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로 마흔 하나, 인지도 높은 대기업에서 15년차 직장 생활을 하는 싱글 여직원. 평범한 집안에서 유,청소년기를 보내고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평균 교육을 받은 후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뛰어든 보통 사람이다. 오늘 나는 이 여직원이 토로하는 고민과 갈등을 열어 보고, 그 고충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짚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조직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를 알아보고, 이 직원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내 사례를 들추어 상담 해법을 찾고자 한다. 상담 형식상 타이틀을 '지은이 스토리'로 달고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우선 그가 토해 내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본다.
사무실 문을 열고 출근하는 시간부터 나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통로를 지나 자리에 가려면 나를 멀리 하려는 3명의 여직원 진영,은혜,정민의 옆을 지나는데 한결같이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돌리거나 눈을 내려깔거나 심지어 노트북 화면에 얼굴을 쳐박고 본체 만체하는 식으로. 나한테 선입견이 있어 이런 느낌이 드나 싶어, 먼저 출근해서 그들이 들어올 때 수인사를 건네거나 미소를 보내도 보는데 반응은 별다르지 않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근무시간 내내 계속된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섞어야 하는 회의시간 이나 외부에서 행해지는 회식 등 공식,비공식 모임에서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나를 피한다. 더 심하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나를 까는 악평을 부서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부서원에게까지 전파한다는 점이다. 내가 왜 이렇게 여러 사람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가지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있다. 옆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진영이와 업무상 다투고 인간관계로 여러차례 힘겨루기를 한 후 소원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는 서로가 이해하고 풀어야 할 사안이지 어느 일방의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진영과의 관계가 불편해진 후에 진영이 다른 파트로 가게 되고 그 파트에 있던 은혜와 정민과 자리가 가까워져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어 지은에 대하여 안 좋은 얘기를 하게 된다. 이것이 소문으로 발전하여 남의 말 좋아하는 일부 직원이 나에게 안 좋은 말을 퍼뜨려 오늘의 사태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하소연 비슷한 것까지 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다. 그나마 옆에 있는 순덕이 언니의 소탈하고 넓은 맘씨에 위안을 얻고 숨통이 트인다. 자, 나는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지은이 스토리는대략 이렇다. 본인 스스로 조금은 흥분 상태에서 장황하게 털어 놓은 이야기라 조금 부풀려진 부분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사실로 보인다. 이 고충상담을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 나갈까 고민하다가 사례를 3부분으로 나누어 접근하기로 했다. 첫째, 진영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과정을 그를 만나 직접 듣는다. 둘째, 진영과 합세하여 지은을 따시킨다는 은혜와 정민을 인터뷰한다. 셋째, 위 진영,은혜,정민을 통하여 지은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를 민주와 성국한테 물어 본다.
사례 파악에 앞서 지은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다. 그는 나무와 풀 꽃 각각을 좋아하고 이들이 어우러진 숲도 자주 찾는다. 조명이 있는 공간보다 어둡지만 분위기 있는 곳을 선호하고, 사람들 사이보다는 혼자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이러다 보니 유가보다는 노장사상 을 정신적 배경에 깔고 있다. 문명보다 자연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직관력이 다른 사람에 비하여 크고, 자유분방한 예술가 기질도 엿보인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요가가 너무 좋아 심취했었던 때도 있었으며,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찜질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북카페 창업 계획도 갖고 있다.
이렇게 지은에 대하여 알고 나니, 지금의 사태가 초래된 발단이 보이는 것 같다. 이상의 개성을 가진 지은은 옆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진영을 만난다.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는데 힘쓰야 하는데, 진영은 그것보다는 주변 눈치보기와 특히 상사 기분 맞추기를 포함한 모시기에만 힘쓸 뿐이다. 그러다 보니 둘이서 나누어 하게 되는 일의 특성상 지은은 진영의 일까지 부담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하루이틀이 아니고 이런 날이 지속되다 보니 지은은 얼굴 붉히고 화낼 사건이 자꾸 생기고 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닫게 된다. 지은의 성격상 일의 본질이 중요하고 상사나 주변 동료 눈치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진영과는 부딪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지은과 직접 부닥쳤던 진영의 인터뷰 내용이다. 지은은 나보다 7살 적은 후배로서 같은 일을 하다 보니 겹치거나 공백이 있거나 경계의 일들이 생기게 되는데, 가끔 네 일 내 일을 주장하며 티격태격한 적이 있었으나 곧 잊어버리고 크게 충돌ㅇ사지 않고 지냈으나, 그는 종종 나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데 그 때 참지 못하고 격하게 싸우고 잘 풀지를 못하여 이후 관계가 급랭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진영이 파트를 옮겨와 같은 일을 하게 된 은혜와 정민의 주장은 지은이 말과 전혀 다르다. 지은이 그런 느낌을 우리한테서 갖는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지은에 대해 우린 전혀 차별한 적이 없을 뿐더러, 그렇게 느끼도록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다. 혹시 진영이 우리 파트로 옮겨 온 후로 물리적 공간이 가까워 지은보다 진영과 많이 접촉하여 그런 감을 받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위 3사람으로부터 지은에 대하여 좋지 않은 이야기, 즉 뒷담화를 들은 사실이 있는지를 지은이 지목한 성국과 민주에게 물어 보았으나 두 사람은 사실무근이라고 한다.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은이 이름이 거명이 되지만 그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지은이가 사무실내 직원들로부터 소외를 당한다고 느끼고 있고, 그 사실을 알아 보기 위하여 지은이 거명한 5 명의 직원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의 공통된 대답은 지은이 느끼거나 생각하는 그런 의사표시나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 무엇인가 ? 5명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인터뷰에 응했을 수도 있고, 나의 인터뷰 방법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인터뷰 용어를 사용하지만 방식은 전혀 그렇지 않고 그 5명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슬쩍슬쩍 알고자 하는 내용을 얘기 속에 집어 넣어 그들의 내심을 읽어 내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답변에 신뢰성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쯤 해서 지은이 문제를 푸는 열쇠를 찾아 보고자 한다. 이 스토리는 현대 자본주의 조직사회에서 무수하게 일어나는 사례를 담고 있다. 그런 조직에 소속되어 경제 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소간 겪는 고민이요 갈등이다. 자본 사회가 강요하는 성과주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만 내달리는 조직인간들은 그 목표 숫자 달성에 올인하도록 프로그램화된다. 그 와중에 페르소나와 자아의식의 갭이 큰 지은이 같은 사람들은 소외되기 십상이다. 여기서 페르소나는 사회나 조직에서 부여받은 사명 즉 얼굴이고, 이것이 자아 즉 나의 의식과 괴리가 큰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고민하고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지은의 사례를 대입해 보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서로 많이 달랐고 이 지점에서 남달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곧 조직생리에 순응하는 것보다(페르소나보다) 자연 독립적으로 일하고 싶은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데(자아의식의 깊은 발로) 그가 처한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은 점에서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실제로 나도 10여년 전에 조직의 심한 부조리를 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몇몇 사람, 그 중에서도 상사들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그런 사정으로 부서를 옮겨 스스로 자아관 정립을 다시 하여 오늘에 이른 사연이 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은이 스토리는 주변의 동료에 의하여 발단한 것이 아니고, 복잡한 자본주의 사회의 한 조직에서 톱니바퀴처럼 물고 물리어 행해지는 환경상 태생적으로 일어난 매우 평범한 사례이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 스스로 조직 생리를 파악하지 못하여 갈등을 빚고 주변 동료에 잘못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으로 비친다. 따라서 지은에게는 자아의식의 중심에 있는 자존심을 조금 죽이고 용기를 내어 조금씩 동료들에게 다가 서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이 요가업이나 북카페 창업 등 자유업이라는 점에서, 월급쟁이로서 회사가 명령하는 일을 하면서 인정을 받고 출세하는 것을 그들의 페르소나로 알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알고서.
첫댓글 부하 직원의 고민을 듣고, 나머지 직원들을 인터뷰하며 관계속에서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시는 모습이 그려 지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