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13구간(마지막 구간) 산행기
일자 : 2014. 3. 16 (일)
산행구간 : 13구간(것고개 – 지석묘 – 120봉 – 문수산 – 보구곶리)
산행시간 : 09:30 – 16:30 (7시간, 점심 1시간 포함)
산행거리 : 약 10 km
참가자 : 24김주홍, 24우명길, 24함기영, 26임종륜, 27송기훈, 27이수룡,
29권효식(+1), 29박성재, 29오창환, 35전부순 (이상 11명)
출 발 : 것고개(마송천주교) – 문덕제 : 택시 이동
귀 경 : 김포대학 해산, 3000번 버스편 귀경
대미를 장식하다
한남정맥,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보구곶리까지 약 180 km의 길. 그 마지막 발걸음인 열세 번째의 종주길에 24기 형님 세분과 26기 종륜 형님이 격려와 축하의 산행을 함께 하셨다. 어쩌면 다시는 찾지 못할 한남정맥의 마지막 길, 지난 길들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기억 속을 헤집으며 날아 다니고 여기에 오늘의 추억을 더하면 그리 큰 자랑거리는 아니겠지만 나름 아름다운 한편의 서사시가 완성되리라.
문덕제 – 지석묘 – 100봉
통진의 것고개부터 문덕제(文德齊)까지의 마루금은 해병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우회를 하여야 하고 이마저 아스팔트 포장도로이므로 택시로 이동을 한다. 해주 최씨 김포문중의 제실(齊室)인 문덕제부터 마루금은 다시 이어진다. 아침 9시 30분, 11명의 종주대원들이 힘차게 발걸음을 뗐다. 시작부터 가파른 비알길을 오른다. 겨우 5분 남짓한 오름이지만 역시 오르막 길은 늘 벅차다. 내 쉬는 숨이 가파르다. 그래도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는 것은 모처럼 10명이 넘는 대원들이 함께함이리라. 오르막 길 끝 지점에서 장비를 점검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최전방 지역이라 마루금에는 군부대가 넓게 자리하고 있어 우리는 철조망을 따라 걷기도 하고 깊고 길게 뻗은 수많은 교통호를 이리저리 뛰어 넘으며 진행을 한다. 그렇게 유격훈련 하듯 50분을 진행하니 고정리라는 곳에 닿는데 여기에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지석묘 한 기가 자리하고 있다. 난생 처음 보는 고인돌. 담배 한대를 향 삼아 사르고는 다시 길을 떠난다.
문덕제에서 하차 - 문덕제 내부로는 출입금지라 좌측 군부대 펜스를 끼고 시작한다.
시작부터 가파른 계단길.
최전방 지역이라 곳곳에 교통호가 있다.
유격장 지역을 빠져 나와
다시 교통호를 따라 내려가면
좁은 고개가 나오고 잘 정비된 계단길을 오르면 고정리 지석묘가 나온다.
실물을 처음 보는 지석묘(고인돌), 누가 잠들어 있을까?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라 하니 시간의 간극이 얼핏 피부에 닿지 않았다.
10시 25분, 지석묘를 떠나 5분 정도 진행을 하니 남정곡 고개로 불리는 12번 국도를 만나고 건너편 마루금으로 다시 올라 길을 이어간다. 완만하게 굽이치는 길, 오가는 사람 없는 길, 포근하게 밟히는 잡풀, 그리고 따스한 봄볕. 모든 것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저 소박하기만 한 오솔길을 10여분 걷자니 마루금은 넓게 깎여 공장지대로 바뀌어 있다. 10시 40분, 갈산공단이다. 공단을 우회하여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 진행을 한다. 낮은 봉우리 80m 봉에 닿아 다시 휴식을 취한다. 오늘 산행은 비교적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지만 모처럼 봄기운이 물씬 배어나는 풋풋한 산길을 마냥 지나치기는 아까워서이다. 따사한 봄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다 보니 제법 땀이 나는데 능선을 넘는 시원한 봄바람에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누군가 말을 뱉는다. “ 우와~ 바람 한 번 조오타아~~~!”
평소 말수 적은 주홍 형님이 거든 말, “그래서 바람 피나봐……..”
“크하하하~~ “ 모두는 왁자지껄하게 웃음판이 벌어졌다.
곧이어 만난 국도를 건너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을 오르자마자 다시 내리막 길
그 길의 끝은 커다란 공단, 갈산공단으로 이어지는데
공단으로 인해 크게 우회하여 끊어진 정맥길을 이어 간다.
언제나 힘차고 즐거운 회원들, 그게 동문산악회의 힘이다.
다시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와
80m 봉을 오르고
아, 시원한 바람이 참 좋다. 그래서 바람 피나바...ㅎㅎ
에덴농축이라 표기된 녹슨 간판이 을씨년스레 걸려있는 폐허가 된 농장을 지나 다시 만난 지방도로. 옛 시골길 같은 조용한 지방도를 따라 15분 정도 걸으니 56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았다. 11시 20분,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 지점에서 잠시 쉬어간다. 한 무리의 산행팀이 곁을 지난다. 칠순은 족히 넘었을 법한 사람이 대장인 듯한데 그간 백두대간과 9정맥을 종주하고 있으며 오늘이 그 대미를 완결하는 마지막 산행이란다. 모두가 1대간9정맥을 완결하는 마지막 산행이라 그런지 무척 상기된 표정들이다. 그렇지, 그 기나긴 시간들을 생각하면 어찌 감격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겨우 일년 여의 한남정맥을 완주하는 우리도 그 소회가 남다른데.
앞으로 20분 정도만 더 진행을 하면 오늘 점심의 식당터로 보아둔 100m봉 정상이 나올 터이다. 다시 발을 옮긴다. 군부대 각개전투 훈련장의 중심을 통과하여 12시가 갓 넘은 시각, 100m봉에 닿았다. 예전 포대가 자리했던 봉우리라 제법 너른 정상. 훌륭한 식당터로 점 찍어 놓았는데 염려했던 대로 아까 우리를 앞질러 갔던 그 종주팀이 미리 판을 벌리고 있었다. 아쉽지만 부근의 또 다른 좋은 자리를 찾아 우리도 점심 자리를 폈다.
늘 그러하지만 점심시간은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들며 먹고 마시고, 잠시라도 입이 쉴 틈이 없다. 효식은 늘 아내가 만든 묵은지를 곁들인 꽁치 볶음과 아내가 직접 구운 김을 갖고 온다. 위생적이기도 하지만 그 맛이 매우 뛰어나 모두의 젓가락이 분주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자주 산행을 하는 멋쟁이 로맨티시스트 효식, 식사 후 뒤처리를 도맡아 하며 큰 소리로 외친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마누라 사랑하는 것 말고는 없어~!”
“푸하하하하~”
모두는 배를 잡고 웃었다. 시간 전 명길 형님이 모두에게 한 말이었는데 그 말에 우리는 감탄하며 크게 웃었고 효식이 그 명언을 바로 써먹은 것이었다. 이제 그 멘트는 마누라에게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는 산악회의 명언이 되고 말았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바쁘다 바뻐...입이^^
100봉 - 쌍용대로 – 문수산 장대지
오후 1시, 부른 배를 내밀며 다시 길을 떠난다. 겨우 5분 정도 내리 걸어 너른 군사도로를 만나고 널찍한 황톳길을 힐링산책하듯 15분 정도 걸으니 쌍용대로라 이름이 붙은 22번 지방도로를 만난다. 여기부터가 본격적인 문수산 등반길이다.
부른 배를 쑤욱 내밀고 전진~!
시골 황토길 같은 임도를 힐링하면서 걸으니 건강묘약이 따로 없다.
즐겁게 15분을 걸으면
만나는 쌍룡대로. 해병 2사단이 주둔한 곳이라 그렇게 명명했다. 길을 건너면 드디어 문수산 입구.
문수산 정상까지는 계속 치고 올라야 하는 비알길의 연속. 문수산(文殊山)은 겨우 376m의 낮은 산이라고 쉽게 본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해수면 정도부터 치고 올라가니 실제로는 도선사에서 백운산장까지의 높이는 족히 되리라. 모두가 거친 숨을 뱉으며 치고 올라간다. 그간의 정맥길이 대개가 그저 평탄하고 조용히 흐르는 물처럼 이어져 왔지만 이제 강으로 빠져야만 하는 마지막 순간이라 크게 용트림을 하는 모양이다.
제법 높은 산답게 중간중간에 바위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바위 모양이 늘 보아오던 바위와는 사뭇 다르다. 둥근 자갈이 촘촘히 박혀 있는 바위들. 아주 먼 옛날, 돌이 깨져 물길 따라 굴러 내리고 이리저리 구르다 자갈이 되고 다시 갯벌에 묻혀 깊이 들어 갔다가 높은 압력으로 바위로 변하고 언제인가 다시 바다가 융기할 때에 높이도 솟아 올라 바위가 되었다. 수백만 년? 이것이 나의 알량한 지학실력을 동원하여 뽑아낸 추론. 박혀있는 자갈을 슬쩍 만져본다.
문수산 자락부터 정상까지는 계속 치고 올라 가는 길. 낮은 산이지만 낮은 산길이 아니다.
오후 2시 5분, 드디어 문수산의 정상인 장대지(將臺址)에 도착했다. 옛날 문수산을 둘러 쌓은 문수산성에서 장군이 총지휘를 하던 장대지. 툭 터진 사위, 미세먼지만 없었다면 굉장한 조망을 제공했을 터,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희미하나마 강건너 북한땅도 보이고 그 유명한 최전방의 애기봉이며 한북정맥의 종착지 오두산도 보인다. 물론 재작년 완주했던 강화지맥의 고려산이며 혈구산도 보이고 김포와 강화도를 잇는 강화대교도 보인다. 이렇게 한눈에 조망을 하니 모든 것이 새롭다.
장대지가 제일 높은 정상인줄 알았는데 정작 정상석은 멀리 비켜 내려앉은 터에 자리하고 있다. 명길형님이 묻는다. “여기가 정상이야?”
개그닥터 수룡이 답한다. “여긴 비정상입니다.”
“크하하핫~~~~~~~~!” 모두들 한바탕 크게 웃고 급기야 부순은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머물다 서둘러 다시 길을 재촉한다. 하산길이 제법 길기 때문이므로.
장대지, 비정상에서 단체로~
좌로부터 29박성재, 24김주홍, 29오창환, 29오창환 형수, 29권효식, 27송기훈, 26임종륜, 24함기영, 27이수룡, 24우명길, 25전부순
여기가 정상석 자리. 어디가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헷갈린다.
장대지 – 북봉 – 보구곶리
장대지를 떠나 지척의 거리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을 한 시각은 2시 25분. 전망대에 도착하니 미세먼지가 걷혀서인지 제법 또렷이 조망을 할 수가 있다. 산경표를 두루 섭렵한 명길형님이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을 한다. 바로 밑으로 보이는 강은 한강이 아니라 조강(祖江)이라 하는데 임진강이 오두산이 있는 곳에서 한강과 만나서 큰 흐름을 이루고 그곳 교하(交河)부터 황해바다까지의 강을 조강이라 한단다. 설명을 듣고 다시 본 강물이 새롭다. 수년 전 북한 대홍수 때에 황소가 떠내려왔다는 작은 섬, 유도(留島)가 그 조강에 둥실 떠있다. 돌아보는 주변 경치가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최전방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평화스럽고 아름답게 보이기만 한다. 참 아이러니한 경치다. 앞으로 갈 길을 가늠해보니 날머리가 제법 멀게 느껴진다. 여기서 멀리 보이는 북봉을 넘어 다시 270m봉을 넘어야 하고 바닷가 날머리까지는 한참이나 걸리겠다.
정상 장대지에서 5분 거리에 조망 좋은 전망대가 있다.
저기가 내 고향, 기영 형님의 고향이 황해도라던데....
간단히 지리 특강도 받고, 한참이나 멋진경치를 구경했다.
간간이 무너진 오래된 문수산성 돌성벽을 따라 훤히 뻗은 길을 느긋하게 10여분 걸으니 북봉. 이제 서서히 마무리를 하는 기분이 든다. 멀리 보이는 270봉을 바라보며 누가 물었다.
“저기 봉우리까지 얼마나 걸릴까?”
예습서에 나온 대로 내가 모범답안을 일러준다. “ 30분요.!”
종주 파워에는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 종륜형이 의문을 제기한다.
“아무리 빠르게 걸어도 그렇지, 저 먼데를 어떻게 30분 만에??”
그러고 보니 멀기는 꽤나 먼 거리인데 설마 선답자가 축지법을 썼을 리는 없을 게고, 정답은 30분 후 밝혀진다.
문수산성의 돌성곽을 따라 북봉으로
얼마 전 문수산을 올랐던 효식의 궁금증 : "왜 성곽 밑의 나무를 몽땅 잘라 냈을까?"
오늘 효식이 찾아낸 대단한 비밀 : "성곽 보수하려고 그랬을 겁니다. ^^"
북봉이다. 멀리 270m 봉이 보인다. 30분 만에 가야 해??
오후 3시 45분, 북봉을 떠난지 35분 만에 270m봉에 도착한다. 걸음을 빨리 한 종륜 형이 먼저 도착해 있다가 정답을 말한다.
“정말 30분이면 가능해~”
그간 정맥길 내내 우리는 말하고는 했다. 사람 발길이 참 무섭다고.
훌륭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마지막 봉우리 270봉. 강 너머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이제는 짧은 하산길만 남은 한남정맥의 마지막 끝자락. 쉽게 떠나기가 못내 아쉽기만 하다.
오늘 한남정맥 처음 온 종륜 형님이 말을 한다. “ 나, 한남정맥 다 한 거지? ㅎㅎ”
내가 답을 했다. “네, 맞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 모두 한남정맥 끝장 낸 겁니다. ㅎㅎ”
마지막 간식을 들며 한참을 쉬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270m봉 까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마지막 조망처인 270 봉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한참이나 쉬었다.
내려 보이는 전망이 그만이다. 북녘땅도 정찰하고
오후 4시 35분, 조용한 숲길을 30분만에 내려와, 우리는 드디어 날머리인 보구곶리에 마지막 발도장을 찍었다. 결코 짧지 않은 거리, 네 번이나 바뀐 계절, 많은 이야기들,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길들, 한남정맥이여 아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 하산길을
그저 조용하고 소박한 하산길
30분 후 마지막 발도장을 찍는다.
드디어 수업 끝~!
그저 평화롭고 조용한 보구곶리 마을 길. 누가 여기를 첨예한 대립의 최전방이라 생각할까?
후기
모든 것이 순조롭고 좋았고 또 재수마저 좋았던 날이다. 날머리인 보구곶리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에 묘수가 없어 고민을 했었다. 우리는 요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마을버스를 탔고 그 버스는 보구곶리를 떠나는 마지막 버스였다. 행운이 겹쳐서인지 포내리 종점에서 운행을 마감한 버스기사는 친절하게도 우리를 회식장소까지 태워 주었다. 오리고기 요릿집에서 우리는 한남정맥을 무사히 완주함을 자축하는 건배를 하였다.
마지막 개그.
일행 : “송회장은 오리고기 왜 안 먹어??”
기훈 : “동족을 어케 먹습니까?”
명길 : “난 소고기 잘 먹어~!”
이해가 안 되시는 분은 댓글로 문의 하시라.
그 동안 같이 한 많은 회원들께 축하와 감사를 드리며 마지막을 산행을 축하하려 애써 함께하신 형님들께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경동동문산악회 전세버스가 되어 버린 마을버스. 친절한 기사님 덕에 발품을 엄청 줄였다. 늘 감동적인 시골 인심~!
완주를 축하하며~! 위-하-산~!!
첫댓글 회계결산
전월이월 : - 3,800
회비 : 210,000 (가족 30,000)
택시비 : - 15,000
식대 : - 210,000
잔고 : - 18,800
멋진 봄 산행기를 읽고 보고 있노라니, 저도 완주를 하였습니다....
이번 산행기 한남정맥 마지막 구간이라 그런지 유달리 정성을 쏟으신 거 같습니다. 그만큼 아쉬움이 크셨단 말씀이시겠죠. 그 느낌 산행기 구석구석에 절절히 묻어 나오고 있네요
암튼 뿌듯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대경동OB산악회 회장님 오리형,
암튼 글하나는 절묘하게 잘 쓰십니다.
후기에 적혀있는 마지막 개그 이해가 잘 안되시는 분들을 위해서 댓글로 이렇게 궁금즘을 풀어 보고자 하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ㅋ
이만 자야겠습니다.좋은 밤되시기 바랍니다
'바람' 이야기는 명길 선배님이 하신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말씀입니다... ㅍㅎㅎㅎㅎ~~!!!
큰 탈없이 무사히 완주한 회원남들 축하합니다
모두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완주, 축하드립니다~~
장장 13개월간 전 구간을 완주하시며 대원들을 이끄신 기훈 형, 수고에 감사드리며 축하드립니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정맥종주이지만 감회가 남 다르겠습니다. 참여하셨던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