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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숙녀s 팬카페〃온새미로 ★ (http://cafe.daum.net/totoro009)
소설제목 : ※ 춤추는 노예 ※
작가명 : 요조숙녀s
E-mail : xhlakfhr1124@hanmail.net
총편수 : 총 82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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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딱 미소년 스타일…
그래서 남자아이일줄로만 알았다…
근데 이 미소년이 여자라니…
아니, 미소녀라니… 놀라울따름이었다.
그나저나 얘들은 왜 집주인 허락도 없이
집으로 들어가는거야!
청소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저분하단 말이야…
올거면 온다고 미리 연락이라도 좀 하고 오지.
"……."
찰칵, 찰칵이란 소리가 나기에
뒤를 돌아다 봤더니
다히가
우리 집 내부를 사진기로 찍고 있었다.
그것도 화질 좋아 보이는 디카로 말이다.
난 순간 놀래서 다히를 불렀다.
"지금… 뭐하는거야?"
당황함이 가득 묻어 있었는지 새초롬하게 웃으며
나에게 말을 하는 다히…
디카를 누루는 능숙한 자세 그대로 대꾸를 하였지만…
하… 왜 찍는거야.
"막 난 새로운걸 보면은 사진 찍는 버릇이 있거든…
직업병? 이런 거라고 생각하면돼."
지금 다히의 표정은 정말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한듯한 표정이었다.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래, 그 눈빛은 좋은데 자꾸…
사진을 찍어…
사진 찍히는 거에 익숙하지 않은
난 다히를 말리려 혼자서 애쓰고 있었다.
"다히야, 그만 찍구… 응… 응! 밥… 밥 먹어야지."
어느덧 난 처음 보는 아이에게
친숙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상대방이 꺼려지게끔 만드는 미소도 함께 머금으며
그래, 꼭 입가에 경련이 일듯한 미소랄까?
그렇게 다히에게 말했다.
하지만 다히는 내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계속 디카만 누르고 있을뿐이었다.
"저기, 다히야…."
"알았어… 너도 찍어 줄게. 자, 스마일!"
스마일!
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브잇자까지 해가며 웃었다.
그리고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진 찰칵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이… 찍혀 버렸다.
저 디카에.
순간 저 디카를 빼앗아가지구
전자레인지에 넣고 빙빙 돌려 버리고 싶었다.
기계와 함께 사진도 녹아 버리라구.
그렇게.
근데 다히는 디카가 자신의 보물 1호라도 되는 양
꼭 감싸 쥐고 있었다.
저거 빼앗으면 막 날 발로 찰 것 같아.
★
다히와의 일방적인 셀카 놀이를 마무리하고
우린 도란도란 식탁에 모여앉았다.
오래간만에 음식솜씨 좀 발휘했다. 히히…
다들 잘들 먹어요.
"우와! 식탁이 노래… 나 노랑색 좋아하는데!"
한솔이가 숟가락을 입에 물곤 말했다.
많이 먹어! 한솔아.
"나도 노랑색 좋아하는데 이젠 좀 싫어질 것 같다."
내가 차린 식탁을 곰곰히 보던 두경이가
모자를 다시금 푹 눌러 쓰며 말하길…
이젠 노랑색이 싫어질 것 같다구.
"맛있게 보이긴 하는데, 맛은 어떨지."
그 말을 내뱉곤 계란말이에 젓가락을 비장한 각오로
세워 꽂는 진하였다.
아마 맛없진 않을거야.
이래 보여도 맛은 기가막히다구.
"그만 투덜투덜 대고 먹어.
다 먹을 거면서 저런다. 효주야, 잘 먹을게!"
역시 찬희… 찬희는 내가 무안해 하고 있단걸 알곤
이렇게 말해주곤 밥을 하나가득 퍼서 입안에 물었다.
우와, 볼이 탱탱한 게 너무도 귀엽잖아.
"잘 먹겠습니다!"
응. 맛있게 먹어. 다히야!
그렇게 어디서 일주일동안 굶은 비행청소년 마냥
이 다섯 명의 아이들은 계란말이, 계란찜, 계란 후라이… 등등,
계란이 주메인의 비면허 차효주 요리사님의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답니다!
차효주 요리사님은 이 다섯 명의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보며 자신을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불러오는 현상을 만끽했다고 하는군요.
★
어쩌다 우리의 데이트는… 꿈만 같은 데이트는…
달콤해야 할 데이트는…
이렇게 갑작스런 손님 네 명에게 둘러싸여
진실게임이란걸 하게 되었을까?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근데 이러한 분위기를 난 좋아했던지라
금새 이 분위기에 흡수되었다.
"차효주한테 물을게."
진하가 나한테 궁금한 게 있었는지
자기 차례가 되자 나를 지목했다.
그리고 진하의 질문이 이어졌다.
"류찬희 어디가 좋냐?"
날 고민에 빠지게 만든 질문.
찬희가 어디가 좋냐구?
"특별히 이렇게 해서 찬희가 좋다구
말할 순 없구 뭐랄까,
왜 이젠 내 옆에 없으면 안될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있잖아.
응… 그런 존재가 되었어… 찬희는…."
어째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류찬희 어디가 어떻게 좋아서
네 옆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냐고."
가 역시나… 난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다.
질문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찬희는 마음이 넓구, 자상해! 또 착하구…
그리구 어떤 상황에서든 날 웃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야."
찬희는 그런 존재야.
비연이처럼 옆에 꼭 있어야 하는 존재이구,
날 웃게 해주는 존재야.
문득 이러한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나도 찬희에게 그런 존재일까?
라는… 그런 생각?
"그럼 내가 질문할 차례지?"
난.
"찬희한테 질문할게."
찬희가 옅게 웃음짓고.
"나도 너한테 그런 존재야?"
내 이 물음에 주위에 있는 아이들은
닭살이 돋은 팔, 다리를 긁어야 했다.
"응… 너도 나한테 그런 존재야."
…………………
…………………
…………………………
"넌 류찬희의 삶의 이유야…."
…………………
…………………
…………………………
생각보다 감동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건
정말 뿌듯하고 감동적인 일 같았다.
나 앞으로 잘할게…
류찬희한테 떳떳한 여자친구가,
자랑스러운 여자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난 진하한테 질문할게."
진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네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이 내가 짐작한 곳이 맞냐?"
이 질문에 모두의 시선은 진하에게로 향했다.
이 질문에 정확한 뜻을 모르는 듯한 모두의 표정.
진하와 찬희를 번갈아 보아야했다.
"아니라곤 말 안할래."
이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찬희였다.
"뭐야,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거야?"
한솔이가 궁금해 하면서 묻자
둘은 한솔이의 질문에 대꾸해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진짜 분위기가 왜 이렇게 싸하게 변해가는지 모르겠다.
"설마 이진하 너…."
무언가 안다는듯한 표정의 두경이었다.
"아니지?"
"……."
"이진하 너 내가 생각하고 있는거 아니지?"
"……."
계속 아니지란 말만 하고 있는
두경이인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진하다.
"뭔데? 응?"
한솔이가 물었다.
나도 그렇게 물으려고 하는데… 그 때….
"이진하 네가 차효주보고 있단 거잖아."
…………………
…………………
…………………………
"이진하 네가, 친구 여자친구 보고 있단 거잖아."
…………………
…………………
…………………………
"뭐야… 내 말이 맞아, 아니야? 반응을 보여 봐… 이진하."
두경이의 이 말이 가만히 있던
날 순식간에 뒤흔드는데 충분했다.
진하가 나를 보고 있다구?
진하가… 나를 보고 있어?
설마… 근데 진하의 저 표정은 뭐야?
살짝 웃는 저 표정.
그리고 찬희의 저 표정은.
그리고 이 분위기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삼각관계 분위기잖아….
# 42
"차효주한테 그만해."
"뭘, 그만해."
"그러니까 류찬희한테 그만해."
"그러니까 뭘 그만하냐고. 김두경."
"친구 여자는 돌이다."
"뭐?"
"앞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차효주한테 그만해.
안그럼, 내가 화나. 내가 화내."
두경이의 이 말에 어이없게 웃는 진하였다.
그러면 두경이는 진하를 보고 있던 시선을
한솔이에게 고쳐 심는다.
한솔이는 두경이의 매서운 눈빛의 조금 주춤 했다.
"너도 이다히한테 그만해."
이 말에 아까 진하 보다 더 어이없단 표정을 짓는 한솔이었다.
나도 어이없겠다.
갑자기 한다는 말이 다히한테 그만하라니.
"왜 또 가만히 있는 나한테 이래,
진짜! 내가 아주 동네북이야, 진짜!"
폴짝폴짝 뛰며 생각 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는 한솔이었다.
"친구에 여자친구를 뺏는건 나빠. 그건 알고 있겠지?"
"아, 진짜, 이새끼가!
너 지금 날 아주 나쁜 새끼로 몰아간다, 어?"
격하게 흥분한채 두경이에게 따지고 드는 한솔이었다.
"어제 뭐했어. 박한솔."
"뭘해? 뭘하다니?"
"이것봐, 이것봐. 하…."
깊은 한숨을 내쉬던 두경이는 한솔이를 금방이라도
한대 칠 것 마냥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빨리 안불어?"
라고 조폭처럼 말했다. 그것도 친구한테….
"씨… 이다히 꼬리 밟혔냐? 조심하랬더니. 바보."
…………………
……………
…………………………
한솔이의 이 말에 힐끔 두경이를 쳐다보는 다히.
설마…
두경이 말대로 정말로 한솔이랑 다히랑?
"지금 말 다했냐?"
두경이는 매우 화가나 있었다.
나도 그럴것 같아.
내 친구 비연이랑 찬희랑…. 아… 생각하지 말자.
생각만해도 화가 나는걸.
"미안하다. 두경아."
"……!"
"실은…."
"이 개새끼야!"
퍽,
하는 묵직한 소리가 이 공간을 가득 매웠고
두경이에게 맞은 볼을 천천히 감싸는 한솔이었다.
그리고 한솔이의 눈은… 원망에 가득 찬 눈은…
다히에게로 향해 있었다.
다히는 두경에 팔에 매달려 두경이를 말리고 있었다.
한솔이를 또 한대 쳐 버릴 것 같은 매서운 모습의 두경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이 꼴이 딱 그 꼴이네."
"무식한 새끼."
이 말은 맞은 볼을 문지르고 있는
한솔이가 말한 것이었다.
매우 아파 보였다.
"뭐라고? 무식한 새끼?"
"두경아, 그만해!"
다히가 필사적으로 두경이를 말리고
두경이는 금방이라도 한솔이를 덮칠 듯 씩씩 거렸다.
"우리의 우정이 고작 이 정도였냐? 이 정도였어?"
"우정?"
"됐다. 말을 말자, 말을 마."
"누가 할 소릴해."
"나 간다."
상처 받은 얼굴을 하고 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한솔이었다.
어깨가 축 쳐져 있는 게 안쓰러웠다.
내가 따라가려고 하는데…
한솔이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다히였다.
그리고 그런 다히를 바라보며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는 두경이었다.
"두경아, 한솔이 저렇게 그냥 보낼거야?"
여러 번 고심 끝에 물었다.
찬희와 진하는 그냥 가만히 있을 뿐
그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남의 일에 신경 꺼."
급속도로 차가워진 두경이의 목소리.
"그래도… 따라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무슨 오해라도…"
말을 이으려고 하는데 두경이가 내 말을 잘랐다.
"신경 끄라고."
"……."
"차효주."
"응?"
"네가 똑바로해. 처음부터 마음 똑바로 하라고.
둘 중 한 명한테도 상처 주지마."
"……."
"차이는거 그거 정말 아픈거거든.
정말 창피한거거든. 명심해라. 차효주."
내게 그 말을 남기곤 나가 버리는 두경이었다.
내가 잘하라는말… 내가 잘해야지
그 어떤 한 사람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을 거란…
두경이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지금 상황을 돌아다 보면
내가 평소에 행동을 잘못하긴 했나보다.
정말…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걸까.
"……!"
이때 퍽 하는 아까와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그래서 뒤를 돌아다 보니…
한대 엉켜 치고 박고 싸우고 있는 둘이 보였다.
"주먹 쌔다?"
터진 입술의 피를 훔치며 말하는 진하.
"너보다 좀 쌜걸."
진하 위에 올라타서 말하는 찬희.
너희들 정말 왜 이러는거야!
"나와, 류찬희."
"까지껏."
★ 집 근처 놀이터
"붙어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그래? 근데 이런 식으로 붙게 될 줄은
몰랐는데 유감이다, 류찬희."
"잔말 말고 덤벼."
한 차례씩 주먹을 주고받는 진하와 찬희.
먼저 쓰러진 찬희는 침을 탁 뱉으며.
"퉤… 모래 씹었어.
너도 곧 모래를 씹게 해주지."
"그래, 맛있냐?
근데 난 모래 싫어하는데. 아무리 맛있어도."
"맛있어 보이냐?"
순식간에 진하 위에 올라탄 찬희였다.
그런 찬희가 모래 한웅큼을 쥐어선…
진하의 얼굴에 뿌렸다.
그러면 진하는 켁켁 거리며 찬희를 밀어 버렸다.
진하에게 떠밀린 찬희는 뒤로 나가떨어졌고
진하는 켁켁 거리며 씩씩 거리고 있었다.
"씨… 콧구멍에 모래 들어갔어.
이젠 네 콧구멍에 모래를 넣어 주지."
뭐? 찬희의 콧구멍에 모래를 넣어 준다구?
"그만!"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
"……."
아무말 없이 흙을 서로 다정히 나누어
뒤집어 쓴 채 날 바라보는 둘이었다.
"그만해. 더 이상치고 박고 싸우지마.
나 때문에 둘이 싸우는 거 보기 싫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만해. 그만해, 둘 다!"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 때문에 친구인 너희 둘이 싸우는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말리긴 했지만 웬지 모르게
이 상황에 저절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제발 이러지마…."
내 이 말에 가만히 날보고 있는 둘이었다.
한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옷을 털며 일어나는 둘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해 오는 둘이었다.
그것도 동시에. 똑같은 질문을 해 오는 둘이었다.
"누구야?"
"누구야?"
……………………
………………
……………………………
"우리 둘 중에…."
진하.
"누구야."
찬희.
그 질문에 난 머뭇거렸다.
둘 다 소중하기에…
그 어떤 누구 하나에게도 상처를 줄 수 없음에
난 머뭇거려야 했다.
"이러지 말자. 응? 우리… 이러지 말자…
다 내가 잘 못 했어. 흐흑…."
내가 잘 못 했다고 하자.
동시에 '푸하하하!'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둘이었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니?
"왜 웃어?"
내가 이렇게 물으니까.
뒤에서 부스럭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에 뒤를 돌아다 보니까….
"……?"
신문지에 두 구멍을 뚫고 머리에 쓰고 있는 한 사람이
캠코더를 들고 서있었다.
난 변태인줄 알고 화들짝 놀랬다.
하지만 금새 그 놀라움은….
"지금까지 차효주의 몰래 카메라였습니다!"
……………………
………………
……………………………
차효주의 몰래 카메라였습니다…….
……………………
………………
……………………………
차효주의… 몰래… 카메라였습니다?
……………………
………………
……………………………
아, 그러고 보니 이 목소리는…
그리고 날 보며 눈물까지 흘려 가며 웃는 둘.
설마….
"푸하하하, 진짜 웃겨!"
촐싹 맞게 모래 바닥을 쳐가며 웃는 진하.
"아, 배야…."
배를 움켜쥐고 뒤로 쓰러져 버리는 찬희.
"나 연기 진짜 잘하지 않냐?"
아까 화내면서 나갔던 두경이.
"근데 아무리 연기였어도 좀 섭섭했다. 김두경."
섭섭한 표정으로 두경이를 바라보는 한솔이.
"역시 내 표정연기는, 훗."
아까 대사 한마디 없이 심각한 표정만을 연출했던 다히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선 웃고 난리다.
그리고 이 신문가면을 쓴 사람은….
"이 모든 시나리오는 내가 어젯밤 밤을 꼴까딱 새 가면서
쓴것으로써 구비연 작가님의 작품이지!
아, 이거 진짜 재밌다!
나 예능프로그램 작가하고 싶어!
나 그 쪽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다른 아닌 비연이, 구비연이었다.
……………………
………………
……………………………
하… 지금 장난해?
나 지금 열받았어.
열이 머리끝까지 났어.
나 건들이면 다 물어버릴거야.
순간 저번주에 몰래 카메라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별로 안 좋은 기분이었구나.
몰래 카메라 당한 사람……
그걸 보면서 웃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다음부턴 몰래 카메라 안 볼거야.
진짜 기분 뭐 같아.
근데 다행이야.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니.
정말 다행이야.
# 43
그냥 아무런 대화도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다.
아까전에 날 놀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갑자기 화가 났다.
그래서 가만히 나처럼 앞을 보고 걸어가고 있는 찬희를 째려 보았다.
이러한 매서운 내 눈빛을 본 찬희는 조금 찔리는지 날보고 싱긋 웃는다.
왜 웃어. 하나도 안 좋아. 하나도!
"아직도 화나 있는 거야?"
나를 붙들며 묻는 찬희였다.
응. 아직도 화나 있어.
"풀어. 애들이랑 하도 심심해서 장난 친 거야."
하도 심심해서?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하도 심심해서?
그래서 장난친 거라구?"
"응. 심심해서."
순진한 표정으로 날 보며 말하는 찬희였다.
정말 난 아무 것도 몰라요. 란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럼 내가 그냥 심심해서 너한테 장난쳐도 좋겠네?"
약간 비꼬듯 말했다.
"응. 좋을 것 같아."
하지만 찬희는 내 이러한 행동에 아까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해주었다.
나라면 기분 나빠 할 텐데… 뭐 이까짓 일가지고 따지느냐구 그럴 텐데….
"왜 좋을 것 같아?"
이번엔 매서운 눈빛을 좀 풀고,
아까보다는 약간 부드러운 목소리로 찬희에게 물었다.
왜 좋을 것 같냐구. 내심 찬희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
내모습의 어이가 없지만…
아무튼 찬희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나는 속이 넓은 쿨한 남자니까. 그런 건 이해할 수 있어."
……………………
…………………
……………………………
"그래! 넌 쿨한 남자구, 난 꽁한 여자다. 나빴어!"
드디어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뭐? 나는 속이 넓은 쿨한 남자니까?
그럼 난 속이 좁은 꽁한 여자라서 이러고 있는거겠다!
아, 정말 나빴어!
난 찬희를 등지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화났어?"
아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를 보이는 찬희였다.
너 정말 나빠. 틈만나면 나한테 장난만 치려고 하구.
너 정말 나빠.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안 좋은데! 넌 그것도 모르지?
"에이! 화 풀어! 화 풀어요!"
"나빴어!"
"우리 효주 화 풀어요! 이 오빠가 맛있는 체리 빙수 사 줄게."
체리 빙수?
"정말?"
"어!"
"제일 큰 그릇에 오색젤리 많이 뿌려진 걸로?"
"어!"
"응!"
"어?"
"응! 나 풀었어. 체리 빙수 먹으러 가자!"
"우리 효주 착하네."
……………………
…………………
……………………………
결국은 체리 빙수에 무너지고 말았다. 더 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래야 나중에 또 이런 황당한 일을 꾸미지 않을 텐데…
근데 체리 빙수 너무 좋아. 찬희만큼?
★
한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우린 제일 큰 그릇에 체리 빙수를 주문하고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날씨도 좋고 아까전까지만 해도 안 좋았던
기분은 아주 좋아져 있었다. 찬희 때문에.
"주문하신 체리 빙수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우와. 젤리다!
난 젤리를 입에 넣었다.
내 입안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이 젤리…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 너무 좋아.
그리고 체리 빙수의 메인인 체리도 좋아.
"천천히 좀 먹어. 안 빼앗아 먹어."
"응.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적어도 이 젤리는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내거야.
그렇게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맛있게 퍼서 먹다가…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 헙."
"왜 그래?"
"모… 목… 허… 업."
목에 무언가 걸린 듯 한 게…
그리고 찬희가 내 등을 퍽퍽 두들겨 주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쌔게 때리면 어떻게 해.
"괜찮아?"
"너… 아… 퍼… 너무…."
내가 헐떡거리며 말하자 찬희의 두 눈을 둥그레 지면서
더 쌔게 내 등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퍽퍽 거리는 소리가 실감나게 들려 오고 찬희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 진짜 미치겠다. 그러니까 내가 천천히 먹으랬지!"
"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뭐 먹다가 목에 걸린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찬희야 등이 너무 아파. 살살 좀….
"누가 체리 빙수 먹으랬지 반지 먹으랬냐!
내가 천천히 먹으랬지! 내가 말했잖아. 천천히 먹으라고…
아… 진짜! 병원가자. 병원 가서 네 목구멍에 걸린 반지 빼러 가자.
평소에 식탐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식탐 있다니까!
아, 진짜! 아직도 목에 걸려 있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반… 지라니?
"대답을 해! 대답을!"
너 같으면 지금 상황에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 근데 목에… 커다란 젤리가 걸렸나봐. 나 어떻게…
나 이대로 목구멍에 젤리 끼운 채 죽는 거 아니야?
이렇게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 때쯤….
꿀.꺽.
하고…
내 목구멍으로 무언가 넘어가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목구멍이 찢어 질듯 한 느낌까지….
"찬희야… 넘… 어 갔나봐… 하…."
식은땀을 닦으며 말하자 찬희의 눈이 더 커졌다.
그리고 쉴새 없이 두들겨 대던 찬희의 손길도 멈추었다.
"가자."
"…응?"
"가자고."
"어딜?"
다짜고짜 내 팔을 붙들고 어디론가 가자는 찬희.
"병원."
"병원엔 왜? 나 젤리 목구멍으로 넘어갔어. 병원 안 가도돼."
"가야돼. 병원."
"안가도 된다니까?"
"가야돼. 네가 넘긴 반지 빼러 가야돼. 김두경… 뭐?
아이스크림에 반지를 넣어서 고백을 하라고?
그러면 여자애들 뻑 간다고?
내가 김두경을 믿은 게 잘못이다! 뭐하고 있어! 일어나!"
다시금 내 등을 퍽퍽 치는 찬희였다.
찬희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 방금 넘긴 게… 젤리가 아니라… 반지였단 거야?
"너 혹시…."
"네가 예상하고 있는 거 맞고, 빨리 병원가자."
"어떻게 해… 정말 나 반지 삼킨 거야?"
근데 이상하게도 '나 죽어?' 이런 반응 보다…
'나 지금 너한테 반지 선물 받은 거야?' 라는
반응을 먼저 보이는 나다.
뭐랄까… 기쁘달까… 지금 내 느낌.
"어머! 이게 뭐야?"
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
옆 테이블을 쳐다보게 되었다.
옆 테이블은 우리와 같은 메뉴의 특대 사이즈 체리 빙수가 있었다.
……………………
…………………
……………………………
"앗, 누가 빙수에 반지 넣어놨어? 직원 불러, 오빠. 이 카페 이상해."
그리고 살짝 아이스크림이 묻어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반지를 들고 화를 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반지를 삼킬 뻔한 여자보다…
더 화를 내고 있는 남자… 남자친구인듯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친구는 광분하고 있었다.
# 44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 했나!"
씩씩 거리며 앞에 선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는 남자였다.
직원은 남자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혹시 여자분께서 끼고 있던
반지를 빙수에 빠뜨린 게 아닐까요?"
직원에 이 말에 픽하고 웃는 남자였다. 오싹한 미소였다.
"뭐? 끼고 있던 반지를 빙수에 빠뜨려?
지금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책임을 전가 시키고 있어?"
화가 잔뜩 난 채로 직원의 멱살까지 잡아채려는 남자였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야, 너도 빨리 고개 숙여."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쩔쩔 매고 있는 직원에게 다가와
대신 사과를 하는 다른 직원.
사과를 하란 말에 고개를 숙인다.
"이 카페 문닫고 싶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상대방을 깔아 뭉기는 듯 한 말투와
어조로 말하는 남자.
아니, 살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안 삼켰으면 된 거 아니야? 해도 너무한다.
"설마…."
그렇게 혼자서 남자가 너무 한다며 중얼거리고 있는데
찬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찬희를 돌아다보니
찬희의 시선은 반지를 들고 있는 여자에 손으로 향해 있었다.
"왜 그래?"
"설마…."
아까와 같은 말만을 중얼거리는 찬희였다.
"혹시 바뀐 거 아니야?"
"네?"
"혹시 저 테이블이랑 바뀐 거 아니냐고."
간간이 화가 나 있는 남자에게 사과를 하며
서로 대화를 하는 직원들이었다.
우리 테이블과 옆 테이블을 번갈아 쳐다보며 대화를 하는데…
대화 내용이… 빙수 그릇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설마.
"11번 테이블 이 테이블 맞지 않아요?"
"11번 테이블? 이 테이블은 12번인데…."
"…!"
"너 앞으로 주방에 있어라. 서빙은 내가 할 테니."
"죄송해요, 형."
"죄송하긴 하냐?"
"죄송해요."
혹여나 맞을까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는 직원.
아마도 설마 했던 일이 역시나 였는지.
"죄송합니다. 옆 테이블과 그릇이 바뀌었나 보네요.
잠시. 그 반지 좀 주세요."
반지를 유심히 살피고 있는 여자에 손에 들린 반지를
반강제적으로 뺏으며 살짝 웃는 직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여자의 황당한 표정…
그리고 찬희의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
"죄송합니다. 얘가 들어 온지 1주일 밖에 안 돼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음식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화 푸시고 음식 다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뭐해, 임마!"
"아,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조심하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천천히 우리 테이블로 걸어오는 두 직원이었다.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묻은 반지를 든 채로….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이런 일 없도록 교육 단단히 시키겠습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찬희는 옆 테이블 남자와는 반대로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역시 찬희야. 괜히 자기 입으로 마음이 넓다고 말 한 게 아니었어!
"옆 테이블과 마찬가지로 오늘 음식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음식 가져다 드릴거구요.
또 더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주문하시구요.
그 음식값은 얘가 낼 거랍니다. 뭐해, 임마!"
"아… 네!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면
언제든지 주문해주세요! 죄송합니다!"
괜찮다는데도 반 이상을 다 먹어 버린 체리 빙수 그릇을 가져가고
젤리가 더욱 듬뿍 뿌려져 있는 새 체리 빙수를 가져다 주는 직원.
그리고 덤으로 치즈 케이크도 함께 가져다 주었다.
우와. 젤리 맛있겠다.(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음)
그리고 치즈 케이크도 정말 맛있게 보인다.
"아까 내 목에 걸릴 뻔했던 게 젤리였나 봐."
"응. 다행이다."
나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찬희. 왜 그러지?
"찬희야, 왜 그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싶어서 확인을 해 보았는데 내 얼굴은 깨끗했다.
그 어떤 것 하나도 묻혀져 있지 않았다.
근데 왜 이러지? 나랑 눈을 안 마주쳐.
"아까 내 목에 걸릴 뻔했던 게 그거였나 봐.
헤. 그 반지 진짜 예쁘다."
"……."
"그거 나 주려고 했던 거 아니야?"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니까
찬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그거 나 주려고 했었다며. 자. 끼워 줘!"
난 내 오른손을 찬희 앞에 내밀었다.
지금 네가 들고 있는 반지. 내 손가락에 끼워 줘.
"아, 어. 너한테 주려고 했던 거…."
서툴게 내 검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는 찬희.
우와. 정말 예쁘다!
"정말 예쁘다!"
"……예뻐?"
"응! 고마워, 찬희야!"
"뭘……."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애꿎은 체리 빙수 위에 올려 져 있던 체리를 숟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찬희였다.
찬희는 지금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 45
오늘은 기분이 최고로 좋은날.
전혀 안 쓰던 일기도 썼다.
지금은 비연이에게 자랑을 하려고 비연이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다.
"왜?"
다짜고짜 전화를 받아서는 왜냐니.
요즘 따라 비연이가 이상하게 쌀쌀 맞게 구는 것 같다니까.
"왜가 뭐야. 무슨 일이야? 아니면, 응.
효주야. 이렇게 받으면 덧나?"
"응."
"뭐?"
"아무튼 너 놀리는 거 재밌어! 그래, 왜 전화했어?"
정말 요즘 따라 애들이 나만 놀린다니까.
"나 오늘 찬희한테 선물 받았다! 뭔지 궁금하지?
뭔지 궁금하지? 뭘까? 뭔지 맞혀 봐!"
"별로 맞추고 싶지 않은데… 뭔데?"
"맞춰 보라니까?"
"급한 일 있는 줄 알고 받은 건데,
그렇게 급한 일이 아닌가 보네. 나 자야겠다."
"어어! 잠깐!"
"그래, 뭐 받았는데? 뭐. 인형?"
"아니!"
"그럼, 시계?"
"아니!"
"그럼… 음… 뽀뽀?"
"아니! 뽀뽀는 무슨!"
"그럼, 뭔데? 궁금해 죽겠잖아."
"반지!"
나 찬희한테 반지 선물 받았다!
"반지?"
"응!"
"난 또!"
지금 이 반응은 뭐야? 부러워서 이러는구나. 부러워서!
"로맨틱 하지 않니?"
더 부러워하라고 마구 행복한 목소리를 내주었다.
내일은 반지 낀 모습 보여 줘야지!
"찬희, 멋있다."
"그치?"
"응. 아주, 부러워서 배가 다 아프다! 난 그만 잘 거야!"
그러고선 전화를 뚝 끊어 버리는 비연이었다.
마음 같아선 다시 전화를 해서 한 시간 정도는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그냥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솔로인 비연이가 상처 받을 까 봐 그냥 마음 넓은!
내가 참기로 했다. 헤헤.
근데 너무 예쁘잖아. 반지가 예뻐서 그런지
내 손가락도 다 예뻐 보였다.
손에서 반짝 반짝 광택이 나는 것 같아.
딩동.
이때 벨소리가 들려 왔다.
"누구세요?"
하지만 밖에선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장난 친 건가? 요새도 장난치나."
마음 같아선 문을 활짝 열고 벨 누르고 도망간 사람한테
장난치지 말라고 소리지르고 싶은데…
근데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간단히 문이 단단히 잠겼는지 확인만 하기로 했다.
"단단히 잠겼구. 오늘은 기분 좋게 잘 수 있겠다!"
그렇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뒤돌아서서 내방으로 가려는데.
쿵.
문 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난 놀래서 뒤를 돌아다 봤다. 그리고 물었다.
"누구세요?"
"……."
"밖에 누구 있어요?"
"……."
"자꾸 장난치지 마세요!"
기분 좋아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싶어
소리를 질렀다. 장난치지 말라구요!
"…차효주 …나야."
"……?"
"차효주…."
"네가 어떻게 여기에……."
문을 열자 내게로 쏟아지듯 쓰러져 버리는 은유천…
먼지 냄새로 가득한… 피 냄새로 가득한 몸을 내게 맡기는 은유천이었다.
그럼으로 인해서 난 몸에 중심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너 왜 이래?"
"……차효주."
"무슨 일이야? 119 불러줄게. 병원 가 봐."
움직이려는 나를 꽉 안아 버리는 은유천이었다.
"전화 하지마."
"은유천…."
"전화… 하지마."
"놔."
은유천에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날 더욱 더 쌔게 끌어 아는 은유천이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이게 뭐 하는 거야?
그리고 이 꼴은 또 뭐구… 너 어디서 뭘하다가 온 거야?
"왜 그래? 은유천."
"그냥 이대로… 있어."
"……뭐?"
"이대로 있어 줘. 부탁이야."
그렇게… 나를 안은 두 팔을 푸르지 않은 은유천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
119에 전화를 할까 하다가 차마 그러지 못하겠어서
깨어나면 바로 돌려보낼 생각으로 침대에 은유천을 눕혔다.
이런 일이 많지는 않았어도 가끔은 있었다.
근처 학교 아이들과 패싸움을 종종 했던 은유천이었던지라
가끔 이러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기도 했던 은유천이었다.
근데… 오늘은… 상태가 평소보다 더 안 좋았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119에 전화는 하지 않았다.
119에 잘못 연락을 했다간 일이 골치 아프게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학생과에 넘겨질 수도 있는 상황에까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몇 시간 후에 은유천을 깨워서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
"……."
난 그렇게 은유천을 침대에 눕혀 놓고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곤히 잠들어 있는 은유천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하지만 그 시선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내 시선은 당연하다는 듯 반지가 끼워져 있는 내 오른손으로 향했으니까.
맞아. 한 눈 팔지 마… 그러면 안 돼.
그리고 이건 한눈파는 게 아니라 그냥 본 거야.
이렇게 난 혼자 다짐도 해보고 핑계도 대보고…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내 무릎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
"너 다시 내 옆으로 올래?"
"……."
"다시 안 아프게 할게. 다시… 너 안 울릴게."
"……."
"그러니까… 다시… 내 옆으로 올래?"
잠이든 효주를 보며 말하는 유천이었다.
효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유천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
유천이 이러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효주가 끼고 있는 반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전혀 못 보던 물건…
자기가 갖고 있는 반지와는 전혀 다른… 물건… 반지…
유천의 동공이 천천히 커지기 시작했다.
# 46
"싫어."
"……!"
깬지 10분 정도 됐다. 고개를 들려고 하는데
은유천의 손길이 느껴져 순간 멈칫하며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그렇게 경직된 채 10분 동안 있는데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렇게 움츠리고 있는데 은유천이 내게 한 말…
다시 자기 옆으로 오라는 그 말…
그 말에 난… 반응을 보였다. 싫어.
"나 네 옆에 있는 거 싫어.
나 네 옆에 있으면 아파. 계속 울어.
울게 돼. 그래서 싫어."
"다시 안…."
"그걸 어떻게 믿어?"
"……."
"너랑 나… 믿음 깨진지 오래야.
너랑 나…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내 이 말에 은유천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난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은유천을 똑바로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네가 무서워.
네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워. 네가 나한테 했던 행동들…
나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해.
그렇게 넌 나한테 아픔과 고통만 줬어.
근데 내가 어떻게 네 옆에 있을 수 있겠니."
"다시 안 그럴게. 다시는…."
"나 지금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언제부턴가 네 앞에만 서면 생긴 버릇이야."
"……."
"나 예전에는 네 앞에만 서면 심장이 떨렸어. 설레였어…
근데 지금은… 내 다리가 떨려.
너한테서 지금 이 공간에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 밖에
머릿속에 없어. 온통 그 생각뿐이어서
지금 느껴야 하는 공포심도 느낄 수 없어.
나… 네가 진짜 미워."
그렇게 모진 말을 은유천에게 하고 있다.
어느샌가부터 널 보면 다리가 떨린다는거…
그게 버릇까지 되어 버린 거…
너랑 한 공간에 있으면 겁부터 덜컥 나는 거…
그게 네가 내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이야.
네가 나한테 남겨 준 상처라고.
근데 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그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건데. 넌 어떻게…
난 이렇게 지금도 무서워서 몸이 떨려 오는데…
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이 나쁜 놈아….
"미안해."
그 말에 살짝 흔들려 버렸다.
하지만 내가 흔들렸단걸 들키지 않으려 다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은유천을 노려보았다.
이 어둠 속에서도 은유천의 얼굴이 보인다.
아픈 표정이 보였다.
"뭐가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다."
다? 하… 다?
"지금 와서 왜 이러는 건데?
왜… 사랑이가 이렇게 하라고 시켰어?
나한테 가서 다시 사귀자고 해 보라고
너한테 시켰어? 내 반응 알아 오라고 했니?"
"그런 거 아니야. 이사랑 얘긴 꺼내지 마."
"아, 너 사랑이랑 싸웠구나.
그래서 나한테 지금 이러는 거."
나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런 거 아니라고!"
왜냐하면 내 어깨를 강하게 붙들고
소리치는 은유천 때문이었다.
은유천… 너 미쳤어.
"소리 지르지마! 신고 할거야!"
"제발… 그런 거 아니라고. 지금은 아니라고!"
"소리 지르지 말라구!"
내 어깨를 붙든 은유천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소리지르지 말라고, 신고할 거라고.
"……."
한, 두 발자국 물러난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은유천…
하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은유천의 시선은… 내 손에 와 있었다.
이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은유천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오지마."
"…너 그거 뭐야."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너 그거 뭐냐고."
"……!"
내 손을… 내 오른손을 낚아채며 낮게 묻는 은유천이었다.
날 괴롭히던… 이사랑과 함께 날 괴롭히던
그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다.
"보면 몰라?"
"……."
"반지야. 찬희가 나한테 선물해 준 반지야."
자랑스럽게 말했다. 매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한숨을 몰아쉬는 은유천.
난 이 틈을 타 은유천이 낚아채어 잡은 손을 뿌리쳤다.
손쉽게 풀린 은유천의 손.
난 은유천에게 잡혔던 손을 매만졌다.
쌔게 잡아서 좀 아팠다.
"류찬희가 프로포즈라도 했나 보지?"
"그렇게 말하지마."
아니꼽단 식으로 말하지 말라구.
"내가 어떤 식으로 말했는데?"
"비꼬아서 말하지마. 듣기 안 좋아. 거북해."
"하… 거북해?"
"응. 거북해."
듣기 거북해.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라구.
내가 다 기분이 나빠지니까.
"너 내 몸에 손대지마."
"……."
"나 보고 말 하지마."
"…알았어. 이러면 되지."
내 이 말에 몸을 틀어 벽을 보고 앉는 은유천이었다.
"……."
"이러면 되는 거지! 이렇게 하면…
너한테 말할 수 있는 거지?
너한테… 못 했던 말… 그 동안 너한테…
못 했던 말… 다 해도 되는 거지? 어?
왜 말이 없어… 나 그래도 되는 거지… 어?
나… 씨발… 왜… 왜 이러는 거냐고!"
그리고 주먹으로 벽을 치는 은유천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하나를 발견했다.
그건… 지금 은유천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였다.
예전에… 버려졌었던… 내 반지와 똑같은 반지.
우리의… 반지였던… 커플링.
근데 지금은 아무런 느낌 없이 은유천 손에 끼워져 있었다.
네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
그거 봐도 나 지금은 아무런 느낌이 없어.
두근거림 같은 거 없어.
설레임 같은 거 전혀 느껴지지 않아.
그냥 단순한 반지로만 보일뿐이야.
# 47
"벽 치지마. 도배해야 돼.
그리고 소리지르지마. 귀 아파."
냉정함을 되찾아야 했다. 절대 흔들려선 안 돼…
냉정해야 돼. 그래야 돼.
그리고 그래야 되는 게 정상이야. 흔들리면 비정상이야.
차효주… 은유천 지워 가는 동안에 받은 그 상처,
아픔… 그거 기억해내. 그래야 돼.
그래야… 안 흔들릴 수 있어.
"알았어. 벽 안치면 되지. 소리 안 지르면 되지?"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거기 있지? 내 뒤에 있지?"
"……."
"예전처럼 내 뒤에 서 있는 거 맞지?"
"……할 말 다 했으면 그만 가 줘."
차갑게 말했다.
할 말 다 했으면 그만 가달라고. 그만 가 줘. 그만.
"있구나. 차효주… 내 뒤에 있구나."
기어코… 은유천의 이 말… 이 목소리를 들은 후…
내 볼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눈물…
난 재빨리 눈물을 훔쳐 내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목소리가…
은유천의 목소리가 너무도 다정해서.
자꾸 흔들려서. 축 쳐져 있는 은유천의 어깨가…
너무 아파보여서. 외로워 보여서.
자꾸만 은유천에게 내 손길이 뻗을 것만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닦아 내고…
그렇게 다부지게 마음잡고 섰다.
이건 사랑이 아니야…
이건 그 어떤 감정도 아니야. 그냥…
어리석은… 정이란 감정일 뿐이야.
지독하게 내게 남겨져 있는… 정.
빌어먹을 정. 그런… 정.
"제발 그만해. 이제 좀…
나 더 이상 너한테 시달리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좀 그만 하라구!"
그렇게 소리를 치고 주저앉아 버렸다.
점점 한계에 부딪혀 오고 있었다.
혼자 버티는 게… 너무 힘들어.
비연이라도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
버텨야 돼.
이 순간만 버티면 다음에 은유천 얼굴을 볼 땐
아무 느낌 없을 거야.
맞아. 입으론 아무런 느낌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는 심장도 그러한 반응을 보일거야.
그러한 반응을 보일 날이 올 거야.
지금만 참아 내자. 지금 이 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돼.
"나 많이 어려. 나… 진짜 어리다."
"……."
"내가 느끼고 있었던 감정. 지금까지…
느끼고 있었던 그 빌어먹을 감정. 그거 질투였단거…
나 지금에야 깨달았다. 나… 진짜… 어리지? 하…
지금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롭거든?
내가 너한테 했던 짓… 그거 생각하면 그냥 죽어 버리고 싶어.
근데… 죽으면 안 돼. 나 죽으면…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죽으면
억울할 것 같아서. 그래서…."
제발… 제 두 귀 좀 막아 주세요.
은유천 목소리 좀 안 듣게… 좀 못 듣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도 좋아. 근데…
내가 하는 이 말이 거짓말은 아니란 걸 알아줘."
"……."
"개학날로…
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
"그 때로 돌아가서 할아버지 앞에 서고 싶어.
할아버지 말씀에 네, 네. 하고 .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
지금 당장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온다면…
나 그러고 싶다."
"……."
"하… 그 때. 그 날…
할아버지께서 날 부르셨어.
또 무슨 잔소리를 하시려고 이러시나…
온갖 투정은 다 부리며 할아버지 앞에 앉았지.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을 난 모조리 다 거절했어.
회사를 물려받아라, 싫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경영 공부를 하거라,
그것 또한 싫습니다.
이제 네가 회사를 물려받아야 할 존재가 된 거야.
그걸 알잖아. 모릅니다.
그렇게 계속 싫다고만 말했어.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했으면 됐을걸.
나 진짜 멍청하다. 하…."
"……."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유학을 가거라. 이거였어."
"……."
"그 질문에 난 언제나 그랬듯 싫습니다. 라고 말했지.
그리고 끝이었어.
할아버지와 나의 대화는.
그러고 시작됐어. 너와의 이별."
"……."
"이사랑… 할아버지께 고용된 사람이야.
날 유학 보내려고 이사랑한테 나랑 너 멀어지게 하라고
고용된 사람.
이사랑 아빠가 할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계시단거…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사실이었거든.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후에야 알게 됐어.
너랑 나… 모든 게 끝난 후에. 지금. 지금 알아 버렸어."
지금 이거 다 무슨 소리야.
할아버지께서 사랑이를 고용해?
사랑이한테… 너랑 나 헤어지게 만들라고 시켰다구. 그랬다구?
"너 지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란 거야?"
"……어."
"너 미쳤어. 너 지금… 미친 거야. 지금 네 모습…."
"알아. 나 미친놈 같다는거.
근데 어쩌냐 현실이 이런걸… 현실이…
날 점점 미친놈으로 몰아만 가는 걸 어떻게 하냐!"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넌 이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구.
"그만 가 줘. 너랑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그만 가 줘."
"차효주…"
"내 이름 부르지마."
"차효주… 이 이름… 불렀어. 혼자… 혼자서…."
제발 그만해. 제발.
"은유천 가라니까!"
"차효주… 좋다."
"가라구!"
"…네가 내 이름 불러줘서 나 너무 좋다."
# 48
"너 많이 아팠냐?"
네가 듣고 싶은 말이 뭔데. 네가 듣고 싶은 그 말이 뭔데…
이제 그만해. 그만… 그만하자구.
"너 많이 아팠어?"
"……."
"혹시 지금 나처럼 아팠냐?"
"……."
"심장을 무언가로 도려 내는 것처럼…
그렇게 너도 아팠어?"
……………
………
…………………………
응. 아팠어. 진짜…
말로 표현 못 할만큼 아팠어. 많이 아팠어.
"응. 아팠어."
자꾸만 막히려는 목을 가다듬고 날이 점점 밝아 오는
연푸른빛을 내고 있는 새벽빛을 받으며 은유천에게 말했다.
그러자 날 향해 돌아앉는 은유천이었다.
난 황급히 은유천이 내 얼굴을 볼 수 없도록 뒤돌아섰다.
내 운 모습을… 은유천에게 보이기 싫었다.
"근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응. 80%는 널 잊는데 성공했고,
70% 정도는…
상처 거의 다 아물어 가고 있구.
그러니까… 나 안 아파. 이제는… 하나도 안 아파.
"………차효주."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선…
눈물을 다시 훔쳐내고서….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해줄래?
나 이제 너 봐도 아무런 느낌 없어."
또 다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나.
앞으로 그렇게 되겠지. 앞으로…
그렇게 될 거야. 아무런 느낌 없을 정도로 나 강해질 거야.
내 옆엔 찬희가 있잖아.
나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
혼자서 버텨 내지 않아도 되잖아.
"너만 보면 뛰었던 내 심장. 이제는 안 뛰어."
"……."
"죽었어."
……………
………
…………………………
내게 등을 보이며 빠른 걸음으로 문을 열고
나가 버리는 은유천. 그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은유천을 보며
그간 참았던 눈물을 이제는 눈물을 토해내며 주저앉아 버렸다.
"나도 아파… 나도 너처럼 여기 아파."
가슴팍을 매만지며 말했다.
나도… 여기가 아파. 너처럼… 아파….
"여기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아."
★
"……."
눈을 떠보니 천장이 보였다.
부은 눈 사이로 보이는 천장은 리본이
생각나게 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내 눈이 부은 탓이겠지.
그렇게 눈을 뜨고 옆으로 몸을 돌려
책상에 놓아져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지금 시각이 오후 1시라는 것을 내게 알려 주는 시계.
넌 여전 하구나…
밤새 흔들렸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야.
너무도 안정적인 모습이야.
내가 초라해 보일만큼.
"치."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이 행동.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하는 것.
몇 통의 문자가 와 있나, 몇 통의 전화가 와 있나가 아닌…
누구에게 문자가 와 있나, 누구에게 전화가 와 있었나…
이제는 그런 것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문자 하나도, 전화 하나도…
와 있지 않았다. 찬희한테서 오지 않았다.
섭섭했다.
내가 1시까지 뭘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찬희는.
"……?"
찬희에게 전화를 거는데…
그와 동시에 주방 쪽에서 반응이 오고 있었다.
또로롱 거리며… 벨소리가 들려 왔다.
난 침대에서 내려와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무섭다기보다는 호기심이란 느낌이 더 컸었던듯
서슴없이 주방 쪽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 가볍기까지 하다.
주방 쪽으로 점점 더 다가갈수록 벨소리는 작아지고,
콧노래 소리가 점점 커져 왔다.
그리고 마침내 주방에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내가 무너지지 않게 꼭 잡아 주는 존재. 찬희.
"아, 깜짝이야. 놀랬잖아. 잘 잤어?"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게 말하는 찬희였다.
그 모습이 마치 잠자다 깬 딸에게 잘 잤냐고
묻는 엄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요리하고 있었지. 주방에서 할게 요리 밖에 더 있어?"
찬희의 말을 듣고 보니
또 그런 것 같아서 고개를 저절로 끄덕였다.
"근데 소금 어디 있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아! 맞아. 소금… 난 빈 소금 통을 확인하고
얼마 전 사다 놓은 소금을 찾기 시작했다.
채워 놓는다는 걸 깜빡했네.
"소금 너 혼자 먹으려고 여기다 감춰 둔 거지?"
"그런 거 아니야. 내가 깜빡한 거 있지."
웃으며 말하는데 찬희는 날보고 있지 않았다.
어제부터… 자꾸 날 피해.
"너 안 씻어?"
"아, 씻어야지."
왜 나랑 시선을 안 마주 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였다.
"눈곱 떼고, 양치질도 하고, 세수도 하고.
고양이 세수하는 여자 매력 없으니까
잘! 씻고 오세요. 차효주씨."
"네! 알겠습니다!"
나도 고양이 세수하는 남자는 별로라구.
난 즐거운 마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했다.
근데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찬희가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 올 수 있었던 건지….
"근데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 온 거야?"
화장실 문 앞에 서서 찬희에게 물었다.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온 거냐구 말이다.
"이젠 전화 끊기 전에 문단속했나 안했나 물을 거니까,
문단속 잘하고 자. 남자친구 불안하게 문을 벌컥 벌컥 열어 놓고
오후 1시까지 퍼질러 자는 여자가 어딨어!
나 진짜 문 열렸을 때 당장 빙구
너 깨우고 싶었던 거 참았다. 후…."
열을 식히려는 듯 손으로 부채질을 해 가며 말하는 찬희였다.
그만큼 이런 내 행동에 화가 났다는 거겠지?
괜스레 또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사람이 문 열었으면 어쩔뻔 했냐?"
"무서웠을 거야."
아마… 무서웠을 거야. 많이.
"어."
"응."
"뭐가 응이냐?"
"뭐가 언데?"
나와 찬희는 동시에 피식 웃었다.
"나도 그럴 것 같다고."
"뭐가?"
난 화장실로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묻히곤
양치질을 시작하며 찬희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문 열고 들어왔으면 어쩔뻔 했냐는거.
네가 무서웠을 거라고 했잖아.
그래. 나도 무서웠을 거라고.
나아닌 다른 사람이…
나 아닌 다른 남.자.가. 문 열고 들어왔으면
나 무서웠을 거라고."
"켁."
나를 보면서 그렇게 말하는데
난 나도 모르게 순간 뜨끔해서
양치질을 하다 말고 치약을 삼켰다.
어떻게… 치약을 먹었어.
"앞으로 문단속 잘하고 자."
"응!"
"안 그럼 나 여기서 살지도 모른다."
"응! 에, 응?"
……………
………
…………………………
"내 여자 다른 남자가 납치해
갈까 봐 무서워서 나 여기에
이불 펼지도 모르겠다고요."
난 찬희의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이 바보!"
들어가자마자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이건 사람 얼굴이 아니잖어.
이건… 괴물이야.
나 이제야 좀 알 것 같아.
찬희가 왜 내 얼굴을…
내 시선을 피했었는지.
휴… 정말… 왜 이러는 거지.
괴물 같아. 괴물이다.
# 49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꼭 결혼한 것 같다."
"푸풉!"
난 찬희가 차려 준 정성스러운
밥상 위에 밥알을 튀기고 말았다.
결혼한 것 같다는 찬희의 말에…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끔찍한 괴물 하나. 반성해야지. 반성할게요. 나.
"너 자꾸 장난칠래?"
무작정 빨개져 버리는 얼굴을 달래며 찬희에게 말했다.
장난 좀 그만치라구. 좀.
"괜히 과민반응 보인다. 속.보.이.게. 응?"
"너 진짜!"
"우리 이제 너 너 하는 사이 아닌 거 됐으니까,
우리 애칭을 만들자."
애가 점점 90년대 커플틱 해져 가는 것 같아.
정말로 애칭을 만들 건지 궁리를 하는 찬희다.
정말이지… 그 모습조차 멋있어 보이는 괴물이네요. 반성할게요. 나.
"좋았어. 이렇게 부르자."
손바닥을 서로 맞부딪히며 흥분하며 말하는 찬희였다.
"내가 너를 마이쭈라고 부르는 거야.
좋지? 차효주의 '주'. 마이쭈!"
"……."
"그리고 너는 나를 마이찬이라고 부르는 거지.
류찬희의 '찬'. 마이찬! 좋지? 좋지?
아, 좋다! 진짜 좋다! 마이쭈! 와, 좋은데!
너도 나 불러봐. 마이찬! 이라고 불러봐."
……………
………
…………………………
"유치해."
"뭐?"
"유치해!"
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말했다.
유치하다고 말이다. 유치해.
"빨리 불러봐. 마이쭈."
"너 진짜 계속 느끼하게 굴래?"
"마이쭈. 내가 느끼해? 마이찬이 느끼해?"
꽤 진지하게도 물어오는 찬희였다.
"마이찬이 어때서? 마이쭈가 어때서?"
"캐라멜 이름 같잖아."
"이렇게 예쁜 이름의,
이렇게 멋있는 이름의 캐라멜 이름이 있단 말이야?"
"너 오늘따라 너무 느끼한 것 같아."
"뭐? 이렇게 멋있는 마이찬님이 느끼하단 말이야?"
난 할말을 잃고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애교를 부리는 찬희… 휴…. 너 정말.
"빨리 불러봐. 마이찬! 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찬희.
마이찬이란 애칭을 듣고 싶은가 보다.
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도 못 들어주랴,
싶은 마음으로 불러 주기로 다짐했다.
"알았어. 불러줄게."
"어. 빨리."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마이찬."
"땡. 더 다정 다감하게 불러봐."
"마이찬."
"땡땡. 찬희야! 이럴 때처럼 좀… 제대로 못해?"
"아, 진짜! 마이찬!"
"……."
"됐지?"
"……."
"밥 먹다 말구 어디가?"
마이찬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쪽으로 향하는 찬희였다.
책상 쪽으로 향하더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오는 찬희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찬희였다.
어디에다가 전화를 하는 거지?
"누구한테 전화해?"
"한솔이한테."
"한솔이한테? 한솔이한테 왜?"
"응. 아싸, 바다 갈 때 내짐 네가 들어라! 아싸!"
나한테 한말이 아니라 상대방한테,
그러니까 한솔이한테 소리치듯 말하는 찬희였다.
바다 갈 때 내 짐을 네가 들라구?
그리고 기분 좋게도 외쳐진 아싸란 두 글자.
나까지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아싸란 두 글자.
"효주 바꾸라고? 알겠어. 한솔이야. 받아봐."
"한솔이가 왜?"
"마이쭈한테 할 말 있대."
그렇게 귀엽게 말하고 밥을 마저 먹기 시작하는 찬희였다.
난 찬희가 건네준 전화를 기분 좋게 받았다.
"한솔아, 왜?"
"너 찬희한테 마이찬이라고 했냐?"
"응. 했는데."
갑자기 그 말은 왜 꺼내는 거지…
그리고 우리의 애칭을, 방금 찬희가 만들어 준 애칭을…
한솔이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마이찬이라고 부르랬다고 냉큼 마이찬이라고
부르는 게 어딨냐!
너 때문에 내가 바다갈때 류찬희 짐 들게 생겼어!
류찬희 무거운 거 진짜 많이 가져간 댔는데!
너도 좀 나눠서 들어라! 아, 진짜!"
"잠깐 한솔아,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찬희한테 마이찬이 라고 그랬는데
왜 네가 바다에 갈 때 찬희의 짐을 다 들어야 한다는거야?
또 나눠 들자니?"
한솔이 아침밥을 안 먹었는지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벌써부터 이러면 어떻게 해. 아침밥 좀 챙겨 먹어,
한솔아. 내가 다 안쓰럽잖아.
"우리 내기했거든."
"내기?"
"엉. 닭살스러운 애칭을 네가 찬희한테 불러줄까,
안 불러 줄까로 내기했는데… 내가 졌어!
난 당연히 네가 그런 애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안 불러 준다고에 내 짐을 걸었었는데!
근데 넌 그런 애였어."
"그런 애라니?"
"닭살스러운 애. 닭살 커플!"
이제 서야 상황파악이 된 나는 밥만 맛있게 먹고
있는 찬희를 째려보며 한솔이에게 말했다.
류찬희… 너… 또 내기했어?
"한솔아 우리가 닭살 커플인 거 이제야 알았니? 그만 끊자."
"그 때 내 짐 꼭 나눠서 들어줘야 돼. 아, 진짜! 짜증나!"
한솔이가 뭔가 더 할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난 다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찬희를 더 째려보았다.
# 50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찬희에게로 매서운 눈빛을 보내니까
찬희는 이 내 눈빛을 느꼈는지 밥을 먹다 말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올려다본다.
"왜 그러고 봐? 밥 먹어. 이 된장찌개 되게 맛있다.
어떤 멋진 녀석이 만들었는지,
아주 입안에서 흘러… 녹아, 아주."
그러면서 저 혼자 즐겁다고 웃으며 된장찌개를
맛있게도 퍼먹는 찬희.
내가 왜 이렇게 보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너 왜 자꾸 나한테 장난쳐?"
"내가 언제 너한테 장난쳤어."
"방금. 방금 장난쳤잖아."
"내가 언제?"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단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찬희다.
그럼 난 어이없단 표정으로 찬희를 바라봤다.
"저번에 몰래 카메라도 그렇구…
너 자꾸… 나한테 장난만 치구."
금방이라도 내가 울려고 준비를 하자
이 나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찬희다.
"울지마!"
이렇게 나한테 소리치고…
난 일부러 우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잘못했어…."
"뭐가… 너 네가 뭘 잘못 했는 줄도 모르고
내가 우니까 이러는 거잖아."
난 일부러 훌쩍이며 말했다.
내가 지금 울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해.
"잘못했어. 그러니까 울지마."
"네가 뭘 잘못했는데?"
"다… 다 잘못했으니까. 울지마."
난 속으로 웃었다. 웃음이 났다.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알겠지?"
"어. 안 그럴게."
난 언제 울먹였냐는 듯 생긋 웃어 주었다.
"너도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알겠지?"
"응? 뭘?"
숟가락을 입에 물고 물었다.
뭘 그러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두 눈도 크게 뜨고 말이다.
물론 부은 눈이 쉽게 커 질리는 없었다.
난 평소보다 눈에 힘을 더 주어야 했다.
"나한테 숨기지마."
"……."
"어젯밤에 왜 울었는지…."
"……."
"어젯밤에 누가 여길 왔었는지…."
"……!"
"그런 거 숨기지마. 나 그렇게 속 좁은 남자 아니니까."
……………
………
…………………………
"찬희야… 그건…."
"알아. 은유천 혼자서 제멋대로 와서는 너 흔든 거."
"……."
"근데 그거 알아도 나 화나네. 아니, 화났었어.
처음에… 맨 처음에. 은유천이 여기서 나가고
너 혼자 우는 모습 봤을 때.
그렇게 너 혼자 울다가 지쳐 잠들 때. 그 때 화났었어.
근데 지금은 화 하나도 안나.
지금 네 눈물을 받아 줄 사람은 나니까.
은유천이 아니라 류찬희니까.
예전에는 몰랐어도 지금은 마이찬이 마이쭈
눈물 받아 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 지금은 화 안나."
"찬희야…."
"그런데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나 그 때는 정말 화 이따 만큼 낸다."
두 팔을 벌려 큰 원을 그리는 찬희였다.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그 때는 그만큼 화를 내겠단 뜻을
지금 내게 내비치고 있는 찬희였다.
섭섭한 것 같았다. 내게… 섭섭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너와 나 사이엔 거짓 없기.
비밀 없기. 알겠지?"
"응… 응…."
"나 아침부터 화냈더니 배가 하나도 안 불러.
이거 다 마이쭈 책임이니까 저 밥통에 있는 밥
다 박박 긁어먹고 갈 거야.
자, 그럼 먹어 볼까? 잘 먹겠습니다!"
내가 다 민망할 정도로 우렁차게 말을 하고
여전히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숟가락을 다시 잡는 찬희였다.
응. 맛있게 먹어. 밥통에 있는 밥 다 먹으면…
부족하면… 내가 밥 다시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배부를 때까지 많이 먹어. 찬희야.
"……."
그리고 난 뒤늦게야 깨달았다.
찬희는 어젯밤 나와 헤어졌던… 그 모습… 그대로였단 것을….
찬희는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도 잠 한숨 못잔 사람처럼 까칠해져 있었고,
손등에 작은 상처도 나있었다.
바보처럼… 난…
지금에서야 어젯밤 집 앞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이 있었단 걸 깨달았다.
그 사람이 바로… 찬희였단 것도…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
은유천의 뒷모습을 보는 찬희의 얼굴이 어둡다.
반쯤 열려진 현관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효주의 울음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문 쪽으로 바짝 다가서고
지금 효주가 많이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에
속상한 찬희다.
문을 열고 들어가 위로해주려고도 했지만
그러면 방금 전 상황을 다 목격한 걸 들키고 마니까…
찬희는 잠시 뒤로 주춤 한다. 그리고 벽에 기대어
스르르 주저앉아서 날이 밝아 오는걸 본다.
몇 시간이 자 났을까?
엉덩이가 차갑게 식어 가고, 쥐가 나기 시작 할 무렵.
찬희는 큰 용기를 내어 효주의 집으로 허락도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침대에 기대어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는 효주를 발견한 찬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효주를 안아 침대에 똑바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 준다.
울다 잠든 효주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휴지로 정성스럽게 닦아 주고 방을 나가려는데.
"가… 지… 마."
흐느끼듯 내뱉는 효주의 말소리에 황급히
뒤돌아서서 효주를 확인하는 찬희였다.
하지만.
그건 잠꼬대였다.
"가지… 마… 제발…."
잠꼬대를 하면서도 울고 있는 효주.
그런 효주를 보고 가슴 아파하는 찬희다.
"안가. 여기 있을게."
찬희는 조그맣게 말했다.
효주를 깨울까 봐서.
"이렇게 네 옆에…."
있을게.
"유천아… 가지마…."
효주의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찬희였다.
하지만 애써 효주 앞에서 미소짓는 찬희다.
그리고 아까 마저 끝맺지 못한 말을 다시 하는 찬희다.
"안가. 여기 있을게. 이렇게 네 옆에…
있을게. 가긴 어딜 가. 이 바보야."
내 마음 하나도 알아주지 못하는 이 바보야.
내가 가긴 어딜 가… 나중에 에라이,
사탕 이나 먹고 떨어져라 하면서
나 떨궈 내려고 해도… 미련하게라도 나마
네 곁에 붙어 있을 거니까…
나 어디 안가. 내가 가긴 어딜 가.
이 바보야. 이 울보야.
※ 출처 : 요조숙녀s 팬카페〃
온새미로 ★ http://cafe.daum.net/totoro009 ※
첫댓글 ㅎㅎㅎ!!!!
효주 좀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