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들은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고 속박된 삶을 살아야하는 까닭을 자신의 자유로운 본질을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 보다 직접적으로는 그로 인해 야기되는 욕망과 집착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모든 세속적인 집착과 욕망을 버리라는 무집착의 삶의 태도(samnyasa)가 권고되었다. 인도인들이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 이와 같이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 것은 아마도 무한대로 증대되는 인간의 욕망을 완전하게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으로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인지도 모른다[류경희, <인도사상의 해탈개념>, <<인도철학>> 7, 인도철학회, 1997, 236쪽]
이러한 무집착과 무욕망의 삶의 태도가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커서 무집착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종교, 사회적 관행과 제도들이 확립되어 긴 기간 동안 실천되어 왔다. 먼저, 개인의 다양한 종교적 욕구와 능력에 맞게 해탈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탈의 달성 방법이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해탈에 대한 고전적인 이론들은, 모두 존재의 본질을 앎으로써 해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이 제시하는 해탈에 이르는 길은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깨닫는 지혜의 요가(Jnana Yoga)였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실제적인 경험을 통하여 체득되는 체험적인 자각을 의미하고 이를 위해서는 명상과 요가 수행이 요청된다. 이 지혜의 요가는 전통적으로는 브라만, 크샤뜨리아, 바이샤 등 상층 세 카스트에게만 허용되고 여성과 낮은 카스트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 힌두교는 이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보다 대중적인 해탈의 길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신애(信愛)의 요가(Bhakti-Yoga)와 행위의 요가(Karma-Yoga)이다.
욕망이 제거된 행위를 실천하는 행위의 요가는 세속적인 삶과 행위가 부인되지 않으면서 해탈의 추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행위를 재해석한 해탈의 길이다. 본래 모든 행위는 업을 낳기 때문에 인간을 윤회의 굴레 속에 묶어두는 요인으로 인식되었으나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인간을 속박하는 요인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행위의 유발 요인인 욕망과 집착으로 제시되었다. 제거되어야 할 대상은 행위가 아니라 욕망이므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욕망 없이 하는 행위는 업을 낳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방에 이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사회 윤리체계에 적용된 것이 바로 바르나아슈라마 다르마이다. 이것은 사회 구성원인 각 개인이 힌두 사회의 계급 제도인 카스트에 근거하여 자기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또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삶의 네 단계를 밟아 해탈을 추구하도록 규정한 사회 윤리 체계이다. 카스트의 의무는 모든 계층이 따라야 할 무조건적인 의무였지만 상층 세 카스트에만 허용된 삶의 네 단계의 의무는 선택적 의무였다.
삶의 첫 번째 단계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단계로 이에 필요한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스승(Guru) 집에 머물면서 학습하는 학생기이고, 둘째 단계는 가장기로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모든 종교,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흔히는 50세가 지나면 아들에게 가장의 의무를 물려주고 모든 사회적 의무를 떠나 부인과 함께 숲으로 가 수행생활을 시작하는 임처기(林妻期)로 들어간다. 그리고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버렸다고 판단될 때 해탈의 추구에 몰두하는 수행자(Samnyasin)기로 들어간다. 이 때가 되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을 지니고 홀로 명상과 수행생활을 한다.
이러한 삶의 단계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상층 세 카스트, 실제로는 일부 브라흐만 계층에 국한된 이상적인 삶이었다고는 해도 여기서 주못할 점은 이와 같은 삶이 사람들이 따라야 할 행위의 전형적으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도인들은 해탈의 추구가 사회의 유지와 지속에 위협적인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집착의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삶 속에서 해방을 추구할 수 있는 행위의 철학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신애의 요가는 신에 대한 열렬하고도 헌신적인 믿음과 사랑을 통해 신과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신과의 합일 추구하는 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힌두교는 일원론적 다신신앙 형태를 취한다. 즉 3억3천이라는 수없이 많은 신들이 존재함에도 인도인들은 그 모두가 하나의 신이 자신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신의 다양한 나타남'에 대한 인식은 남녀노소나 계층과는 무관하게 아주 확고하고도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많은 신들 가운데 비슈누와 쉬바 그리고 여신들이 주료 신들로 숭배되고 있는데 신애의 요가인 박띠는 이들 신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용이한 해탈의 길로 대중들의 종교적 욕구를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해탈의 길들은 목표에 접근하는 방법상의 차이일 뿐, 그들의 핵심원리가 무욕망의 정신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류경희, [인도인의 종교의식{완전한 자유의 이상과 무집착의 삶], 김태정·양승윤 외, 종교로 본 동양문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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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통계학부 200511146 배유경] 출석체크 합니다~
[전자전기통신공학부 200424379 정재만] 출석체크 합니다~
[수학통계학부 200511103 고동우] 출석체크 하고 갑니다.....늦어서 죄송해요~~
[수학통계학부 200511167 이가나] 출석체크합니다. 이걸 미쳐 보질 못했군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