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여! 오랜만이네
그동안 먹고 산다고 바빠서 못들어 와도 용서해 주실것이라 믿었다네
오늘은 비가 와서 오랜만에 컴 앞에 앉아보니
전번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처용에 대해서 궁금해 하기에
처용에 관한 이야기를 올려 본다
[반말을 섭섭하게 생각하시면 담 부터는 존대로 사용하겠네 ㅎ ㅎ]
처용설화가 있는 삼국유사 권2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 실려있다
[원문은 한문이므로 한글로 번역된 글을 올림]
처용랑과 망해사
신라의 제49대 헌강왕(875-886) 시절에는 서울과 지방의 모든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초가가 없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또한 사시사철 음악과 노래가 끊이지 않고 바람과 비는 순조로워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고 있었다.
태평성대를 누리던 어느 날 대왕이 개운포(開雲浦:지금의 울산의 용연동)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슨 조화인지 갑자기 들이닥친 구름과 안개 때문에 일행이 모두 길을 잃게 되었다.
여러 관리들이 동분서주 하며 원인을 찾으러 애쓸 때, 일관(日官;날씨를 관장하는 관리)
이 대왕 앞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아뢰기를 “소인의 좁은 소견으로 보건대,
이것은 동해 용의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해서 용왕을 위로해 주어서 풀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심이 의심스러웠지만 구름과 안개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형편을 해결하고자
유사(有司:일을 맡은 관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곳에 용을 위하여 절을 짓게 하라”고 말을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개와 구름이 눈깜짝 할 사이에 걷히게 되었다.
이후 그곳을 개운포(開雲浦: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CCB335990DEDE19)
(앞에 보이는 조그마한 섬이 처용암이다)
동해의 용은 기뻐하면서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나타나 왕의 덕을 찬양하며
흥겹게 춤을 추고 연주를 하였다.
용왕은 그 가운데 한 아들을 서울로 보내 정사를 돕게 하였는데,
그가 바로 처용(處容)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ABB7335990D9FC0D)
(처용무 혹은 처용희로 조선의 궁중무로 정착되었다)
대왕은 용왕의 아들이 서울에 오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며 처용의 마음을 잡아두려고
미녀를 아내로 삼게 해 주고, 급간(級干)이라는 벼슬도 주어 서울에 정착할 수 있게
하였다.
처용의 아내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한 역신(疫神)이 처용 아내의 아름다움을 흠모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밤에 처용의 집에 가서 처용의 아내와 몰래 잠을 자게 되었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사람은 분명히 처용의 아내였으나 다른 한 사람은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용은 그것을 보고 춤을 추면서 이 노래만을 부르고 사라졌다.
“서울(東京)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래 나의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요?”
역신은 처용이 돌아온 것을 알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역신은 처용이 노래와 춤만 추고 화를 내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을 알고
모습을 나타내어 처용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내가 당신 아내의 아름다움을 흠모하여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대는 화내지 않으니
그 마음에 감동하였습니다. 맹세코 앞으로는 당신의 얼굴이 있는 그림만 보아도
그 문 안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역신은 조용히 물러났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E6C335990DA4606)
(울산에서 제작되고 있는 처용탈이다)
이 일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나쁜 악기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참고로 이러한 미신은 불교의 최전성기인 고려에 와서 궁중 의식으로 처용무(處容舞),
처용희(處容戱)로 발전되었다
대왕은 서울로 돌아와 바로 영취산(지금의 울산에 있는 산, 문수산 아래 있는 산) 동쪽
기슭의 경치 좋은 곳을 가려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망해사(望海寺)라고 했다.
또는 이 절을 신방사(新房寺)라 했는데 대왕이 개운포에서 겪은 일로 용을 위해서
세우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삼국유사 권2 처용랑과 망해사에 있는 처용에 관련한 근거의 전부이다.
첫댓글 잘 보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