), 報怨以德(보원이덕)。
남 : 행함이 없음을 행하고, 일하지 않음을 일하고, 맛없음을 맛본다. 큰 것과 작은 것이 있고 많은 것과 적은 것이 있으니, 원망 갚기를 덕으로 한다.
장 : 무위를 행하고, 일삼음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없음을 맛본다.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
주 : 무위의 자연법칙에 따르고, 특별한 일을 일부러 실행하지 않고, 무미건조 한 음식을 맛있는 음식으로 여긴다. 작은 것을 큰 것으로, 적은 것을 많은 것으로 여겨 존중한다. 원한을 은혜로 갚는다.
톨 : 모든 사람은 무위 상태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완전한 고요함을 지켜야 한다. 모든 사람은 가장 간단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큰 것은 작고, 많은 것은 많지 않다. 당신을 싫어하는 자에게 선으로 복수하라.
오 : 함이 없는 함無爲을 실천하고, 일함이 없는 일無事을 실행하고, 맛 없는 맛無味을 맛보십시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여기고, 많은 것을 적은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원한을 덕으로 갚으십시오.
김 : 함이 없음을 함으로 삼고, 일 없음을 일로 삼고, 맛이 없음을 맛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다스릴 수 있고, 적은 것으로도 많은 것을 제어할 수 있으니, 원한일랑 덕으로 갚아라!
여운 :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無爲) 다스려지고(爲), 섬기려 하지 않아도(無事) 섬겨지니(事), 맛보려 하지 않아도(無味) 맛을 느끼게 된다(味). 크던 작든(大小)많고 적어도(多少), 죗값을 치른(報) 원한은(怨) 덕을 베풀어야 한다(以德).
爲(위할 위) - 하다, 위하다, 다스리다, 되다, 생각하다, 길들이다, 삼다, 속하다.
無(없을 무) - 없다, 아니다, 아니하다, 말다, ~하지 않다, 무시하다, ~관계없이, ~막론하고.
事(일 사) - 일, 직업, 재능, 공업, 사업, 사고, 섬기다, 부리다, 일삼다, 종사하다.
味(맛 미/매) - 맛, 기분, 취향, 뜻, 의의, 맛보다, 맛 들이다, 광택, 윤, 빛깔.
우주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우발적 사건에서 시작한다. 스스로 그러하기에 의도와 목적성이 없다. 의도와 목적성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의도와 목적성을 갖는 순간부터 자연 상태의 산물은 인간 손을 거쳐야만 의도와 목적성에 맞는 새로운 결과물이 되는 인위적(人爲的) 생산물이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소유물이자 사유재가 탄생하게 된다. 자연 상태의 모든 생산물은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과 함께하는 공유재이다. 무위(無爲)는 인간에 의해 길들이기 전의 자연 상태를 뜻한다. 인간이 들에 사는 소를 길들이고자 의도와 목적성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소는 인간의 대체 노동력과 먹이가 되었다. 문명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길들인 결과의 산물이다. 인간에게 유해(有害)와 무해(無害)는 인간이 대량으로 모여 살면서 문명과 함께 탄생한 인위적인 개념이다. 자연 상태가 아닌 인간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지배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자연을 다스리고자 하는 인위(人爲), 작위(作爲)가 생겨난 것이다. 자연이 정의가 아니라 인간의 의도와 목적성이 자연을 다스리고자 하는 욕망과 더불어 인간이 가진 힘이 정의로 둔갑한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상태가 바로 무위(無爲)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의 흐름대로 살아가니 길들이고자 하지 않아도 길들이는 것이다. 노자가 간파한 것은 爲의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다.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은 마구잡이로 자연을 정복했다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혔었다. 바로 과학과 기술을 통해서였다. 과학과 기술은 우리가 도의 본질과 본성에 대해 알려주었지만 자연을 다스리고자 한 의도와 목적성인 인위가 지구에서 스스로 자멸하는 결과 또한 내어주었다. 자연의 이치와 섭리는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無爲) 다스려지고(爲), 섬기려 하지 않아도(無事) 섬겨지니(事), 맛보려 하지 않아도(無味) 맛을 느끼게 된다(味).”
大小多少(대소다소), 報怨以德(보원이덕). 이 구절을 번역함에 고심이 많았다.
나는 맹목적 관용에 반대한다. 관용은 성찰과 반성하여 처절히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가진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베푸는 마지막 용서 행위이다. 그런데 무조건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 이러한 고심을 갖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자기 아기를 죽인 범인을 마음속으로 용서했다. 그런데 범인이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여 스스로 용서받았다는 말을 듣고 빡이 돈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신애는 밀양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혼자 사는 여자로 남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돈 좀 있는 행세를 하다가 아들 민이가 납치되고, 마침내 그 아들은 살해되고 만다. 납치범은 그 아들이 다니던 웅변학원 원장이었다. 너무 가슴이 아픈 그녀는 교회의 치유 집회에 참석하게 되고, 그 집회에서 하나님의 따스한 위로를 받고 치유를 받았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자신의 아픔을 잊기 위해 열심히 전도도 하고, 신앙인들과 교제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도 하면서 살아가는 중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만나고자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에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교도소에서 면회한 그 자리에 그녀는 망연자실하고 만다. 그녀 생각에 이 납치범 교도소에서 많은 고통을 받고 살 것이며, 그런 사람 불쌍히 여겨 용서해주려고 왔는데, 이 납치범도 그만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믿고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납치범은 이렇게 죄 많은 저를 주님이 용서해주셨다고 하며, 당신을 위해 매일 축복하고 있다며, 신애가 신앙인이 된 것을 감사한다는 말을 한다. 신애는 그의 말에 정말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때부터 하나님께 대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용서해요? 하나님이 벌써 용서하셨다는데. 내가 어떻게 용서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용서해야지.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해요?” 용서하러 갔다가 도리어 시험에 들어버린 이 여인은 방황을 거듭하다 마침내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는다. 그녀가 퇴원하며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범의 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죄와 용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네이버 한자 사전을 살펴보니 報(보)에 대한 해석으로 “報 자에는 又(또 우) 자가 있으므로 수갑을 차고 있는 죄수를 붙잡아두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죄수를 붙잡아둔 모습이 왜 ‘갚다’라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일까? 報 자에서 말하는 ‘갚다’라는 것은 사실 벌을 받아 죗값을 치르라는 뜻이다.” 성찰하고 크게 반성하는 이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반성 없는 용서는 없다. 살인마 전두환을 죗값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사면해 줬기에 그 고통은 그대로 당한 자의 한으로 온전히 남아 있다.
“크던 작든(大小) 많고 적어도(多少), 죗값을 치른(報) 원한은(怨) 덕을 베풀어야 한다(以德).” 침팬지는 반성하지 않는다. 도덕성은 인간성이기 때문이다.
圖難於其易(도난어기이), 爲大於其細(위대어기세)。
남 : 어려운 일은 그 쉬울 때 도모하고 큰일은 그 작을 때 한다.
장 : 어려운 일을 도모할 때는 쉬운 데서 시작하고, 큰일을 행할 때는 작은 데서 시작한다.
주 : 어려운 것은 쉬운 것부터 시작하고, 큰일은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톨 : 커다란 불행은 하찮은 불행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당신이 잘살고 있을 때, 힘이 들 때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라.
오 : 어려운 일을 하려면 그것이 쉬울 때 해야 하고, 큰일을 하려면 그것이 작을 때 해야 합니다.
김 : 어려운 것을 쉬울 때부터 도모하고, 큰 것을 미세할 때부터 도모하라!
여운 : 어려울수록(難於) 그 쉬운 것부터(其易) 그려나가고(圖), 커다랄수록(大於) 그 미미한 것부터(其細) 다스려 나간다(爲).
大(클 대) - 크다, 심하다, 높다, 훌륭하다, 하늘.
小(작을 소) - 작다, 적다, 협소하다, 좁다, 가볍게, 삼가다, 낮다, 어리다, 소인, 첩.
多(많을 다) - 많다, 낫다, 더 좋다, 뛰어나다, 많게 하다, 두텁다, 늘어나다, 넓다, 크다, 남다
少(적을 소) - 적다, 작다, 줄다, 적어지다, 적다고 여기다, 젊다, 비난하다, 헐뜯다, 빠지다.
報(갚을 보/부) - 갚다, 알리다, 대답하다, 죗값을 치르다, 재판하다, 판가름하다, 갚음, 알림.
怨(원망할 원/온) - 원망하다, 책망하다, 나무라다, 책망하다, 위배되다, 원한, 쌓다, 축적하다.
以(써 이) - ~써, ~로, ~를 가지고, ~를 근거(根據)로, ~때문에, ~까닭에, ~로 인하여, ~부터.
德(클 덕) - 크다, 여기다, 베풀다, 고맙게 생각하다, 오르다, 덕, 도덕, 은덕, 능력, 가르침.
圖(그림 도) - 그림, 지도, 도장, 서적, 법도, 규칙, 도장, 그리다, 꾀하다, 헤아리다, 다스리다.
難(어려울 난) - 어렵다, 꺼리다, 싫어하다, 괴롭히다, 물리치다, 힐난하다, 삼가다, 우거지다.
於(어조사 어) - ~에, ~에서, 어조사, 기대다, 따르다, 가다, 있다, 탄식하다.
其(그 기) - 그, 그것, 아마도, 만약, 어찌, 장차, 이미, 마땅히, 이에, 그래서.
易(바꿀 역/이) - 바꾸다, 고치다, 교환하다, 전파하다, 다르다, 어기다, 주역, 바꿈, 쉽다.
細(가늘 세) - 가늘다, 미세하다, 자세하다, 잘다, 미미하다, 작다, 적다, 가는 실, 소인.
사업 실패 이후 나는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돈은 돌아서 돈이다. 돈의 흐름이 막히면 막힌 혈관이 터져 뇌졸중이 오듯 사람에게도 많든 적든 돈이 안 돌게 되면 엄청난 충격이 마중 나온다. 여기서 포기하면 자살이 답이다. 자살은 성공한 실패다. 그 아픔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다. 이때 내게 떠오른 찰나의 이미지가 있었다. 엉킨 실타래이다. 실마리를 찾아 이 복잡한 것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갈 것인가? 그냥 끊어 버릴 것인가? 이때부터 나는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성찰과 반성도 뭘 알아야 하는 것이라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려울수록(難於) 그 쉬운 것부터(其易) 그려나가고(圖), 커다랄수록(大於) 그 미미한 것부터(其細) 다스려 나간다(爲).” 실마리를 찾는 것이 어렵지 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풀린다.
天下難事(천하난사), 必作於易(필작어이), 天下大事(천하대사), 必作於細(필작어세)。
남 :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울 때 도모하고 큰일은 그 작을 때 한다.
장 :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주 : 어려운 일은 쉬운 것부터 시작하고, 큰일은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톨 : 온 세상의 불행은 마치 커다란 일이 작은 일로부터 시작되듯이, 작은 불행에서 시작된다.
오 :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세상에서 제일 큰일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김 : 하늘 아래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반드시 쉬운 데서부터 지어지며, 하늘 아래 아무리 큰일이라도 반드시 미세한 데서부터 지어지느니.
여운 : 천하의(天下) 어려움도(難事) 반드시(必) 쉬운 것으로부터 일어나니(作於易), 천하의(天下) 큰일도(大事) 필히(必) 미미한 것부터 일어나는 것이다(作於細).
必(반드시 필) - 반드시, 틀림없이, 꼭, 오로지, 만약, 다, 모두, 바가지.
作(지을 작/주) - 짓다, 만들다, 창작하다, 일하다, 행하다, 부리다, 일어나다, 이르다, 삼다.
도덕심은 성찰과 반성 능력이다. 침팬지에게 도덕심이 없는 것은 성찰과 반성할 수치심을 느끼는 대뇌피질이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덕심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 인생의 좌표와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 훌륭한 사수는 영점을 맞춰나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좌표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기에 옷이 태가 나질 않는다. 작은 것부터 소홀히 하지 않는다. 큰불은 반드시 작은 불씨 하나에서 시작한다. 침착함과 경계심은 이럴 때 필요한 감정인 것이다.
“천하의(天下) 어려움도(難事) 반드시(必) 쉬운 것으로부터 일어나니(作於易), 천하의(天下) 큰일도(大事) 반드시(必) 미미한 것부터 일어나는 것이다(作於細).”
是以聖人終不爲大(시이성인종불위대),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
남 : 이런 까닭에 성인은 끝내 큰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큰일을 이루어 낸다.
장 : 이 때문에 성인은 끝내 큰일을 행하지 않으니, 그 위대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주: 무위의 성인은 결코 큰일을 도모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위대한 사업을 이룰 수 있다.
톨 : 성자는 세상에서 위대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한다.
오 : 그러므로 성인은 끝에 가서 큰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김 : 그러므로 성인은 끝까지 큰일을 하는 법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늘 큰일을 이루어간다.
여운 : 그러므로(是以) 성인은(聖人) 크게 다스리려 하지 않기에(不爲大) 이룰 수 있고(終), 도리어(故) 그 큰 것부터(其大)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能成).
終(마칠 종) - 마치다, 끝내다, 죽다, 다하다, 이루어지다, 채우다, 마지막, 끝.
能(능할 능) - 능하다, 기량을 보이다, 재능이 있다, ~할 수 있다, 응당 ~해야 한다, 능력.
成(이룰 성) - 이루다, 이루어지다, 정리되다, 살찌다, 우거지다, 익다, 일어나다, 완성하다.
도덕심은 자기 길들이기인 절제심과 자제심을 통해 이루어진다. 절제는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98.7%의 침팬지와 보노보를 길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본능을 잠재우는 능력이라고 한다. 내 안의 공격성과 내 안의 탐욕심, 내 안의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이다. 즉,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을 잠재우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자연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고 목적을 갖고 행하지 않아도 자연이 부여한 인간 고유의 능력인 도덕심과 이타심 그리고 자비심을 지키고 세상을 살면 도리어 세상이 나를 알아주는 것이다. 사회적인 평판과 여론이 자자하니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려 하지 않아도 국민의 자발적 존경심을 얻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능력도 도덕심도 없는 침팬지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니 자기가 왕이라도 된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은 결국 벌거벗은 임금이 되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과 업신여김을 당하는 격이다.
“그러므로(是以) 성인은(聖人) 크게 다스리려 하지 않기에(不爲大) 이룰 수 있고(終), 도리어(故) 그 큰 것부터(其大)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能成).”
지난날의 나를 성찰을 통해서 반성해보니 문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삶이었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넓게 같은 탐욕심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사소함을 보지 못했다. 만족할 줄 모르니 만족하면 나오게 되는 세로토닌 분비가 안 되었다. 지금은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아간다. 세로토닌이 다를 다스린다.
夫輕諾必寡信(부경낙필과신), 多易必多難(다이필다난)。
남 : 대저 가볍게 승낙하면 반드시 믿음이 적고, 너무 쉽게 여기면 반드시 어려움이 많다.
장 : 무릇 가볍게 승낙하면 반드시 믿음이 적어지고, 매우 쉽게 여기면 매우 어려워진다.
주 : 쉽게 승낙하면 믿음을 주기 어렵고, 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면 반드시 난관에 부딪칠 것이다.
톨 : 쉽게 얻은 동의는 신뢰받지 못한다. 쉬운 일이 많은 곳에 어려운 일이 많다.
오 : 무릇 가볍게 수락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없는 법이고,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려운 일을 맞게 마련입니다.
김 : 대저 가볍게 응낙하는 것은 신뢰가 적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일은 반드시 큰 어려움을 몰고 온다.
여운 : 대저(夫) 가벼이 응하는 것은(輕諾) 필히(必) 믿기 어렵고(寡信), 지나치게 손쉬운 것은(多易) 반드시(必) 어려움이 많아진다(多難).
夫(지아비 부) - 지아비, 남편, 사내, 장정, 선생, 저, 대저, ~도다,~구나, 다스리다, 많다.
輕(가벼울 경) - 가볍다, 가벼이 여기다, 업신여기다, 천하다, 빠르다, 가벼이.
諾(허락할 낙) - 허락하다, 대답하다, 동의하다, 따르다, 순종하다, 허락, 승낙.
寡(적을 과) - 적다, 작다, 드물다, 외롭다, 과부, 홀아비.
信(믿을 신) - 믿다, 신임하다, 맡기다, 신봉하다, 성실하다, ~맡기다, 신의, 신용, 편지, 정보.
순리(順理)라는 말이 있다. 도의 이치,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렵다. 이치와 섭리가 뭔지도 모르는데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거스르겠는가?
이기심과 욕망은 가장 따르기 쉽고 편리하다. 귀가 얇다고 하는 말은 이기심과 욕망에 편승하는 말에 쉽게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신뢰를 주지 못한다. 신뢰는 성실을 바탕으로 한다. 자사는 중용 20장에서 “성자(誠者)는 천지도야(天之道也)요 성지자(誠之者)는 인지도야(人之道也)라” 하였다.
만물을 낳고 기르는 천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 지구는 끝없이 자전하고 공전한다. 쉬지 않고 성실하게 운행하니 자기의 몸 안에 모든 생명을 낳고 기른다. 그러한 성실함을 배우고 따르는 것이 인간의 성실함이라고 했다. 매일 공부하고 운동하고 자기를 수련하는 것이 어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진정 쉽다고 하는 것은 오랜 수련을 통한 성실함에 대한 열매이다. 그 꽃에 거하지 않고 열매에 거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대저(夫) 가벼이 응하는 것은(輕諾) 필히(必) 믿기 어렵고(寡信), 지나치게 손쉬운 것은(多易) 반드시(必) 어려움이 많아진다(多難).” 어렵고 가볍지 않기에 열매가 달다.
是以聖人猶難之(시이성인유난지), 故終無難矣(고종무난의)。
남 : 이런 까닭에 성인은 오히려 어렵게 여기기 때문에, 끝내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장 : 이 때문에 성인은 오히려 어렵게 여기니, 끝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주 : 성인은 어떤 일도 가볍게 다루지 않으므로, 결코 어려움에 빠지는 일이 없다.
톨 : 이것이 바로 성자가 불행 속에 사는 것처럼 사는 이유다. 따라서 그에게는 불행이 없다.
오 : 그러므로 성인이라도 일을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끝에 가서 어려운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김 : 그러므로 성인은 만사를 늘 어렵게 생각한다. 그러기에 끝내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여운 : 그러므로(是以) 성인은(聖人) 오히려(猶) 매사를 어렵게 여기니(難之), 도리어(故)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도다(終無難矣)!
猶(오히려 유) - 오히려, 가히, 다만, 이미, 크게, ~부터, 그대로, 마땅히, 원숭이, 망설이다.
矣(어조사 의) - 어조사, ~었다, ~리라, ~이다, ~뿐이다, ~도다, ~느냐, ~여라.
나는 공부에 중독됐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하고 죄짓는 기분이다. 도서관에서 매일 10시간을 앉아 책 읽고 글을 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0년을 넘게 매일 하다 보니 재미가 늘었다. 책 읽고 글을 쓸 때가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가장 익숙하고 잘하는 일이 되었다. 중독은 고통이 쾌락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쾌락의 맛이 짧고 강할수록 중독은 강화된다. 공부는 그 중독 과정이 오래 걸리는 일이기에 쉽게 중독 현상까지 가지 못하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공부는 중독 현상 중에 가장 안전하다. 지구도 처음부터 생명을 품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초기 지구는 소행성들과 잦은 충돌로 너무 뜨거웠다. 지구의 중심핵의 온도가 6,000도 이상 되는 이유도 소행성과 잦은 충돌에 의한 고체와 액체 상태로 보존된 철과 니켈의 응어리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식어서 안정화되기까지 8억 년이 걸렸고 바닷물이 충분히 식었기에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초기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고 37억 년이 지나서야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두 발로 걷는 우리의 선조들이 아프리카 초원에 사자를 피해 뛰어다니고 있었다. 산전수전, 공중전,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 운우지정(雲雨之情)의 극락의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첫 경험은 늘 쓰라리다.
“그러므로(是以) 성인은(聖人) 오히려(猶) 매사를 어렵게 여기니(難之), 도리어(故)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도다(終無難矣)!”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