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모곡 思母曲
一香 오문식
반백 년 홀로 서서 아홉 새끼 먹이던
에미의 손마디에 철갑 두른 세월이 오십 년
제비 새끼 주둥이에 먹이 물어 나르듯
밥알 한 알 떨어질까 생명의 부양은 가혹했다.
전쟁에 잃은 서방, 그리워할 틈도 없이
고물상을 전전하고 수레를 끌고
시장바닥 누비는 전사가 되어야 했다
‘나는 괜찮아!’라는 무기 하나로
치열한 삶의 터전에서도 아홉을 위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더니
바람에 구르는 낙엽처럼 홀로 가셨다
그리움에 찢어지는 가슴앓이로
애타게 불러도 이미 때늦은 세월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에서
아직도 괜찮다고 가라 하시네
시들기 전 화려함 그대로 눈물로 뿌린 씨앗
메마른 땅에서 솟아난 생명의 결실들이
가슴으로 가꾼 국화 한 송이 강물에 띄웁니다
▶20년 종합문예 유성 국자감 문학상
2. 내일
一香 오문식
보이지 않는 것들과
들리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등 굽은 쇠잔함으로
지쳐 쓰러진 세월 앞에
비등하는 가슴을 열어
칼로 쓴 망향의 시詩
풍요의 전령사로 온
아프로디테처럼
적막과 어둠을 걷어내고
일출의 빛을 보리라
다시 올 내일을 위해
한 번만 더 날자
희망을 틔우는 영혼으로
황혼은 꿈을 피운다
(22년 종합문예 유성 국자감 문학상)
3. 단풍
一香 오문식
불났다
화염의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가을 전장戰場의 핏빛이
우수수 하늘을 덮었다
태양이 녹아들 듯 시뻘건 천지 아래
머뭇거리다 또 한 번,
떠나야 할 때를 놓치는 실수
그 절절했던 그리움
불처럼 뜨겁던 나를 떠난
배반의 파시즘, 의례儀禮처럼 스친다
잠시도 머물지 않는 욕망
낙엽의 언어로 애간장 태우다가
번뇌의 잔을 마신다
4. 바람의 친구
一香 오문식
모두가 바람의 친구였다
거친 가식이 진실처럼 다가와
썰물처럼 쓸고 간 마음 밭에
외로움의 흔적만 남겨졌다
남다른 사람의 냄새가
그대였던가
단정한 모습이 이유 없이 좋았다
가슴 깊은 의식의 바닥에
오래전 잃어버린 욕정이 살아
까닭 없는 그리움의 그 의미를
숨겨두기엔 슬픈 날들이다
눈으로, 가슴으로 말하고 싶지만
하지만 그대 역시
또다시 떠나는 바람의 친구,
그렇게 가슴을 비워야만 하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길
5. 허수아비
一香 오문식
모진 풍파 부대낀 인고의 세월
눈썹하나 까닥 않고 웃음으로 버텼다
겹의 나이 쇠하여 휘청이는 허리
바람에 닳아져 쓸모없이 서 있어도
나 있어서 얻은 결실 팔자가 기박하여
웃음 속 비애 담고 풍요 속 빈곤이라
가야 할 길 떠날 수도 없어
이대로 죽어야 할 부동의 미학
一香 오문식
◇등단 : 2011창작과 의식 詩부문 (신인상)
2021년 종합문예 유성 수필 등단
2023년 종합문예 유성 동시, 소설, 시조 등단
◇저서 : ‘내 마음의 타인’ ‘낮에 뜨는 별’
○현재 : 기장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학 작가회 이사
종합문예 유성 운영위원/ 기자
수상 : 한국문학 작가 문학상(2016)
종합문예유성 시부문 국자감
은상(2020) 금상(2022)
23년 황진이 문학상(은상)
23년 집현전 문학상(최우수상)
첫댓글 원고 감사합니다
명시선 대박으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