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갖고 시작한 삶, 그러나...’
최병구(가명) 아버님은 38세 늦은 나이에 조선족 아내와 결혼하였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전화선 공사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일을 하던 중 전신주를 들이받는 차량으로 인해 낙상했고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산재 보상금으로 얼마간은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장애를 가진 아버님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삶이 녹록치 않았던 최병구 아버님은 아내와 이혼을 하고, 노모를 모시며 두 아이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사회의 낙인, 자신을 무너지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최병구 아버님은 다리가 불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 장애인 등록을 권하였지만 등록하면 자신을 영원한 장애인으로 낙인찍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자존심에 하지 못했던 장애등록, 그렇지만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었던 아버님은 장애등록을 하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했습니다. 네 식구의 생계가 막막했지만 다행히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되어 매달 생계비도 받고 임대아파트에도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한번 빠지면 나올 수 없는 가난의 늪’
나라의 도움은 기본적인 생활은 유지할 수 있는 정도였고, 최병구 아버님은 욕심 없이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연세가 많았던 노모의 병환은 생계를 흔드는 위기가 되었습니다. 노모는 병원입원이 잦아졌고, 나라에서 지원받는 의료비도 한계가 있어 최병구 아버님 가정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불어나는 의료비 감당에 거주지의 임대료와 관리비를 납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33개월치가 미납되어 아버님이 감당해야 하는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의료비의 굴레, 가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작년 겨울, 노모는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에게 남은 것은 병원비와 간병비, 가까스로 지인에게 빌려 해결했지만 돈을 갚으라고 독촉에 수급액의 대부분을 돈을 갚는데 사용했습니다. 아이들과 아버님 가족의 생계는 더욱 막막해졌고, 체납되어 있던 임대료와 관리비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임대아파트에서의 강제퇴거,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뿐입니다.’
최병구 아버님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는 보증금 13,800,000원이며, 임대료(월세)와 관리비를 합쳐 매월 25만원정도 납부해야 합니다. 보증금의 60%이상 되는 임대료와 관리비를 체납하게 되면 임대아파트에서는 거주민을 강제퇴거 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됩니다. 그간 행정처분을 하겠다는 통지서를 수없이 받았지만, 얼마 전 강제퇴거를 시행하겠다는 통보를 받고서는 아버님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습니다.
의료비를 감당하느라 내지 못한 임대료와 관리비는 8,753,633원이 쌓였고, 보증금에서 이를 제외하고 난 나머지 500만원 정도로 구할 수 있는 방은 지하 단칸방 뿐입니다. 청소년기를 지내고 있는 두 딸과 아버님은 쫓겨나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한 줄기 희망을 바래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많이 바래본 적도 없습니다. 가진 만큼만 누리며 가난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습니다. 다행이 최병구 아버님의 상황을 알게 된 주민센터와 복지관에서 조금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동안 체납된 돈을 갚기에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사춘기 아이들과 대책없이 내몰리는 상황이 되니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봅니다. 최병구 아버님이 지금의 안식처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아직 어린 아이들이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희망해 네티즌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