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힘을 얻어 순례 길에 오른 사람은 복되어라." 시편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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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지 순례 코스는 동북 삼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및 하북성이었다.
8/19 첫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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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며..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하여 7시30분 성당에 모인 일행12명과 정 레오나르도 보좌신부님은 성체조배와 주임신부님의 강복으로 영적무장을 하고 인천 국제공항을 향해 조금은 상기된 마음으로 ‘중국교회 복음화를 위한 성지순례’라는 거창한 명제로 순례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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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50분 중국 요동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대련공항을 향한 짧은 하늘여행이 시작되었고 시차는 중국이 1시간 늦으므로 손목시계 바늘을 앞당겨 놓았다. 대련까지 한시간정도 소요되는데 시간은 한 시간 멈쳐 버린 듯이 출발했을 때의 시간과 도착했을 때의 시각이 같다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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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지역의 대외 무역 창구답게 큼직한 물류 창고같은 건물들이 넓게 정렬되어 있는 대련 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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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공항 착륙
광활하고 거대한 땅 중국의 동북쪽에 위치한 대련은 북반구의 온난성 기후지역에 위치하여 있으며, 바다로 둘러 쌓여있기 때문에 온순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로 8월 달 평균기온은 섭씨 24도로써, 대련에서 따뜻한 겨울과 시원한 여름철을 보낼 수 있기에 해변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동북지역의 대외 무역창구로서 기계제조, 조선, 석유화학, 원자력발전, IT 등 산업을 기본으로 발전하고 있고 인구는 130만 명이며 현재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항구도시의 거대한 면모에 모두는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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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에 위치한 관동법원 및 감옥을 방문, 이곳 여순은 청일전쟁 후 일본 관동군이 중국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위해 행정기구와 법원을 설치한 관계로 일본군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특히 여순 관동법원 및 감옥은 안중근 의사, 신채호, 이회영 선생 등 독립투사들이 고문과 사형이 집행되었던 악명 높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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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쏴야만 했을까?
안중근은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를 해치고 결국 동아시아의 몰락을 일으킬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이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과 손잡고 서세동점에 맞서야 할 때 우리민족을 핍박하여 자주권을 박탈하고 국권을 빼앗은 것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전범행위라고 본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토 히로부미와 같이 오랫동안 조선정벌과 흡수통합을 준비해온 몇몇 고위관료들의 머릿속에서 구상 실현된 것이었고 그 그룹의 우두머리가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기 때문에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군을 둘러보기 위해 하얼빈에 가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목숨을 바칠 기회가 왔음을 알아차리고 그 운명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긴다. 안의사의 항일계몽운동과 한국 침략의 원흉을 저격함으로 옥중투쟁은 오로지 동양평화를 위한 행동이었음에 숙연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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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조선 초대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사살하였고 저격의 현장에서 코레아 우라! 를 세번 외치고 즉시 체포된 후 11월 3일 여순 감옥으로 압송 되었으며, 일본의 "국사범"으로 분류되어 감방에 단독으로 구금되었고, 이곳 관동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안중근 의사는 법원에서 약 1km 떨어진 여순감옥 교수형장에서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순국하였으며 그의 나이 3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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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는 마지막 유언으로 "나의 거사는 동양 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임형(사형 집행) 관리들도 앞으로 한일 간에 화합하여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분에 대한 재판정 및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고 역사 교육과 가치관 교육의 중요한 현장이 되고 있고 이곳은 중국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공간이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한번 들러 안중근의사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곳이고, 당시 여순 감옥에는 연간 수감자수는 2만여 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일본 압제에 시달린 애국충절의 투사들이 얼마나 많이 고문을 받으며 죽어갔을까...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을 잃은 채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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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중국 대련에서 첫 점심식사는 한국 음식과 중국 음식의 중간 쯤의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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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성당
얼마쯤 가서 높다란 도시 속에 자그마한 대련성당에 들어서니 반갑게 맞이하시는 노틀담회 수녀님(사복이라 생소함)의 안내로 이곳저곳을 볼 수 있었다. 주임신부님께서 사목하시던 곳이라 왠지 모를 친근감으로 수녀님께 이것저것 질문도 많고 지하 제단 앞에서 첫 단체사진을 찍고 대련성당 주임신부님, 수녀님과 함께 중국식으로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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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성당 성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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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성당 지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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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체 촬영으로 인증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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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을 태운 버스는 대련시내를 지나 외곽에 위치한 큰 규모로 지어진 대련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3시간여 달려 장춘역에 도착하여 숙소로이동, 이국땅에서 첫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