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식 영어
고명재
네팔에서 온 그 친구 이름이
켄두였나 켄도였나 눈이 크고
고기를 좋아했으며 땀 냄새가
선명했다
나는 맥주가 좋아 나의 나라가 싫어
왜?
가난하니까
덜 익은 서양배를 우적거리며 캔두는 웃었다
너희 집도 높은 곳에 있었니
산양을 봤니 공기가 파랗니
만년설은 무슨 색? 구름이 걸리니
나도 네팔에 가보고 싶어
캔도는 손가락을 세우며
아주 높은 곳의 집, 숨쉬기 힘든
산양이 황금빛 만년설을 핥고
때때로 집으로 가다 발이 터진다고
그러니 다음에 오라고 했다
우리는 죽어서 가장 높은 봉우리
그 끝에서 환한 얼굴로 만나
가족과 옆집과 십 년 전 잃어버린 양들이
서로를 만지고 핥고 춤을 추다가
눈이 된다 우리는 함께 녹아서
세상 끝 손톱이 된다
네팔에 갈래? 그럼 죽어
죽음이 산에게서 가장 잘 지켜줄 거다
발이 사라지면 그때 거기가 네팔
눈을 감고 뒤꿈치를 들면 보이는 틈이다
스포츠카를 보면 휘파람을 불던 캔둬는
비자 없이 오랫동안 체류하던 캔둬는
페이퍼롤을 뻬빠롤로
레스토랑을 레스또란트로
음소가 살아있다는 듯
칼날 같은 산길을 오르듯
모든 말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시 전문 계간 《딩아돌하》 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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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 / 1987년생. 영남대 국문학 박사 수료. 동 대학 시간강사 재직.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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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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