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5일 (화) 촬영.
고궁박물관에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전이 열리고 있다.(관람료 없음)
리히텐슈타인은 유럽의 입헌군주국이자 공국(公國)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있으며 영토의 크기가
서울의 1/4 정도인,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국가이다.
가문의 성(姓)을 국가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서
리히텐슈타인은 유럽의 수많은 왕가 사이에서 900년 동안 가문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가문의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왕실컬렉션을 조성해 왔다.
지금도 이어지는 미술품 수집의 전통은 예술의 후원 가문으로서 왕가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은
왕실컬렉션을 통해 리히텐슈타인의 긴 역사와 유려한 문화를 선보이는 특별전시로,
가문의 기원을 보여주는 문헌자료와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 화려한 생활 용품과 바로크 시대의
수준 높은 미술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이번 전시가 작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역사와 생활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안내서에서)
리히텐슈타인 공국.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 알프스 산악지대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수도는 파두츠(Vaduz)이며 독일어를 사용하고 스위스 프랑화를 화폐로 쓴다.
160평방키로미터의 면적에 약 38,000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남북 25km, 동서 6km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유럽의 왕실 중 가장 부유하고 국민 1인당 GDP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왕실에서 국가 예산을 부담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납세의 의무에서 자유롭다.
공국(公國)은 대공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대공은 황제 또는 왕에게 통치권을 인정받아 독립적인 영토를 다스리며 왕위계승권이 있는 군주를 의미한다.
<좌> 프란츠 1세 대공의 사진 / 헤르만 클레멘스 코젤(1867-1945) 1930년경.
14대 대공 프란츠1세(1853-1938)의 초상 사진이다. 프란츠1세는 학업을 마치고 군에서 복무한 후 외교
임무를 맡았다. 1894년부터 1898년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에서 황실 대사로 재직하며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관계 개선, 학술 교류에 기여하였다.
대공의 지위를 물려받은 후에는 경제 개혁을 지속하여 리히덴슈타인의 발전에 힘을 쏟았다. (설명문 내용)
<우> 프란츠 요제프 2세 대공과 게오르기나 대공비의 사진 / 아르투어 벤다(1885-1969년). 1943년.
15대 대공인 프란츠 요제프 2세(1906-1989)와 대공비 게오르기나(1921-1989)의 결혼식을 기념하여
촬영한 사진이다. 프란츠 요제프 2세는 1938년 공국의 통치를 맡으면서 왕가의 거처를 파두츠로 옮겼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직후 체코 지역에 소유하고 있던 토지와 재산을 몰수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왕가의 소장품을 파두츠로 안전하게 이전하였으며 공국의 경제 회복을 위해 헌신하였다. (설명문 내용)
전시장 입구 모습.
<좌>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깃발.
<우> 카롤 1세 대공의 초상 / 1625년경.
리히텐슈타인 대공 가문의 창립자이자 1대 대공인 카를1세(1569-1627)의 전신 초상
<좌>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 대공의 초상 / 안톤 페터 판 로이(1683-1738년) 1706경.
리히텐슈타인 3대 대공인 요한 아담스 안드레아스 1세(1657-1712)의 초상이다.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는 파두츠와 셀렌베르크 지역을 구입하여 현재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영토를 확보했고,
예술과 문화를 적극 후원하여
루벤스의 작품을 다수 구매하는 등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최초로 대중을 대상으로 한 미술품 전시를 빈의 도시궁전에서 개최하기도 하였다.
<우> 안톤 플로리안 1세 대공의 초상
리히덴슈타인 5대 대공인 안톤 플로리안 1세(1656-1721)의 초상이다.
합스부르크 카를 6세 황제(1685-1740)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여하여
황실에서의 영향력을 키웠다. 1713년 황실 의회의 의석을 얻었으며
1719년 파두츠와 셀렌베르크를 리히텐슈타인 공국으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좌> 프란츠 요제프 1세 대공의 초상 / 알렉산더 로슬린(1718-1793년) 1788년.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9대 대공인 프란츠 요제프 1세(1726-1781)의 초상이다. 젊은 시절 삼촌인
요제프 벤첼 대공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고 다양한 외교 활동을 하는 등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다졌다.
합스부르크 왕실의 황금양모 기사단 훈장을 받았으며, 초상화에서도 황금양모 기사단의 훈장을 목에 걸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경제 발전과 왕실컬렉션 수집에 힘썼다.
<우> 알로이스 1세 대공의 초상 / 에두아르트 스트뮐링(1768-1826년)
10대 대공인 알로이스 1세(1759-1805)의 초상이다. 알로이스 1세는 여행과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공국을 근대화 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모라비아 지역에서 산업으로 자금을 모았고 도서를 수집하여
리히텐슈타인 도서관을 확장하였으며 건축가 요제프 하르트무트를 고용하여 빈 헤렌가세에 웅장한 궁전을
지었다.
<좌> 알로이스 2세 대공의 초상 / 프라드리히 실허(1811-1881년)
12대 대공 알로이스 2세(1796-1858)의 초상이다. 알로이스 2세는 빈의 도시궁전을 로코코 복고 양식으로
개조 했으며, 아이스그룹(체코 레드니체)에 위치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궁전을 신고딕 양식으로 개조했다.
예술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미술 작품을 수집하기도 하였다.
<우> 요한 2세 대공의 초상 / 존 퀸시 애덤스(1874-1933년) 1908년.
13대 대공 요한 2세(1840-1929)의 초상이다.
요한 2세는 1921년에 의회 민주주의에 기반하여 헌법을 개정하였고, 그가 개정한 헌법은 오늘날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뛰어난 안목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고 예술가를 후원하였으며,
파두츠 성 등 왕가의 선조들이 거주했던 거처를 재건하였다.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 대공의 초상을 새긴 메달 / 필리프 하인리히 뮐러(1654-1719) 1694년
갑옷을 입은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 대공(1657-1712)의 흉상을 새긴 황금 메달이다.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는 황금양모기사단 훈장을 착용하고 있는데, 그는 1694년 레오폴트 1세 황제
(1640~1705)에게 기사단 입회 자격을 부여받았다.
이 메달은 함스부르크 황실이 부여하는
최고의 영예인 황금양모 기사단 입회를 기념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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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 대공의 "마이엥크루그(뚜껑 달린 병)" / 디오니시오 미세로니(1607-1661년) 1639.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 대공(1611-1684)이 직접 주문 제작한 마이엥크루그(뚜껑 달린 병)로
연수정 한 덩어리를 통째로 깍아 제작하였다.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는 연수정 덩어리를 직접 구입한 후
유명한 보석세공사 디오니시오 미세로니에게 병의 제작을 주문하였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이 마이엥쿠르그는 당시 왕가의 명성을 반영하고 있다.
강이 흐르는 마을의 풍경 / 코시모 디 조반니 카스투루치 공방 줄리아노 디 피에로 판돌피니 / 1620년경.
여러 가지 색갈의 돌을 무늬에 따라 짜 맞춰 장식하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강이 흐르는 마을의 풍경을 표현한 석제 장식이다.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2세 황제는 피에트라 두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메디치 가문이 설립한
피렌체의 공방에서 장인을 초빙하여 프라하에 공방을 설립하도록 하였다.
리히텐슈타인 왕가 역시 피에트라 두라 장식에 큰 관심을 가져
프라하 공방의 수석 장인이 만든 작품을 수집하였다.
이 작품은 다양한 석재를 능숙하게 다루어 풍경을 표현하는 장인의 완벽한 솜씨를 잘 보여준다.
전시장 모습.
튀르크 군과의 전투 장면 / 이크나츠 엘하펜(1658-1715년) 1688-1695년경
화려하게 장식된 코끼리거북 등껍데기 방패 / 16세기 후반.
코끼리거북의 등껍데기로 만든 방패이다. 표면을 화려하게 꾸민 의식용 방패로 보인다.
방패의 가장자리에는 사자 머리 모양 메달 22개를 둘렀고
중앙에는 선원들의 안전한 항해를 관장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장식하였다.
아슈페른-에슬링 전투에서 카를 대공과 요한 1세 대공.
1809년 5월 21일부터 22일까지 빈에서 벌어진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의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화면 중앙에는 오스트리아 군대의 총사령관인 카를(1771-1847) 대공이 있으며,
그 바로 뒤에 리히텐슈타인 대공 요한 1세가 그려져 있다.
기병 예비부대를 지휘했던 요한 1세는 이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헤렌가세 도시궁전의 실내장식 패널.
헤렌가세의 리히텐슈타인 궁전에 설치됐던 도금 장식판으로, 실내 덧문에 부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후반 유럽 전역에서 유행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정교한 새와 꽃,식물 문양을 전반에 배치하고
중앙에는 풍경을 새겨 넣었다.
조각 양식이 이번 특별전에 전시된<카를리네 대공비의 초상> 액자 장식과 매우 흡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헤렌가세 도시궁전의 초기 도면. / 1700년 경
빈 헤렌가세 궁전의 새로운 정면(파사드)을 설계하면서 작성한 도면이다. 1793년 완공된 헤렌가세의
도시궁전은 대공의 거주지로 이용되었으며 마구간, 승마실, 도서관, 문서보관소 등 대공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편의 시설이 배치되었다. 헤렌가세 궁전은 1912년에 매각되었으며 이후 철거되었다.
헤렌가세 도시궁전의 응접실 / 루돌프 폰 알트(1812-1905년)1837년
빈 헤렌가세 궁전의 응접실을 그린 그림이다. 벽을 따라 가구를 배치하고, 벽에는 초상화와 풍경화를
빽빽하게 걸어두었다. 헤렌가세 궁전은 현재 철거되어 남아있지 않지만, 루돌프 폰 알트의 수채화 연작과
빌헬름 J,qnfmrj(1844-1920)가 촬영한 사진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 벽면에 그려진 <알로이스 대공의 죽음>은 현재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퓌르슈텐가세 방면에서 바라본 정원궁전 / 페르디난트 룽크(1764-1834년), 1816년 경.
빈 로사우 정원궁전의 정면 출입구와 그 앞을 지나는 인물을 묘사한 그림으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영지를
그린 연작 중 하나이다. 좌측에 커다란 액자를 옮기고 있는 두 명의 남성은 정원궁전이 대중에게 개방된
미술관으로서의 새로운 기능을 지니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란트슈트라세에 위치한 라수모프스키 궁전의 응접실 / 루돌프 폰 알트(1812-1905), 1845년.
방크카세의 도시궁전을 개조하는 동안 왕가의 거주지로 사용했던 라수모프스키 궁전의 정원의 방 그림이다.
빈 란트슈트라세에 있는 이 궁전은 알로이스 2세 대공이 1838년 구입하여 거주했다.
이 그림에 묘사된 상들리에와 소녀의 흉상은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의 소장품으로, 이번 특별전에서도
볼 수 있다.
새장과 시계가 있는 샹들리에 / 피에르 자케-드로(1721-1790), 1785년 경.
새장 형태의 샹들리에로, 밑면에는 시계를 설치하고 내부에는 새 장식을 세공하였다.
새 장식은 기계장치로 만들어져 고개를 흔들고 15분마다 지저귄다. 바닥에도 기계장치를 설치하여 음관을
통해 6개의 멜로디가 나오도록 하였다.
자케-드로가 만든 자동 장식은 유럽과 오스만 튀르크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중국 황실까지 영향을 주었다.
도시궁전의 장식용 조각 <비너스의 탄생> 테라코타 습작 / 조반니 줄리아니(1663-1744), 1705년.
이탈리아 조각가 조반니 줄리아니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주요 궁전인 정원궁전과 도시궁전을 장식하기
위한 조각을 다수 만들었다. 이 테라코타 조각은 실제 대형 조각을 작업하기 전에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
대공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한 습작이다. 실제 방크가세의 궁전에는 이 테라코타 조각을 바탕으로 제작한
대형 대리석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신체 표현이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가구
가구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가장 먼저 수집하기 시작한 예술품 중 하나이다. 장식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카를 1세 대공은 루돌프 2세 황제의 고문관이자 궁정 책임자로 지내면서 황실의 예술가들과 교류하였고
이들에게 색이 있는 돌을 잘라 무늬에 맞추어 채워 넣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의 가구 두 점을 주문했다.
카를 1세는 리히텐슈타인 왕가가 다양하고 수준 높은 미술품을 소장하도록 초석을 마련하였고 후대
대공에게 영향을 주어 문화 예술에 대한 후원을 지속하도록 하였다.
왕가의 가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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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 대공 카를 1세의 문장이 있는 탁자 상판. / 1620-1623년 경.
피에트라 두라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탁자의 윗면이다.
신성로마제국이 빌라호라 전투에서 거둔 승리와 카를 1세 대공이 보헤미아 총독으로 임명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하였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문장과 전쟁에서 거둔 전리품, 페르디난트 2세 황제의 머리글자를 딴
"F"자 배너,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와 왕관으로 장식한 카를 1세의 머리글자를 장식하였다.
밀라노식 캐비닛 / 1560-1570년 경.
여러 종류의 나무를 잘라 무늬에 맞게 끼워 넣는 상감 기법의 가구이다.
외형은 단순한 상자 형태이나 내부는 다양한 크기의 서랍으로 구성하였고 표면에는 문양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이삭의 희생, 성모자, 성 게오르그와 같은 종교적 주제와 디아나, 헤라클레스와 같은 신화적 주제를
상감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교회의 주요 축일을 알려주는 만세력 / 요한 안드레아스 텔로트(1655-1734), 1705년 경.
금 세공사이자 제도사, 동판화가인 요한 안드레아스 텔로트가 제작한 만년 달력이다. 액자 상단 모서리의
부조와 하단 중앙의 메달리온에 회전이 가능한 은제 판을 달아 만년력의 기능을 부여하였다.
상단 좌측의 판에는 날짜를 새겼고 상단 우측의 판에는 달의 위상 변화를 새겼다.
하단의 원판에는 주요 교회의 축일과 황도 12궁, 각 월(月)의 라틴어명칭을 새겼다.
카를리네 대공비의 초상 /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1755-1842년) 1793년.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초상화가 비제-르브룅이 헤렌가세 궁전에 걸기 위해 그린 알로이스 1세의 대공비
카롤리네(1768-1831)의 초상화이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초상화가 비제-르브룅은 카롤리네 대공비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영감을 받아
신화 속 주제를 선택하여 대공비를 무지개 여신인 이리스의 모습으로 그렸다.
알로이스 왕자비 하나의 초상 / 한스 마카르트(1840-1884), 1875년.
요한 1세 대공의 손자인 알로이스 왕자(1846-1920)의 부인 하나 폰 리히텐슈타인의 초상이다.
그녀는 어두운 배경을 뒤로 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감각적인 붓 터치와 색체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요한 1세 대공의 초상 / 요한 밥티스트 람피(1751-1830년) 1816년 이전.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가장 훌륭한 군사적 인물로 평가 받는 요한 1세 대공(1760-1836)의 초상이다.
나폴레옹 전쟁 등 백 번이 넘는 전투에 참전하였고, 공로를 인정받아 가장 높은 군사 훈장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대십자 훈장을 받았다. 1806년에는 라인동맹에, 1815년에는 독일연방에 가입하여
독립국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였고 공국 경영에도 힘을 쏟아 농경과 산림 분야의 관리 방식을 근대화했다.
리히텐슈타인 왕실 남성의 연미복과 자수조끼 / 연미복-1790년 경, 자수조끼-1780년 경.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남성 복식으로 프랑스풍의 연미복이다. 요제프 2세 황제(1741-1790)의 통치기에
남자들의 공식 행사용 의상은 군복이었으나, 군 계급이 없을 때에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의상에 기반한
프랑스풍 의상을 입었다.
조끼는 미색 비단에 꽃모양 자수를 놓았고 재킷은 검은 벨벳에 꽃문양 자수로 장식하고 가장자리에
레이스를 둘러 화려하게 꾸몄다.
하(下) 오스트리아 영지 대표단의 연미복 / 1820년 경.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가 오스트리아의 동북부 영주들에게 하사한 연회용 제복이다.
황실 공식 행사 때 예복으로 착용하였으며 요한 1세 대공의 의복으로 보인다.
연미복은 붉은 천에 은실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소매는 푸른 벨벳에 은실로 자수를 놓았다. 영주들의 제복은
황실에 대한 충성과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에 황실 행사에서 제복을 착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하르트만 왕자의초상 / 1630년 경.
카를 1세의 조카인 하르트만 왕자(1613-1686)의 초상화이다.
그는 흰 셔츠 위에 팔 부분이 트인 자켓인 더블릿을 입고 목과 소매에 풍성한 레이스 깃을 달았다.
허리에는 새틴 리본을 달아 허리선을 강조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반바지인 브리치스 안에는
비단 스타킹과 레이스를 단 겉 스타킹을 신었고 덧신과 굽이 높은 부츠를 신었다.
요한 1세 대공이 함께 한 프란츠 2세 황제와 나폴레옹의 회담 / 1815년 경.
나폴레옹이 프랑스 군에 황실 연합군이 패한 아우스테를리츠 전투(1805)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사이에 이루어진 회담 장면을 묘사하였다.
황실 군대 소속이자 외교관의 역할을 맡은 요한 1세 대공이 회담 성사를 주도하였으며,
신성로마제국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요한 1세는 프레스부르크 평화조약(1805)을 체결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도자기는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의 중요한 수집대상이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기를 비롯하여 1718년 빈 도자기 공장이 설립된 뒤에는 이곳에서 제작된 도자기를 주로 구입하였다.
빈 도자기 공장은 깨끗한 색채와 특유의 도자양식을 정립하여 명성을 얻었다.
장인들의 섬세한 솜씨로 제작된 빈 도자기는
그 자체로 예술품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화려한 생활문화를 볼 수 있다.
흰 포도와 꽃이 있는 정물 / 빈 황실도자기공장(1744-1864) / 요제프 니그(1782-1863), 1838년.
도자기 판 위에 그린 정물화로, 도자기공장의 수석 화공이었던 요제프 니그가 그렸다.
그는 꽃 정물화파의 창시자 요한 밥티스트 드렉슬러(1756-1811)의 제자이며,
꽃 그림 분야에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았다.
그가 도자기에 그린 꽃 정물화는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유럽 궁정에 보내는 대표적인 선물 중 하나였다.
오스트리아 대공 겸 테셴 공작 카를의 초상 / 빈 황실도자기공장, 클라우디우스 헤어(1755-1838).1837년.
초상화가 요제프 크리후버(1800-1876)가 석판화로 제작한 카를 대공의 초상을 클라우디우스 헤어가 작은
도자기에 모사한 작품이다. 카를 대공은 레오폴트 2세 황제의 아들이자 작센-테센 대공의 양자로,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안료의 투명한 발색과 유약의 광택이 도자기 그림 특유의 깊이감을 자아낸다.
켄타우로스 네소스에게 납치되는 데이아네이라를 그린 접시. /1806.
귀도 레니(1575-1642)의 그림을 모사한 접시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내용 중
켄타우로스 네소스가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반하여 그녀를 납치하는 모습을 주제로 하고 있다.
명작을 축소한 빈 도자기는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뚜껑이 있는 풀과 꽃 장식 주전자 / 1805년 경.
대규모의 만찬 및 디저트용 식기 세트 중 주전자이다. 로마 시대 주전자를 기반으로 우아하고 날렵한
형태로 제작하였다. 풀과 야생화로 몸체를 빙 둘러 목초지와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이는 정원을 그린 폼페이 벽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좌> 도금 장식이 있는 오찬용 식기.
도자기 장식가 안톤 코트가서가 제작한 오찬용 식기 중 일부이다.
코트 가서는 고전 작품과 이를 재해석한 르네상스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도자기를 디자인하였다.
도자기의 표면에 도금 장식을 풍부하게 사용하였고, 새롭게 개발한 금 안료를 여러 번 칠하여 양각의 효과를
주었다.
리히텐슈타인의 "사냥" 식기 세트 중 황소 사냥 장면이 그려진 팔각 받침접시 / 1730-1740년 경.
사냥을 주제로 한 식기 세트 중 하나이다. 요한 엘리아스 리딩거(1698-1767)의 동판화 연작 "사냥"을
도자기에 옮긴 것으로 황소를 공격하는 사냥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식물과 새의 모습을추가적으로
그려 넣었다. 왜가리를 공격하는 매의 모습은 사냥 장면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말 사육과 사냥
근대 유럽에서 말 사육과 사냥은 귀족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취미였다.
왕가에서는 좋은 품종의 말을 기르고 다루는 능력이 중시되었으며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도 승마술과
말의 사육법이 크게 발전하였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전원 지대에 사냥터를 소유하였으며 이곳에서 사냥을 즐겼다.
이들에게 사냥은 취미이자 운동이었고 전쟁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승마와 사냥은
평민과 다른 신분을 보여주는 상징적 활동이었기 때문에 그를 위한 도구는 화려한 세공으로 장식되었다.
말을 탄 두 명의 인물이 있는 풍경 / 페르디난트 라우흐(1813-1852), 1844년
1843년 알로이스 2세 대공은 페르디난트 라우흐에게 대공 가족과 손님, 그리고 그들의 말과 개를
그리도록 주문하였다. 당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은 빈 인근으로 추정되는 풍경을 배경으로 함께 승마 중인 남녀를 그렸다.
흰 조랑말을 탄 어린 시절 요한 2세 대공의 초상화를 위한 유화 스케치 / 1844-1845년.
알로이스 2세 대공의 막내아들이자 후에 대공이 되는 요한 2세(1840-1929)를 그린 습작으로
흰 조랑말 위에 앉아 있는 다섯 살의 요한 2세를 빠른 필치로 포착하였다.
완성작에 나타난 요한 2세가 어린 나이임에도 근엄한 모습으로 묘사된 것과 다르게
이 스케치 속 요한 2세는 해맑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너른 풍경을 배경으로 검은 얼룩무늬 백마와 함께 있는 마구간지기 소년 / 18세기 전반.
얼룩무늬 말을 끌고 가는 마구간지기 소년을 그린 그림이다.말갈기를 분홍색 리본으로 장식하고 화려한
안장을 얹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말은 아이스그룹에 있는 대공 가문의 말 사육장에서 길러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배경에 나타나는 분수대는 말의 고귀함을 한층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풍경을 배경으로 회색 종마와 함께 있는 경기병의 초상 / 18세기 전반.
회색 말을 데리고 가는 경기병을 그린 그림이다. 말갈기는 금빛 술로 장식했으며 화려한 안장을 얹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말은 아이스그룹(레드니체)에 있는 대공 가문의 말 사육장에서 길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동물 그림은 귀족들과 말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며, 귀한 동물을 소유할 수 있는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제작되었다.
앞다리를 들어 올린 얼룩무늬 말을 탄 붉은 외투의 인물 / 요한 게오르고 폰 해밀턴(1672-1737), 1713년.
동물 전문 화가 게오르그 폰 해밀턴의 작품으로 대공 가문에서 사육하던 이탈리아-스페인종 말을 그린
그림이다. 말을 탄 기수가 능숙하게 말을 다루며 앞발을 드는 "르바드" 동작을 수행하고 있다.
말은 휘어진 코와 점박이 무늬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단색의 말보다 털의 색이 다양하고 무늬가 있는 말을 선호하였다.
견부와 함께 있는 얼룩무늬 말 / 요한 게오르그 폰 해밀턴(1672-1737) / 1727년 추정.
동물 전문 화가 게오로그 폰 해밀턴이 리히텐슈타인 대공이 소장했던 최상의 말들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여러 점의 말 그림 중 하나이다. 말 고삐를 잡은 견부(牽夫)가 곡선을 이루며 휘어진 코와 매력적인 무늬를
가진 말에 안장을 얹으려는 순간을 그렸다.
말 두 마리, 사냥개와 함께 있는 마부 / 안 페이트(1611-1661), 1640-1645년.
두 마리의 말과 사냥개, 마부를 그린 그림으로 사람이 아닌 말이 중심인 작품이다.
근세 귀족들은 가치가 높거나 아끼는 동물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순혈종의 말이나 개를 그린 그림은
귀족들의 전유물인 사냥, 승마와 관련하여 귀족들이 누리던 고급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아이스그룹(레드니체)의 "랑데부" / 페르디난트 룽크(1764-1834), 1815년 경.
사냥의 여신 디아나의 신전을 그린 그림이다. 로마의 개선문을 변형하여 지은 다이나 신전은 공원으로
승마를 나가거나 사냥을 나갔을 때 만남의 장소로 사용한 건물 중 하나이다.
건물 내부에는 사냥 시중을 드는 하인들을 위한 숙소와 사냥 준비실, 작은 방과 계단 등을 설치하였다.
전시실 모습.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미술품 수집과 후원.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미술품 수집과 후원은 공국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 한다.
왕가의 미술품 수집은 1대 대공인 카를 1세부터 시작되었으며,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 대공(1611-1684) 대에 미술품 수집을 위한 지침이 마련된 후
적극적인 수집 정책을 유지해 왔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여러 세기 동안 예술가의 작품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미술품을 구입함으로써 개인 컬렉션 가운데 최고 수준의 예술품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자 / 안드레이 델라 로비아(1435-1525), 1480-1490년 경.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를 표현한 테라코타이다. 성모자의 좌우에는 천사들을 배치하였고
비들기 형상을 한 성령이 이들을 수호하듯 내려다 보고 있다.
델라 로비아 가문에서 만든 테라코타는 표면에 주석 유약을 입혀 작품의 색채가 오랜 기간 잘 보존되었다.
요한 2세 대공은 19세기 말에 델라 로비아 가문에서 제작한 테라코타를 다량으로 구입하였다.
세례 요한의 얼굴을 새긴 접시 / 독일 / 16세기.
세례 요한의 머리를 조각한 접시이다. 세례 요한은 혜롯왕에게 옳은 말을 했다가 옥에 갇히고 참수 당했으며
그의 머리는 쟁반에 담겨 왕의 의붓딸 살로메에게 내려졌다.
세례 요한의 참수된 머리가 담긴 접시를 형상화한 조각은 교회의 제단에 놓이거나
세례 요한 수난 기념일 행렬, 종교극 등에 사용되었다.
사비니 여인의 납치 / 안토니오 수시니(1558-1624), /추정 1600년 경.
로마 건국 초기에 일어난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를 주제로 한 조각으로, 잠볼로냐(1529-1608)의
<사비니 여인의 납치, 1582>를 모작한 것이다. 바닥에 주저앉은 사비니 남자 위로 로마 군인이 서 있으며,
사비니 여인이 군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각각의 인물들이 팽팽한 힘으로 대항하고 있으며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긴장감이 넘치는 구성을 이룬다.
리히텐슈타인 대공녀 마리 프란치스카의 흉상 / 피에트로 테네라니(1798-1869), 1837년.
알로이스 2세 대공의 딸 마리프란치스카 폰 리히텐슈타인의 흉상이다.
3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고개를 살짝 돌린 우아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1841년 라수모프스키 궁전 정원의 방을 그린 수채화에 알로이스 2세 대공의 작은 초상화와
이 흉상이 그려져 있어 가족의 초상으로 장식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사적 공간을 엿볼 수 있다.
사비니 여인의 납치가 새겨진 화려한 잔 / 마티아스 라우흐밀러(1645-1686), 1676년
상아를 조각하여 만든 잔으로 당대 최고의 예술가인 마티아스 라우흐밀러의 서명이 남아 있다.
로마 건국 초기 군인들이 행한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사건을 극적으로 구성하여 군인들과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여인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뚜껑에는 사랑의 신 큐피드가
전쟁의 신 마르스를 물리치는 장면을 조각하여 이야기의 결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알로이스 2세 대공의 딸 카롤리네 공주의 한살 반 때 초상 / 프리드리히 폰 아멜링(1803-1887), 1837년.
알로이스 2세 대공의 딸인 카롤리네 공주(1836-1885)가 한 살 반일 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관람자를 향해 똑바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공주는 어린 나이임에도 대담하고 총기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얼굴 부분은 세밀하게 표현하였으나
다른 부분은 간략하게 묘사하여 공주의 당당한 표정과 눈빛에 집중하게 한다.
은제 도금 장식이 있는 수정 고블릿 / 1560-1570년 경.
수정 덩어리를 깍아 몸체를 만들고 정교하게 세공한 은제 도금 장식을 결합한 잔(고블릿)이다.
잔의 발과 입 부분에는 잎사귀 문양을 둘렀으며 뚜껑 부분에는 여인상을 장식했다.
수정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소유할 수 있었던 사치품이었으며 소장자의 품격을 보여주는 귀중한
그릇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사자 가죽을 두른 헤라클래스 / 피에르 야고보 알라리-보나콜시(1455년경-1528년), 1500년 경.
만토바 곤차가 가문의 궁정작가이자
고전 양식의 조각상을 전문적으로 제작한 피에르 야고포 알라리-보나콜시의 헤라클레스 상이다.
주물과 조각 솜씨는 물론 은 상감으로 표현한 눈, 도금 기법 등 모든 부분에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한스-아담 2세 대공이 2013년에 입수하였다.
데이아니라를 납치하는 켄타우로스 네소스 / 안토니오 수지니(1558-1624).1600년 경.
헬라클래스의 아내 데이아니라를 납치하는 켄타우로스 네소스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다.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잠볼로냐(1529-1608)의 원본을 모방하였다.
잠볼로냐가 조각의 구성을 완성한 원본의 실제 제작은 안토니오 수지니가 맡았는데,
실제 제작자가 만든 모본인 이 작품 역시 조각의 수준이 매우 높다.
이 조각은 한스-아담 2세 대공이 2003년에 구입하였다.
히포메네스 / 1750년 경.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중 히포메네스가 아탈란테와 벌인 경주의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클리매네와 스코이네우스의 딸 아탈란테는 구혼자들과 경주를 하여 승리하는 자와 결혼하기로 약속하였고,
패배하는 자에게는 목숨을 대가로 치르게 하였다.
히포메네스가 신들의 도움으로 경기에서 승리하였는데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을 통해 날아갈 듯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이삭의 희생 / 요제프 베르글러(1718-1788), 1753년.
구약성서 속 이삭의 희생 이야기를 조각한 작품이다.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아들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그를 제지하는 장면을 표현했ㄷ다. 천사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아브라함이
시험을 견뎌냈음을 알리고 있다. 한스-아담 2세 대공이 2002년에 구입하였다.
에우로페의 납치 / 요제프 당겔(1762-1804), 1793년.
황소의 모습을 한 제우스가 에우로페에게 반해 그녀를 납치하는 장면을 평화로운 모습으로 표현한 도자기다.
고대 신화를 주제로 한 디저트 코스용 식탁 장식물의 일부로, 이러한 도자기 장식물은 높이가 높은 군상을
식탁 중앙에 두고 양 측면으로 높이가 점차 줄어들도록 배치하였다.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의 흉상 / 안톤 마티아스 그라시(1755-1807), 1806년.
신고전주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의 흉상이다.
카노바는 예술가들의 존경을 받는 뛰어난 조각가였으며, 여러 예술가가 그의 초상을 제작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카노바가 1805년 빈의 황실도자기 공장에 방문 했을 때
안톤 마티아스 그라시가 카노바의 초상을 소조로 만들었고 이후 이 흉상을 제작하였다.
<되블링에서 바라본 빈의 경관> 그림으로 장식한 여행용 상자 / 1825년 경.
그림과 바느질, 글쓰기 등에 필요한 물품을 담았던 여행용 상자로 귀족 여성을 위해 제작된 사치품이다.
상자 뚜껑은 빈의 풍경을 그린 회화 작품으로 장식했고 금속과 자개판을 둘러 꾸몄다.
이러한 상자는 실용적인 물품을 담을 수 있어 선물로 인기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았고,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세련된 예술적 취향을 반영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화가와 그 가족의 초상 / 요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티슈바인(1750-1812), 1796년.
화가 티슈바인이 자신의 가족을 그린 초상화이다.
화면 중앙에 아내인 조피와 어린 두 딸이 있고, 조피의 뒤로 분필을 든 티슈바인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티슈바인은 막내딸 배티의 부탁에 따라 초상화의 일부를 잘라내고 자신의 모습을 녹색 커튼으로 덧칠하여
덮었으나 1975년 작품을 복원하면서 숨겨져 있던 화가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환상 속 고대 건축물의 폐허가 있는 바카날리아.
알레산드로 마냐스코(1667-1749), 클레멘테 스페라(1661년경-1742) / 1726-1727년.
폐허가 된 고대 건축물을 배경으로 주신(酒神) 바쿠스를 기리는 연회인 바카날리아의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바카날리아는 고대부터 있었던 연회로, 지나친 음주로 인해 광란의 잔치로 변모하였다.
그림에서도 술에 취한 인물들이 기둥에 매달리거나 향로를 휘두르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클레멘테 스페라가 건축물을, 알레산드로마냐스코가 인물과 나머지 부분을 그린 합작품이다.
학자들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 / 몬트제의 대가, 1476-1500년.
잘츠부르크 동쪽에 위치한 몬트제의 베네딕트의 수도원에서 주문한 제단화의 날개판 부분이다.
어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개별 판으로 분리되어 전해지던 재단화 중 날개판 부분의 그림을 요한 1세 대공이 1828년 구입하였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1577-1612), 1613년.
아시리아 군의 진영으로 들어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 온 유대인 과부 유디트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유디트는 강인함과 독실함, 겸양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지며 예술 작품의 주제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크리스토파노 알로리는 다양한 버전의 유디트를 제작하였으며,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걸작에 속한다.
사도 요한 / 귀도 레니(1575-1642), 1640년 경.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을 그린 그림이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책에 집중하고 있는 사도 요한을 명상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렸다.
얼굴은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하였으나 망토는 빠르고 간결한 붓질로 얇게 표현하였다.
세밀하게 표현된 부분과 간결하게 표현된 부분의 대비, 귀도 레니 특유의 갈색 색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루돌프 폰 리히텐슈타인의 초상 / 프란츠 폰 렌바흐(1836-1904), 1886년.
요한 1세 대공의 손자인 루돌프 폰 리히텐슈타인(1833-1888)의 초상화이다.
초상화 속에서 루돌프 왕자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요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루돌프 왕자의 얼굴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묘사되었으며,
어두운 배경과 단순한 의상은 그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검은색 모자를 쓴 남성의 초상 / 로소 피오렌티노(1494-1540), 1514년 경.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인 로소 피오렌티노의 초기 작품으로, 검은색 모자와 옷을 입고 문서를 든 채
화면 밖을 응시하는 남성을 그린 그림이다.
커튼 뒤로 가문의 문장이 있는 방패를 든 어린아이 모습의 푸토(putto)가 보이지만, 색이 없어 문장이 어느
가문의 것인지는 파악하기 어려워 초상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없다.
한스-아담 2세 대공이 2014년에 구입하였다.
동방박사의 경배 / 로렌초 코스타(1460-1535), 1510년 경.
아기 예수를 향해 경배를 올리는 세 명의 동방박사를 그린 그림이다.
신성한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인사를 올리고 있으며, 뒤로 푸른 언덕과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펼처져 있다. 베네치아 출신 화가인
로렌초 코스타가 만토바 곤자가 가문의 궁정화가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한 초기 작품으로 보인다.
목자들의 경배 / 요한 쾨니히(1586-1642), 1630-1632년 경.
성모 마리아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마구간에 모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독일의 바로크 화가인 요한 쾨니히는 색채와 음영, 원근법을 적절히 사용하여 생동감 있는 장면을 표현했다.
화면 뒤쪽에는 여러 개의 방과 외부로 통하는 문을 그려 복잡한 화면에 깊이와 안정감을 주었다.
첫댓글 라히텐슈타인 이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작은 나라 38.000명의 인구
나라의 살림살이는 왕가에서
평화로움속에 문화를 꽃피우는 나라로 부럽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가만히 앉아 감상을 하려니 죄송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올해엔 더욱 건강하시고 하는일 마다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