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나의 외로움과 그리움
명상 속에서 만난 어렸을 적 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나의 무의식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살펴보라. /셔터스톡
어린 시절의 경험은 나의 성격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PD는 ‘계란’이라는 말을 알아듣는다는 개가 있다고 하여 그 마을에 찾아갔다. PD가 ‘계란’이라고 말하니까 과연 그 개는 그 말을 알아듣고 무서워하며 마루 밑에 숨는 것이었다.
그런데 달걀 하면 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PD는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으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용달차에 계란을 싣고 다니며 파는 어떤 계란 장수가 “계란 사시오. 계란!” 하고 녹음된 확성기를 크게 틀어놓으며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며 산기슭으로 꽁지가 빠져라 하고 도망가는 것이었다.
PD는 나중에 개 주인과 대화를 하면서 그 개가 ‘계란’이라는 말을 무서워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개가 강아지였을 때 어느 날, 그 강아지는 계란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계란을 깨트리고 말았다. 주인은 강아지 덜미를 잡고 강아지의 뺨을 때리면서 “이놈, 네가 계란을 깨트렸잖아! 계란을!” 하고 강아지를 혼낸 적이 있었다고 했다.
강아지는 ‘계란’이라는 단어와 뺨을 맞던 경험을 연관시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프로그램의 또 다른 사례가 있다. PD는 이번에는 4각형 대나무가 있다는 마을을 찾아갔다. 대나무 숲에 들어가보니 과연 4각형 대나무가 있었다. 4각형 대나무뿐만 아니라 3각형 대나무도 있었다. 어떻게 해서 4각형 대나무와 3각형 대나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비밀은 이렇다. 대나무가 어린 죽순이었을 때 4각형 혹은 3각형의 틀을 죽순에 끼워놓고, 대나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그 틀을 빼버리면, 틀을 빼버린 후에도 대나무는 계속 4각형, 혹은 3각형으로 자란다는 것이었다.
나는 유난히 외로움과 그리움이 많다. 내가 생각해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외로움과 그리움이 많다. 왜 그럴까?
나는 은퇴 후에도 바쁘게 보내긴 하지만 자투리 시간은 많은 편이다. 자투리 시간은 주로 음악을 듣거나 명상을 하며 보낸다. 요즘은 명상 중에 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상상 속으로 불러내어 살펴보는 것을 즐겨 한다.
어느 날, 명상 중에 어떤 하나의 그림이 상상 속에 나타났다. 그 그림 속에 한 소년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펴보니 그 소년은 바로 어린 시절의 나였다.
나는 초등학교를 충남 당진에 있는 면천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보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버지를 찾아 마산으로 떠났고 어린 나는 당분간 혼자 살았다.
한 2, 3주 후면 돌아오겠다던 어머니는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돌아오지 않았다. 먹을 것이 떨어져 배도 고프고, 산기슭에 있는 오두막집에 혼자 사는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제일 힘든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어머니는 담임 선생님과 계속 편지로 소통을 하고 있어서 담임 선생님이 음식이며 옷가지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보고 싶은 그리움은 담임 선생님도 도와줄 수 없었다.
나는 공책이며 땅바닥에, 그리고 화장실 벽에 온통 “엄마, 언제 와요? 보고 싶어 못 견디겠어요.”라고 낙서를 했다. 사실 그것은 낙서라기보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방과 후면 매일같이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버스에서 마지막 사람이 내리면 버스는 다시 떠났다. 나는 버스 뒤를 따라 죽자고 달렸다. 버스가 언덕 위를 넘어 사라져서 보이지 않으면 나는 땅에 쓰러져서 하염없이 울곤 했다.
그 모습이 떠오르자 나는 이제 70이 넘은 나이가 되었음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명상의 상상 속에서 그 어린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는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서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꼭 껴안았다.
명상을 끝내고 눈을 떴을 때 나의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웠고, 나의 가슴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사랑하고픈 감정으로 가득했다.
자비명상을 열 번 한 것보다도 더 큰 자비심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외로움과 그리움이 많은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다 높은 자아로 나의 상처받은 어린자아를 껴안아주면서 치유를 경험하였고, 아버지와 화해하였고,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사건들을 기억해 보라. 나는 어떤 책들을 읽었으며,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어떤 사람들을 존경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을 미워했는가?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나의 무의식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살펴보라. 무의식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으로 떠올려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나 명상의 깊은 고요 속에서 바라보면, 무의식의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경험의 파편들이 조금씩 의식으로 떠올라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명상 속에서 의식 위로 떠오른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살펴보라. 그리고 보다 높은 자아로 그것들을 통합하여 성장하고, 치유를 경험해보라.
글 | 윤종모 주교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