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스도의 신부다'
신부의 정체성을 위해 19주를 달려왔다.
매주의 새로운 정체성이 마디와 마디를 연결하듯,
마침내 '신부'라는 나의 정체성이 퍼즐처럼 내 안에 이해되고,
먹어지며, 완성되며, 마지막 정체성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신부의 정체성이 왜 최종 목적지이며,
왜 이 정체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내가 왜 이 곳 미라클에 왔는지...
마지막 신부의 정체성에서 속시원히 풀어지는 한 주 였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오해가 풀어지는 한주 였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결국은 나를 신부로 얻기 위한 신랑의 지참금 이었구나...'
'당신의 가장 귀한 생명을 지참금으로 내어주셨구나...'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의 만찬이 '약혼예식' 이었고, 신부를 향한 '신랑의 선언'이셨구나...' '
( '나의 아버지의 집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마시기 전까지 이 잔에 든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노라' 마26:29)
'수가성 여인이 그랬고..12제자가 그랬고..
이들이 순교할수 있었던 것은, 단지 제자로서의 부르심을 뛰어넘는 신랑을 향한 사랑, 신부의 정체성 이었구나..'
'이들에겐 '야다' (ידע) 의 신랑 예수님을 아는 신부의 깊고 은밀한 사랑이 있었구나...'
( '아담이 그이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ידע) 창 4:1 ')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이 신부의 정결의식 '침례' 였구나....'
'나의 신부됨이 나의 노력이 아닌 신랑 예수의 '의'이구나....'
'나는 이미 의롭고, 나는 이미 신부였구나....'
신부 כלה (kallah )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라'의 어근 כלל (kalal) '카랄'은 '완전한' '완성하다'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신부'였다.
'완전함'의 그 자체인 신부로 우리를 완성하셨다.
이번주 수업중 남편과의 연합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
지난 십여년 사업의 어려움으로 재정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때 사업이 무너지면서 함께 무기력으로 무너진 남편을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원망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주에 해결되지 않은 채무 문제가 또다시 찾아왔다.
이익을 따라 판단하고 움직이는 내 안의 '바로'는 곧바로 남편을 탓하기 시작했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하잖아!'
'당신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안살았을텐데!'
내 안에서 억울함과 원망과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나 누구의 신부인거지??' 생각이 들면서 그제야 분노의 소리를 멈췄다.
그것은 분명 '생명나무'를 먹은 예수님의 신부가 아닌, '선악나무'를 먹은 사단의 신부의 소리였다.
'나는 예수님의 신부야!'
'더 이상 내 입술을 통해 남편에게 원망과 저주의 소리를 하지 않을거야!'
'돈이라는 굴레에 매여 남편을 무능한 자로 평가하지 않을거야'
'예수님이 나의 남편이야! 나는 이제 신랑 예수님으로 오는 공급을 누릴거야!'
그동안 재정에 매여 남편을 원망했던 생각의 고리를 끊고, 원수를 밟았다.
그날 밤, 남편 앞에 무릎 꿇었다.
나의 교만함과 무정함과 인색함을 꿇었다.
남편의 발을 닦아주면서 사과했다.
'내 고생, 내 손해, 내 희생이 싫어서 당신 많이 원망했어..'
'나는 한번도 당신편이 아니었어...'
'당신 그동안 많이 외로웠지... 미안해...'
'나는 이제 당신 편이야'
이제껏 사단의 신부가 되어서 남편에게 씌어놓은 저주와 수치의 겉옷을 씻어내듯, 그 발을 씻겨주며 축복했다.
다음 날, 내 안에서 '연합' '연합' 이라는 단어가 올라왔다.
'아. 내가 이제야 남편의 권위 아래 들어갔구나'
'드디어 연합하는 신부가 되었구나'
'진짜 연합! 하나됨을 이뤘구나'
신랑 안에서의 진짜 '누림'은 '연합'에서 부터 였다.
남편과의 연합의 관계가 실제적인 신랑 예수님과의 '누림'의 관계로 들어가게 됨을 깨닫는 사건이었다.
선교사님께서 이제야 내 안의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무너졌다고 말씀하셨다.
'맞습니다. 내 안의 교만이 막힌 담 이었고, 내 안의 무너지지 않는 내가 막힌 담 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이 더 기대됩니다'
'그 사랑안으로 더 들어가고 싶습니다'
'나의 신랑 예수님, 사랑합니다♡'
알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다’(yada)의 의미는?
1.단순한 지식보다 더 깊은 차원의 앎을 의미한다.
2.서로를 완전히 아는 것’.
3.모든 차원에서 깊은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로를 완전히 알아 가는 것이다.
4.가장 친밀한 연합을 의미한다.
5.영혼의 뒤엉킴 (이 표현이 참 좋다~ ♡)
6.지식을 넘은 친밀함을 말한다.
7.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앎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