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랑을 회고하는 신부의 고독 (아 2: 8-17)
2장 8-17절은 애인간에 잠시동안 교통이 두절된 상태를 묘사하였으니 ① 교통재개를 위하여 애인의 내방이다(8-14절). 8절은 신랑이 신부를 찾아오는 모습이다.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 달려오는 상태로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모습이다(요4:23). 10-14절은 신랑이 신부를 춘산의 야유를 청하는 청장이 니 예수님이 우리를 은혜 동산으로 부르시는 음성이다. 쓸쓸한 죄악의 겨울도 지나고 은혜의 봄비도 내 린 후에 사랑의 꽃은 피고 성신의 감화고 신령함 노래는 들린다. 희망의 무화과는 결실을 시작하고 구 원의 포도나무에는 희락의 꽃이 만발하였다. 낭떠러지 같은 위험지대에 사는 순결한 비둘기 같은 신부 된 신자를 부르시는 예수의 음성이다. ② 교통의 단절의 책임자니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이다. 여우는 사단의 방해를 가리킴이니 사단은 영고를 시기하여 방해한다. ③ 신부가 신랑에 대한 교통회복의 요구 니 16절은 불가분리를 말하고, [백합화 가운데 양떼]는 교회를 가리킴이니 예수는 선한 목자시다. 17절 은 재회의 요망이니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는 말세니 신부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신랑되신 예수님의 재림이다. 사도요한은 모든 신부를 대표하여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에수님을 만나 는 그 날에 베데르산에 노루처럼, 어떤 사슴처럼 가로 뛰고 세로 뛸 것이다.
과거를 바르게 회고했다면 이스라엘이 바로 가나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욥의 신앙이 되어야지 욥의 아내를 닮아서는 안 된다. 어제의 은혜를 생각하고 오늘을 감사해야 한다.
1. 솔로몬이 사랑을 회고
1)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8) ―
"목소리"는 소리 혹은 목소리를 의미하는 바, 여기서는 소리 즉 발 자국 소리를 의미하는 듯하다.
영해는, 예수께서는 우리 문 앞에서 두드리고 계시는데 그 소리를 듣는 자는 열어라. 요10:27에 '내 양 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5:28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 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 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 리라'고 하셨다. 내가 무엇인데 예수가 나를 찾아오시는가!
2) 노루와 사슴 같이 산에서 빨리 달려옴을 (:9) ―
"다림"은 사지를 신장하여 광비함이고 "넘어옴"은 광비의 준비로 사지를 수습함을 가리킨다. "노루와 사슴"은 다름질에 신속한 것으로 유명한 짐승이다(삼 하2:18, 대상12:8, 잠6:5).
영해는, 요6:16-21을 보면 어두운 밤에 바다에서 파도 만난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심여리쯤 갈 때에 예 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셨고, 요21:1-13에는 부활 후에 밤을 새어 물고기 잡지 못한 제자 들에게 날이 새어갈 때에 바닷가에 예수께서 그물을 오른 편에 던져 잡은 고기를 숯불에 구어 떡과 조 반을 먹게 하셨다. 밤새 헛수고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아는 성도는 감격의 신앙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3)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봄을 (:9) ―
"벽 뒤"는 포도원 울타리가 아니고 가옥 뒤며 "창과 창살"은 솔로몬이 창과 창살 사이로 술람미를 모던 것을 기억한다. "들여다 봄", 힘 있게 시선으로 보는 것을 가리키고 "엿본다"함은 꽃이 된다는 뜻인데, 솔로몬이 창문으로 들여다 보니 마치 꽃과 같이 보인다는 말이다.
영해는, 주님과 우리 사이에 방해하는 창살이 있다. 그러나 틈 사이로 들여다 보나니 주님은 우리 속 사람으리 일동일정을 문틈으로 보신다. 주님을 배반한 베드로를 찾아가셨다. 눅22:61에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 서', 느9:8에 아브라함이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마6:6 중에 '은밀 한 중에 보시는', 고후10:7상에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삼상16:7하에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 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다.
2. 솔로몬의 말을 회고
1) 사랑하고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고 하던 말 (:10) ―
술람미의 친가에서 떠나 신랑의 집으 로 가자는 말이다.
영해는, 주님은 천계에 우리의 거처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그리로 함께 사게 하신다(요14:2-4). 요12:26 에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 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하셨다.
2)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비둘기라고 하던 말을 (:14) ―
이는 비둘기의 특징이니 그들 의 거처는 이런 곳에 한다(렘48:18). 술람미 여자가 성장한 향촌은 산간(山間)전촌(田村) 이였던 까닭과 비둘기에 비함은 순결 온화하기 때문이다.
영해는 '바위틈'은 성도의 피난처, 곧 그리스도를 상징하고(시11:1, 삼상23:14, 19, 14:2, 26:19-20), '비둘 기'는 순결하고(마10:16, 빌2:15), 두려움이 많은(호11:11) 새인 바, 성도는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하고 하 나님 앞에 순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시22:23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 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 다'라고 하였다.
3) 서로 속했다고 하던 말을 (:16) ―
술람미와 솔로몬의 관계를 이야기한 것이다.
영해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관계를 묘사함이다. 부부일신인 것이 교회는 그리스도와 일신이이,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고(시100:3), 또한 그로 말미암아 구속된 데 있다(요17:23, 롬14:8, 고 전6:9).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부부간으로 비유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다. 안이라는 말은 태안의 아기처럼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머리와 지체라고 비 유하기도 하였다.
3. 솔로몬이 사랑하던 때를 회고
1) 겨울이 지나고 비가 그쳤을 때를 (:11) ―
"겨울"은 '가리움'이란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펠레스타인 의 겨울을 '가리움'이 있는 절기로 칭하는 이유는, 그 때에 구름이 항상 하늘을 가리우고 비가 오는 까 닭이다.
영해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진술이다. 겨울은 예수께서 초림하시기 전의 도덕적 내지 영적 흑암 사례를 이름이다.
"비도 그쳤고"는 팔레스타인에는 겨울에 비가 온다. 비가 오고 차가운 시절이 지났으니 사랑하는 자와 만나기에 좋은 계절이 왔다 함이다.
영해는, 노아 홍수 때에 비둘기가 감람나무의 잎새를 물고 와서 홍수가 그친 것을 볼 때에 노아의 식 구들은 구원의 날이 온 것을 안 것이다. 그와 같이 여기서도 비가 그친 것은 구원의 새시대를 약속함이 다. 세례 요한은 노아 홍수시의 비둘기처럼 신약시대의 희소식의 전주곡을 알렸다.
2) 꽃피고 새들이 노래하던 때에 (:12) ―
"꽃피고"는 팔레스타인 동절이 지나자 마자 들에 꽃이 만발 하는 일이 있다. "새들", 원어에는 없는 것을 보충하여 번역했다. "노래"는 포도 나무를 전정할 때 부르 는 노래이다. 영해는, 예수께서 나신 12월 25일부터 엄동설한이 지나고 양춘이 옴을 의미해서 이 계절은 약혼 계절이니 예수께서 산상에서 교훈하시었다(마5-7장).
3) 무화과 열매 익고 포도 꽃향기 토하던 때를 (:13) ―
"무화과"는 여름에 무성하나, 초봄에는 조실 (早實) 무화과가 있다(막11:13). 사람이 처음 익은 실과를 볼 때 기뻐하나니(미7:1), 무화과는 유대인, 포 도는 이방인을 가리킨다(미4:4).
영해는, '꽃'은 눈에 보기 좋으니 동작이고, '향기'는 코에 맛이 좋으니 도덕적이고, '익은 것'은 그의 행 사이니 모든 사람에게 흥미와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행18:27에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 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행20:20에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 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빌1:24에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 하리라'고 하였다.
4)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 먹이던 때를 (:16) ―
술람미는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솔로몬과 사 랑을 하였다.
영해는, 백합화는 교회의 미덕이다. 신앙, 희락, 사랑, 위로가 꽃처럼 만발한 중에 양의 무리인 성도들 이 생명초를 먹이는 목자되신 예수님에게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겠는가! 살전1:2-3에 '우리가 너희 무리 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엡 3:10에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 이니', 계22:16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고후8:24에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고 하였다.
4. 솔로몬의 부탁하던 말을 회고
1) 얼굴을 보이고 소리를 듣게 하라는 말을 (:14) ―
'모양과 기쁨을 주는 이'란 뜻이니(5:5, 창12:, 24:7, 29:17, 39:6).
영해는, 예수께서는 우리의 기도하는 음성, 성경 읽는 음성, 회개하는 음성, 전도하는 음성, 찬송하는 음성과 모양을 보기를 원하신다(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세상은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우리는 성경을 해어지도록 읽어야 한다. 그런데 왜 이 편 지가 재미없나?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는 기도소리, 찬송하는 소리, 성 경읽는 소리, 웃는 소리가 나와야 한다.
2) 포도원에 꽃이 피었으니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으라고 하던 말을 (:15) ―
술람미 여자는 포도 원을 지키고 있을 때 솔로몬과 함께 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여우가 포도원을 허는 고로 못간다고 하니, 그 여우를 잡고 함게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여우가 많았다(삿15:4, 애5:18). 그 새끼는 땅에 구멍을 뚫으면서 포도원을 파괴시칸다고 한다(느4:3).
영해는, '포도원'은 교회요(시80:8-16, 요15:1). '여우'는 거짓 선지자들(겔13:4-7, 눅13:32), '작은'은 성도 를 해롭게 하는 모든 불의와 이단을 의미한다. '잡으라'는 것은 방비와 죽임을 의미한다. 벧후2:1에 '그러 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 라'고 하였고, 요이10에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 고 인사도 말라', 딛3:10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히12:15에 '너희는 돌아 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 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행20:29에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 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능력을 받았다고 할 때 성령의 영을 받았는지 미혹의 영을 받았는지를 잘 분별하 여야 한다.
3) 날이 기울고 그림자 갈 때 돌아와 베데르 산에서 노루와 어린 사슴 같으라고 하던 말을 (:17) ―
사업으로 인하여 어디 갔다가도 해질때에는 베데르산(예루살렘의 서남에 있는 산으로, 이별이란 뜻이다) 에 있는 노루같이 빨리 오라고 부탁하던 말이다.
영해는, 성도가 주님을 멀리 떠났다가 뉘우치고 속히 그를 찾기 원하는 말이다. 예수는 자신을 잃은 그 날이 다 가기 전에, 곧 산과 같이 막혔던 이별이 해소되기를 원한다. 그는 주님의 찾아오시는 걸음이 노루와 어린 사슴의 걸음처럼(삼하2:18, 대상12:8) 빠르기를 원한다. 사19:1에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마10:16)고 하셨다.
주님을 떠나 영 육이 망가지는 일이 없도록 하자!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