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서 3장 강해
[ 서 론 ]
3장을 시작하기 전에 물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스의 밭입니까? 보아스에게 속한 밭입니까? 보아스에게 속한 보리밭은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보아스의 보리밭이 있는 장소는 베들레헴 성안에 있느냐? 성 밖에 있느냐? 룻기서 1장에서 에브랏 길이라고 하셨으니까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왜 또 보아스의 보리밭을 말씀하느냐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보아스의 보리밭이 되어 있고 따라서 이 자리에서 이 영광의 복음을 받는 우리들이 나가서 목회 하는 모든 교회가 또 보아스에게 속한 보리밭이 되어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앞에 있는 보아스의 보리밭을 보고 그 밭에서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아스의 보리밭에서 일하는 일군들은 몇 가지의 사람들이 있습니까? 보아스는 신랑 예수이고 사환은 영광의 영이고 보리 베는 자는 낫을 들고 베고 있으니까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세상의 미련을 끊어주시는 사랑을 보는 자입니다.
따라서 베는 자가 되려면 자신부터 세상에 속한 것을 다 끊어 버리고 회리 바람을 타고 올라가는 엘리야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14:30)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속한 것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니까 세상 임금이 관계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각 자가 어느 마음 한 구석에 세상에 속한 것이 없는가 항상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온전히 세상에서 끊어져 있을 때에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하여 세상에 속한 미련을 끊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자리에 있지 못하면 (마24:12) 말씀과 같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악한 자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떠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불법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 책에 그 이름이 녹명 된 자 곧 순교자의 영광을 바라보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성도들을 순교하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속한 것을 완전히 끊어주시는 사랑이 첫 삼년반 환난인데 도리어 악한 자의 권세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곧 불법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베는 자가 되어야 하고 베는 자가 되려면 자신이 먼저 세상에 속한 것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언제 회오리 바람이 휘몰아치더라도 그 바람을 타고 올라 갈 수 있는 믿음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물길어 온 소년들은 어디서 무슨 물을 떠오느냐 첫 삼년반 환난의 때에 하늘의 영광을 더 하시는 큰 기쁨이 곧 이 소년들이 길어 온 이 물은 신랑 예수로부터 길어 오는 생수가 되는 것입니다.
(요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좋은 것은 알면서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 온 하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신랑 예수로부터 받은 생수가 넘쳐 날 때에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수도 있고 그 소년이 자라나서 베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녀가 있었지요 시녀는 누구냐 라헬과 레아가 시집 갈 때에 시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창29:24,29) 옛날에는 시집가는 신부가 시녀를 몸종으로 데리고 갔지요 이 시녀는 침방에까지 들어가서 신랑 신부의 잠자리를 봐 주기까지는 하는데 그 잠자리에 신랑과 함께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는 바라보면서도 순교하게 해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아직도 시녀라고 부르게 됩니다.
소녀가 있지요 소녀는 아직도 안방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소녀는 첫째 부활의 영광을 듣기는 하는데 그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는 과정 곧 순교하게 하시는 과정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녀는 작은누이 같아서 아직도 사춘기에 이르지 못한 신앙 단계이고,(아8:8)
이삭을 줍는 룻이 있지요 이 첫째 부활의 영광을 증거 하게 하시는 말씀을 하나 하나 주어 모으고 있습니다.
(단12:4) 말씀과 같이 (창1:1)에서 (계22:21)까지 빨리 왕래하며 주어 모으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이제 처음부터 올라갑니다.
이삭을 부지런히 줍고 소녀로 자라나고 소년의 자리에서 물을 길어 오고 베는 자가 되어 단으로 묶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 해 볼 것은 3장에서는 타작 마당이 나오는데 보리 단을 타작 마당에까지 옮겨오는 역사는 기록되지 아니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단들을 타작 마당에까지 옮겨다 주실까요 은 삼십에 예수를 판 가룟 유다 같은 친구들을 통해서 하속들과 군병들과 합력 하여 끌어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를 아니합니다. 왜요 그들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일 했기 때문입니다.
(마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빌라도의 관정까지 오리요 빌라도의 관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가 오리가 되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까지 십리가 됩니다.
보리 단을 타작 마당에까지 옮겨다 주는 친구들이지만 악한 마음으로 일 했기 때문에 이름도 없습니다.
타작 마당에서 도리깨로 떠는 자도 있어야 하는데 떠는 자도 기록되지 아니했습니다. 세례요한의 목을 베어 소반에 담는 자들의 이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리 단을 타작 마당에까지 끌어 간 자들과 도리깨로 때린 자들은 악한 마음으로 역사 했기 때문에 도리어 심판의 대상이 되어 후 삼년반 환난의 때에도 회개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가운데 죽게 하십니다.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셔서 니느웨에 사는 12만 여명을 회개케 하는 역사는 이루었지만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이 다 죽기를 바라는 악한 마음으로 일 했기 때문에 면류관이 없다는 사실을 보게 하시기 위해서 해가 요나의 머리에 뜨겁게 쬐고 있습니다.(욘4:8)
2장에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신랑 예수께서 순교하게 해 주시는 역사를 3장에서 나타내 주시고 계십니다.
3장에서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의 역사를 보지 못하면 환난의 때에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는 제자들과 같이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시고 계십니다.
(막14:51-52)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 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 하니라 하시는 그 청년의 뒤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1절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지금까지는 나오미가 룻에게 말했고, (룻1:15) 시모가 자부에게 말하였습니다. (룻2:20) 그러나 여기서는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기 신랑 예수가 되는 것을 보았고 따라서 첫째 부활의 영광도 보고 있습니다. 룻의 시모니까 룻을 낳아 준 어머니는 아닙니다. 그의 아들 곧 자기 남편 되었던 말론을 낳은 어머니 입니다.
그러니까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라고 한 것은 자부가 아니라 신랑 예수의 신부가 된 룻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19:27)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가리켜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나신 예수께서 요한을 불러 십 사만 사천의 영광에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나오미의 몸에서 난 아들 말론으로 인하여 엘리멜렉의 집으로 시집을 왔고 나오미로 인하여 순교자의 영광의 자리까지 인도하심 받게 된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말론 이 없었으면 룻이 나오미의 자부가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 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아8: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라고 하셨지요 작은 누이는 유방이 없다고 했으니 아직 사춘기가 되지 못했단 말입니다.
첫째 부활은 바라보면서도 환난의 날에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로부터 기쁨을 받는 자리에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준 내가 그 첫째 부활의 영광을 사모하는 네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로 복 되게 하는 것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말씀하신 (계19:9)의 복입니다.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은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의 사랑 안에서 찬송하는 생활입니다.
(행12:6) 야고보가 헤롯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서도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는 베드로의 안식인 것입니다.
이 안식을 받으면 순교하게 해 주시는 기쁨으로 찬송하게 하시는 복이 되고 이 안식을 받지 못하면 내가 순교한다고 큰소리치다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는 그 신랑이 어느 신랑인가? 순교하게 하시는 신랑입니다.
그러므로 (단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말씀하셨지요 호위한다는 것은 높은 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원수들에게서 지켜 주는 것이지요 첫 삼년반 환난의 때에 순교하게 해 주심으로써 천년 왕국을 잃어버리지 않게 지켜 주십니다.
◈ 참 고 ◈
(마26: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말하였고,
(요13:37)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하는 베드로입니다.
(마26: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있고,
(막14:54) 베드로는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고,
(눅22:56) 베드로가 불빛을 향하여 앉아 있었고,
(요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하였고 계집 아이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눅22:62)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합니다.
특히 주의할 것은 (마26: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그 제자들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마26:56) 교역자가 그와 같이 가르치면 모든 교인들이 다 도망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오미는 룻에게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 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말하고 있습니다.
◆ 순교하게 하시는 길
1.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고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이셨습니다.(마17:1)
2. 큰 다락방에서 이 유월절을 먹게 하셨고,(눅22:12)
3.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을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마26:37)
4. 가룟 유다를 보내셔서 억지로 오리(빌라도의 관정)와 십리(골고다 언덕)을 동행 하셨고,(마5:41)
5.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 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21:14,행6:15)
6. 내가 감추었던 만나와,(계2:17)(채찍으로 매를 맞을 때에 주시고)
7.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사형장에서 주시기 때문에 받는 자 밖에 알지 못합니다.)
8. 함께 못 박힌 두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다리를 꺾었고 (요19:32) 예수님께서는 벌써 죽은지 오래 되었으니 죽음의 고통도 감하여 주십니다.(막15:44)
※ 예수께서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알더라 말씀하셨는데 환난의 날에 산 깊은 곳에 모여서 기도하는 동지들 가운데도 가룟 유다 같은 자 하나를 섞어 두실 것을 말씀하십니다.(요18:2)
첫 삼년반 환난이 끝날 때까지 끌어다 죽게 하지 아니하면 순교를 못하겠으므로 유다 같은 자 하나를 섞어 두었다가 고발하여 끌어다 순교하게 하십니다. 농부가 콩을 타작하다가 한 알이 멀리 튀어 나가면 거기까지 가서 주어 오거든 신랑 예수께서 자기 신부 한 사람인들 남겨 두시겠느냐 깊이 생각해 두십시다.
2절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때에 함께 하던 그 시녀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지성으로 신랑 예수를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내 신랑은 아닙니다. 그러나 룻에게는 지금 내 신랑으로 맞이하게 하시는 말씀을 교훈하고 있습니다.(룻2:13)
우리의 친족이라는 말씀은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갈 때에 버리고 간 그 기업을 물러 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룻2:20)
엘리멜렉에게 주셨던 기업의 땅은 첫째 부활의 영광에까지 인도하시는 에브랏 길에 있었습니다. 엘리멜렉은 모압 땅으로 갈 때에 그 기업의 땅을 버리고 갔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 기업의 땅을 물러 주어 첫째 부활의 영광에까지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가 라고 하시는 보아스는 신랑 예수님이시고, 오늘밤은 환난의 때 곧 첫 삼년반 환난의 때를 말씀하십니다.
타작 마당이라고 하신 것을 보니까 보리 단을 타작 마당에까지 옮겨 온 자들이 있고 그 보리들을 타작하기 위해서 도리깨로 때린 자들도 있습니다.
한때 두때 반때에 걸쳐서 세 번 순교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한 때보다 두 때가 더 크고 마지막 반 때가 고통이 더 크게 하십니다.
손에 키를 들고 까불고 있으니 순교하게 하시는 기쁨으로 찬송하는 자는 알곡이 되고 그 기쁨이 없는 자는 쭉정이들이 되어 바람에 날려 가게 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한 다섯 처녀 같은 자들입니다.(마25:12)
(계11:12) 마흔 두 달 동안에 대추나무에 열매가 많은 가지가 매를 더 많이 맞는 것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욜1:12)
(마25:9)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한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할 때에 우리와 너희 쓰기에 부족할까 하노라 하여 주지 아니했습니다.
열매가 많은 자들은 더 큰 매를 맞게 하셨으니 그 매를 이길 만큼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나눠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목사님과 장로님과 집사님들이 함께 붙잡혀 가면 누구를 더 크게 때릴까요 더 크게 맞을 자에게는 그 매를 맞는 고통을 이길 만큼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