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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할머니가 오랜만에 여고 동창회에 다녀왔다. 그런데 계속 심통이 난 표정이라 남편이 물어봤다.
“왜 그려?”
“별일 아니유.”
“별일 아니긴…… 뭔 일이 있구먼.”
“아니라니께.”
“당신만 밍크코트가 없어?”
“…….”
“당신만 다이아반지가 없어?”
“…….”
“그럼 뭐여?”
그러자 할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만 남편이 살아 있슈.”
예전에는 웃기는 이야기나 연예가 뒷담화의 진앙지가 대부분 미장원이었다. 요즘은 찜질방에서 이뤄진다. 위 조크도 찜질방에서 어깨너머로 들은 어느 아줌마의 작품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충청도 할머니를 등장시켰을까? 조크를 말하는 아줌마가 충청도라서? 그건 아니다. 아줌마는 확실히 서울 깍쟁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청도 사투리가 유머의 맛을 가장 잘 살리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 유머를 잘 관찰해보면 거기에 등장하는 지역 사람의 성격이나 특성을 읽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상도의 대표적인 조크를 한번 들여다보자. 아내가 야한 잠옷에 향수를 뿌리고 남편을 맞았다.
“여보……무슨 냄새 안 나나?”
“니 방구 끼ㅆ나?”
다음날, 화가 난 아내가 잠옷을 벗고 알몸으로 남편을 맞았다.
“여보……나 어떠노?”
“제발 잠옷 좀 다려 입어라.”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등장했기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서울말로 하면 왠지 맛이 안 난다. 다음은 전라도 조크.
개구리 한 마리가 미국에 다녀왔다. 몇 마디 배운 영어를 자랑하고 싶어 밭으로 나갔다가 소를 만났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소야, 소야. 넌 뭘 먹고 사니?”
“난 풀을 뜯어 먹고 살지.”
“오우, 샐러드!”
이번에는 숲 속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아, 호랑아. 너는 뭘 먹고 사니?”
“나는 고기를 먹고 살지.”
“오우, 스테이크!”
이번에는 뱀을 만났다.
“뱀아, 뱀아. 너는 뭘 먹고 사니?”
“난 너처럼 혀 꼬부라진 개구리를 먹고 살지.”
그러자 개구리가 말했다.
“아따, 행님도. 우짜 그러신다요?”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난 개구리가 등장했기에 웃음이 터진다. 경기도와 강원도, 제주도 조크가 등장하지 않는 건 그 지역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필자의 상식이 부족함과 각 지역 유머 소개가 이 글의 논지가 아니기 때문이니 이해를 바란다.
“양달지지가 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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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가는 티켓 쥐고 있다
그러니까 충청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단어의 사용이 타 지역에 비해 참 적다. 말수가 없다는 표현도 많이 한다. 시골길에서 마주친 친구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워디 가?”
“워디 가.”
“워디?”
“워디.”
“응. 어여 가.”
아무리 들어봐도 도대체 어딜 간다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당사자들은 답답하지 않다. 특히 심사가 뒤틀려 싫을 때도 절대로 싫다고 얘기하는 법이 없다. 그냥 입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타 지방 사람들로부터 엉큼하다거나 음흉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어쩐지 속이 보이니까 상대가 알아서 ‘내 맘을 알아줬으면’ 하고 나름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도 그렇다. 1월 19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충남 천안에서 열린 국정보고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자기들 편의에 따라 야당은 쉽게 말을 바꾼다. 충청도 계신 분들을 우습게 보고 바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사실 충청도 사람들은 스스로도 바보라고 생각한다. ‘충청도로 충전하러 오세요!’라는 좋은 슬로건을 아무리 홍보를 해도 충청도는 스스로 멍청도라고 부른다.
최근 수안보로 강의를 갔다가 호텔 마당에서 곶감을 팔고 있는 아줌마가 한 소리다. “세종시가 어찌 됐든 우리야 알 바 아니쥬. 어차피 우리가 오라 가라 한 것도 아니고 지들끼리 싸우다가 말것쥬. 어차피 우리는 중간서 찡겨 살아왔응께. 우리만 맨날 피해를 보는 거지유, 뭐.” 충청도가 중간에 끼어 있다지만 이것을 잘 활용해 캐스팅보트가 되기도 한다.
지난날 JP가 이쪽 저쪽을 오가며 대통령을 두 번 만들어냈다. 다음 대선 때도 충청도가 청와대로 가는 티켓을 쥐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앞서기보다 뒤에서 밀어주는 스타일이라 만년 2인자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좋게 말하면 보좌요 보필이고, 나쁘게 말하면 허당이고 꽈당이다.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할 때 가장 피곤한 곳이 충청도다. 그 중 대전이 으뜸이다. 왜? 반응이 없으니까. 경상도가 무뚝뚝하다고 해도 바람만 잡히면 신바람이 난다. 전라도가 아무리 삐딱하게 앉아 있어도 신이 나면 제일 호응이 좋다. 그에 반해 대전은 반듯하게 앉아 있지만 속을 도무지 알 수 없다.
한번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퇴직을 앞둔 교직자와 공무원을 상대로 유머 강의를 했는데 이런 조크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웃지를 않아요. 특히 죽을 때는 대부분 찡그리고 죽는 사람이 많은데 한번은 대전의 시립병원에 웃고 죽은 시체가 세 구 들어왔어요. 너무 신기해서 조사를 했답니다. 첫 번째 할머니는 로또 번호 맞춰보다가 전부 맞는 순간 기뻐서 심장마비로 죽었고요, 두 번째 할아버지는 비아그라를 먹고 10년 만에 흥분이 되니까 웃다가 복상사로 죽었고요, 마지막은 국회의원이 죽었대요. 왜냐하면 비 오는 날 골프를 치다가 번쩍 하니까 사진 찍는 줄 알고 웃다가 번개 맞아 죽었대요.”
강의가 끝날 무렵 질문을 받았는데 한 남자 교사가 손을 들더니 이렇게 물었다.
“아까 대전 시립병원 얘기 진짜요?”
“그게 저……그냥 농담인데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화를 내며 “내가 대전서 50년을 살았는데 그런 얘기는 첨 들었소. 왜 없는 얘기를 지어서 하는 거요? 왜 하필 대전이냐고?”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황당하다. 이처럼 반듯한 사람이 많은 곳이 바로 충청도다. 그런 반듯한 사람들 속에 조금 튀어나온 모퉁이 돌 같은 이단아들이 있다.
바로 충청도 출신 희극인이다. 반듯한 사람들을 웃기다 보니까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불세출의 희극인을 많이 배출했다. 언뜻 생각나는 사람만 해도 최병서, 임하룡, 황기순, 이영자, 남희석, 최양락, 서세원, 이상용, 이창명, 서경석, 김학도, 장동민……. 각 방송사의 코미디언·개그맨의 40% 정도가 충청도 출신이란 말까지 있다.
왜 충청도 사람 중에 희극인이 많은 것일까? 아마도 느림의 미학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은 템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그런데 강력한 웃음일수록 엇박자에서 웃음이 터지는데 충청인은 이 엇박자를 잘 활용할 줄 안다. 어깃장을 놓는다는 표현이 딱이다.
내면으론 가장 빠른 사람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슬며시 말을 건넨다. “줄겨?” 그러자 할머니가 말하길 “할겨?”
“그려.”
잠시 후 할아버지가 땀을 닦으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으ㄸㅑ?”
그러자 할머니 왈 “한겨?” 나름대로 온 힘을 다 바쳐 성의를 다한 할아버지의 노력은 아랑곳없이 할머니는 어깃장을 놓아버린다. 어찌 보면 바보처럼 보일 수 있는 반 박자 느린 걸음이 정확히 계산된 것이라면 은근히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그걸 모르고 타 지역 사람은 충청도 사람들이 느려 터졌다고 무시해버린다.
그래서 충청도 하면 가장 먼저 이 조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산으로 부자가 나무를 하러 갔다. 아들은 산 위에서, 아버지는 아래에서 도끼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바위 하나가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것을 보고 아들이 소리쳤다.
“아부지, 돌 내~려~가~유~.”
“이미 깔려부렸는디~.”
충청도 사람은 정말 느린가? 그렇다. 느리다. 급하게 서두르는 법이 없다. 특히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택시기사들도 급하게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택시에 손님이 탔다.
서울 같으면 ‘어서 오세요.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는다. 아니, 사실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손님들이 어디 가자고 먼저 급하게 말하니까. 그런데 충청도 택시기사들은 절대 손님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는다. 왜 안 물어보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라.
“지가 급하면 얘기 하겄지유.”
그러나 달라졌다. 충청도 사람이 느리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실제 내면으로는 가장 빠른 사람이었다. 각 지방 사투리를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사례 1>
표준어: “돌아가셨습니다.”
경상도: “운명했다 아임니꺼.”
전라도: “죽어버렸어라.”
충청도: “갔슈.”
<사례 2>
표준어: “잠시 실례합니다.”
경상도: “내 좀 보이소.”
전라도: “아따, 잠깐만 보더라고.”
충청도: “봐유.”
<사례 3>
표준어: “괜찮습니다.”
경상도: “아니라예.”
전라도: “되써라.”
충청도: “됐슈.”
<사례4>
표준어: “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충청도: “깐겨, 안 깐겨?”
최근 젊은이들의 언어형태를 보면 말 줄임이 빠르게 진행된다. 갠소(개인소장), 안습(안구에 습기 차다), 신상(신상품), 쌩얼(화장 안 한 얼굴),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칼고(칼같이 go하라)……. IT시대의 주인공은 뭐든지 빠르고 짧게 줄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 디지털 정보통신의 주역은 충청인이 제격이다.
대전을 중심으로 충청도에 퍼져 있는 IT 인프라가 미래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주역이 될 것이다. 대전 시내버스 안, 학생이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할머니가 그 학생에게 물었다.
“학생은 어디 댕겨?”
“과학기술대학에 다닙니다”
“그려……. 공부 못하면 기술이라도 배워야지.”
세종시 이전문제로 티격태격할 시간이 없다. 공부 못하면 기술이라도 배우라는 할머니 말처럼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빠른 변화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바로 굼뜨게만 보이던 충청인이다. 말을 줄여 짧게 하니 생각도 빠를 수밖에 없다.
또한 여간해서 단정 짓는 법이 없다. 단정을 지으면 빠져나올 구멍이 없는데 양다리 걸치다 보면 양쪽 다 이득을 챙길 수도 있다. 양쪽의 의견을 절충하는 습관 속에 충청인은 협상의 달인이 되어간다. 교회 중앙에 스크린을 설치하자는 주장과 양쪽에 두 개를 설치하자는 주장이 대립될 때 충청도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냥 세 개 설치하믄 되겄네.”
항상 당하기만 한다는 피해의식을 벗어버리고 빠르게 변하는 속도에 적응하고 유머로 무장하고 가끔은 쉬어 갈 줄도 아는 느림의 미학으로 무장한다면 미래의 주인공은 충청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UN 사무총장이 충청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마지막 보너스~. 그런데 충청도 안에서도 남과 북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충청북도는 강원도와 비슷하게 닮아 있고, 충청남도는 전라도와 닮은 구석이 많다. 충청북도에선 ‘이랬다 저랬다’라는 표현을 강원도 사투리 비슷하게 ‘이랫드래요 저랫드래요’라고 한다. 충청남도는 전라도와 말투가 비슷한데 힘들어 죽겠다는 표현을 ‘대간하다’라고 같이 쓰고 있다.
충청남도 대덕군 판동면 외삼리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로 시집을 온 김영도라는 새색시가 있었는데 시집살이가 힘들다는 표현으로 “대간하네, 대간하네”라고 아무리 말해도 시집식구들은 눈도 꿈쩍 안 하고 오히려 호된 시집살이를 더 시키더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충청북도에서는 ‘대간하다’는 표현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한 새색시가 바로 나의 어머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