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2023년 8월 25일자 7면 "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입니다.
300년 세거지, 단양 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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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
300년 세거지, 단양 올산
기자명 충청매일
입력 2023.08.24 16:58
[ 충청매일 ] 고택이나 묘지를 답사하러 가보면 특정한 성씨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많다. 한양에서 벼슬을 하여도 벼슬이 끝나면 고향으로 내려와서 고향을 지켰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한 곳에 씨족을 이루고 모여 살았다.
조선시대 양반이 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첫째로 과거에 합격하거나 과거에 합격하지 않아도 당대를 대표하는 저명한 학자를 조상으로 모시고 있어야 했다.
둘째로 여러 대를 걸쳐 동일한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거주지를 세거지라고 한다.
세 번째로는 양반의 생활양식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양반의 생활양식이란 조상 제사와 손님에 대한 접대를 정중히 함과 동시에 일상적으로는 학문에 힘쓰고 자기 소양을 쌓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고향 마을은 백두대간 하늘 아래 첫 동네다. 해발 630m가 넘어가는 고산지대다. 300여 년 전에 왜 이런 두뫼산골로 찾아왔을까 의문이었다. 마을의 이름도 우뚝할 올자와 뫼 산자를 써서 올산, 올뫼, 올미라고 부른다. 어릴 적 잠시 살았던 곳이지만 올산은 이름만 들어도 정겹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10촌 이내의 경주김씨 씨족들이다. 고향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어 어릴 적 올산에 살던 사람들이 ‘300년 세거지 올산방문’이라는 주제로 함께 모였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는데, 교육환경이 좋은 서울로 보내라는 이야기다. 도시에 나갔다가 은퇴하고 나면 고향을 찾는 사람이 있어 300년 세거지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왜 첩첩산중 두뫼산골에 자리 잡았는지 의문이 풀렸다. 300여 년 전 사화와 전염병을 피하여 올산에 둥지를 틀었다. 씨족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형제들을 여러 지방으로 흩어지게 하여 삶의 터전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300여 년을 이어 왔는데 자손들이 크게 번성하였다.
300년 세거지를 풍수적으로 살펴보니 올산은 백두대간 고산마을의 산으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분지형 지형이다. 고산에서는 바람을 중시하라고 하였는데 해발 630m 지역에 산이 둘러싸고 수구는 닫혀있고 바위와 자갈이 없는 평지 지역이 있으니 농사를 짓는 농경시대에는 사람이 살만한 터였다. 300년 세거지를 지키고 있는 집은 한 집이고 나머지는 은퇴 후 고향을 찾아 귀향한 집들이다. 올산은 단양군 내에서 가장 오지마을이다. 6·25동란 때는 인민군의 퇴로였고, 대부분의 집들이 불타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마을이 이어왔고, 현재는 고랭지 채소, 오미자, 사과 등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의 특성을 활용하여 군내에서 손꼽는 부자마을이요, 장수마을이다. 풍수적 명당마을은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 300년 세거지를 계속 지키고 있는 집은 94세의 부부가 살고 있는 마을의 중심지로 안산 넘어 조산이 넓게 펼쳐지는 풍수적 대명당이었다.
그러나 작은 분지형 마을의 아쉬움은 유행에 둔감하고 현실에 안주함이다. 고향을 지키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산업화 사회를 거처 정보화 사회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에 오대양 육대 주 넓은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개척자의 후손도 많이 나오고 은퇴 후에는 고향으로 귀향하여 세거지가 계속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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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 300년 세거지 단양 올산
충청매일 2023년 8월 25일자 7면
2023년 8월 12~13일, 경주김씨 300년 세거지 단양 올산 방문행
첫댓글 구체적으로 어느 선조계통인지를 알고 싶어요
그냥 김영교할아버지 올산지파라니 무려 300년 세거지인데.................
두계공파 19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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