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틀레기*의 고해성사
김양숙
고향 바다에는 몸에 맞는 소라껍질을 갖기 위해 100번이나 이사를 한다는, 조금 더 큰 소라껍질을 찾아 내장을 내놓고 바닥을 기는 게틀레기가 살지요 소라껍질을 바꾼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평수를 늘인다는 것 게틀레기는 사는 동안 몇 번이나 목숨을 내놓았을까
현저동* 단칸방 툇마루 밑 겨울밤을 삼키고 열을 토해놓는 연탄화덕 우린 그 열에 기대어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고 계절을 넘겼지요 바람이 밤새 토해놓은 성애가 벼랑박*에 붙어있을 때 우린 시베리아에서 온 칼바람의 온도를 관람하다 지문이 찢어지곤 했지요 툇마루 옆구리에 놓은 사과 궤짝 안 밥그릇과 국그릇은 자본주의 앞에 납작 엎드려 있고 문기둥에 박힌 못에는 양은냄비와 가꿈을 걸어놓았지요 냄비를 내릴 때마다 손에 달라붙는 냉기 대신 가난에 화상을 입던 시절 그때는 그랬지요
구공탄은 하얘질 때까지 제 몸을 태우며 이산화탄소를 뱉어냈고 금간 방바닥에서 새어나오는 연탄가스를 몸으로 막다 동치미 국물과 바꿔 먹기도 했던 시절 하얀 연탄재를 부수어 얼어버린 길바닥에 뿌리며 희망이 미끄러져 맨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슬픔을 막고 싶었지요
누우면 머리도 발끝도 닿는 방의 폭과 길이 시골에서 올라온 동생들을 차례로 눕혀놓고 영천*시장 어물전에서 본 어름 깐 상자 위 등 굽은 새우가 되는 풍경을 눈물 대신 웃음으로 넘기던 시절 그때는 그랬지요
문기둥에 걸려있던 냄비를 내리다가 손에 달라붙는 냉기를 내동댕이치며 우는 아침 연탄화덕을 끌어내면 간당간당 붙어있는 불씨를 위해 번개탄을 구하러 구멍가게 문을 두드리던 새벽 번개탄이 끌어 올린 불에 냄비밥을 앉히지만 가장은 빈속을 버스에 매달아 출근해야 했던 그래도 퇴근해서 가족이 모이면 다시 하하 호호 그때는 그랬지요
마루가 있는 집이면 좋겠다 마루에 연탄난로를 설치할 수 있는 집이면 더 좋겠다 함석연통을 달고 연통 고정시킨 줄에는 양말을 걸어 말리고 난로 위 커다란 주전자에 보리차와 옥수수차를 번갈아 물을 끓이고 가끔씩 고구마를 구워 호호 불어 먹으며 삶이 고구마처럼 따뜻해지길 꿈꾸던 시절 그때는 그랬지요
반지하 보일러실 연탄보일러는 18개의 구공탄을 품어 밤새 돌아가고 보일러실 구석에 천 장의 연탄을 재워놓으면 부자가 따로 없고 물을 데워 2층까지 올리고 수도꼭지를 틀면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오는 그런 집을 꿈꾸던 시절 그때는 그랬지요
살림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공약보다 갈비탕 한 그릇에 끌려 투표장으로 가는 발걸음 대신 벽에 붙어있는 벽보를 떼어다 방 귀퉁이에 붙이고 평수를 늘이고 싶었던 시절 연탄보일러에서 기름보일러로 바꾸고 천 장의 연탄 대신 주유차를 불러 탱크에 기름을 채우는 옆집을 보며ᆢ 상대적 가난이 눈물의 항로를 만든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시절 허리띠 졸라매고 소금보다 짠 눈물을 딛고 일어선 무릎 위 전기 스위치를 보며 이제 스위치 하나로 조정되는 삶 행복한가를 묻지요
매일 출근하며 지나다니던 b역의 b아파트로 바꾸고 싶어 은행 문을 넘다 이자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만 아직도 역 가까운 곳에서 조금 더 큰 소라껍질을 넘보는 나는 게틀레기인거지요
*게틀레기 : 소라게를 이르는 제주어
*현저동 :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동 이름
김양숙_1990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시집으로 <지금은 뼈를 세우는 중이다> <기둥서방 길들이기> <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 <고래, 겹의 사생활>이 있음. 한국시인상, 시와산문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 수혜. 현재 사단법인 시와산문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