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대(望高臺)
휴정(休靜, 1520~1604)
높은 산 산마루에 나 홀로 올라서니
먼 하늘에 이름 모를 새만 오가누나
보이는 곳곳에 가을빛이 아득하더니
넓고 푸른 바다가 술잔보다 더 작구나
獨立高峰頂(독립고봉정)
長天鳥去來(장천조거래)
望中秋色遠(망중추색원)
滄海小於杯(창해소어배)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인 망고대에 오른 서산대사
휴정은 눈앞에 펼쳐진 금강산의 절경에 푹 빠졌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아래 새들이 한가롭게 날고, 온 산에 물든 단풍은 눈길이 닿는 땅 끝까지 이어
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 멀리 보이는 동해는 오히려 초라할 정도로 작
게 보인다. 금강산의 기세에 눌린 탓이다. 하늘과 산과 바다가 장엄하고 화려한
파노라마를 펼치는 이 시에서 인간 서산대사는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첫머리
에 독립(獨立)이라 말하며 망고대를 딛고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 끝
머리에서는 바닷물을 한 잔의 술로 마신다. 티끌과 같은 몸이지만 깨우친 사람
은 이 우주보다 훨씬 더 큰 존재다.
[작가소개]
휴정 [休靜]
<요약> 서산대사라는 호로 잘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다. 유(儒)·불(佛)·도(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 삼교통합론(三敎統合論)의 기원을 이루어 놓았다.
출생-사망 : 1520 ~ 1604.1.23
본관 : 완산(完山)
자 : 현응(玄應)
호 : 청허(淸虛) ·서산(西山)
별칭 : 속명 여신(汝信)
활동분야 : 종교
출생지 : 평남 안주(安州)
주요저서 : 《청허당집(淸虛堂集)》
주요작품 :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삼가귀감(三家龜鑑)》
본관 완산(完山). 속성 최(崔). 자 현응(玄應). 호 청허(淸虛)·서산(西山). 속명 여신(汝信). 안주(安州) 출생. 1534년(중종 29) 진사시(進士試)에 낙방하자 지리산(智異山)에 입산, 숭인(崇仁) 문하에서 승려가 되어 《전등록(傳燈錄)》과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등을 배웠다. 그 후 일선(一禪)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영관(靈觀)의 법을 계승하였다.
1552년(명종 7) 승과(僧科)에 급제, 대선(大選)·중덕(中德)을 거쳐 교종판사(敎宗判事)·선종판사(禪宗判事)를 겸임했으며, 보우(普雨)를 이어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되었다. 1556년 요승 무업(無業)의 무고로 정여립(鄭汝立)의 역모에 연루되었다 하여 투옥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노구로 왕명에 따라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되어 승병(僧兵) 1,500명을 모집, 명나라 군대와 합세,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국일도대선사선교도총섭 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가 되었으나 1594년 유정(惟政)에게 승병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여생을 보냈다.
좌선견성(坐禪見性)을 중시하고 교(敎)를 선(禪)의 한 과정으로 보아 선종(禪宗)에 교종(敎宗)을 일원화시켰다. 한편 유(儒)·불(佛)·도(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 삼교통합론(三敎統合論)의 기원을 이루어 놓았다. 묘향산 안심사(安心寺),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부도(浮圖)가 서고, 해남(海南) 표충사(表忠祠) 등에 배향되었다.
문집 《청허당집(淸虛堂集)》이 있고, 편저에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운수단(雲水壇)》 《삼가귀감(三家龜鑑)》 《심법요(心法要)》 《설선의(說禪儀)》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휴정 [休靜] (두산백과)
첫댓글 술잔보다 작은 바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은 가을비가 온다고 합니다.
이 비는 내일까지 내린다네요.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한글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