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동행 길
류재희
차가우리만치 원래의 조용함을 떨쳐내며 차곡차곡 시집살이 걸음을 내디뎠다. 직장과 가정 살림을 같이 감당하며 시작한 첫해 새 생명이 찾아왔다. 시린 삭풍 속에 설 명절맞이가 힘들었다. 퇴근 후에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柿에 맞추려 메모지를 갖고 다녔다. 시장市場을 몇 번이나 돌아다니며 장을 봤다. 십오 년 전에 먼 길 떠나신 시아버지 명절차례 준비였다. 큰댁의 기제사 참석은 더 힘들었다. 일본식 적산가옥의 옛 고택은 안방과 주방이 가물가물 멀어서 상차림에 지쳐 몸져눕기도 했었다.
설, 추석 명절에는 십여 집안이 윗대부터 순차로 돌며 차례를 모셨는데 제관이 이십여 명이 넘었다. 남편이 열한 살 때 돌아가신 시아버지는 막내 집이었다. 명절 차례도 마지막 집이어서 제관들 떡국을 삼십여 그릇 넘게 끓이기도 했었다. 친정에서도 기제사 일을 거든 적 있기에 부담은 적었다. 차가 없던 때였으니 무거운 짐으로 늘어진 어깨가 저려 잠을 설쳤다.
차례가 끝나면 한복을 차려입고 큰댁, 집안 세배드리려 다녔던 날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큰아버지는 같은 곳에 사는데도 여비를 주셨고, 큰어머니는 나에게 “구세주 어서 오느라”하시며 정을 내었다. 어릴 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공부했고, 선생이 되고 싶었다고 회상하셨다. 내 일하는 품새가 마음에 드셨던 건지 온화한 눈빛으로 지켜봐 주시는 게 큰 힘이 되었다. 슬하에 십 남매를 둔 대가족의 어머니였다. 한 지붕 밑에 살던 시동생이 네 남매를 두고 홀연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으니, 마음에 부담이 엄청나게 컸으리라. 나의 결혼예물도 시어머니와 큰어머니가 함께 다니며 마련해 주었다. 따뜻한 정이 가슴에 남아 일렁인다.
남편을 만나 스무 번째 맞이한 가을이었다. 우리 둘은 시어머니와 큰어머니를 모시고 이박삼일의 나들이를 떠났다. 하늘은 높았고 곱게 물든 아기단풍과 은행 나뭇잎이 소슬바람에 나부끼며 춤추었다. 가을바람 흐르는 백담사, 김삿갓 유적지, 단양팔경의 굽잇길을 돌았다. 맛집을 찾아 별미를 즐기고 한강 줄기의 풍광에 젖었다. 그중에도 두 분은 수많은 사람이 원을 빌며 지나는 백담사 입구의 끝없는 돌탑을 좋아하셨다. 건강 백수를 누리시라고 대웅전 부처님께 삼배를 드렸다.
큰어머니는 큰아버지를 떠나보내시고 홀로 수년을 지내왔다. 김삿갓 유적지에서였다. 남편은 방랑 시인이 주모의 치마폭에 써준 시 이야기를 해드렸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 시절을 큰집에서 보냈던 남편이 두 분을 편하게 하려 애 써는 얼굴이 진솔했다. 돌아오던 날 밤 안동을 지날 때였다. 큰어머니는 여든이 넘은 연세에 피곤하지도 않으신지 도산서원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늦은 밤이니 다음에 꼭 와보자고 다독였다.
안동병원의 의사인 막내 시동생이 자주 걱정을 해준다면서, 큰어머니는 대뜸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하셨다. 그 옛날 큰아버지가 사업할 당시엔 종가에 선산을 사주기도 한 넉넉한 살림이었으니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오신 분이다. 이번 여정이 두 어른의 마음을 흔들었던 모양이었다. 동서 간에 도타운 정담을 밤늦도록 나누기도 하였다.
돌아와서 시어머니께서 나를 불러 앉히시더니 이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고맙다”라고 하셨다. 연년생 손녀, 손자 셋 키운다고 고생 많이 하셨는데, 너무 죄송한 마음이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아렸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더니 고부간 작은 알맹이의 갈등이 봄눈 녹듯 다 녹아내렸다.
큰어머니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다음 해 가을에 원을 풀어드리려 도산서원에 갈 때는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서원 산그늘에서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를 내다보니 기분이 정말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강건하시더니 기억의 회로가 회색빛으로 물들어 갔다. 먼산바라기로 혼잣말하시며 집안을 서성이셨다. 먼저 가신 큰아버지 곁으로 가야 한다고 노랫말처럼 하셨는데, 오 년 뒤 먹장구름에 여름 장맛비 내리던 날 먼 길을 떠나셨다.
그 몇 년 뒤 시어머니도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원장으로 일하던 요양원에서 저세상 가셨다. 옆에서 지켜만 보았을 뿐 끝내 가시는 길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흔 전에 청상이 돠어 홀로 네 남매 데리고 일상이 얼마나 고달프고 마음 앓이가 심했을지. 생각은 있어도 다정다감하게 표현을 잘못하는 나였다. 심사心思를 달래드리지 못해서 정말 후회가 되고 가슴이 미어지듯 저민다.
이제 나도 이순이 넘어 젊은 시절을 곱씹으며 먼저 가신 당신들이 걸어온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동행 길이다.
(《수필문예》 제22집, 2023.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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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수필과 비평》 등단(2021년)
수필과 비평작가회의, 수필문예회 회원
대구수필문예대학 30기 수료.
수성구청 정년퇴직(사회복지사무관)
참행복요양병원 원장 역임
y2797811@daum.net
첫댓글 따뜻한 마음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