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국민소통운동본부 CCCC
소통 !
여러분의 고견과 댓글로
대한 국민<가족> 소통 운동에 적극 동참을 소망합니다 !
박근혜정부에서는 동서남북 소통행정<소통정치>를 하실 줄 압니다.
<<미래창조과학기술부 소관 주관하에>>.
"인연을 소홀히 하면
내생에 악연이 되어 다시 만난다.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만남은
삼백생의 인연이요,
같은 좌석에 앉아 대화를 하면
오백생의 인연이요,
같은 솥의 밥을 먹으면 칠백생의 인연이라..
같을 피를 나누면 구백생의 인연이요,
부부로 만나는 것은 천생의 인연이니라.......
금생의 인연이 참으로 중하니
어떠한 인연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 이니라...
- C C C C -
평택 소통 김 평 탁
8월 14일
오늘의 말씀
① 시편 14장 전문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7.
② 잠언 14장 전문
○ 정직한 자와 거짓된 자
1.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룻4:11
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룻1:20, 갈6:5, 갈6:4
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 부요한 자와 가난한 자
20.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잠19:4
21.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22.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그 미련한 것이니라
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왕상4:20
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시105:12
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30.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합3:16
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마25:40
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오늘의 역사
① 문성길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획득(1988) : 22전 20승 2패.
문성길의 프로통산 전적이다.
그는 20승 가운데 16번을 KO로 이겼다.
그가 한국 프로복싱 사상 경량급에서 가장 무서운 주먹을 가진 선수였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수치다.
이 '돌주먹'은 두체급 세계챔피언을 지냈다.
첫번째는 WBA 밴텀급. 1988년 8월 14일인 오늘 태국의 카오코 갤럭시를 물리치고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가 1989년 7월 9일의 3차 방어전에서 갤럭시에게 챔피언을 되돌려주었다.
두번째는 1990년 1월 20일 가나의 나나 코나두를 누르고 따낸 WBC 슈퍼플라이급. 1993년 11월13일 멕시코의 호세루이스 부에노에게 10차 방어전에서 타이틀을 빼앗길 때까지 그는 3년 10개월간 왕좌에 있었다.
② 이순신장군, 한산대첩 거둠(1592) : 1592(임진)년 충무공은 4차 출전하여 10전 10승하였다.
그중에서 제 3차 출전시의 한산대첩은 충무공의 용의주도한 작전계획으로 왜수군의 정예부대를 한산섬 앞바다에서 격파함으로써 모든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임진왜란을 승리하게 하였다.
③ 문화 예술 진흥법 : 1972.8.14 공포.
제1조〔목적〕이 법은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문화 예술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민족 문화의 중흥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④ 조선건국 준비위원회 성립(1945) : 몽양 여운영은 해방의 그날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44년 8월 조직한 비밀지하 운동단체인「건국동맹」이 8․15해방이 표면화되면서「조선건국준비위원회」, 약칭「건준」으로 바뀌었다.
1945년 8월말까지 전국을 통해 1백45개소의 「건준」지부가 설치되는 등, 건준의 성격과 진로는 8․15에 발표된 「…우리의 당면과제는 완전독립과 진정한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선언과 강령에 보이듯이 진보적이다.
이처럼 진보적 성격에 보수․우익인 한민당이 반대세력화되고 우파의 협조거부로 몽양의 건준운동에는 박헌영의 공산당 세력이 조직기반을 강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 9월 6일 건준은「조선인민공화국 임시조직법안」이란 것을 통과시킨 다음 「조선인민공화국」수립을 발표, 9월 11일에는 조각을 마쳤다.
그 뒤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건준은 해체되었다.
⑤ 천도교 지일(地日) 기념일 : ⇨3월 10일.
⇨4월 5일.
⑥ 한일협정 비준안 국회 통과(1965) : 한일협정 비준안이 야당과 국민들의 건센 반대를 무릅쓰고 조인된지 54일만인 1965년 오늘 국회를 통과합니다.
한일협정의 국회통과는 사흘전 국회 특별위원회 예심을 거친 후 제52회 임시국회 12차 본회의에서 이루어집니다.
야당의원들은 한일협정에 반대하며 의원직을 총사퇴했습니다.
굴욕외교라는 비난을 받은 한일협정은 결국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출석위원 111명 가운데 찬성 110표, 기권 한표로 통과됩니다.
⑦ 인민혁명당 사건 발표(1964) : 1964년 오늘 !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인민혁명당을 결성해 국가전복을 기도한 마흔한명의 혁신계 인사들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구속된 마흔한명에 대한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중앙정보부의 고문사실이 폭로되는 등 혼미를 거듭합니다.
결국 구속된 41명 가운데 12명만이 국가보안법이 아닌 반공법 위반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습니다.
⑧ 서진룸살롱 집단살인사건(1986) : 1986년 8월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서진룸살롱에서 있었던 폭력배들의 칼부림은 4명이 피살됐다는 점 보다도 범죄의 잔인성에서 충격적이었다.
폭력조직배들의 세력다툼으로 벌어진 살인극은 관련자 4명이 사형선고를 받는 등 단죄되고 있다.
검사의 논고대로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한 자'들의 끔찍스런 범죄였다.
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호텔사장 청부폭력사건이 발생해,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잔혹한 범죄시대를 맞고 있음을 예고했다.
⑨ 김일성 주석 연방제 제의(1960) : 1973년 6월 23일 체코공산당 총비서 후사크 환영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김일성 이 행한 연설을 통해 제시한 5개 항목의 통일강령. 그 내용은
1) 남북한간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와 긴장상태 완화
2) 남북한간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 실현
3) 북과 남의 각계각층 인민들과 정당․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 는 대민족회의 소집
4) 고려연방공화국의 단일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 실시
5) 단독 유엔가입 반대 및 「고려연방공화국」 단일국호에 의한 유엔가입 등이다.
북한은 이같은 통일강령을 제시하기 앞서 1970년 11월 노동당 제5차 대회에서 1960년대초의 연방제안(1960. 8. 14 김일성의 해방15주 경축대회 연설)을 다시 확인했으며 1971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4기 5차회의에서는 당시 외상인 허담 (1991. 5 사망)의 「보고」를 통해 「통일 8개항」을 내놓은 바 있다.
⑩ 민족대축전 북한 대표단 현충원 참배(2005) : 2005년 오늘, 광복 60년을 맞아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이 국립 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북측 인사가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6ㆍ25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 등 북한 당국과 민간 대표 32명은 현충문 앞에 내려 참배를 위한 첫 발을 내딘 뒤 현충탑 아래 머리를 숙였다.
현충원에 들어서 참배를 마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짧은 참배였지만 북한 당국이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의 유골이 봉안돼 있는 현충탑에 참배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김기남 북한대표 단장은 '현충원을 방문하게 해줘서 감사하다, 민족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하자'며 현충원 방문 소감을 밝혔다.
⑪ 브란트, 서독 총리선거 출마(1965) : 서베를린 시장으로 이미 명성을 얻고 있던 빌리 브란트 !
1965년 오늘 빌리 브란트는 두번째 서독 총리에 도전합니다.
빌리 브란트는 그러나 또다시 선거에서 패배합니다.
4년 후인 1969년브란트는 세번째 도전끝에 마침내 서독 총리가 됩니다.
동방정책의 추진으로 동서 화해에 크게 기여한 브란트.
⑫ 폴란드 그다니스크 조선소 파업(1980) : 1980년 7월 1일 식육가 인상을 계기로 그다니스크에서 발생한 파업이 1980년 8월 14일 전국으로 확대, 레흐 바웬사가 지도하는 솔리다니스치라는 자주관리독립노조운동이 전개되었다.
8월 31일 정부대표자와 노동자대표 회담에서 자주관리독립노조 결성의 허용과 파업권이 보장되는 등 소련권에선 전례없는 민주화조치가 취해졌으며 독립노조산하회원은 1,000만명에 달하는 큰 세력이 되었다.
자유노조운동이 확대되자 사회주의 이탈이라고 비난해온 소련은 이를 분쇄하기 위해 폴란드에 개입, 정부당국에 강압책을 쓰도록 압력을 가하자 폴란드정부는 이에 굴복하여 1981년 12월 13일 전국에 계엄을 선포했다.
야루젤스키 당제1서기는 그와 동시에 독립노조의 활동을 정지시키고 바웬사 등 노조지도자, 지식인, 반체제인사 1,000여명을 체포했으며 노조측은 이에 항거했으나 독립노조운동은 1년여만에 정지되었다.
⑬ 올림픽 오륜기 사용됨(1920) : 1920년 오늘 벨기에 「앤트워프」서 열린 제 7 회 올림픽 대회 개회식에서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가 처음으로 계양되었고, 이후부터 오륜기를 올림픽기로 사용하게 됐다.
「쿠베르탕」이 고안했다고 하는 이 오륜기는, 테 없는 흰바탕의 중앙에 청․황․흑․녹․적색의 순으로 5개의 원이 그려져 있으며, 이 5개의 원은 미국․유럽․아시아․아프리카․대양주의 5대 주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⑭ 대서양 헌장(Atlantic Charter) 선포(1941) : 제2차 대전 중 미․영의 양 수뇌(처칠 수상,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하여 발표된 이른바 「미․영 공동 선언」에서「전쟁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정책 원칙을 밝힌 것이다.
뒤에 발전하여 유엔 헌장의 기본이념이 되었다.
⑮ 미국 캄보디아 폭격 중지(1973) : "미국은 1970-1975년 사이의 캄보디아 현대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베트남전쟁에서 중립을 지켰던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정부를 허수아비 론놀의 쿠데타로 전복시킨 바 있다.
또 미군은 캄보디아 땅에 대한 융단폭격으로 50만명이 넘는 양민들을 학살했던 장본인이다.
이후 크메르루즈의 승리는 반미항쟁이라는 도덕적인 배경과 인민들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크메르루즈를 탄생시킨 산파역을 맡은 셈이다"
또한, 캄보디아에서의 학살과 30년 전쟁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수많은 외세(미국, 영국, 프랑스, 베트남, 중국, 태국…)의 개입이 얽혀있다.
피로 물든 캄보디아의 현대사,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양심은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캄보디아를 건설하는데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남베트남에게 측면 지원을 해줌 캄보디아에 미군 주둔, CIA가주도 캄보디아에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주의자를 사살. 미국의 폭격으로 100만명정도 사망(친미정권 수립)되는 것이 TV에 보도됨으로써 미국이 비난을 받고, 대학생대모에서 4명이 사망함으로 이해 유럽까지 사건이 확대됨으로써 미국은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개입하지 못할 정도로 내 몰리게 된다.
⑯ 프랑스 페탱장군 사형선고(1945) : 1945년 오늘 프랑스의 전쟁영웅 필리페 페 장군에게 사형 선곡가 내려집니다.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베르덩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내 전쟁 영웅이 된페탱 장군.
그러나 페탱장군은2차 세계대 이 한창이던 1940년에 프랑스 비시 지역에 독일 협력정부를 세우고 국가 원수가 됩니다.
프랑스 정부는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한 1945년 오늘 페탱에게 친나치 혐의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당시 나이 여든아홉살 페탱은 사형 선고 직후 곧바로 종신형으로 감형된 뒤 복역중 아흔다섯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⑰ 파키스탄, 시민의 반군정, 불복종 운동 시작(1983) : 그 결과로 1985년 계엄령이 철회되고 국회편성을 위한 선거가 비정당 방식(non-party basis)으로 이루어졌다.
⑱ 폴란드 그다니스크 노조 파업(1980) : 그다니스크 조선소는 바웬사가 전기공으로 있던 곳으로 유명하고 대통령을 했던 바웬사는 1996년 4월에 이곳에 전기공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다니스크 조선소는 1980년에 육류가격을 인상하는데 반발하여 자유노조가 결성되었고 바웬사의 자유화 노력의 시발점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폴란드 정부가 80년 들어 식료품 가격을 인상하자,항구도시 그다니스크의 레닌 조선소에서 항의 파업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됐다. 8월 자유노조`연대'가 발족되고 위원장에 레흐 바웬사가 앉았다. 폴란드 정부는 자유로운 독립노조 결성과 파업권을 인정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으나,이듬해 다시 불법화했다.
마침내 89년 6월, 공산화 이후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자유노조가 공산당에 승리를 거뒀다.
⑲ 영국 노동당 결성(1903) : 영국에서 노동자대표자회의 개최, 독립노동당˙사회민주연맹 기타 65개 노동조합들 참가, 이것이 모태가 되어 1903년 노동당이 결성되어 노동운동의 전기가 됨
⑳ 테러리스트 자칼 체포(1994) : 8월 14일 밤 수단의 수도(首都) 하르툼 근교의 한 빌라!
10여 명의 괴한이 한 남자가 자고 있는 침실을 급습했다.
그들은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를 옴짝달싹못하게 만든 뒤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우고 머리엔 두건을 씌웠다.
그리고 허벅지에 무엇인가를 주사했다.
들것에 실려 나온 남자는 바깥에서 기다리던 밴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리고는 하르툼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특별기 편으로 파리 부근의 군 비행장으로 이송됐다.
6시간 반의 비행시간 내내 남자는 온몸이 묶인 채 자루 안에서 머리만 밖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1949~ ). 일반인들에겐 자칼로 더 잘 알려진 인물.
1970년대 이후 국제 수배자 리스트에서 늘 맨 앞에 올라 있던 베네수엘라 태생의 테러리스트다.
그가 체포되던 순간 역시 스파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테러리스트로서 그의 삶은 마르크스주의자이던 부친이 레닌을 본떠 일리치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이미 시작됐다.
10세 때부터 공산주의 계열의 소년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10대 후반에는 쿠바 아바나 근처의 게릴라 전투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1970년대 초반에는 요르단 암만의 팔레스타인 관련 조직에서 본격적인 전사(戰士)로 양성됐다.
1973년 유대인 사업가 암살 시도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여러 차례 테러를 벌였다.
그러다가 1975년 12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장을 급습해 60여 명을 인질로 잡으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각국 정보기관의 추격이 이어졌지만 그는 체포되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붙잡히고 말았다.
프랑스 정보 당국이 그가 머물던 수단 정부와 여러 차례 협상을 벌인 끝에 사실상 인도받았던 것.
그는 1997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자칼이라는 이름은 일반인들에게 친숙하다.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소설 자칼의 날이 워낙 유명한 데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기 때문.
많은 사람은 그가 자칼의 날의 실제 모델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소설이 출간된 시기는 1971년으로 그가 테러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이다.
자칼이라는 별명은 그의 소지품에서 소설 자칼의 날이 나왔다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붙여졌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2006)
㉑ 헨리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7.12 ~ 1862.5.6) : 1846년 8월14일, 매사추세츠주 징세관이 숲에 사는 청년 하나를 붙잡았다.
인두세를 6년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비도덕적인 미국-멕시코 전쟁을 벌인 정부에 세금을 낼 수 없다는 소신으로 납세를 거부한 청년은 감옥에 갇혔다.
수감기간은 단 하룻밤. 세금을 대납해준 고모 덕에 풀려난 청년은 작심하고 책을 써내려갔다.
‘국가나 법이 비양심을 요구한다면 저항하라’는 ‘시민 불복종(1849년)’이 이렇게 나왔다.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와는 반대로 시민의 적극적인 항거를 주장한 청년의 이름은 헨리 소로(Henry D Thoreau). 1817년 태어나 1862년 폐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45년 평생을 고향 매사추세츠 콩코드에서 지낸 문필가다.
하버드대(영문학)를 졸업할 때부터 그는 남다른 길을 걸었다.
돈과 출세 대신 자연과 조화하는 삶을 택한 것. 교사와 측량기사로 일하다 선배이자 자연주의자인 에머슨의 영향을 받아 잡지 편집장을 거쳐 33세에 단신으로 숲에 들어갔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연못보다 조금 큰 정도인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2년2개월간 자급자족한 경험을 펴낸 책자가 ‘월든 또는 ‘숲속의 생활(1854년)’. 자연예찬서이자 문명비판서의 성격을 지닌 책은 19세기 영문학 작품의 백미로도 꼽힌다.
‘가난함의 부유함’을 주제로 삼은 숲과 삶의 경제학이라는 평가도 받는 책이다.
‘시민 불복종’과 ‘월든…’에 담긴 비폭력 저항정신과 자유주의는 톨스토이와 간디, 마틴 루터 킹으로 이어지며 20세기 인권운동으로 활짝 피었다.
환경생태론자들도 ‘월든…’을 바이블처럼 여긴다.
‘윌든…’의 한 구절. ‘잉여의 부로는 잉여품만 살 수 있다.
영혼의 필수품을 사는 데 돈은 불필요하다.’
(권홍우 편집위원.서경.2007)
㉒ 교황요한 바오로2세 프랑스 방문(1983)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오늘 이틀간의 일정으로 프랑스의 가톨릭 성지 루르드를 방문합니다.
19세기 중엽 18차례나 성모 마리아의 환영이 나타나 가톨릭 성지가 된 루르드 루르드의 지하 샘물이 불치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에 해마다 5백만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순례를 하기도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프랑스 공식방문이 아닌 단순한 성지 순례의 의미로 루르드를 방문했습니다.
㉓ 파키스탄, 인도로부터 독립(1947) : 원래 인도에 속해 있던 파키스탄은 간다라 미술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간다라 미술은 기원 전후 무렵부터 5세기경 사이 파키스탄 페샤와르를 중심으로 한 간다라 지방에서 성행했던 그리스 로마풍의 불교미술을 말한다.
불상을 처음 제작한 것도 간다라였고, 동서 문화 교류의 성취를 이뤄낸 것도 간다라였다.
파키스탄 간다라의 위대한 불교 미술은 11세기 들어 이슬람교도의 무굴제국이 들어서면서 힘을 잃어갔다.
인도 내의 파키스탄 지역이 이슬람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1906년, 인도의 이슬람인들은 ‘파키스탄 독립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은 ‘청정한 나라’라는 뜻으로, 인도 전통 종교인 힌두교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슬람 국가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
40여 년에 걸친 분리 독립 노력 끝에 1947년 8월 14일,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은 영국과 인도의 합의하에 영국 연방 내의 자치령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독립과 동시에 갈등이 찾아왔다.
동파키스탄은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면서 서파키스탄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방글라데시 지역인 동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데다 문화도 다르기 때문이었다.
결국 1971년 인도와의 국경 분쟁에서 승리한 동파키스탄은 그 기세를 몰아 서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방글라데시를 건국했다. 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유지했다.
인도라는 하나의 나라가 세 나라로 갈라진 것이다.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은 평화와 희망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분쟁도 가져왔다.
카슈미르 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카슈미르는 히말라야 산맥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계곡 지역. 현재 서북쪽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령이고 동남쪽 아자드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이다.
1947년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 독립할 당시, 이 지역이 양측에 나뉘어 귀속됐기 때문이다.
이후 인도령 카슈미르의 이슬람인들은 인도에서 독립해 파키스탄에 편입되길 바라며 분리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인도는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분리운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슬람인들을 탄압하고 있다.
분리 독립의 꿈을 이뤘지만 전투와 테러 등 유혈사태가 그치지 않고 있는 인도 파키스탄 국경지대 카슈미르. 61년이 흘렀지만 진정한 자치 독립의 의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2008)
㉔ 빅 인치(Big Inch) : 격침, 또 격침.
미국이 대서양 연안에서 활동하는 독일 잠수함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생산하는 전략물자를 가득 실은 화물선이 어뢰 공격을 당해 잇따라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손실은 유조선. 대형이어서 탐색과 식별이 쉽고 속도까지 느린 유조선은 독일 잠수함의 밥이었다.
한동안 연합국에 대한 석유지원은 물론 동부에서 사용할 석유공급까지 차질을 빚었다.
대안은 송유관 건설. 서부 유전지대에서 생산된 원유를 정제시설이 집중된 동부까지 보내는 장거리 송유관을 깔자는 것이다.
철도와 트럭 화물업자들의 반대를 뚫고 첫 삽을 뜬 공사는 전시동원체제의 효율성으로 불과 1년 만인 1943년 8월14일 완공됐다.
텍사스에서 뉴저지까지 8개 주와 20개 강을 통과하는 총연장 2,018㎞짜리 송유관은 기술혁신의 개가였다.
무엇보다 파이프의 구경이 이전보다 5배나 큰 24인치였다.
때문에 ‘빅 인치’라고 불린 새 송유관은 하루 30만배럴의 원유를 실어 날랐다.
이듬해인 1944년에는 리틀 빅 인치(Little Big Inch)까지 완공됐다. 송유관 구경이 20인치로 작았을 뿐 총연장은 빅 인치보다 긴 2,373㎞에 달했던 리틀 빅 인치는 효율이 보다 높았다.
유전지대에 신설된 정유공장에서 거른 정제유를 운송했기 때문이다.
빅 인치와 리틀 빅 인치는 미국 내 원유수송의 절반을 담당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을 통해 운송 인프라의 중요성을 확인한 미국은 전후에 노후 송유관을 최대 직경 48인치짜리로 교체하고 새로운 노선을 깔았다. 2006년 말 현재 미국의 송유관(가스 포함) 총연장은 79만3,285㎞. 2위인 러시아의 24만4,826㎞보다 3배 이상 길다.
우리나라는 2,309㎞로 세계 62위다.
(서경.2008.인터넷한국일보)
㉕ 중국 의화단 사건 종결(1900) :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은 청조(淸朝) 말 중국 화북(華北) 지방에서 발생한 반(反)외세 농민운동이다. 1894년 청일전쟁 직후 서구 열강 제국이 침입, 중국을 분할 위기에 몰아넣었다.
또한 열강 제국은 그리스도교 선교를 앞세운 정치 경제 분열을 획책했다.
이 가운데서도 저가 농산품의 유입은 중국 농민의 경제 파탄을 초래했다.
따라서 백련교(白蓮敎) 분파의 비밀결사인 의화단을 중심으로 농민들은 반(反) 그리스도교, 반 외세 투쟁을 전개하게 된다.
열강 세력을 등에 업은 이홍장 중심의 '양무파'에 눌려있던 서태후 등의 수구파는 의화단운동을 권력 장악과 '청'(淸)조 복권의 계기로 삼아, 1900년 6월 열강에 선전포고를 했다.
'청조 부흥, 외세 근절'(扶淸滅洋)'을 기치로 내건 의화단과 관군은 북경으로 진입, 열강 제국의 공사관을 공격했다.
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일본 등 서구 열강의 8개국 연합군은 곧 바로 반격에 나서 대고 포대(大沽砲臺)와 톈진 등에서 의화단과 청군을 연파하고 북경에 진입, 억류된 서구의 공사관원들을 구출했다.
1900년 8월 14일 북경 함락과 동시에 서태후와 청 황제 광서제(光緖帝)는 시안(西安)으로 피신했으나, 수구파는 양무파와 연합군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1901년 신축조약(辛丑條約)으로 불리는 북경의정서가 체결되어 중국은 서구 열강에 대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서구 열강의 침입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게 된다.
㉖ 그단스크 파업 : 1980년 8월14일 폴란드 그단스크시 레닌조선소.
1만7,000여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요구조건은 자유노조 인정과 1970년 ‘12월 사건’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 건립. 부근 공장도 동조파업에 나섬에 따라 7월 초부터 일부 지역에서 진행된 폴란드의 파업사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국면을 맞았다.
파업의 원인은 생활고. 7월8일 루블린 지역에서 돼지고기 공급가격을 80%나 올리자 항공기 공장을 시작으로 파업이 일어났다.
한달 넘게 끌어온 파업은 폴란드 최대의 단위사업장이자 노동운동의 싱징인 레닌조선소에서 더욱 거세게 진행됐다.
조직적인 파업을 주도한 인물은 레흐 바웬사. 반공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으로 1,500명의 사상자를 냈던 1970년 ‘12월 사건’에도 참가해 1976년 해고된 전기공 출신인 그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인근 공장의 대표권도 맡았다.
폴란드 민주화의 상징인 ‘솔리더리티(Solidarity)’가 이런 과정에서 생겨났다.
파업이 확산되자 공산당국은 8월 말 손을 들었다.
자유로운 단체 결성과 종교의 자유 보장, 민주주의 활동가 처벌 중단, 언론검열 완화 등의 조건도 받아들였다.
냉전 이후 최초인 일련의 조치는 계엄령 선포와 바웬사 투옥, 노벨평화상 수여, 1988년 대규모 시위를 거친 끝에 폴란드의 공산정권은 물론 공산주의 자체를 끌어내렸다.
폴란드가 가장 먼저 민주주의 진영으로 들어온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 때문이었을까.
파업 1년 전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방문은 노동자들을 일깨웠다.
폴란드의 권력자 야루젤스키 장군은 계엄령을 발동하면서도 폭압적 방법은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교의 힘과 대화가 가능한 최소한의 이성을 갖춘 권력이 없었다면 민주화는 지연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넷한국일보, 2009/08/13)
㉗ 케냐 독립 운동가 케냐타 석방(1961) : 1961년 오늘 케냐의 나이로비 근처 가툰두, 수천명의 케냐인들이독립운동가인 케냐타의 석방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습니다.
케냐타는 1953년 영연방으로부터 독립하기위해 무력투쟁을 벌이던 마우마우를 지휘한 혐의로 7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케냐타는 형기를 마친후에도 1년간 구금상태에 있었습니다.
2년뒤인 1963년 12월 케냐는 영연방으로부터 독립하고 케냐타는 임시정부 총리가 됩니다.
㉘ 기타 오늘의 역사
1842 청나라-영국 '아편전쟁' 종결
1863 동학교조 최제우, 최시형에게 전위
1897 고종 연호를 광무로 결정
1904 제2인터내셔널 암스테르담 대회
1907 남17세, 여15세 이하의 조혼을 금함
1917 중국, 독일 오스트리아에 선전 포고
1919 독일 바이마르헌법 공포
1920 브뤼셀 올림픽 오륜기 첫 계양
1920 제7회 앤트워프 올림픽 개막
1925 프랑스 독일, 관세조약 국경협정 조인
1935 루스벨트 미국대통령, 사회보장법 승인
1945 트루만 미국대통령, 일본의 무조건항복 수용 발표
1945 소련군, 청진 상륙
1947 파키스탄, 인도로부터 분리 독립
1953 UN경제사회이사회, 한국 민간인 구제 결의
1954 수에즈 운하 주둔 영국군 철수
1957 서울시립교향악단 발족
1959 대한노총 분열
1961 한국-콩고 국교 수립
1965 한일협정비준동의안 국회 통과
1966 미국 무인우주선 오비터 1호 달궤도 진입
1966 육군 군종센타 개관
1967 신민당, 6.8부정선거 백서 발표
1967 중국 북평에서 반소(反蘇)데모 발생
1971 바레인, 영 보호령에서 독립
1973 구세군 전용섭 부장 최초의 한국인 사령관 취임
1980 바웬사, 그다니스크 조선소 파업위원장에 선출
1983 파키스탄, 시민의 반군정. 불복종운동 시작
1986 파키스탄서 정치폭동. 야당총재 부토 체포
1989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 취임
1989 보타 남아공 대통령 사임
1998 대한민국 50년 `우리들의 이야기전' 화려한 개막
1999 덴마크와 스웨덴을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전장 16km)완공
2000 판문점 남북 연락사무소 4년만에 재가동
오늘의 인물
① 인현왕후(仁顯王后 ; 1667 ~ 1701.8.14) : 조선 제19대 숙종의 계비(繼妃).
본관 여흥(驪興).
성 민(閔).
존호(尊號) 효경숙성장순(孝敬淑聖莊純).
휘호(徽號) 의열정목(懿烈貞穆).
유중(維重)의 딸이다.
1681년(숙종 7) 계비가 되었다.
숙종은 후궁 장씨(張氏) 희빈의 미색(美色)에 혹하여 왕후를 멀리하였으며, 장씨가 왕자 균(?:경종)을 낳자 균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였다.
이 문제로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서인(西人)이 밀려나고, 이후 인현왕후는 폐위(廢位)되어, 궁중에서 쫓겨나 서인(庶人)이 되었다가 1694년의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다시 왕후로 복위하였다.
소생이 없었으며 능은 고양(高陽)의 명릉이다.
예의바르고 정숙했다고 하며,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궁녀가 쓴 소설 <인현왕후 덕행전>이라고도 하는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이 전해진다.
② 이병도(李丙燾 ; 1896 - 1989.8.14) : 한국의 역사학자.
호 두계(斗溪).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다가 1933년 불교전문학교 강사가 되고 1934년 진단학회(震檀學會)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194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출강하였고 1945년 서울대학교교 교수,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장에 취임하였다.
1960년 문교부장관에 등용되고 같은 해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에 선임되었다.
1962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65년 동구학원(東丘學園) 이사장, 1966년 성균관대학교 교수 겸 대동문화연구원장에 취임하였으며 1969년 국토통일원 고문에 추대되었다.
1976년 동도학원(東都學院) 이사장에 선임되었고 1980년 국정자문위원(國政諮問委員)에 위촉되었다.
그동안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학술원 공로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5․16민족상 등을 수상하였다.
저서에 《한국사대관》, 《한국사(고대편)》, 《한국사(중세편)》, 《고려시대 연구》, 《국사와 지도이념》 등이 있다.
③ 김기승(金基昇 ; 1909.5.16 ~ 2000.8.14) : 한글 서체인 ‘원곡체’를 개발 창안한 서예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경(德卿),
호는 원곡(原谷).
아명은 기두(基斗)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鴻山面)에서 김정환(金正煥)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천자문을 비롯하여 소학․대학․논어․맹자․서전(書傳)을 공부하고 당시(唐詩) 등의 고전을 익혔다.
공주고등보통학교 2학년 때 일본인 체조교사를 배척하는 동맹휴학의 주동학생으로 지목되어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였다.
1926년 중국으로 건너가 1932년 상하이[上海]의 중국공학대학(中國公學大學) 경제과를 졸업하였고 1946년 4월 중국에서 영구 귀국한 뒤 손재형(孫在馨)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인 서예공부를 시작하였다. 1949년 제1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서예부에 특선하여, 문교부장관상을 받았고 1953년의 제2회 국전에서 1955년 제4회 국전까지 잇달아 서예부 특선을 차지하여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1955년에는 대성서예원(大成書藝院)을 설립하였고, 국전 5회부터 7회까지 추천작가로 출품하다가 1959년부터는 국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을 맡았다.
이후 문교부 문화재보존위원, 서울특별시 문화위원, 문교부 교육과정 심의위원, 한국미술협회 이사, 서예분과 위원장, 한국미술협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④ 최영희(崔永禧 ; 1926.8.14 - 2005.1022) ; ⇨10월 22일.
평양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를 마치고 1962년에 국사편찬취원회에 들어가 위원장까지 지냈다.
이후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임진왜란과 독립운동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⑤ 헤르바르트(Johann Friedrich Herbart ;1776.5.4 - 1841.8. 14) : 독일의 교육․심리 학자․철학자.
예나 대학에서 피히테의 영향을 받았다.
철학은 개념의 수정이라고 하여 논리학, 형이상학, 미학의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개념 수정의 제일 과제는 명석과 판단에 있다고 했다.
후계자가「헤르바르트 파」를 형성, 각국 교육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서 <일반 교육학> <형이상학> <교육학 강의 개요> 등.
⑥ 브레히트(Bertolt Brecht ; 1898.2.10 ~ 1956.8.14) : 독일 출신의 극작가 겸 시인.
⇨ 2월 10일.
⑦ 어네스트 시튼 (Ernst Thompson Seton ;1860.8.14 - 1946.10.
23) : 영국 출생의 캐나다 동물학자․작가.
어려서부터 자연에 흥미를 가졌으며 그림 공부도 하였다.
동물 생태를 연구 발표 하였으며 일생 동안 30권에 달하는 동물이나 숲에 대한 책을 썼다.
대표작 <시튼의 동물기>.
⑧ 존 골즈워디(John Galsworthy ; 1867.8.14 - 1933) : 영국의 소설가․극작가.
변호사에서 문학으로 옮겼다.
<포사이트가 이야기>는 그의 대표작.
<은상자> <정의> 등 사회극도 많다.
193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포사이트 연대기를 꼽았다.
포사이트 연대기는 1906년부터 20여년에 걸쳐 골즈워디가 발표한 장편 여섯, 단편 넷을 뭉뚱그려 가리킨다.
이 연작은 탐욕스러운 부르주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물질만능주의에 침윤된 당대 영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렸다.
골즈워디는 국제 펜클럽의 초대 회장이기도 했다.
1921년 런던에서 발족한 이 단체의 공식 명칭은 국제 시인. 극작가. 편집자. 수필가. 소설가 협회다.
물론 펜이라는 약칭은 그것이 문필가들의 필수품인 펜과 맞아떨어지기도 해 채택됐을 것이다.
집필과 펜 사이의 연결이 매우 느슨해진 21세기에 이 단체가 생겼다면 이름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1954년에 국제 펜클럽에 가입했고, 한국 본부 주최로 1970년의 제37회 세계 대회와 1988년의 제55회 대회가 서울에서 열린 바 있다.
그러나 한국 본부를 주도한 사람들이 대체로 보수적 문인들이어서 서울에서 열린 펜 대회조차 한국의 투옥 문인들에게 눈길을 거의 주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펜은 칼보다 힘세다는 격언이 있다. 완전히 그른 말은 아닐지 모른다.
에밀 졸라의 펜은 드레퓌스의 누명을 벗기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언론학자 강준만씨가 부드러운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보수주의 체제는 그 큰 부분을 과점 언론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실은 대체로 그 반대다.
펜이 칼보다 힘이 센 듯 보이는 경우에도, 지금 한국 사회의 비대 신문에서 보듯, 그 펜의 진짜 모습은 돈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격언을 바꾸자. 돈은 칼보다 힘세다. 돈이 세든 칼이 세든, 슬픈 일이다(고종석, 2003).
⑨ 쥘 로맹(Jules Romains ; 1885.8.26 ~ 1972.8.14) : 20세기 전반 프랑스의 시인·극작가·소설가.
아베이파 시인 운동에 협력, ‘위나니미슴'을 제창했다.
《크노크 또는 의학의 승리》,《프시케》 3부작등이 있고, 대표작은 소설 《선의의 사람들》이다.
국제 펜클럽 회장,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었다.
본명 루이 파리굴(Louis Farigoule)
베레 출생.
고향은 작은 마을이었으나, 주로 파리에서 살았다.
에콜 노르말(고등사범학교)을 졸업하여 철학 교수의 자격을 얻고, 한동안 교단에 섰다.
1906년 아베이파(派) 젊은 시인들의 운동에 협력하여 ‘위나니미슴(unanimisme:一體主義)’을 제창하고, 시집 《일체의 삶 La Vie unanime》(1908)을 발표, 개인과는 다른 집단의 혼과 생명을 노래했다.
그 밖에 시집 《오드[抒情短詩]와 기도 Odes et Prières》(1913), 풍자극의 걸작 《크노크 또는 의학의 승리 Knock, ou le triomphe de la médecine》(1923), 《프시케 Psyche》 3부작 등이 있으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는 소설 《선의(善意)의 사람들 Les Hommes de bonne volonté》(27권, 1932∼1946)이 꼽힌다.
이 대작은 1908∼1933년 프랑스의 모든 사회계층의 생활과 문제를 그린 것으로 지극히 명석한 지성과 인간의 상호이해에 대한 깊은 신뢰가 전편에 넘친다.
그는 또 국제 펜클럽 회장(1936∼1940)도 지냈으며, 폭넓은 활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었다.
⑪ 오늘의 인물
0358 유세비우스 사망.장로,증거자.어떤 사람은 순교자로도 함.
1167 라이날트 사망.정치가이자 군사지도자 신성로마제국의 수상, 그리고 쾰른의 총대주교로 이탈리아에서의 프리드리히 1세 바 르바롯사의 최고 정책 수행자
1742 피우스 7세 출생.본명 루이지 바나바 키아라몬트.교황통치 (1800-23).
1750 버틀러 출생.영국 로마가톨릭 평신도.알반 버틀러 조카.그는 로마가톨릭교도들을 규제하는 법률들을 철회시키는 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1810 웨슬리 출생.음악가인 새무얼과 그의 부인 사랴슈터의 아들이 며 찰스 웨슬리의 손자.
1839 L.T.M. 앵베르주교(1797-). 모방. 샤스탕 신부(1803-) 새남터 에서 참수 (서양 성직자 최초 순교)
1840 심리학자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 출생
1860 자연주의자 어니스트 톰슨 출생
1861 맥가비 출생.로마가톨릭 성직자.그는 미국 성공회에 속해 있 었을 동안에 미국에 있는 [그리스도의 동료들의 수도회]의 수도원장 역임.
1865 메레스코프스키 출생.러시아의 시인,소설가,비평가,사상가로 서 러시아의 인텔리겐 챠 사이에 종교-철학적인 관심의 부흥 을 일으키는데 중요한역할을함
1867 영국소설가 존 갈스워시 출생
1867 존스 출생.미감리회 한국선교사.한국명 조원시.20세의 젊은 나이로 한국선교사를 자원.한국어에 능통함.
1871 중국 청의 9대 황제(1875-1908) 광서제 출생
1911 오진영 출생.기독교 법학자,외교관,사회사업가.오긍선의 차 남.홍익대 교수를 거쳐 1952년 일본 주재공사를 지냄.
1926 가수 버디 그레코 출생
1941 록가수 데이빗 크로스비 출생
1946 배우 수잔 세인트 제임스 출생
1956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망
1994 불가리아의 소설가 카네티 사망 - 1981년 노벨문학상 수상
오늘의 세시
① 매월 14일 기념일(十四日記念日) : 14일 기념일 또는 14일 데이는 대한 민국에 매월 14일마다 있는 연인들의 기념일이다.
밸런타인데이 외에는 대한민국에 국지적인 것이다.
(화이트데이는 일본과 타이완을 포함한다.)
⇨ 1월 14일.
8월 14일 : 그린데이
연인과 함께 산을 찾아 삼림욕을 즐기는 날이다.
9월 14일 : 포토데이
연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나누어 갖는 날이다.
10월 14일 : 와인데이
연인과 함께 포도주를 즐기는 날이다.
11월 14일 : 무비데이
연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이다.
12월 14일 : 허그데이
연인 서로를 따뜻이 안아주는 날이다.
②③④⑤⑥
오늘의 샘터
①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 [요약] 조선시대에 쓴 작자, 연대 미상의 궁중수필.
장르 고대소설
[본문] 원제는 《인현성후덕행록(仁顯聖后德行綠)》이다.
숙종의 민비폐비(閔妃廢妃)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서, 작자에 대해서는 당시 인현왕후를 모신 궁인(宮人)일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었으나, 궁중 인물이 아닌 남성 작가가 썼으리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저작 연대 또한 영·정조(英正祖) 연간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내용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간악한 장희빈(張禧嬪)을 왕후로 세웠다가 다시 폐위시킨 뒤 인현왕후를 복위시킬 때까지의 궁중 비극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다룬 것으로, 당시 궁중의 음모가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얽히고 설킨 당쟁에 관련된 사건이어서 내용 자체의 사료적 신빙성은 희박한 편이다.
조선시대의 우아한 궁중어를 사용하여 과장이나 생략이 없이 이야기를 전개시킨 수작(秀作)으로, 《계축일기(癸丑日記)》 《한중록(恨中錄)》과 아울러 3대 궁중수필로 일컬어진다.
(두산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