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 不歸島의 潛龍
한 사람,
미청년,
나이는 아직 약관에 미치지 못한 십팔 구세 가량...... 일신에는
허름하기 이를데 없는 백의장포를 걸쳤고..... 여인의 그것처럼 윤
기나는 흑발은 허리아래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렸다.
헌데, 얼굴!
오오, 대체 이런 얼굴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설명해야 옳단 말인
가? 대해와도 같은 시원한 이마 밑에 반짝이는 눈빛은 밤하늘의 별
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고...... 하늘을 찌를듯한 검미는 만악을
호령할 굴강의 기상을 그대로 대변해 준다.
가을 햇살처럼 투명하고 맑은 피부는 아예 실핏줄이 보일만큼 시
리도록 희다.
차라리 현란하기까지 한 준수한 용모의 미청년,
만약 이 미청년이 세상에 나가 여인을 대한다면......?
오오! 생각하지도 말자.
천하의 여인이란 여인은 모두 이 미청년을 잡기 위해 아우성을치
고 말테니까......
쏴아아아아아......
철썩!
악마의 발톱같은 거센 파도가 만장절벽을 미친듯이 두들긴다. 그
때마다 절경에 오른 여인의 울부짖음같은 괴성을 지르며 암청빛 밤
바다 위로 파도소리가 멀리 퍼져나간다.
하늘엔 고야이 눈알만한 달 하나, 뿌려지는 은빛 월광 위에도 절
대의 정적이 깃들어 있는데, 어둠은 정적을 낳고...... 정적은 고
독을 낳는다.
그래서일까?
지금 부서지는 파도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미청년의 전신에는
어딘지 모르게 칙칙한 권태로움과 함께 처절하리만큼 강렬한 고독
감이 풍기고 있었으니......
끼룩...... 끼룩......
어둠 저편으로 꺼질 듯 사라져가는 갈매기의 날개가 달빛에 차갑
게 빛나고......
"후훗! 구만리 창천을 훨훨 나는 새야. 너는 언제나 자유롭구나......
너는 바다 너머 저편을 마음대로 날아다닐수 있겠지?"
가을 바람처럼 쓸쓸한 음성.
"바다 저편엔 넓고 풍요로운 대지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곳
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살고 있다고 그러던데......
후훗! 한낱 미물이기만 한 네가 오히려 내 처지보다 낫구나......"
미청년은 그리워하고 있었다. 바다 저편너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을......
대체 이 미청년은 누구이길래......?
헌데 바로 그때였다.
"녀석! 사람 많은 곳이 꼭 좋은 곳만은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르느
냐?"
한겨울의 냉풍처럼 냉막한 음성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돌연 어둠
속에서 미청년의 뒤로 한 인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오십대 초반의 노인이었다.
차가운 달빛 때문인가? 달빛에 희끄무레하게 비친 노인의 얼굴은
한겹 얼음막을 씌운듯 냉혹하기 이를데 없었다.
밀랍처럼 창백한 안색에 가늘게 찢어진 사목(蛇目), 약간 마른체
격에 헐렁한 갈의폐포는 노인의 일생이 험난한 여정을 걸어왔음을
짐작케 해주는데......
휘이이잉......
때마침 야풍이 그의 장포를 흔들자 한쪽 소매가 힘없이 흔들렸다.
그렇다. 이 노인의 우수는 노랍게도 어깨죽지부터 떨어져 나가 있
었던 것이다.
노인, 비록 초라한 모습이었으되......
이 노인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칼끝같은 예기!
그렇다. 만일 이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한 자루 시퍼런
칼날이 서있다는 섬뜩한 충격을 받을만큼 날카로운 예기가 그의 전
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미청년,
그는 외팔이 노인이 불현듯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놀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절벽 아래를 바라보며 씁쓸한 고소를 흘렷다.
"후훗! 그러나 외롭지는 않겟지요...... 이곳처럼...... 적어도
그들은 매일같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울고 웃으며 서로의 감정을 나
누며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요......"
"......"
갈의노인,
동공 깊숙한 곳에서 미진한 파랑이 일었다. 허나 그것은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지고, 이어 그의 얄팍한 입술이 벌어지며 믿을
수 없으리만큼 무심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독이란 배부른 자의 사치다. 무인의 칼날에 녹을 슬게 하는
해악이지. 너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적어도 이곳을 나가 네가 바
라는 중원으로 가고 싶다면......"
"......"
"네게는 안 된 말이다만 너는 모든 것을 완성할 때까지 이곳을 나
간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곳은 죽음의 불귀도! 외
부의 사람은 살아서 들어올 수 없고...... 내부의 인간은 살아서 이
곳을 빠져나갈수 없는 절대의 절지! 너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오오! 불귀도------!
산 자는 외부에 들어올 수 없고 내부의 인물은 살아서 밖을 나갈
수 없다는 죽음의 섬!
그렇다.
기왕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곳은 바로 그런 천고의 절지
였다. 그리고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미청년이 이곳에 들어온 것은
거의 십오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는 것이다.
미청년이 아주 어렸을 때......
"그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어온 말입니다. 대체 어르
신들의 그 일이 완성되는 것은 언제입니까?"
미청년이 미간을 모았다.
"무황 옥사황을 꺽을수 있는 무학을 완성할 때까지......"
오오! 그 이름!
만일 이 자리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바로 천하제일가주이자...... 이 시대 중원무림의 태양이라는 그
가 아닌가?
허나, 미처년은 그 말에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못하는 듯 투둘
투둘 메마른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후후! 그럼 저는 그것이 창안되지 못한다면 영원이 이곳을 나갈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
"허나 그렇다고 해서 희망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 과거 한때나마
스스로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했던 우리 칠 인이 심혈을 기울이는 이
상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테니까......"
그러나 어쩐 일인가? 그 음성 속에는 어쩐지 절망의 느낌이 깃들
어 있었으니......
침묵!
한순간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을 내리 눌렀다.
그때 돌연, 갈의폐포노인이 미청년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
다.
"풍아야...... 너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네 핏줄에는 위대한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피!
위대한 가문!
"네 부친은 강한 분이셨단다. 천하의 그 누구도 적수로 인정하지
않을만큼 말이다. 하긴 그 강한 성격이 너의 금천세가의 비극을 초
래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금천세가!
오오! 지금 이 갈의폐포노인은 분명 금천세가라고 했는가?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온 무림사 삼천 년......
그동안 천하에 위명을 뿌린 위대한 세가가 어디 한 둘이겠느냐마
는 무림이라는 이질적인 세계가 계속 존재하는 한 세인들의 뇌리속
에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세가가 있었으니......
금천세가!
일명 중원제일가라고 불리우며 혹은 태양세가라고도 불리는 위대
한 가문이 십오 년 전만 해도 분명히 이 땅위에 존재했으니......
세가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구성원은 고작 일백여명......
허나, 그들은 강했다.
단지 강한 것만이 아니라 극강했다.
천하인들은 말했다.
------ 천하제일가가 하늘이라면...... 금천세가는 바로 중원의
태양이다!
천여년에 걸쳐 중원을 석권해 온 천하제일가와 암중으로 패권을
다툰 것도 오직 금천세가라는 것을 말한다면 믿겠는가?
헌데, 놀랍게도 이 금천세가가 십오년 전에 홀연히 사라졌으니......
놀랍게도 단 하루아침에 금천세가는 신비하게 그 모습을 감춘 것이
다.
신비!
그것은 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림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게
여기는 신비였다.
대체, 천하제일가와 패권을 다툴 정도로 막강했던 금천세가가 어
떻게 그처럼 거짓말같이 하루아침에 사라질수 있다는 말인가?
헌데,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 금천세가를 이 갈의노인이 거론하다니......
또한 노인의 말로 보아 이 미청년은 바로 금천세가의 후인이 틀
림없는 것 같으니......
대체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금천세가! 진정 위대한 가문이었다. 허나 이제는 몰락해버린 가
문......"
갈의노인은 미청년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는 잊어서는 안 된다. 금천풍호, 바로 너의 가문이 어떻게 멸
망했는지를...... 모든 것은..... 무황 옥사황 바로 그놈 때문이다."
충격이었다.
금천세가의 멸망이 바로 천하제일가주인 무황 옥사황에 의한 것
이라니......
아아! 그렇다면......?
그때 노인은 미청년을 향해 재차 무겁게 입을 열었다.
"풍아야...... 너는 강해져야 한다. 아니, 극강해져야 한다."
"......"
"네 원수는 다름 아닌 이 시대의 일인자 옥사황이다. 그는 일인이
되 능력은 천하,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를 추종
하는 무리들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
"그를 상대로 적을 삼는다는 것은 곧 천하인 모두를 상대하는 것
과 같다. 헌데......"
노인은 문득 나직히 탄식을 흘렸다.
"너는 한때의 젊음에 고독을 핑계삼아 나약함 속에 안주하려 하
니...... 어허!"
순간이었다.
문득 미청년은 그를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비록 조용한 눈
빛이되 그 속에는 뇌전보다 강렬한 의지의 불꽃이 활활타오르고 있
었다.
이어, 그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후후! 어르신은 모르시고 계십니다. 고독이야말로 진정으로 강
한 자가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흠......?"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뜻하지 않던 미청년------ 금천풍호의 말에
노인의 눈이 흠 쓺 크게 치켜 떠졌다.
금천풍호의 음성은 그 순간에도 계속 이어졌다.
"고독이란 곧 자기성찰입니다.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인간은 절
대 강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독의 길이야말로 가시
밭길보다 험한 형극의 길일 것입니다."
(이, 이 아이가......?)
노인의 눈이 차츰 귀뿌리까지 찢어졌다.
금천풍호는 무해광변한 바다 저 끝 수평선에 둔채 계속해서 담담
한 음성을 흘렸다.
"저는 그것을 이곳에 나와서 느꼈습니다. 대자연은 크고 광대합
니다. 그리고 언제나 고독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허나 대
자연 속에는 인간이 감히 헤아리지 못할 위대한 진리가 포함되어있
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 매일 밤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어, 금천풍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후훗! 어르신께서 왜 저를 이 죽음의 절지인 불귀도에 데리고오
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
노인은 그저 크게 입만 벌린채 아무런 말도 못했다.
"후훗! 이곳은 대자연의 힘으로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된 곳! 악
마보다 강한 힘만이 이곳을 빠져 나갈수 있습니다. 스스로 이곳을
빠져나갈수 있는 힘을 길러졌을 때 그때서야 비로서 옥사황과 겨룰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 놈이...... 그, 그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노인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이때 금천풍호는 재차 시선을 허공으로 던지며 묵직한 음성을 흘
려냈다.
"따지고 본다면 아버님의 패배와 가문의 몰락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직 강함만이 모든 법규와 질서를 대신하는 무림이라는
세계에서 약자의 몰락이란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오......! 결코 돌아가신 자신의 부친에 대해 함부로 지껄일수
있는 말은 못될텐데...... 이 금천풍호라는 미청년은 지극히 당연
한 듯 전혀 꺼리낌없이 말하는 것이 아닌가?
헌데 웬일일까?
그런 그의 말이 하나도 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저는 아버님의 죽음에 무서운 분노를 느낍니다. 하나 그 아버지
를 패배시킨 옥사황에게서는 그보다 더 위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습
니다."
"음......!"
"후훗! 하나 옥사황은 반드시 내 손으로 굴복시키고 말 것입니다.
그 길만이 돌아가신 아버님께 유일하게 효도를 할수 있다는 것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금천풍호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한두가지 초식을 익혔다는 것만으로 강해질 수는 있으되 초극강
해질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초극강함 위대한 대자연으로부터 배
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직 대자연만이 그것을 제게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오......!
이 순간 노인은 격렬하게 전신을 떨고 있었다. 그런 그의 전신에
는 숨막힐 듯한 위대한 감동!
(내, 내가...... 한때나마 스스로 천하제일이라 자부했던 내가......
일백년을 살아온 내가 너만도 못하구나......!)
정말이지...... 그는 눈 앞에 서 있는 금천풍호가 그렇게 자랑스
러울 수가 없었다.
강해진다는 것......!
그것은 검을 잡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꿈속에서 조차 바라는 일이
아니던가?
헌데,
(풍아! 너는 이미 그 길을 알고 있었구나...... 앞으로 네가 걸
어야 할 진정한 강자의 길을......!)
노인의 눈에는 어느새 뿌연 습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진
정으로 위대한 감동을 느꼈을 때만 차오를 수 있는 그런 감동의 눈
물!
이 순간, 그의 전신에는 진정 형용키 어려운 위대한 감동의 전류
가 사지백해로 치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금천세가!
죽음의 절지인 불귀도......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금천풍호라고 불린 청년......
또한 그와 함께 기거를 하며 천하제일고수인 옥사황을 꺾기 위해
무학을 창안한다는 칠인의 기인들......
변수!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장차 천하의 운명을 좌우할 대변수는 이 불귀도에서 서서히 그뿌
리를 내리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