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이중성을 극복하는 성도들 이사야 1:10-17
영국의 작가 스티븐슨의 작품가운데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헨리 지킬 박사는 낮 시간에는 원래의 지킬 박사로 살아가고
밤에는 약물을 통하여 하이드로 변신을 합니다.
낮 시간에 지킬 박사의 모습을 유지할 때는 굉장히 젠틀한 행동거지를 보입니다만
그러나 하이드가 되는 밤에는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많은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이 계속되었을 때 인간 지킬 박사는 인격과 마음을 잃어버리고
내면의 하이드는 더욱 더 통제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결국 지킬 박사는 마지막으로 참회록을 쓴 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이중성을 풍자하고 비판한 작품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은 인간사회에서도
가장 비판을 받는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면서
이중적인 생활을 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유대 백성들의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요한 신앙적 요소들을 다 거절하십니다.
먼저는, 제사를 거절하십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다.”
그리고 13절에서는 분명하게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일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기본적인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번제와 화목제 등 많은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이런 제사를 내가 받지 않겠다고 거절을 하십니다.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11절)
두 번째로, 성회로 모이는 절기를 거절하십니다.
14절을 보면,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 백성들은 안식일, 월삭, 그리고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같은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회로 모이는 절기를 싫어한다고 거절하고 계십니다.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지금은 절기와 성회를 싫어한다고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얘기하면 주일에 성도들이 주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모이지 말고 예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백성들의 기도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계시고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라고 하면서
나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코 범하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라고 까지 말씀하셨는데
그런 하나님이 기도하지 말라고 기도를 거절한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왜 이런 것들을 거절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요소들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들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것을 하지 않는다고 책망을 하시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그 중요한 신앙의 요소들을 다 거절하시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정말 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주일이나 각종 절기를 지키고 기도하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당연한 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중요한 일을 하지 말라고 거절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이런 중요한 일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문제가 이중적인 신앙생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합니다.
성회로 모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회를 잘 지키고 참석하면서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뒤에서는 악을 행하였다,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에서도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자세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 손에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 흘렸던 피가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손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성도들의 문제가
신앙과 생활이 일치되지 않는 이중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주일날의 모습과 평일 날의 모습이 너무 다르고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직장에서의 모습이 크게 다릅니다.
교회 안에서는 천사와 같은데 교회를 떠나면 어느새 마귀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집니다.
주일날은 정말 사랑스러운 권사님 같은데 평일에는 돈만 아는 복부인 같습니다.
기도할 때 보면 정말 사랑스럽고 기도의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하는 말을 보면 엉뚱한 말을 잘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내뱄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신임을 잃고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많은 성도들의 이러한 이중적인 생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말 믿음으로 살아가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올바른 성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성도들 때문에 하나님이
큰 비난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데에 큰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살 길은 신앙의 이중성을 극복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중적인 신앙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형식적인 신앙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12절에 보면,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했습니다.
내 앞에 보이러 온다는 것은 그 마음에 진심이나 사랑이나 감사함이 없이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왔으니 그 제사나 성회가 진심으로 드려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기도를 하여도 믿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가운데 진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기도에 머물렀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바로 보이는 신앙생활,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당연히 말씀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형식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고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말씀을 듣지 못하니까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마르다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니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형식에 얽매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유다백성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형식만 남은 껍데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항상 말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고 죄악 된 삶을 멀리해야 합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소돔의 관원들’이라고
말하고 그 백성들을 향하여는 ‘고모라의 백성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자들로 평가받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악했으면 불과 유황으로 도시가 전부 없어지기까지 했겠습니까?
전설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사해바다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받은 지역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이라고 하면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모독적인 말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관원들이며 백성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얼마나 많은 악을 행하였으면 이런 모욕적인 말을 썼겠습니까?
15절 말씀에 보면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무슨 악을 그렇게 많이 행했을까요?
우리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잘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렇게 많은 악을 행하고 손에 피를 가득 묻히면서도
천연스럽게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렸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비롯한 절기도 잘 지키고 열심히 기도도 했다는 겁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한 주간 수많은 죄를 짓고도
주일날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경건한 모습으로 나와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십일조 헌금을 비롯한 각종 헌금을 드리고
각종 잘못을 범한 손을 들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엄청난 죄를 짓고도 별일 없다는 듯 행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하 반절에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했습니다.
성회를 잘 지키면 악을 행하지 않았어야 했고
악을 행하려면 성회도 잘 지키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회는 잘 지키고 그러면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악을 행하였으니
이런 이중적인 삶을 어찌 하나님이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은밀하게 행하는 것까지 다 알고 게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한다고 이러한 악한 일을 용서하시겠습니까?
악한 일을 하면서 거짓된 일을 하면서 남을 속이고
억울하게 하고서 드리는 헌금이나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헌금을 하고 예배를 드리면
모든 것이 다 상쇄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모습을 기뻐하시지 회개하지도 않고
헌금이나 기도나 제사만 드리면 다 된다고 생각하거나
나의 잘못을 상쇄할 것이라는 생각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매여 있지 마시고
악을 멀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마음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선행을 배우고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들을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바꿔 말씀드리면 지금 이런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에는 충실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일에는 등한히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 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내가 순종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고 관심을 갖고
마음을 주고 계시는 세상의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시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약함을 악용하여 착취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성회를 지키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줄 알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주님은 내 마음을 알아라,
내가 원하고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그 뜻을 따라 살아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나의 마음을 아버지의 마음에 맞추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내 뜻을 맞추고 아버지의 관심에 내 관심을 맞추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생각에 맞춰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당시 전쟁의 승리를 위해 링컨 대통령은
하나님께 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참모들이 말을 합니다.
“대통령께서 이렇게 기도하시니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셔서 승리하게 될 줄 압니다.”
그러자 링컨이 반색을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니 무슨 말인가?
나는 내가 하나님의 편이 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네.”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한다는 링컨의 말은
정말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말인 줄 압니다.
하나님의 편이 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나만을 아는 신앙생활에서 타인을 알고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할 때 신앙의 이중성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은 어떻 모습일까요.
오송지하차도 사건 14명 사망
미호천 뚝이 터졌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 나와
지하차도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것을 보면서도 차가 지하차도로 들어 가더라는 겁니다.
지하도라는 것이 내리막이 되었다가 다시 오르막이 되는 건데 ....
지하차도에 이미 물이 고인 것이 분명히 보였고
계속해서 물이 흘러 들어가서 그 안에 고이고 있는데
몇 몇 대의 차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더라는 겁니다.
물론
죽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당연히 지하도로 들어가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죽는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들어간 것입니다.
저는 그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서
저기를 왜 들어갈까 ..... 들어가면 죽는데 ....
지하차도 안에 물이 많이 고였는데 ....
계속해서 물이 들어가고 있는데 .... 왜 그곳을 향해 차가 들어갈까
너무 너무 어리석은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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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적으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 지옥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말할것도 없고
믿는 사람 조차도 미혹 받아서 열심히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점점 더 악한 삶을 살고 ....
점점 더 타락된 삶을 살고 .... 점점 더 쾌락적인 삶을 살고 ....
음란과 / 쾌락과 / 마약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열심히 지옥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죽는 줄도 모르고 .... 지하차도로 들어가서 죽는 사람과
지옥 가는 줄도 모르고 .... 죄를 짓고 살다가 지옥 가는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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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은 교회 밖에 많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사람 중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마7:21) 분명하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갑니다.
지옥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가던 거지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 몰라요.
할 수만 있는대로 ....선을 행하면서살아야 하는데
할 수 있는 데로 .... 악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보이스 피싱으로 .... 수많은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고 ....
묻지마 폭행으로 .... 지나가는 사람을 칼로 죽이고 ....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라도 .... 돈만 많이 벌면 되고 ....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죽어서 어디 가겠어요 ? 지옥가지
그 고통스러운 지옥에서
처절한 고통을 영원히 받으면서 살게 될 것을 전혀 모르고 .... 지금 그렇게 사는 거예요.
- 그러한 삶의 종말이 지옥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 그들이 그렇게 살았을까요 ?
- 지하차도로 들어가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 차가 그리로 들어갔을까요 ?
죽는줄도 모르고 지하차도에 들어가는 사람이나 ...
지옥가는 줄도 모르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나 .... 다 어리석기는 똑같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살고 ....
어떻게 살아야 죽는지 .... 깨닫는 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지하참사가 주는 교훈
2. 준비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번 오송 참사 사건도
터진 미호천제방 뚝이 임시재방 뚝 이라는 겁니다.
제대로 된 보수를 하기 위해서 .... 임시로 막아 놓은 뚝이 터진 겁니다.
사실 이번에 비가 많이 온다는 사전 예보가 있었습니다.
다른 때보다 비가 많이 온다는 사전 예보가 있었으면
임시재방 뚝을 얼른 보수해서 .... 정상적인 뚝으로 만들었야 합니다.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사전 예보를 듣고
임시재방 뚝을 빨리 보수해서
정상 일반 둑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 그 뚝은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뚝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지하차도로 물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뚝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지하차도에서 열 네 명의 안타까운 생명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맞이할 준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 잔치에서 이불 예복을 준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준비하지 아니하면 슬피 울며 일을 간다는 겁니다.
예복을 준비하지 아니하면 천국잔치에서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천국 잔치의 비유에서 .... 이것을 경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워 올수록 ....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날로 날로 성화되어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고
지난달보다 이번 달이 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고
지난 주보다 이번 주에 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고
어제보다 오늘이 .... 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람이에요.
3. 원칙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데
바쁘다고 / 힘들다고 / 재미 없다고 ....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는 그것이 좋은 것 같고 .....
일시적으로는 그것이 행복을 주는 것 같아도 .... 그 길의 끝은 죽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있어요.
내가 감당해야 할 희생이 있어요.
그 십자가를 내려놓고 편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를 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따라서
말씀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 내가 쓸 시간이 없어요.
말씀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 내가 가고 싶은 곳도 못가요.
말씀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해요.
용서하기 싫어도 용서할 수 밖에 없어요.
사랑하기 싫어도 사랑할 수 밖에 없어요.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거예요.
왜 우리가 좁은길을 가야 합니까 ? 넓은 길도 있는데
왜 우리가 굽은길로 가야 합니까 ? 곧은 길도 있는데
왜 우리가 협착한 길로 가야 합니까 ? 편한 길도 있는데 ....
그게 생명의 길이고
그게 우리의 영혼이 사는 길이기 때문에 .... 좁은길로 가는 겁니다.
더 빨리 가겠다고 ....
더 쉽게 가겠다고 .... 우회해서 가다가 참사를 당한 버스처럼
더 빨리 성공하겠다고 ....
더 편하게 신앙생활하겠다고 .... 말씀을 우회해서 살지 마십시오.
넓은 길로 가면 안됩니다. 넓은길은 가기가 쉽기 때문에
넓은 길은 세상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길로 가지 마십시오. 힘들어도 좁은 길로 가십시오.
세상이 끝나는 마지막 날
온 세상에 재앙이 임하는 그날 ....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지옥의 재앙을 당하지만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힘들어도 좁은길을 가고
힘들어도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 재앙의 날이 축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계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믿음이 하나도 없이 .... 벌거벗은 자처럼 되지 아니하고
믿음을 잘 지켜서 .... 자기의 부끄러움 수치를 드러내지 않는 자는
구원의 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말씀 떠나 살면 .... 하나님 버리고 살면 .... 지옥 간다고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으니
말씀떠나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그 귀한 천국의 은혜
힘들다고 집어던지고..... 영원한 죽음을 향해서 가지 마십시오.
거룩한 행실로
천국 잔치에서 입을 예복을 준비하십시오.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십시오. 그러면 버림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 시요.
넓은 길로 가지마세요. 좁은 길로 가세요.
힘들다고 우회하지 말고 .... 말씀 대로 사십시오.
그것이 영혼이 사는길 입니다.
이 세상 끝날이 여러분에게는 축복의 날이 되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