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계급과 병과가 같은 동명이인의 장교가 있었다. 진급 발표 시 한 명의 이름만이 진급자 명단에 올라 있어서 서로 희비가 엇갈린 추억이 있다. 이때처럼 누가 나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나와 같은 이름의 사람들이 여럿이 나온다. 때론 부고란에서 나의 이름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그리고 앞으로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 존재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나와 똑같다는 말은 성격유형과 체질, 소통방식과 유전자 구조 등에서 모두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의 계산에 따르면, 유전자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핵산(DNA)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을 계산하면, 천문학적 숫자가 나온다고 한다. 아주 낮게 잡아도 DNA 차원에서 무려 2,000자리 숫자의 서로 다른 사람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1조는 13자리 숫자이다. 2,000자리의 숫자 하나를 종이 위에 쓰려면, 그 자체로 20~30분쯤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이래 지금까지 지구의 땅을 밟았다 떠난 사람들을 다 합쳐도 나와 같은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1/2,000자리 수의 확률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획일화된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이러한 평가와 판단에 기초하여 비난하며 충고도 한다. 여기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판단기준으로는 혈액형, 사상체질, DISC 업무처리 방식, MBTI 성격유형 등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학연, 지연, 가문의 법도 등 개인적 성장 과정과 경륜의 정도에 따라 발생하는 생각과 태도의 차이를 서로 인정하지 못하면 ‘불통즉통(不通卽痛)’의 병폐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통방식이 되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나 중요시되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유형을 보면, A형은 내성적이고 성실하며 일 처리가 완벽한 점을 꼬집어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A형을 ‘소세지’라 폄하하기도 한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A형은 “소심하고, 세심하고, 지랄맞음”의 성격으로 분류된다. B형은 일반적으로 외향적이고, 활달하며, 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B형은 바람둥이로 오해받기도 하며, ‘오이지’(오만하고, 이상하고, 지랄맞음)로 분류된다. O형은 추진력이 강하고, 침착하며 리더십이 있는데도, ‘단무지’(단순하고, 무식하며, 지랄맞음)로, AB형은 가치관이 뚜렷하고, 이해타산적이며, A, B, O형의 모든 특성이 보인다고 하여, AB형을 천재 아니면 바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AB형을 ‘지지지’(지랄맞고, 지랄맞고, 지랄맞음)라고도 한다.
업무처리 방식의 DISC 유형은 업무 중심이냐, 사람 중심이냐, 적극적(외향적)이냐 소극적(내향적)이냐에 따라 주도형(D), 사교형(I), 안정형(S), 신중형(C)으로 분류되고,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유형은 융(Carl G. Jung, 1875-1961)의 성격유형(사고형, 감정형, 직관형, 감각형)을 발전시켜 외향-내향, 현실-직관, 사고-감정, 판단-인식 등의 모든 요소의 조합으로 나누어 16개 성격유형으로 분류한다.
동양의 사상체질에 의하면 사람은 타고난 바에 따라 각자의 오장육부에 허실이 생김으로써 체질별로 독특한 질환이 발생하기에 그 체질적 차이를 고려하여 같은 병이라 하여도 치료 방법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상체질의 태양인(금 체질), 태음인(목 체질), 소양인(토 체질), 소음인(수 체질)도 다시 음양으로 분류하면 8종의 체질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서로 다른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을 개관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방식의 진위나 상관관계를 따지는 것은 일종의 시간 낭비라고 본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를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존중의 문화’를 오늘의 성숙 불씨로 지피고자 한다.
<성숙사회가꾸기모임>의 ‘성숙의 불씨’ 866호(2023. 12. 26) 원고
첫댓글 혈액형, DISC, MBTI, 사상 체질 등에서 나타나는 개인적 특성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존중의 문화가 절실히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