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꾼다. 그 꿈속에서 괴물이나 악마 또는 무서운 어른에게 쫓겨 한참을 죽어라고 뛴다. 하지만 추격자는 바짝 따라붙는다. 그 무시무시한 손이 아슬아슬 뒤통수에 와 닿을 것 같은 바로 그 순간, 몸이 위로 붕 떠오른다. 그 여세로 창공에 드높이 날아올라 훨훨 나는 한 마리 새가 된다. 이처럼 어릴 적 꿈속에서 우리들은 누구나 ET였다. 하늘을 나는 ET는 한창 자라는 때의 아이들의 꿈이다. 스필버그 감독이 어느 날 갑자기 새로이 연출한 것이 아니다. (17쪽)
인간이 영원히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 바로 새다. 새처럼 하늘을 날기를 바라는 것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간의 숙명이다. 수리와 매 그리고 학은 인간의 소망을 품고 창공을 난다. 그들의 삽상한 바람칼에 사람들의 꿈이 설렌다. 비상은 아스라한 하늘과 맞닿고자 하는 인류의 꿈이자 숙원이다. 그리고 신화의 시작이다.
신화의 주인공들은 하늘을 나는 것을 통해 보통 사람과 다름을 보여준다. ‘하늘을 나는 인간’, 그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인간이다. 초인이라 할 수 있는 그는 신격(神格)을 갖춘 왕이 되기도 한다. 그 예로 한국 고대 왕국의 왕들은 몸에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라 금관을 보면 새 날개 모양의 장식이 금방이라도 파닥거릴 듯이 돋보인다. (26쪽)
달춤인 강강술래가 여성과 맺어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흔히 태양은 남성, 달은 여성에 비유된다. 여성만이 경험하는 생리인 월경을 ‘달거리’라고 할 때, 여기서의 달은 기간을 뜻하는 달과도 관련되어 있지만 밤하늘에 뜨는 달과도 연관이 있다. 밤하늘의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데 일정한 주기가 있듯 여성들의 월경 역시 주기에 따라 행해진다. 밤하늘의 달은 여성이고, 여성은 달이다.
이것은 여성의 여성다움이 그 본성부터 신화적이란 것을 말하고 있다. 신화는 인간과 해·달 그리고 별 같은 천체와의 합일, 나아가 인간과 우주와의 합치에 대해 흔히 이야기한다. 인간이 우주적인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 역시 신화에서 아주 요긴하게 나타나는 본성 중 하나다. (53쪽)
지하 세계를 내왕하는 타계 여행의 신화는 오르페우스나 아난나 또는 바리데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 묵은 신화들은 그 후계자를 오늘날의 대중매체에 탄생시키고 있으며, 영화 속에서도 활개를 치고 있다. 그 자취를 캐보는 일은 묵은 신화를 새롭게 되살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가장 먼저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에서 타계 여행의 신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영화는 현대판 신화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 시리즈 중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에서 그런 면을 찾을 수 있다. (81쪽)
과거에는 그렇게 어렵고 힘겨운 고비를 넘기고서야 비로소 소년은 청년이 되고 장가들 기틀이 마련되었다. 결혼 적령기라고 해서 당연히 신부를 얻어 장가를 든 것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고 키가 크고 외모가 성숙해졌다고 해서 그걸로 사내대장부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홀로 깊은 산골의 굴에서 고행하며 육신의 성장에 어울리게 정신적·인격적으로 자신을 닦아야 했다. 심신을 더불어 단련해야 했다.……
이렇듯 고통과 시련은 소년이 청년이 되어 장가를 가기 위한 필수의 전제 조건이었다. 장가들 자격을 갖춘 사내대장부가 되는 길은 크나큰 고비요, 고개요, 어려운 난관이었다. 과거와는 달리 우뚝 인생의 정상에 올라서는 것이기도 했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하기에 또한 여기에는 온달, 서동, 해모수의 혼례 이야기가 얼룩져 있는 것이다. 신랑 후보자는 누구나 온달, 서동, 해모수였던 것이다. (140쪽)
한국의 상고 시대 신화를 비롯해 그 후대의 신화에는 물과 맺어진 여성이 적지 않다. 우물이나 샘에서 태어난 여성이 있는가 하면, 육지 밑 깊은 연못에서 삶을 누린 여성도 있다. 심지어 바다 밑 용궁이 고향인 여성도 있다. 그런 여성에 관한 믿음은 부여와 신라를 거쳐서 고려 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처럼 여성이 태어난 우물이나 여성과 관련된 우물은 성역이자 거룩한 신앙의 대상으로 남기도 했다. 이때의 물은 여성과 맺어져 신처럼 섬김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그 예로 혁거세의 비인 알영은 우물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우물 아기’이며 ‘물 아기’다. (176쪽)
한국와 일본의 신의 관계 그리고 신화의 관계는 질기고 끈끈하다. 물론 두 나라 신들 사이의 갈등을 그린 일본의 신화도 전해지고 있다. 한국 신들이 일본으로 쳐들어가서 일본 신들과 겨루고 다투고 한 끝에 일본 신들을 모조리 잡아서 한국으로 납치하자, 일본 사람들이 ‘하치만다이보사쓰(八幡大菩薩)’라는 부처에게 빌어서 가까스로 위기를 면했다는 신화다.
하지만 그 같이 한국 신과 일본 신 사이의 갈등을 그린 신화는 단 한 편뿐이다. 일본의 신 오쿠니누시노카미(大?主神)가 이즈모 땅에 바다 건너 있는 육지를 끌어당겨 갔다는 신화가 보여주듯, 한국과 일본 신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끌고 간 땅은 한반도의 일부라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222쪽)
출판사 서평
오천 년의 신비, 영원을 사는 신화!
한국학과 국문학의 거장 김열규 교수가 들려주는
재미난 한국 신화 이야기
신화에서 남녀의 대비는 하늘과 땅, 또는 해와 달에 비유되어 이야기되곤 한다. 그래서 여성이 달춤인 강강술래를 추며 달이 되기를 바라는 사이에, 남성은 태양과 같아지기를 바란다. 하늘을 닮고 해와 동화하기를 바라면서 남성은 신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 본문 중
신화는 묘하고도 끈질기게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꿈을 들여다보면 신화의 영원함은 두드러져 나타난다. 사춘기 소년들은 꿈속에서 하늘을 난다. 고구려의 유리 왕자나 오룡거를 탄 해모수처럼 하늘을 날고 또 난다. 이러한 신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해리포터와 ET의 선구자다.
이렇듯 신화가 되풀이되는 것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무의식이 여전히 신화시대에 잠겨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마음의 깊디깊은 내면에 잠들어 있는 무의식은 신화의 텃밭이다. 그렇기에 신화를 읽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꿈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무의식의 깊은 속내를 스스로 살피고 캐는 것이 다름 아닌 신화 읽기다.
[신간 출간의의]
환상과 현실 사이의 내왕을 위한 길잡이
신화는 그 환상과 공상의 정도에 정비례해 현실성이 알알이 넘치고 있다. 태고라는 시대성에도 불구하고 역력한 오늘의 현실과 맞물려 있다. 신화는 오늘의 우리가 환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게 하고, 태초와 현재 사이를 내왕케 한다.
이 책은 한국인의 ‘환상과 현실 사이의 내왕’을 위한 길잡이가 될 것이고, 아울러 ‘태고와 오늘 사이의 왕복’을 위한 지표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들의 꿈과 무의식의 뿌리를 찾는 데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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