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까치구멍집 / 안상학

[강물]

기와까치구멍집 / 안상학
 
내가 한 일은 다만
1948년 그 사내가
안동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
 
제주 도민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암살한,

국군이 국민에게 결코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던
대한민국 제1호 사형수
문상길 중위
고향이 어디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향년 스물셋 사내, 고향은 안동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내력을 찾아낸 것
 
임하댐 수몰된 안동 마령리 이식골
남평 문씨 종갓집 막내아들, 
그 사내가 살던 곳
그 사내가 떠난 곳,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곳
사내처럼 사라진 마을, 
흉흉한 소문 떠도는
쉬쉬대며 살아온 일가붙이들
산기슭에 남은 곳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사진 몇 장 찾은 것
 
소년처럼 해맑은 사내의 마지막 웃음
두 손 철사로 묶인 채
나무 기둥에 결박당한 몸
가슴에는 휘장 대신 표적, 
흑백사진 붉은 피는
두 눈 가린 채 목이 꺾인 사내의 최후 진술
내 비록
미군정 인간의 법정에서는 사형을 받고 사라지나
공평한 하늘나라 법정에 먼저 가서 기다릴 것이다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가 살던 집을 찾아낸 것
 
당당하게 살아남은 그 사내의 흔적
300년 문화재 기와까치구멍집
건재한 사내의 생가
수몰을 피해
남후면 검암리로 옮겨 앉은 남평 문씨 종가
그를 기다린 40년 고향을 뒤로하고
1988년 옮겨 앉은 낮선 땅 32년, 
기다리고 기다린 72년 만에야
불귀 주인 소식 전해들은 까치구멍집
 
무자년 사내가 가고 
72년 만에 내가 한 일은 다만
그의 흔적을 찾은 것일 뿐, 
고작 대문간에 막걸리 한잔 올리고
그의 죽음을 전하는 일이었을 뿐, 

그 사이 하늘나라 법정에서 받아놓았을
그 사내의 판결문을
이 집 우체통에 전해주는 일은
그날 이후
남겨진 모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음복주를 마셨다. 

경자년 경칩 무렵, 
복수초가 까치구멍집 화단에 피어 있는 날이었다.
 
- 제주작가 2020 여름호(통권 69호)에서


* 討伐 토벌, 군대(軍隊)를 보내어 반항(反抗)하는 무리를 침,
* 暗殺 암살, 남몰래 사람을 죽임,
* 來歷 내력, 겪어 온 자취
* 임하댐 臨河dam, 임하 다목적댐 多目的dam은 경북 안동시 반변천에 낙동강 유역 수자원 종합개발을 위하여 1984년 12월 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 완성된 댐이다. 9번째 준공한 다목적댐, 총 공사비 3217억, 낙동강 하류 수질 크게 개선 될 것이라는 홍보 보도와 달리 2001년까지 2급수 수질을 유지했으나, 2002년 이후(태풍 영향이라고 하나) 수질이 나빠졌으며, 이후 2005년 탁수(濁水) 개선에 2331억원의 예산을 투입,
* 水沒 수몰, 물속에 잠김
* 安東 안동,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慶尙北道 安東市 臨東面 馬嶺里 이식골)
* 洶洶 흉흉, 물결이 세차고 물소리가 매우 시끄러움, 분위기가 술렁술렁하여 매우 어수선함
* 結縛 결박, 몸을 자유(自由)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두 팔이나 다리를 묶음
* 徽章 휘장, 신분(身分), 직무(職務) 또는 명예(名譽)를 나타내기 위(爲)하여 옷이나 모자 따위에 붙이는 표장(表章). 마아크(mark)
* 標的 표적, 목표(目標)가 되는 물건(物件)
* 不歸불귀, 한번 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거나 또는 돌아가지 아니함. 곧 죽음을 일컬음
* 남후면 검암리, 慶北 安東市 南後面 儉巖里
* 飮福酒 음복주, 음복으로 마시는 술,
* 罍福酒 뇌복주, 罍 술독 뢰(뇌), 술 그릇 루(누), 술 그릇의 한 가지인 뇌에 담긴 음복주.
* 戊子年무자년, 1948년,
* 庚子年경자년, 2020년,
* 驚蟄 경칩, 24절기(節氣)의 하나. 양력(陽曆) 3월 5일 무렵으로, 벌레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때라는
* 복수초 福壽草,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25~30cm 정도, 잎은 어긋나고 세 번 또는 네 번 우상 복엽, 4~5월에 누런색 꽃이 원줄기와 가지 끝에 한 개씩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 산의 나무 그늘에서 나며 한국, 일본, 중국 등지 분포,

* 문상길(文相吉) 1926-10-14 ~ 1948-9-23 경기도 수색 기기에서 총살,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마령리 이식골이 고향으로 임하댐이 지어지면서 수몰지역이 되었다, 문상길은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남조선국방경비학교 3기 출신, 1948년 4월 당시 9연대 모병 담당관 겸 중대장, 당시 문상길의 배속 소대장 중에는 채명신이 있었다.
제주 4·3 사건 당시 남조선국방경비대 제9연대 중위로 연대장 박진경 대령을 암살, 1948년 여름 서울 남산(도서관 자리) 경비대군기감본부 군사법정에서 그가 남로당 당원으로서 하사 손선호, 일등중사 신상우, 하사 배경용과 함께 박진경 암살 사건을 주도하였다고 판단하고 사형을 선고, 1948년 9월 23일 경기 수색 기지에서 손선호 하사와 총살되다.

안상학, 경북 안동시 1962-6-5
시인,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1987年 11月의 新川'으로 등단, 권정생 사후에 유품을 정리하고 추모 사업을 하는 일에 매달리게 되어,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으로 6년이 넘게 일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두 번째로 낸 시집 제목 때문에 ‘안동소주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집, '그대 무사한가' 한길 1991, '안동소주' 실천문학사 1999, '오래된 엽서' 천년의시작 2003, '아배 생각' 애지 2008,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실천문학사 2017,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사람 2020년,

<kbs제주> 암살(暗殺) 1948 / 문상길 중위
https://youtu.be/hY8aXse5Fw8

[수락산]

강물님 덕분에 이렇게 귀중한 숨겨지고 잊혀진 사실들도 알게되어 감사 합니다.

[강물]

1948년 3만명 이상 제주 도민을 죽인 제주 4.3, 이를 감춰온 美軍政, 이승만...

[해동]

아픈 역사입니다. 소중한 자료 고맙습니다.

[강물]

1948년 4.3 학살은 1950년 남북 전쟁을 불러와 핏빛 강토로 물든 땅은 여전히 미군의 지배하에 있지요...

[강물]

한홍구tv, 제주4.3의 김익렬과 박진경, 조병옥...
https://youtu.be/W9M4uLAg8Ts

[강물]

도올 김용옥, 제주4.3을 말하다 2
https://youtu.be/i_YIedf0x4o

[강물]

도올 김용옥, 제주4.3을 말하다 3
https://youtu.be/vOodVTITIzI

[강물]

도올 김용옥, 제주4.3을 말하다 1
https://youtu.be/ueB1LLDL-fY

[하하호호]

이런 시도 있었군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제주 4.3평화공원에 갈때마다 남북을 반쪽내서라도 그 알량한 권력을 지키자고 죄없는 자기 국민들을(한살 두살 먹은 어린이까지) 총칼로 죽인 군인,경찰놈들 말고
문상길중위, 손선호 하사같은 훌륭한 군인도 있었구나 하고 그 이름을 잊지 말아야지 하고 수십번 되내여도 잊고 사는데
강물님 덕분에 다시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네요.
다시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강물]

제주에 사시는 분이군요.
이런 역사를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은, 4.3을 드러내서는 안될 정권의 권력자들과 그들에 부역했던 자들이 감추려 했던 것이지요.
제주4.3에 대해 잘 알고 계시니 고맙고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