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與柳玄谷護喪所 / 玄谷 柳永善 初喪 치르는 일을 보는 곳에 드리다
▶이 글은 柳永善이 卒한 1961년에 쓴듯하다.
臼山仰止玄谷邃矣 / 구산(臼山/田愚의 號)을 우러러 그리워하는 것은 현곡(玄谷)이 오래도록 하였습니다.
頃歲投袂相過 / 몇 해 전에 소매를 떨치고 서로 지나가는 길에 들렀지만
猥蒙倒屨喜可知 / 외람스럽게도 길이 뒤바뀐 것에 대해 기쁘게 알았는데
而已而相泣吊古傷今 / 그런데 오래지 않아〔已而〕 서로 울면서 예전에 조상(弔喪)했던 것에 대해 지금 애태우며 .
呑吐心血 / 삼켰던 마음 속 슬픔의 눈물을 흘렸는데
傍人所不知也 / 옆 사람들은 알지도 못한 일입니다.
一席相合 / 한자리에 서로 만나도
有合則必分 /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니
古人所悲至於餞 / 옛 사람들은 전별에 이르러 슬퍼하였던 것입니다.
我十里南原綠草此地 / 내가 십리 거리인 남원의 푸른 풀이 우거진 이 땅에서
惜別 / 아쉽게 이별하게 되니
奈何奈何 / 어찌하겠습니까?
臨貺之囑 / 당부의 말을 줌에 임하여
期後尺書往復 / 훗날을 기약하고 짧은 편지가 오고 갔는데
以替一面信後 / 한번 만나 보는 것을 대체하여 소식이 전해진 뒤로
魚鴈俱阻 / 서신이 모두 막혔다가
劫後事勢所固然 /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일이 되어 가는 형세가 원래 그런 것이지만
不意今月九日 / 뜻하지 않게 이달 9일에
竟以訃書來報 / 마침내 부고(訃告)의 서찰이 와서 전하였는데
此何斷腸消息耶 / 이것이 어찌 애가 끊어지는 소식 아니겠습니까?
嗚呼 / 오호,
回想昔之惜別 / 돌이켜 생각해보니 예전의 석별이
便作今之割別耶 / 문득 오늘에 나누어 이병을 만들었도다.
噫 / 아아!
顧此八耋 / 이 팔순 늙은이를 돌아 보니
朽物尙滯 / 썩은 물건인 내가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 있으니
陽界送了年下 / 이승에서 나이가 나보다 적은 자를 보내면서
故友比年作數數 / 옛 친구와 매년 자주자주 창작하였지만
愴怛事畢 / 슬픈 일을 모두 마치니
竟至於此哭 / 끝내 이 지경에 이르러 곡(哭)을 하니
不是尋常一例 / 평범한 한 예는 아니기에.
愴怛之比可以證 / 슬픔을 견주는 것을 증험할 수 있습니다.
曩爲斯文 / 지난날에 사문(斯文)을 위하여
相泣者此也 / 서로 눈물 흘린 것은 이 점 때문인데
倘諒此意則幸也 / 적어도 이러한 뜻을 살핀 것은 다행입니다.
恭惟變是巨創 / 삼가 생각건대 이 같은 부모 상(喪)의 변고(變故)로
送終諸節 / 장사(葬事)에 관한 온갖 일의 모든 예절에 대해
何以堪任 / 이떻게 직임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易慽相禮 / 喪禮의 형식과 내용은 서로 예(禮)로써 대하여도
不至有憾否 / 섭섭함에 이르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窀穸時日在邇 / 무덤 속으로 묻히는 날이 가까이 오니
益懋悃愊 / 진실하고 정성스러웠던 일이 더욱 간절해지는데
綢繆幽戶 / 저승의 출입구도 사실이 없는 것을 이리 저리 꾸며대어 얽었거늘.
以襄大事 / 양봉(襄奉)의 큰일을 치른다니
如何如何 /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觀神顇將轉 / 정신이 야위니 오히려 빙빙 도는 것 같이 보이고
甚苦惱吟病 / 깊은 고뇌에 병으로 신음하고 있어
末由奔慰 / 달려가 위로할 길이 없습니다.
無任誦衍 / 마음대로 넘치듯 칭송할 수도 없으니
竢見凉生 / 기다렸다가 서늘한 기운이 생기는 것이 보이면
倩人操文一酹 / 사람을 고용하고 제문을 손에 쥐고 가 한잔 술을 올리고자 합니다.
不備狀禮 /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해설)
●유영선(柳永善) : 1893년(고종30)-1961년,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희경(禧卿), 호는 현곡(玄谷). 전북 고창(高敞) 출생. 아버지는 유기춘(柳基春)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병현(李秉賢)의 딸이다. 1904년 12세 때 할아버지를 따라서 고부 영주산 속의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찾아가 문하에 들었다. 1905년 전우가 부안 목중리로 옮겨 갈 때도 함께 따라갔다. 그 해 4월 전우를 초청하여 관례를 치렀는데, 이때 전우가 자를 현곡이라 지어 주었다.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의 치욕으로, 田愚를 따라 서해(西海) 고군산 외딴섬 왕등도(暀嶝島)·계화도(繼華島) 등지에서 근 20년간 갖은 고초를 극복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였다.
편저로는 『담화연원록(潭華淵源錄)』· 『구산풍아(臼山風雅)』· 『오륜시편(五倫詩編)』· 『규범요감(閨範要鑑)』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현곡집(玄谷集)』 32권 16책이 있다.
● 예전에 조상(弔喪)했던 것에 대해 지금 애태우며 : 이 말의 배경을 부연 설명하고자 한다.
문맥을 보면 유영선도 나병관 댁의 조문을 다녀간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1909년 나병관 아버지 小栢 羅英集이 졸하였을 때 유영선이 조문 왔던 것으로의 추론해 낼 수 있다.
●어안(魚雁) : 서신을 가리킨다. 인익(鱗翼)과 같은 말이다.
●부고(訃告) : 사람의 죽음을 알림. 또는 그런 글.
●후물(朽物) : 썩은 물건이라는 뜻으로 나병관 스스로를 가리킨다.
●양계(陽界) : 사람이 살고 있는 현 세상으로 곧 불교에서 말하는 이승이다.
●사문(斯文) : 유교(儒敎)의 도의나 또는 문화를 일컫는 말, 유학자(儒學者)를 달리 일컫는 말.
●거창(巨創) : 부모의 상(喪)
●이척(易慽) : 喪禮의 형식과 내용
●곤복(悃愊) : 진실하고 정성스러움.
●주무(綢繆) : 사실이 없는 것을 이리 저리 꾸며대어 얽음.
●양봉(襄奉) : 「장례(葬禮)를 지냄」을 높여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