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황무지의 노을
박경혜
대륙의 속살을 파고드는 길은 비포장도로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치 험하고 생경하다. 새로울 게 없는 평야를 몇 시간이고 덜컹거리며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 멈춘다. 거리감이나 시간 개념도 희미하다. 고만고만한 구렁들과 끝이 없을 듯한 들판이 지루하게 펼쳐진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들판을 지나고 초원이 이어지면 소나 양 떼가 무리를 지어 풀을 뜯는 모습이 나타난다. 초원이라야 풀들이 듬성듬성 쥐어뜯다 만 것처럼 볼품없는 들판인지라 종일 돌아다니며 뜯어먹어 보아야 반 배나 찰까 싶다. 저 처절한 생존본능이 어쩐지 서러워 울컥한다.
초원지대를 지나면 또 끝도 없이 광활한 황무지다. 황무지라고 황폐만 있는 건 아니라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깊은 외로운 사연을 품고 있는 듯하다. 고난의 역사와 처절한 삶의 흔적과 외롭거나 뜨거웠던 사랑 같은 것들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실려 가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가끔 말이나 소의 사체를 만날 때도 있다. 동료들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저 주검은 무슨 연유일까. 병이 들었거나 다쳤거나 혹은 공격을 받은 것일지도. 스러져가는 동족을 도울 여력도 없이 풀을 좇아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무리는 또 얼마나 심한 허기로 긴 밤을 지새울 것인가.
온전한 모양을 갖춘 사체는 그나마 위안이 된다. 간혹 머리만 굴러다니거나 혹은 몸통만 덩그러니 버려져 풍화되고 있는 모습을 만날 때면 고압 전류가 심장을 타고 흐르기도 한다. 몸통을 잃어버린 머리통들, 몸과 머리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저 생의 끝은 얼마나 참혹한가. 널브러진 자존을 가려줄 나지막한 나무 한 그루 없는 들판이 못내 곤혹스럽다.
일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신 지 오래다. 처음 얼마 동안은 차체가 요동칠 때마다 서로 몸을 기울이고 부딪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몇십 년 만에 들까부리는 비포장도로를 경험해보는지라 아이처럼 천진하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길도 없는 들판을 얼마나 달렸을까. 등허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일행은 점점 조용해졌다.
차는 몇 시간째 잘도 내달린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에서 내비게이션도 없이 어떻게 방향을 잡고 길을 찾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수줍게, 그러나 가고자 하는 곳에 기꺼이 길을 내어주는 품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언덕인가 싶으면 너머에 다시 평지가 펼쳐지고, 생명이라고는 살지 못할 것 같은 땅이 이어지다가 문득 몇 개의 게르가 나타난다. 그곳에는 어김없이 양 떼나 소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더러는 낙타들이 평화롭게 누워 있는 풍경도 지나간다. 그런 광경은 마치 너무 황량해서 막막한 사막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과부하가 걸린 걸까. 갑자기 굉음을 내더니 차가 멈추었다. 다리도 펼 겸 기지개를 켜며 내려보니 볼거리도 먹거리도 없는 황무지다. 이정표조차 하나 없으니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기사와 가이드는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웃어 보이고는 차를 수리하기 시작한다.
앞만 보고 내달리던 남편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마음을 크게 다친 일이 있는 게 분명한 듯한데 도무지 입을 열지 않는다. 다친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황폐해져 쉽사리 회복되지 못했다. 건강검진을 해보면 특별한 병명이 나오지 않는데 남편은 병든 닭마냥 영 맥을 추지 못했다.
뭔가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무실 문을 걸어두고 낚시 여행을 떠났다. 낚시터에 앉아 주는 밥 먹을 때만 겨우 자리를 뜨고는 종일 말 없이 낚싯대와 씨름하고, 밤이면 호수에서 반짝이는 야광 찌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곤 했다. 늘 단단하고 자신감 넘치던 그의 등이 축 처져 시려 보였다.
맥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도, 즐거운 일도 없는 듯했다. 마침 기회가 생겨 시골로 터를 옮겨 앉자 남편은 거짓말처럼 생기를 되찾았다. 땅을 일구고 이런저런 궂은일을 찾고 배우며 신이 났다. 이웃의 크고 작은 일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손을 거들었다. 들일은 어설퍼서 지나가는 어른마다 말을 보탰다. 제각각 다르게 훈수를 두시는지라 어느 분의 말을 따라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었다. 싫은 내색 한번 없이 감사하다고 고분고분 대답하면서도 소신 있게 밀고 나갔다. 소신의 결과는 대실패였다. 벌레가 먹고 고라니가 먹고 남은 것을 겨우 수확했지만, 이만하면 성공한 거라고 큰소리다.
가진 게 많으면 잃을 것도 많은 법이다. 하지만 욕심을 내려놓으면 득실을 따질 일이 없다며 무턱대고 사람을 믿고 보는지라 쫓아다니며 행간을 만드는 것은 늘 내 몫이다. 다시 가속페달을 밟는 것을 보며 무리할까 싶어 은근히 걱정도 된다. 해보지도 않던 일을 너무 벌이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는 웃음을 되찾고 건강은 덤으로 얻었다.
저 광야 어디선가 한 무리의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레 같기도, 거대한 북소리 같기도 한 소란은 거침없이 내닫던 정복자들의 함성인지도 모르겠다. 끝도 없이 드넓은 대륙을 두고 징기스칸이 왜 침략과 정복을 멈출 수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지도자로서 메마른 땅과 허기진 백성들의 생기 없는 눈빛을 외면하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유목민의 고단과 바람 같은 삶을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든다. 붙박을 목적지 없이 그저 초원 따라 물 따라 터전을 옮겨 다니는 삶에 희망의 불씨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이 이어질 것을 명백히 알고 있다면 달리 무슨 노력을 할 수 있으랴.
주변을 둘러보는데 땅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진다. 자세히 살펴보니 손가락만 한 도롱뇽이다. 무에 그리 바쁜 일이 있는지 작은 몸을 좌우로 흔들며 부지런히 움직인다. 얼핏 보아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물도 없고 풀도 드문 이런 곳에서 생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척박한 땅에도 척박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도롱뇽에게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동안 차 수리가 끝났다.
차는 다시 달린다. 백 킬로미터 이상을 달려가도 인적 없고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들판에서 나무 한 그루 만나지 못하고 하루가 저문다. 평야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해가 떠오르고 넘어간다는 사실이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탓이다.
목적지인 고비사막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일몰을 보려 했으나 사막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하늘은 온통 핏빛이다. 무미건조하던 낮과 대비되게 노을은 어찌 저리도 뜨겁게 타오르는가. 얼굴도 목덜미도 팔뚝도 구릿빛으로 그을린 채 환하게 웃는 남편의 얼굴이 거기에 있다.
(《수필문예》 제22집, 2023.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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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신라문학 수상 등단
수필문예회 회원
대구수필문예대학 18기 수료.
bohe11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