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 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 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
여행,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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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어릴 때, 권나무
‘그 때부터 상모가 개 같았고 사랑스러웠다.‘ - 개 같은 내 인생 中, 정상희
맹세코, 단 한 순간도 상모가 개 같지 않던 적은 없었고, 단 한 순간도 사랑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무릎이 견딜 수 없이 시려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 때에도 상모는 사랑스러웠고, 내 마지막 가을공연에서 인사굿을 치던 순간조차 상모는 변함없이 개 같았다.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해 치밀어 오른 짜증에 상모를 내팽개치듯 벗으며 화풀이하던 날에는, 상모가 사람인 것 마냥 괜한 미안함이 들어 다시 주섬주섬 상모를 주워오고는 했다. 돌아보면 그 미안함은 작년 수버꾸에게 느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든 제일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새날이든 서강풍연이든 어딜 가도 어깨펴고 다니길 바랐다. 고혜빈이 몇 없는 채상심화여서 자랑스러웠고, 선보가 김희지라는 이름을 부를 때 내 어깨가 으쓱했으니 그 둘을 보며 자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겠지. 그렇게 가을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같은 연습량을 유지하다 끝에는 매주 개인으로 전수관까지 다니는 지경이 되었는데, 그 욕심은 나와 내 주변 사람까지 힘들게 했다. 개 같은 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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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한계 짓고 싶지 않다고, 롤모델 따위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농담처럼 말해왔지만 - 그 어디에서도 솔직하게 말해본 적 없지만, 내 패 선배로서의 롤모델은 언제나 고혜빈이었다. 나보다 더한 찔찔이었지만 그 때의 나에게는, 지금의 나에게조차 누구만큼이나 멋있는 사람이었다. 처음 새날소리에 들어오던 날부터, 국악사에 가서 상모를 골라주고, 새날 채상은 대포찜닭을 먹어야한다면서 꽤 큰 돈을 턱턱 내주던 날도, 멋있었다. 그 후로 홈커밍과 오알까지 보여준 모습은, 나도 새날에 후배가 들어오면 저런 수버꾸가 되어야지, 하기에 충분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말로 ‘고혜빈의 반만 하자‘가 내 목표였다. 그렇게 나는 17대 새날소리 수버꾸가 되었다. 나도 누군가의 고혜빈이었을까. 칠칠치 못한 후배들이 기어코 칭다오까지 따라와서 징징대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인생에서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내 수버꾸의 편지는 언제나 나를 울렸다.
혜빈누나가 갈공을 보러 한국에 와주었다면, 아니 꿈에라도 나온다면 엉엉 울면서 물어볼 것 같다. 이만하면 잘 한 거 맞냐고, 나 나름 열심히 했다고, 근데 난 아닌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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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을 받고 수버꾸로 겨울 전수를 가게 되었는데, 공놀이 뒷풀이에서 엉엉 우는 바람에 분위기를 개같이 만들었다. 상모가 개같다고 분위기도 개같이 만들 필요는 없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 느껴야할 아쉬움과 헛헛함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느끼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물론 겨울전수에서의 기억은 한 순간도 잊고 싶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다만 또 한 번의 가을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 행복도 추억이 될 것임을 안다는 것은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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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풍연에서의 날들이 그러하지만, 한 명 한 명 빼놓을 수 없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겨울전수는 결국 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 어떻게 전수를 다시 오더라도, 그 때의 너희들은 그저 내 마음 속 기억이고 향수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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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우냐?"
"행복해서 우는 거야(실제로 한 말)"
"준영아 여기봐 여기봐!!"
"너~어는 진짜 나빴다ㅋㅋㅋㅋㅋ"
2019 겨울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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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 공연을 준비하면서 상모는 더욱더 개같아졌다. 욕심은 늘어가는데 사물연습이 끝나면 몸은 녹초가 되어있었다. 오알 사물연습만의 연습량도 갈공 연습과 맞먹는데, 거기에 채상 재능기 연습이 더해지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아니, 나는 백 번 천 번을 돌아가도 다시 사물도 채상도 놓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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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공연 동안 한울 채상 사람들과 친해지고 정을 주었지만, 사실 여름전수부터 가을공연까지 패 단위의 활동이 없기 때문에 패 사람들과는 내적 친분만 쌓았었다. 그러다 새날에 정말 의지할 수 있게 된 것이 홈커밍과 오알이었으니, 잠깐의 고민도 없다. 나에겐 새날이 마음 속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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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새날 들어오고 싶대!! 문자왔어!!"
"봐봐!!무슨 섹션이야??"
2019년 초겨울, 오리엔테이션 공연 직후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날소리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패 선배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습게도 그 때의 나는 그 마음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새내기들의 눈빛 하나하나에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다.’ 던 작년 상장구의 말은, 새날에 후배들이 들어오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후배에게 아무 생각없이 주고싶은 만큼 마음을 주는 일은 어려웠다. 서운하다면 미안해. 새날소리가 흥해야 17들한테 떳떳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과, 그에 따라 어떻게 해야 애들이 안 나갈지에 급급하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지만 그 생각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패 연습 내내 후배들의 표정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고,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연습에 대한 흥미와 피로도가 너무도 잘 드러났기에, 혹여나 누가 연습 중 인상을 쓰거나 한숨이라도 쉬던 날에는 집에 가는 길 내내 괜한 죄책감에 가슴팍에 돌이라도 얹어놓은 양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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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은 참 무책임한 말이지만, 정말 시간이 해결해주더라. 정신차려보니 낯 가려서 티만 못 내는 팔불출이 되어있었다. 19들끼리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악기 치는 모습만 보아도 마음 한 켠이 저릿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어느덧 혼자 쓰던 계정들의 풍연 일기들의 수는 100을 훌쩍 넘겨버렸다. 저 때의 나는 저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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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마음도 어렸던 나는 이 때 중국에 있던 아연이에게 많이 징징댔다. 그리고 이 착한 모지리는 이 징징거림을 다 받아줬다. 아연이는 대학동기가 아니라 내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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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몇 번을 생각해도 나는 좋은 선배이지 못했다. 웃긴 사람 정도는 됐을지 몰라도, 누군가를 챙겨주는 것에는 미숙한 사람이었다. 특히나 그 미숙함은 수진이와 민경이에게, 새날 후배들에게 갔을 거라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 언제나 챙겨주는 쪽은 19찔찔이들이었고, 나는 하염없이 고마워하며 받을 뿐이었다. 민경이와 수진이가 외사를 처음 돌리던 날 나는 속으로 백 번도 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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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연에서의 2년 동안 어떤 일도 후회하지 않는다, 두 가지만 빼고.
애들한테 진작 잘해줄 수 있었는데, 뭐가 그리 어려웠다고. 더 뻔뻔하게 챙겨줄 걸, 이것이 내 풍연 첫 후회였다.
말이 수버꾸고 말이 패집국이지, 우리끼리나 안다. 결국 잘 부탁해,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이다. 2년 간, 꼬집어도 안 깰만큼 생생하고 행복한 꿈을 꾼 것 뿐이라도 해도 될 만큼 남은 건 기억과 사진들 뿐. 그러나 너희도 그 꿈을 꿀 수 있다면 나에겐 더 이상 꿈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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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무 지루해서 타다가 졸았는데?"
"진짜 개소리 좀 하지마 준영아,,"
2019년 봄, 롯데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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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의 염려는 귓등으로 흘리고 연습장에 드나들던 멍청이는 어느 순간 오금은 커녕 걷기만해도 숨이 턱 막힐만큼 무릎 염증이 심해졌다. 결국 무릎이 돌아가서 인대가 파열 됐을 때 착용했던 것과 같은 보조기를 다시 착용하게 되었다. 한울채기의 합 재능기에 나는 영원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미련만 남아 합 재능기 연습에 따라가 북을 잡거나 채기 친구들을 구경만 하던 날들, 그 와중에 우섭이에게 연락온 바새 채상 재능기는 하겠다고 했다. 내 상쇠고 우리 상쇠인데, 사람들 앞에서 우섭이의 반주를 받고 싶었다, 누군가 우섭이를 상쇠라고 불러주는 날도, 수버꾸라는 완장의 유통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금이 아니면 없다는 걸 알아서.
결국 한 동안 먹는 약의 갯수를 늘려가며 한 선택이었음에도, 내 욕심에 무언가를 포기해야했고, 합 재능기를 포기하고 판 재능기를 뛰었다는 미안함은, 꽤나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개 같은 상모.
둘 다 포기하지 말 걸, 어떻게든 해볼 걸. 내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후회였다.
그 후론 다들 알다시피, 전수를 다녀오고 경연대회에서 전국 우승을 하고 가을공연을 마쳤다. 전수 첫 날부터 지금까지 상모를 안 쓴 날이 며칠이나 될까, 나도 여기저기 여행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보니 지난 모든 날들이 여행이었다. 심지어 아직도 그 향수에 젖어 그리워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아 맞다 새날18끼리 여행을 빙자한 회의도 다녀왔다. 올해의 기억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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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타이밍을 맞추는게 이렇게 어려워?"
"아니 타이머가 문제라니까?"
"아니 하나 둘 셋이라고!!"
2019년 여름, 어느 바다
항상 가을공연이 끝나는 순간을 그려왔었는데, 막상 끝나니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 그 때가 그리운 걸까 그 때의 우리가 그리운 걸까.
분명한 건, 다시 이 사람들과 판에서 눈을 맞추는 일은 없다. 예전처럼 풍방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맘스터치를 시켜먹던 것도, 시험기간에 공부하다가 부르던 노래들도 언젠간 추억이고 향수가 되겠지.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연락을 할까, 하다가 머뭇거리게 되는 날도 오겠지. 언제까지고 지금같이 지낼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다만 다시 떠올려보아도 행복에 젖어오는 기억이라면, 그 기억에 내가 조금은 있다면, 그걸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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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고 모자라기만 했던 나에게 우리가 되어준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덕분에 내 자랑이자 행복이었던 사람들과 함께한 2년은 분에 넘칠 정도로 행복했어요. 이제 정말 안녕,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라요. 나는 너희와 함께한 기억으로 살아갈테니, 너희도 그렇게 행복하길 바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먼 후일,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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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너가 갈공한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내심 반가웠어. 쉬운 선택 아니었을텐데 고생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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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 지금 우냐구~
ㅅㅂ 이건 언제 읽어도 눈물나네 어이없어;;
또 읽으러 옴
오늘 기청제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봤네 ..
@새날 18 최준영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