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잉걸]의 말 : 내가 서기 2023년 양력 2월 19일에 유튜브로 본, ‘안동 MBC’ 창사 43주년 다큐멘터리인 <윷 1>, 그러니까 <제 1부 윷경>의 내용을, 글로 적어서 옮긴 뒤 내 주석을 달아서 이곳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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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희경(柶戲經) 』, 그러니까 ‘『 윷경 』’은 『 경서 』못지않은 배달민족 고유의 지혜의 보고다(‘사[柶]’는 ‘윷’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고, ‘희[戲]’는 ‘놀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다. 따라서, ‘사희’는 한자로 ‘윷놀이’라는 뜻이며, ‘사희경’은 ‘윷놀이를 다룬 경전’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
- “윷에는 심오한 철학 사상이 담겨 있다(‘임채우’ 국제 뇌교육 종합대학원 대학교 국학과 교수의 말).”
- 전라남도 해남의 사대부 집안인 해남 윤씨 집안의 사람인 ‘윤두서’ 선생은 생전에 고산 윤선도 선생에게서 물려받은 『 영기경(靈棋經) 』 이라는 책을 특히 아꼈는데, 이 책은 점을 치는 책이고, 한(漢)나라의 신하인 ‘동방삭’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학자들은 해남 윤씨 집안이 소장한 『 영기경 』 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간 윤씨 집안 사람이 사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한다).
→ 『 영기경 』 은 (점을 칠 때 쓰이는 또 다른 책인 – 옮긴이) 『 주역 』 과는 관계없는 책이며, 그 책으로 점을 치는 방법도 『 주역 』 과는 다르다.
- 제하(諸夏) 북경대(北京大) 철학과 교수인 ‘리중화’의 말에 따르면, 『 영기경 』 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길흉화복을 탐구하고 예측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 『 영기경 』 은 예순 네 개의 막대기와 동전으로 점을 치지만, 『 주역 』 은 (일단 그 책으로 점을 치려면 – 옮긴이) 비단 막대기로 배열을 해야 하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규칙도 지켜야 한다.
- 『 영기경 』 의 뿌리는 제하(諸夏 : 수도 북경[北京])가 아니라, 배달민족의 글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신원봉’ 교수가 편역[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편집하여 번역하는 것 – 옮긴이 ]한 『 윷경 』 에 나오는 말 ).
- 『 영기경 』 으로 점을 칠 때 나오는 ‘경우의 수’, 그러니까 ‘괘(卦)의 수’가 윷의 그것과 같다[둘 다 125 괘가 나옴]( 그렇다면, 『 영기경 』 이 윷놀이에서 비롯된 책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신원봉 교수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 옮긴이 ).
- “ 『 주역 』 은 2진법을 바탕에 둔 체계(그러니까, 음/양이 기본인 체계고, 모두 64괘가 나옴)지만, 윷경은 5진법(‘도/개/걸/윷/모’가 기본)을 바탕으로 삼은 체계다(영산대학교의 신원봉 교수가 한 말). ”
→ 125괘 자체가 윷에서 나왔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 영기경 』 이 곧 윷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신원봉 교수의 설명).
( → 그렇다면, 근세조선 시절 해남 윤씨 집안이 명나라에서 『 영기경 』 을 사온 것은 ‘문화의 역수입’인가? : 옮긴이 )
( 내 생각이지만,『 영기경 』의 지은이가 동방삭[東方朔]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동방삭’의 본명은 ‘장만천[張曼倩]’이고, 그의 고향은 오늘날의 산동성 능현[陵縣]인데,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산동성은 상고[上古] 시대부터 서한[전한] 초기까지 오랫동안 이른바 ‘동이[東夷]’족의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문화는 산동반도의 원주민들이 제[齊]나라에게 정복당한 뒤에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그리고 장만천의 다른 이름[‘별명’]인 ‘동방삭[東方朔]’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동쪽 땅에서 생겨나다.’[‘삭(朔)’이라는 한자에는 ‘비롯되다/생겨나다.’는 뜻도 있다] → ‘동쪽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 ‘동방’은 제하 고대에는 주로 화북 지방 내륙에 살던 ‘한족[漢族]’들이 보았을 때 ‘동쪽 땅’인 산동성이나 하북성이나 강소성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으며,
따라서 오랫동안 ‘동이’, 그러니까 배달민족의 일부분이었던 사람들의 문화가 남아있는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장만천이 자신을 ‘동쪽 땅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일컬으며, 배달민족 문화의 일부분인 윷경을 바탕으로『 영기경 』을 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상[商]나라의 갑골문자가 배달민족과 관련이 있듯이, 일본 왕실의 ‘3종 신기[神器]’가 아사달[‘고조선’] 단군들이 쓰던 무구[巫具]들을 본뜬 것이듯이, 『 영기경 』 또한 배달민족 – 그러니까 아사달이나 원[原] 부여 – 의 윷놀이[또는 『 윷경 』]을 전한의 ‘한족’들이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 주역[周易] 』 과 그것으로 치는 점은 ‘한족’의 뿌리로 여겨지는 서주[西周] 왕조의 것이자, ‘한족’의 문화유산으로 이해하되, 『 영기경 』 과 그것으로 치는 점은 『 주역 』 과는 달리 배달민족의 윷경에서 갈라져 나온 문화이며, 따라서 계통 자체가 다르고, 『 영기경 』 은 배달민족이 ‘한족’의 문화에 영향을 끼친 사례라고 가르쳐야 한다 – 옮긴이)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는, “도대체 왜 ‘점을 치는 책’ 따위를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는 거냐?”고 따질 분이 계실 것이다. 나는 그 분들에게 “과학과 합리주의와 이성과 논리와 계몽사상이 다스리는 근대 이후의 사회가 지닌 관점이 아니라, 고대사회나 근세사회의 관점으로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사람은 올재[‘내일(來日)’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이자, 옛 배달말 낱말]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여름지이를 했을 때 풍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 그리고 논밭에 필요한 비는 언제 올지, 전쟁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반란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예상하기 힘들다. 그 모든 일이 사회나 집안이나 마을/고을이나 공동체나 나라의 안위를 뒤흔들 수 있는 일인데도 말이다.
사람의 판단력이나 이성으로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다면, 또는 지금 처한 상황이 안 좋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절대자[예를 들면, 신이나 조상]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기도를 할 수도 있고, 법회를 열 수도 있으며, 굿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예언자일 수도 있고, 관상쟁이일 수도 있고, 점쟁이나 무당이나 제사장이나 사제일 수도 있다]’을 찾아가서 사정을 털어놓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묻고 싶어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대통령이나 기업 총수가 미래학자나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를 찾아가서 “미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냐? 분석해서 대답해 달라.”고 부탁하듯이, 고대 ~ 근세의 임금이나 양반이나 가장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기 위해’ 사제나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간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신이 스스로 점을 쳐서 앞날을 내다보려고 한 것이다.
윷경이나 『 역기경 』 이나 『 주역 』 은 그런 일을 할 때 쓰는 ‘교과서’였고, 사람이 앞날을 점치는 일, 그러니까 ‘미래를 설계하고 대비하는 일’을 도와주는 책이었다.
오늘날의 우리가 미래학자들의 예측을 담은 책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나라나 지역의 앞날을 내다보려고 하듯이, 동아시아의 옛날 사람들은 윷경/『 역기경 』/『 주역 』으로 앞날을 내다보고 그것에 대비했던 것이다.
아사달[‘고조선’] 사람들이 윷으로 점을 친 일이나 동방삭이 『 역기경 』 을 쓴 일이나 서주 왕실이 『 주역 』을 받든 일이나 근세조선의 사대부 집안인 해남 윤씨 집안이 『 역기경 』 을 사서 가져온 일은 그런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서기 20세기 말 ~ 21세기 초의 미국 정부도 점술가들에게 적국의 미사일 기지 위치나, 경제 전망에 대한 자문을 받은 적이 있고, 서양 여러나라의 회사 경영자들도 점술가나 예언자들에게 자문을 받은 적이 있다. 계몽사상과 과학과 합리주의를 배운 현대 서양인이라고 해서 '점술과 예언으로 앞날을 점치는 일'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셈이다]
– 옮긴이)
- 근세조선 후기의 풍속을 적은 책인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에는 두 종류의 윷놀이가 나오는데, 하나는 여럿이서 윷놀이를 해 그 해의 풍흉(豐凶 : ‘풍년과 흉년’을 줄인 말 – 옮긴이)을 점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혼자서 윷놀이를 해) 개인의 운을 점치는 것이다.
- 유득공 선생( 『 발해고 』 를 쓰신 분)의 책인 『 경도잡지(京都雜誌) 』 (근세조선 후기의 책이다)에는 윷점을 치는 방법과 그 괘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이 무렵에는, 양반들도 윷놀이를 즐겼다)
- 1대 1, 또는 2대 2로 장기처럼 두 편이 마주앉아 하는 윷놀이도 있다(이런 윷놀이를 ‘짝이 되다’는 뜻을 지닌 ‘쌍[雙]’자를 써서 ‘쌍륙놀이’로 불렀다).
- 서기 19~20세기의 한국에는 새해에 윷점을 쳐서 그 해의 길흉을 점치는 풍습이 있었다(단, 이 윷점은 『 주역 』처럼 64괘인데, 이는 윷점에서 ‘도/개/걸/윷/모’ 가운데 ‘윷’과 ‘모’를 동일한 것으로 쳐서 괘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 『 주역 』을 읽고, 그 괘를 찾을 때 윷놀이의 윷가락을 써먹음 → 윷점이 본래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후대에 한(漢) 문화의 영향력이 세졌을 때, 근세조선 사람들이 『 주역 』의 점치는 방법을 윷점 속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원래는 125괘였던 윷점이 서기 19세기에는 64괘로 줄어들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옮긴이])
- 역학(易學. 주역[易]을 연구하는 학문[學] - 옮긴이)에 따르면, 괘(경우의 수)가 125개인 윷경이, 괘가 64개밖에 없는 『 주역 』 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한다([윷경은 점괘가 - 옮긴이] “맞을 확률이 2배 높고, 틀릴 확률은 2분의 1로 낮아지는데, [점괘가 틀릴 확률은 – 옮긴이] 좀 더 정확히는 – 제곱으로 해서 – 4분의 1 수준이다.” → ‘진용옥’ 경희대학교 전파공학과 명예교수의 설명).
→ “그러니까 ( 『 윷경 』 이 『 주역 』 보다 ) 8배 이상 더 정확하다(진용옥 교수).”
(이런 정확하고 정교한 역서[易書. 점술을 다룬 책. 요즘으로 치면, ‘미래학’을 다룬 책]를 ‘한족’의 조상보다 먼저 만들어 낸 배달민족의 조상들에게 경의를 표할지어다! : 옮긴이)
- 근세조선 후기의 선비인 ‘심익운’이 지은 책 『 강천각소하록 』 에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 사희경 』 이라는 책이 소개되어 있고, 이것은 윷을 다룬 책이며, 『 강천각소하록 』 은 『 사희경 』 을 인용해 윷놀이를 “동쪽(우리나라) 사람들의 놀이인데, 옛날에 알려진 바가 없는 것이다.” 하고 설명한다.
- 당(唐)의 역사책인 『 북사( 北史 ) 』 에 나오는 기록을 들어, 윷놀이가 제하( 諸夏 )의 ‘저포( 摴蒲 )’라는 놀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 강천각소하록 』 과 『 사희경 』 은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한다(즉, 윷놀이는 ‘한족[漢族]’의 놀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배달민족 특유의 문화라는 이야기다 – 옮긴이).
- ‘사희(柶戲)’는 ‘윷놀이’ 의 한자말이므로, 『 사희경 』 은 곧 『 윷경 』 이다.
- ‘심익운’ 선생은 윷놀이를 “비록 작은 수(數)이지만 지극한 이치가 거기에 있으니”, “책과 윷은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를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경상북도 포항시 신흥리에는 ‘오줌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그것에 난 구멍들은(그것들이 모이면 별자리 모양이 되므로 – 옮긴이) 그 바위가 고대의 ‘천문대’이자 ‘제천의식을 치르는 곳’이었다는 증거다(고대의 점성술이나 제사나 굿은 천문학과 깊은 관계를 맺은 의식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고 전쟁이나 반란이나 흉년이나 임금의 죽음을 예측하는 학문이 발달했고, 서아시아의 고대 제국인 바빌로니아도 천문학과 점성술과 종교행사가 하나로 묶여 있었다 – 옮긴이).[고대인이 구멍을 뚫어 별자리를 나타냄] → 이 바위에 윷판과 똑같이 생긴 바위그림이 서른 개 정도 새겨졌다(이를 ‘윷판형 암각화’로 부르는데, 이런 암각화[바위그림]는 경상북도 뿐 아니라 경기도/호남/충청북도/충청남도/경상남도에서도 나온다).[아사달 시대나 열국시대 초기 같은 고대에는 윷놀이가 제천의식이나, 천문학이나, 종교행사와 관계있는 일이었다는 증거다 : 옮긴이]
- 근세조선 중기의 문인인 ‘김문표’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윷판은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상징한다고 하며, 윷판의 바깥이 둥근 건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고, 윷판 안이 네모난(또는 열 십[十]자인 – 옮긴이) 건 ‘땅’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늘이 땅을 밖에서 감싸는 것이다.”[동아시아의 전근대사회에서는 ‘하늘이 둥글고, 땅은 네모낳다.’ - 한자로는 “천원지방(天圓地方)” - 는 관념이 있었고, 김 선생은 그 관념에 따라 윷판의 모양을 설명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윷판이 네모낳고, 그 한가운데에 점이 있으며, 그 점에서 대각선으로 내 방향의 선이 뻗어 있으나, 원래 전근대사회의 윷판은 바깥이 둥그렇고 그 한가운데에 점이 찍혀 있으며, 그 점에서 똑바로 네 방향의 ‘선’이 뻗어나가, 동그라미 안에 열 십자가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 옮긴이]
- 김문표 선생은 또 “윷판 가운데 있는 ‘별(:점)’은 추성(북두칠성의 별들 가운데 하나)이며, 나머지 별들은 28수다. 말하자면, 북극성은 제자리에 머물고, 뭇별들이 북극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하는 말도 덧붙였다.
(이 설명이 옳다면, 윷판은 그 자체가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일종의 천문도이기도 하다 : 옮긴이)
- 이용복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옛 배달민족이 북두칠성에 주목한 까닭은, “해가 진 직후에 북두칠성의 놓여져 있는 모양을 보고 계절을 알 수 있고, 그 다음에 놓여진 상태에서 한 시간마다 북극을 중심으로 15도씩 돌아”가, “북두칠성은 달력이면서 동시에 시계”였기 때문이다.
- (전근대사회에서 – 옮긴이) 북두칠성은 “생명을 관장하는” 별자리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을 때 “칠성판에 들어간다.”/“칠성판을 짊어진다.”는 말을 쓰는데, 시신을 누이는 판에 북두칠성을 그려서(그래서 그 판을 ‘북두칠성이 그려진 판’, 줄여서 ‘칠성판’이라고 부른 것이다 – 옮긴이) 죽은 사람의 넋이 영원히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 임채우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윷은 “세계적인 놀이문화”이자, “석기시대 고대문명의 하나의 상징”이다(그렇다면, 후자[임 교수의 두 번째 설명]는 윷놀이가 청동기시대의 고대국가인 아사달[‘고조선’의 첫 도읍 이름이자, ‘고조선’의 순수한 한국어 이름]이 아니라 “석기시대”의 고대국가인 신불[神巿]/배달국[‘홍산문화’] 때부터 만들어서 이어져 내려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 옮긴이).
- 메히코 ‘우남(UNAM)’ 대학교 고고학 마야 분야의 학자인 ‘마우리시오 루이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마야 달력의 진법인 “13과 20”이라는 숫자는 “달의 주기”와 연관된 듯하다고 한다. → 마야 달력 가운데 하나인 ‘촐킨력’의 바깥 원 수가 13개인데, 윷판에서 바깥 부분을 이루는 원(:점)의 수기 20개이고, 안쪽을 이루는 원(가운데 ‘십자 모양’을 이루는 원)의 수가 13개이다.(이것도 천문학과 관련이 있는 설명이다. 혹시 김문표 선생이 설명한 근세조선 중기의 윷놀이는 배달민족이 고대 말기나 중세 이후에 ‘한족[漢族]’의 관념과 천문학을 받아들이면서, 그에 걸맞게 ‘변질’된 것이고, 상고 ~ 고대에 배달민족이 했던 윷놀이는 마야 달력과 마찬가지로 해나 달의 움직임을 나타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서기 19세기 이전에는 ‘한족’과 교류한 적이 없었던 마야 사람들에게는 거의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일 테고.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이며, 아직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지금은 말을 아끼겠다 – 옮긴이)
- 미국 원주민에게는 ‘총 – 알(Tsong – al)’로 불리는, 대나무 막대 네 개로 즐기는 전통놀이가 있는데, 이는 주로 여성들이 즐겼고, 배달민족의 윷놀이와 비슷하다(미국 원주민의 한 갈래인 ‘카이오와’ 족에게도 이 놀이가 있었음). → 윷가락이 네 개 뿐인 것이 배달민족의 윷놀이와는 다르다(그리고 ‘총 – 알’에서는 마주 보는 두 사람이 ‘한 편’이다).[원래는 아사달이나 원(原)부여도 윷가락이 네 개였는데, 중세나 근세에 한 개가 덧붙여져서 오늘날처럼 다섯 개가 된 것일까, 아니면 원래는 윷가락이 다섯 개였는데, 북아메리카에서는 윷가락이 한 개 줄어든 것일까? 일단은 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 옮긴이]
→ 한국인 제작진이 카이오와 족에게 한국식 윷놀이를 보여주자, 그들(카이오와 족)은 그것을 쉽게 이해하고 따라했다(카이오와 족 할머니는 한국식 윷놀이를 보고, “우리가 하는 놀이가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 카이오와 족 남성 노인(이 사람은 역사학자이기도 하다)은 자신들의 윷놀이에도 점수판이 있고, 그것이 한국 윷놀이의 점수판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 두 놀이의 놀이 방식도 한 말은 이쪽 방향, 다른 말은 저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도 같다고 설명함(나는 이 때문에라도 거북섬[‘아메리카’의 바른 이름] 원주민들의 윷놀이는 상고~고대에 거북섬으로 건너간 배달민족 계통 민족들이 전해준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 옮긴이)
- (단, 한국인을 비롯한 배달민족[한국에 귀화한 다른 나라 사람들/혼혈인/조선 공화국 공민/코리아(Corea)계 민족들 포함]의 윷놀이와, 카이오와 족의 그것이 다른 점도 있다. 예를 들어, – 옮긴이) 카이오와 족은 대나무로 윷가락을 만들었고, 물소나 들소 가죽으로 윷판을 만들었으며, 윷판에 천막(‘티피’)을 그렸다(이는 카이오와 족이 배달민족이 가져온 윷놀이를 자신들이 사는 곳에 맞게 바꾸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보인다. 대나무가 흔하다 보니 동아시아에서처럼 나무로 윷가락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종이를 만들 만한 나무가 없었던지라 종이 대신 흔한 짐승 가죽으로 윷판을 만든 것이며, 천막은 자신들에게 친숙한 주거공간이었으니, 윷판에 그려 넣는 게 자연스러웠으리라. 이처럼 문화를 즐기는 곳에서 그 문화를 전해준[또는 가져온] 이들의 뜻과는 다르게 문화가 바뀌는 건 오늘날에도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이탈리아가 원조인 피자는 한국에서는 - “불고기”나 “마늘”이나 “고구마”를 집어넣고 오이 피클을 곁들인 - ‘원조 이탈리아 피자’와는 완전히 다른 피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 옮긴이).
- 덧붙이자면, 카이오와 족이 자신들의 윷놀이와 배달민족의 윷놀이를 견주고 나서 보충설명을 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윷놀이는 말이 말판을 가로질러 간다는 규칙이 있지만, 카이오와 족의 윷놀이에는 그런 규칙이 없으며, 후자에는 한쪽 말이 움직이면 다른 쪽의 말은 그대로 있지만, 전자는 두 편의 말이 함께 움직인다(그렇다면, 배달민족의 윷놀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고, 카이오와 족의 윷놀이는 그렇지 않았던 것일까? - 옮긴이).
- 메히코(영어권에서 ‘멕시코’로 부르는 나라의 바른 이름. 이는 ‘간고쿠[がんごく : 일본어]’가 아니라 ‘한국’이 바른 이름인 것과 같다 – 옮긴이) 민속협회 직원이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가져온 한국의 윷가락을 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막대기”가 있다고 말했다(실제로도, 그러니까 한국인인 제작진이 보기에도 그건 사실이었고!).[어쩌면, 메히코 원주민들도 북아메리카로 내려온 상고~고대 배달민족에게서 윷놀이를 배웠거나, 아니면 그들 자신이 북아메리카로 건너간 배달민족의 후손일 수도 있다! - 옮긴이]
- 한국과 영어권에서 흔히 ‘아즈텍’으로 알려진 나라와 겨레의 바른 이름은 ‘아스테가’인데(에스파냐의 주요 언어인 카스티야어로는, ‘지읏’ 발음이 ‘시읏’ 발음으로 바뀌는 사례가 흔하다. 예를 들어, 영어로는 ‘베네<주>엘라’로 불리는 나라는 정작 그 나라에서 쓰이는 말인 카스티야어로는 ‘베네<수>엘라’로 불린다. 따라서, 에스파냐가 무너뜨리고, 그 존재를 온누리에 알린 ‘아<즈>텍’의 바른 발음은 ‘아<스>텍’이고, 더 정확한 이름은 ‘아스테가’다. 에스파냐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음을 적는 방식으로 그 나라의 이름을 적어서 소개했기 때문이다 – 옮긴이), ‘아스’는 아스테가의 언어인 ‘나우아틀’어로는 ‘흰’/‘하얀’이라는 뜻이고, ‘테가’는 ‘태가’, 그러니까 ‘왕족/높은 사람’이라는 뜻이다(따라서, ‘아스테가’는 ‘하얗고 높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
- 메히코 원주민의 전통 놀이 가운데에는 ‘꾸일리치’로 부르는 놀이와, ‘로마야’로 부르는 놀이가 있는데, 로마야는 배달민족의 윷놀이와 가장 비슷하다.
- 윷(윷놀이) 문화는 배달민족과 남북 아메리카(‘거북섬’)의 원주민들(알래스카/과테말라/파라과이/볼리비아 원주민들 포함)과 바라트(흔히 ‘인도’로 불리는 나라의 바른 이름. ‘인도[印度]’는 영어인 ‘인디아[India]’를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옮긴 말이고, 정식 국호는 ‘바라트 연방 공화국’이다. 이는 영어권에서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로 불리는 나라의 정식 국호가 ‘한국’인 것과 같다 – 옮긴이) 일부 지역의 사람들에게 퍼져 있다(나는 윷놀이가 거북섬 원주민들에게 고루 퍼진 건 이해가 된다. 열 해 전, 고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배달민족의 조상인 민족들이 거북섬으로 꾸준히 건너갔다는 학설을 접했고, 거북섬 원주민들의 유전자/생김새도 배달민족의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시아인 “바라트 일부 지역의 사람들”이 윷놀이와 비슷한 놀이를 즐기는 건 왜일까? 일부 학자들의 주장대로, 전기 고리[高麗]가 망한 뒤 오늘날의 제하[諸夏] 호남성[湖南省]으로 끌려온 전기 고리 유민들이 당나라와 ‘한족’들의 압제를 피해 귀주성[貴州省]이나 운남성[몽골제국이 침략하기 전까지는 제하에 속하지 않은 독립왕국이었다]달아났으며, 더 나아가 일부는 오늘날의 바라트 북부까지 달아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시아 곳곳에 담로를 만들었던 백제/남부여 사람들이 남아시아인들에게 윷놀이를 전해주었기 때문일까? 일단은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적어둔다. 부디 후학이 이 수수께끼를 풀어주기를 빈다 – 옮긴이).
- 단기 4356년 음력 윤달 2월 5일에, ‘이제 우리는 윷놀이를 재평가해야 하며, 나아가 그것을 연구하여 상고/고대 배달민족과 거북섬 원주민과 바라트 북부의 소수민족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혀내야 하고, 그것들을 이른바 “중화권(中華圈)” 한족(漢族)들의 중화사상을 반박하는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잉걸이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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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잉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