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어느 문명인의 실종
운전자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지 조금더 달리다가 한 인도인 남자
의 통역을 받고는 끼익 하고 버스를 세웠다.하도 급작드럽게
차를 세워서 승객들 모두가 와락 앞으로 쏠렸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나는 황급히 문으로 달려갔다. 그때 일말의 불안감이 밀려왔다.
내가 내린 사이에 버스가 떠나버리기라도 하면 큰 낭패였다.
마을조차 없는 허허벌판의 무인지대에 혼자 남겨질 순 없는 일이
었다.
나는 운전사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말고 기다릴 것을 강
력히 지시했다.그래도 미심쩍어서 나는버스를 내리다 말고 도로
올라가 배낭을 들고 내렸다.
버스에서 뛰어내린 나는 배낭을 들쳐안고 무의식적으로 도로 옆
들판을 향해 10여 미터 달려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북인
도의 들판지대는 수평에 가까운 황무지가 대부분이다. 언덕 하나
없는평지에다 나무들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내가 버
스에서 내린 지점이 비로 그런 지대였다.
나는 달리다가 말고 주위를 살폈다.몸을 가릴 만한 장소가 한군
데도 눈에 띄지 않았다.바위나 언덕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그
뒤로 돌아가 일을 볼 텐데 사방은 그저 툭 트인 황무지일 뿐이었
다,그렇다고 문명국가에서 온 내가 아무데서나 바지를 내리고
일을 치를 순 없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돌려 버스를 쳐다보았다.차 안에 탄
인도인들 모두가 일제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 무료하던
판에 이게 웬 구경거린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다시 10여 미터를 달려갔다.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방에 가냘푼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는 것 말고는 내 한
몸 가릴 만한 은페물이 천지간에 없었다.
인도인들은 저 친구가 왜 저렇게 허둥대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저마다 차창에 얼굴을 대고 나를 처다보았다.
나는 감자기 광야에 홀로 선 외로운 문명인이 되도 말았다.
인도인들은 아침마다 들판이나 철둑길 같은 곳으로 몰려가 일을
보지만 나마저 멀건 대낮에 아무데서나 엉덩이를 내보일 순 없
었다.
그렇다고 아주 멀리 지평선 너머로 거위처럼 달려갈 수도 없
는 노릇이었다. 그러는 사이 배탈은 더욱 심해져 조금만 더 지체
하다간 영락없이 바지를 적실 판이었다.나는 너무도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영혼이 몸부림칠 것만 같았다.
마침내 배낭을 끌어안고 스무 걸음 정도를 더 뛰어가 전방에 외
롭게 서 있는 나무 뒤로 돌아갔다.그러나 사실 그것은 나무라고
할 수도 없었다.굵기가 팔뚝 정도에 불과해서 내 몸을 전혀 가
려주지도 못했다.그러자니 더욱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덩치가 크고 머리는 장발을 한 사람이 지팡이만한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셈이 되었다.
바지를 내리고 그 나무 뒤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기 시작했지
만, 버스에 탄 인도일들은 볼 것을 다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