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한겨레....
참여정부인 노무현 정부를 대표하는 단어에는 어떤것들이 있을까.
물론, 노무현 정부를 상징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겟지만 그중에서도 상징적인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반미>>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유인즉은, 반미좀 하면 어떻냐는 그분의 발언을 놓고봐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반미적 분위속에서 정권을 잡은것 역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며, 아울러 그런상황에서 정권을 잡았던 까닭에 임기내내 국민들이 대통령님에게 그러한 부분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요구했음은 물론이고 설상가상으로 시시때때로 그것에의 시험대 위에 올라 있었던것을 보면 분명 그렇다.
그러나 그것 외에도 참여정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또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로드맵>>이다.
이는 참여정부가 해당 분야의 정책에 대해 일련의 <<진행 계획 지도>>같은것을 작성, 정책을 그 로드맵에 따라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내용인데, 예컨데 남북관계 로드맵, 노동문제 로드맵 따위의 것들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다.
필자가 FTA관련 글을 쓰면서 뜬금없이 로드맵 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이유는, 바로 지금 논란이 되는 FTA 또한 참여 정부의<<경제정책 로드맵>>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 당시의 애초 FTA 관련 로드맵은 어떻게 정리되어 있었을까.
애초 참여정부는 미국과의 FTA를 서두르지 않았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FTA 관련한 로드맵을 보면 미국과의 FTA는 싱가폴, 중국, 일본과의 FTA를 먼저 체결하고 시행한후, 충분히 경험 한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 어느정도 준비가된 그때 해도 늦지 않은것으로 그렇게 정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2003년 당시만해도 노무현 대통령님은 미국과의 FTA를 서두르지도 않았고 설사 자신의 임기내에 체결하지 못한다고해도 상관이 없다는 태도를 견지 했다고 한다. 때문에 우석훈 교수의 발언에 따르면 당시 참여정부 내에서의 FTA 관련한 초기 논의중에는 네덜란드형 으로 할것인지 스웨덴형으로 할것인지에 대한 따위 다양한 논의,담론이 오갔었다고 한다.
참여정부가 미국과의 FTA에 목매달지 않았음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태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노 대통령님이 2003년 5월 방미한 자리에서 <<농춘문제가 해결되고 개방할 준비가 되기전까지 한미 FTA 체결 불가 입장>>을 미국측에 공식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놓고볼땐, 필자 개인적인 의견으로 생각해 보건데는 미국과의 FTA를 서두르지 않았다 라는 표현보다는 어찌보면<<애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해도 좋을듯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쉽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던듯도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에서의 한미 FTA 는<<2006년 어느날 급작스럽게 시작>>됐다. 왜였을까.
필자는 그 이유에 대한 <<추측>>을 돈마니 님의 블로그에 공개된 동영상과, 한미FTA추진과정에서 드러난 여러가지 정황상 근거와 한반도 정세등을 토대로 언급하려 한다.
( 자료인용 출처 ;; http://blog.naver.com/donmany0203/30121221047
노무현 대통령님은 취임초인 2002년 당시<<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위신을 서로 존중하는 상호협력, 상호평등의 관계를 통한 대미관계>>를 천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 대통령님의 발언은 대미관계에서의 중요한 변화가 있을것 이라는것에 대한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자 노 대통령님 취임 직전인 2003년 2월,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측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리겟다>>고 통보한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관리를 급파해서 대미정책의 변화를 약속하며 두달뒤 방미전까지 시간을 줄것을 미국측에 요청했고,두달후에 신용등급 유지의 댓가로 소위 경제운용4대원칙인<< 개방, 규제완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등을 제시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무디스의 사실상의 협박에 의해 일련의 조치를 내놓고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긴 했지만, 당시 이러한 조처 자체가 적어도 미국과의 FTA를 성사시키기위한 전제조건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님의 입장을 급선회하게 한 요인은 대체 무엇이었을까.당시 무디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님은 그때까지도 농촌문제해결 과 개방준비 문제를 들어서 미국과의 FTA 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었던것 같다.
그러나 그랬던 노 대통령님의 입장은 2005년 9월 코스타리카 방문 이후에 <<미국과의 FTA>>로 급선회 하게된다. 왜였을까.
여기에는 두가지 요인이 작용 했다.
그중 첫번쩨는 글 서두에 적시한것 처럼 <<신용등급을 앞세운 무디스의 협박>>으로 대변되는<<미국의 다각도의 압력>>이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협박에도 불구하고 2003년 당시까지도 여전히 미국과의 FTA 에 비 협조적인 노무현 대통령님을, 여러기지 이유로 FTA를 체결케 해야만 했던 미국이 그냥두었을리 만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님의 FTA관련한 입장을 급 선회하게 만든 또하나의 요인은 다름아닌 당시에<<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현종>>의 존재였다.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님을 수행했던 김현종 본부장이 << 선진형 통상국가로 나가기 위해선 한미 FTA 가 반드시 필요하다. 협상과정에서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것>>이라고 보고했고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우리에게 필요한것이면 추진하자>>고 답했으며, 뒤이어 참여정부는<<개방형 통상국가>>를 선언하면서 2006년 미국과의 FTA 협상을 공식화 함으로써 미국과의 FTA가 태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쯤해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무디스의 협박과 김현종 본부장의 보고라는 이 두가지 요소가 대체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님의 입장을 급선회 하게 만들었을까.
가장 먼저 언급할 존재가 <<무디스의 협박>>부분이다. 모두가 아다시피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은 그것 자체로 더 없이 좋은 협박의 무기가 된다.
실제로 미국과의 대미관계에서 미국의 눈에 마뜩치않게, 속된말로<<아구똥>>하게 비쳤던 노무현 대통령님을 협박하기 위해 대통령 취임직전 발표됐던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전망 부정적 강등 발언이후에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환율이 뛰어 올랐다가, 이처럼 미국과의 FTA 로 급선회하며 급기야 미국과의 협상을 공식 선언한 직후인 2007년,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절묘하게 때를 맞춰 취해진 무디스의 한국 신용등급 상향조정 조치 이후,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음은 이를 충분히 반증하는것 아니겟는가.
이처럼 취임전<<당당한 대미관계>>운운했던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무디스의 채찍과 당근>>이 이처럼 실제로 무시할 수 없는 위험으로, 그리고 현실로 다가왔음을 미뤄보건데, 그리고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절묘하게 협상 공식선언직후 무디스의 태도가 급변했음을 미뤄보건데, 미국과의 FTA협상 시작을 공식 선언하기 직전까지 미국측이 어떤식의 압력을 행사했는지는 충분히 미루어짐작할 수 있는 그것일 수 밖엔 없는 것이다.
또하나, 그렇다면 이처럼 미국이 무디스를 내세우는등, 그야말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국과의 FTA를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시도해야만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이 <<전략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한국을 <<옭아매둘 필요성이 절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FTA를 <<강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하기 짝이 없다는 미국과의 FTA로 인해 미국은 한국에서 빼앗아갈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중 첫번쩨는 경제적인 이득이다.
이미 미국은 취임직전 무디스를 통한 협박으로 노무현 대통령님 취임하자마자 그분에게서 <<개방, 규제완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성제고>>등의 이른바 <<경제운용 4대원칙>>에 대한 확답, 양보를 얻어냈다. 이뿐인가. 미국과의 FTA가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이유는 유례없이 많은 독소조항 때문인데 취임초 양보를 얻어낸 경제운용 4대원칙과 더불어 이러한 독소조항 만으로도 한미 FTA가 발효되 본격적으로 교류(?)가 시작되면 미국은 얼마든지 마음먹은대로 한국 경제를 수탈하고 유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노무현 대통령님을 사실상 협박해 FTA를 체결한 이유는 두번쩨, 전략적 목적 때문이었다.
이미 위키리크스에 의하면 미국은 한국과의 FTA를 <<한국을 옭아맬 아주 중요한 수단>>이라며, 미국이 한국과의 FTA를 추진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을 이미 분명히 하고 있다.
FTA는 미국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옭아맬뿐만 아니라 한국을 경제, 사회, 정치 전반에 걸쳐 옭아맴으로 인해서 그것을 통해 결국에는 <<중국 포위전략>>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전락적 요충지로서의 중요한 수단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것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문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증명된바 있다.
주한 미 대사관의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가 2009년 9월24일 방한을 닷새 앞둔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장관에게 보낸 극비 문서에서 << 한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한국을 미국에 묶어두는 상징의 역할을 할 것>>이라 언급한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그러한 필요성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집요하게 FTA를 강요했고, 미국의 요구에 시큰둥하는 태도를 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을 움직여야할 필요를 느꼇을 것이다.
그래서 무디스의 존재 다음으로 이쯤해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님의 입장을 선회하게 만들었던 <<핵심주역>>으로 지목되는<<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그렇다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대체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본문에 링크해놓은 동영상에 보면 김현종 통상교섭 본부장은 미국의 간첩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예컨데 공개된 위키리크스 전문에 따르면 당시 김현종 본부장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정부가 약가 적정화 방안을 담은 건강보험 시행규칙을 일방적으로 입법예고하지 않도록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고 보고한 인물>>로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현종 본부장은<<버시바우 대사가 한국의 약가적정화방안을 무시하고 새로운 약가결정방안을 FTA 협상에서 논의하도록 하겟다고 주장하자 이를 양해할 수 있다>>고 까지 말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님의 입장이 <<느닷없이 미국과의 FTA로 급선회한 이유>>는 대충은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한미 FTA로 인해 수혜를 입는 대상은 서민들이 아닌 대한민국 1%라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인데, 이러한 입장(필자주;; 즉, 미국과 삼성)에서 한미 FTA를 성사시킨 일등공신인<<김현종 본부장>>은 우연하게도 그 직후에 삼성전자 글로벌 법무책임자(사장급)로 영입됐다.
과연 이게 우연인가?
이처럼 미국이 한국과의 FTA를 반드시 추진해야 하기에 무디스를 내세우는등 다양한 경로와 수단을 통해 노 대통령님을 압박하고 협박했다는 점과, 심지어는 미국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 던 김현종의 감언이설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님의 입장은 그러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급선회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필자주;; 물론, 이 외에도 청와대 내에서 파워가 커진 친미파의 입지 또한 노 대통령님에겐 커다란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
물론, 당시 김현종 본부장이 어떤 말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설득했는지는 모르겟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국의 협박은 둘쩨치고라도 김현종 본부장의<<협상만 잘하면 이익을 봅니다>>라는 말에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이를 받아들였을가 하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무디스의 협박이 계속되던 2003년 미국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까지도 여전히 미국과의 FTA에 회의적이었던 노무현 대통령님 이었고, 더구나 노 대통령님 이라는 인물 자체가 참으로 사상적으로 너무도 많은 복잡한것들을 두뇌에 담고 계셧던 분 아니었나.
그렇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견해이지만, 아마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님의<<철학>>또한 미국과의 FTA로의 급선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님은<<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웠던분 이었고 그 누구보다도<<남북분단 문제>>를<<민족적 차원>>에서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관련정책을 고수하셧던 분이었다. 오죽하면 남북관계만 잘하면 다른건 깽판쳐도 좋다는 그 유명한 발언을 하셧을까.(필자주;; 그분의 그당시 표현 비난하는게 아님, 더구나 지금 이명박 새끼가 하는짓거리를 보면 백번 천번 공감함)
그렇다면 모르긴 몰라도 노 대통령님은 <<한반도 평화>>와 개성공단등으로 대표되고 상징되는<<남북한 공존공영체제>>를 유지하고 이뤄내기 위해서, 또 그러한 부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미국으로부터,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 반대 급부로 그와 관련된 제반적인 부분에서 되도록 많은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미국과의 FTA로 급선회 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국정 지도자로서의 <<고뇌>>와 <<번민>>이 또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것 이라는 얘기고, 결국엔 그러한 << 현실>>앞에서 당시 미국과의 FTA는 피할 수 없는 존재로 다가왔을것이다 라는 얘기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님의 참여정부는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서 남북간 공존공영과 민족적 번영의 활로와 출구를 모색했고 아울러 그것을통해 국내의 중소기업을 살리는 또하나의 중요한 허브로 만들기위해 노력했으며, 실제로 이러한 일련의 사업을 핵심적 대북사업으로 지목하고 한미 FTA 에서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국산으로 인정받기위해 이것을 관철시키기위해 노력했음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것은 역시나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전문에서 보는것 처럼, 김종훈 당시 수석대표가 비록 훈령을 무시하고 미국에 간첩질을 하긴 했지만, << 청와대로부터 개성공단을 협상의 초기 제안에 포함시키라는
강한 훈령을 받았다>>는 부분에서도 그대로 증명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것을 놓고 따져봤을때 애초 싱가폴이나 일본등과 FTA로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국내환경을 봐가면서 추진하기로했던, 또 임기내엔 추진 의사가 없었던 미국과의 FTA에 대한 입장이 급선회 할 수 밖에 없었던 내막은 대충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처럼 계속되는 미국의 압박과 협박, 그리고 거기에 더해 철저히 미국을 위해 << 죽도록 싸웠고>> 그것으로인해 상당한 이득을 가져가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던 김현종의 감언이설과 거짓보고는, 그것 자체로<<반미, 탈미>>를 외쳤던 임기초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싫지만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며 그 반대 급부로 많은것을 얻어낼 수 밖엔 없다>>는 일종의 << 친미,용미 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음을 자각시켜주었을 가능성이 크고, 바로 이러한 <<현실론>>이라는 상황이 <<시너지 효과>>를 발해, 노무현 대통령님은 이른바 4대선결요건은 물론이고 설상 가상으로 미국이 요구했던 전략적 유연성까지 받아들이는등 적극적으로 미국과의 FTA를 받아들인것은 아니었을까 그말이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모든내용은 비록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이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님의 존재와 그동안 드러난 위키리크스의 외교문서 내용,그리고 미측의 행동과 당시 외교 관련자등의 행동과 한반도 정세등을 종합해 따져볼때는 충분히 가능한, 터무니 없는 추측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이 미국과의 FTA를 선언한 5년후인 바로 바로 몇일전, 한미 FTA에 목숨을 걸고 있는 한나라집단은, 노무현 대통령님을 광고에 등장시켜 한미 FTA는 반드시 체결해야만할 정책이라 홍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과연 용인될 수 있는 처사일까. 분명 두말할것도 없이 용인할 수 없는 처사임은 물론이고,심지어는<<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까지 생각하기에,이명박씨와 한나라집단 모두는 당장에 해당 광고를 철회하고 모든 국민들이 보는 앞에 대국민 사죄는 물론이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무덤에가서 그분 앞에가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첫번쩨, 필자가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에서 보는것 처럼 당시 미국과의 FTA추진은 <<강대국의 강요>>에 의해 선택한 약소국인 한국의<<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참으로 인연이 깊은 나라다. 일제로부터 식민치하에 있을때부터 시작해서 이후 광복후와 전후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곳곳,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 생활 전반에 걸쳐 그들은 분명히<<우리의 의도대로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그림자>>로써 우뚝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다시말하면 작금의 한미 FTA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무디스를 앞세운 미국의 협박, 미국이 세계패권국이라는 강대국 이기에 약소국인 한국은 그나마도 분단국가로서 모든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속에서 생존해야만 한다는 현실등을 말해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반드시 극복하고 뛰어 넘어야만 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대한민국의 생체기>>를 대변하고 상징하는것 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명박씨는 대체 뭐가 그렇게도 자랑스러워서 이미 고인이된 노무현 대통령님을 끄집어내 광고질을 한단 말인가.
정녕 니놈에겐 미국의 앞잪이 노릇을 하며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는 그 외교관들의 이간질과 매국질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웠고, 정녕 니놈에겐 미국의 압력과 간첩 양측에 눌려 샌드위치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 노무현 대통령님 개인의 인간적 고뇌가 그렇게도 하잘것 없는것으로 보여졌으며, 정년 니놈에겐 이런 불쌍하고 가련한 대한민국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 보였단 말인가.
한미 FTA는 민족분단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미국에 끌려다녀야만 하는 한국의 현실을 대변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라는 새끼가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는 커녕, 그것을 이용도 아니고<<악용>>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 하는 대목에선, 대체 당신이 당시 미국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는 그 간첩들과 뭐가 다른것인가 하는것을 필자는 분명 묻지 않을 수 없고 분명 비난은 둘쩨치고라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족의 생채기를 보듬고 치유하기는 커녕, 그 아프고 아픈 생채기 위에 올라가 천연덕 스레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외치는 당신은, 그래서 분명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필자가 노무현 대통령님을 광고에 이용한 이명박씨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두번쩨,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님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얻을수 있는 최대한의 모든것을 얻어내려 고군분투>>했던것이 명백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당신은 한미 FTA를 통해서 대체 무엇을 얻어냈는가. 또 무엇을 얻어내려 노력했고 고민했는가 하는것을 따져볼때도 당신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물론, 한미 FTA를 추진했던 노무현 대통령님은 FTA관련한 내용적 측면에서 볼때는, 일방통행식으로 이것을 강행한것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상황과, 우리가 분단국가로서 미국의 써포트 가 절대적일 수 밖엔 없는 상황 이라는 점에선, 필자가 당시의 노 대통령님 입장에서 였더라도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최선은 아니지만 <<최선의 차선책>>일 수 밖엔 없었을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적어도 민족번영을 상징하는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북한과의 통일을 일궈낼 수 있는 기회였으니 당연히 그렇지 않은가. 설사 독소조항으로 가득찬FTA라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통일된 대한민국을 일궈낼수 있다면 국가 지도자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을것 이라는것이고, 그러한것을 국민들 또한 마냥 비난만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님은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나 소고기와 관련해 미국을 상대로 이명박씨 당신처럼 마냥 퍼주는 외교를 하진 않았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분명히 챙길건 챙기는등, 그야말로 어느정도는 << 기브앤 테이크>>에 충실한 외교를 했었다는 얘기다.
▲ 2003.12 = 미국 워싱턴주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 발견
▲ 2003.12.27 = 한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전면금지
▲ 2005.2.28 = 한.미 광우병 전문가협의회 개최
▲ 2005.5 = 국제수역사무국, 30개월 이하 소 살코기 교역 자유화 규약 채택
▲ 2005.6.10 = 미국 광우병 감염 소 추가 발견
▲ 2005.12.15 = 박홍수 농림부 장관, 미국과 쇠고기 협상 착수 공식 발언
▲ 2006.9.8 = 농림부, 2년10개월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최종 승인
▲ 2006.10.30 = 미국산 쇠고기 9t 수입
▲ 2006.11.24 = 수입 미국산 쇠고기서 뼛조각 발견, 전량 반송.폐기.
▲ 2007. 3.5∼6 = 한-미, 쇠고기 검역 관련 한미 농업 고위급 협상
▲ 2007. 4.2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 2007. 4.27 = 미국 쇠고기 6.4t 검역통과
▲ 2007. 5.22 = 국제수역사무국(OIE), 미국.캐나다 광우병위험통제국 판정
▲ 2007. 5.28 = 권오규 부총리, 미국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상 선언
▲ 2007. 5.30 = 미 쇠고기서 갈비발견
▲ 2007. 6.4 = 미 쇠고기 검역 전면 보류
▲ 2007. 6.8 = 농림부, 미 쇠고기 검역보류 해제
▲ 2007. 7.13 = 롯데마트, 미 쇠고기 판매 개시
▲ 2007. 7.25 = 농림부, 가축방역협의회 개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논의
▲ 2007. 8.1 = 미 쇠고기서 척추뼈 발견
▲ 2007. 8.2 = 농림부, 미 쇠고기 전면 검역중단 결정,반송
▲ 2007. 8.2 = 미국,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의 요청
▲ 2007. 8.24 = 농림부, 미 쇠고기 검역중단 해제..수입 재개
▲ 2007.10.5 = 미 쇠고기서 등뼈 발견..검역 전면 중단
▲ 2007.10.5 = 정부, 미국에 소갈비 개방..SRM.내장은 불허 방침
▲ 2007.10.12 = 한미 쇠고기 수입조건 개정 1차 협상 종료..합의 못해
그러나 당신은 뭔가.
미국과의 FTA를 통해 대체 뭘 얻어냈고, 뭘 일궈내려고 노력했고 발버둥 쳣으며, 그렇다고해서 최소한 고민은 했었나. 다음은 당신이 미국에 가 소고기 협상한 내용의 전부인데, 지금 보는것처럼 당신은 << 미국의 전면개방에 전면개방 허용>>하며 << 헤벌레 웃는것>>이 전부 아니었나.
▲ 2008. 3.5 = 미 무역보고서, 한국에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촉구
▲ 2008. 4.11 = 한미, 쇠고기 수입조건 개정 협상 재개
▲ 2008. 4.18 =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세계최초로 조건없는 전면개방)
특히나 당신이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 이라는 협상국에 보인태도를 볼땐 당신이 고민했고, 발버둥쳤고, 일궈내려 노력했고 고민했던것은 노무현 대통령님 처럼<<국익>>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시의 카트 운전수노릇을 얼마나 멋지게 해낼 수 있을까>>하는것, << 어떻게 하면 캠프데이비스에 초대받아 멋지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하는것, <<어떻게 하면 값싸고 질좋은 미국산 소고기 마음껏 먹으라는 홍보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하는것, << 어떻게 하면 비까번쩍하게 사진 박는 전시행정을 모든 국민들에게 내보일 수 있을까>>하는것 아니었나.
관련자료를 검색하기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던중 필자는 우연하게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님이 FTA와 관련해 집무실에서 메모지에 해당 관련정책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위해 메모지에 예컨데 << 양극화는 사실인가,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등등의 수도없이 많은 <<깨알같은 고민의 흔적>>,그것도 << 국익을 담보해야만 하는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깨알같은 고민의 흔적>>이 있었음을 대통령 기록실의 자료공개분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러는당신에겐 대체 이와 관련해 무슨 고민을 했는가 하는것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 말대로, 당신들이 홍보하는 동영상속 내용 그대로 노무현 대통령님의 결단은 오로지 << 경제적 실익을 중심에 놓고 진행된 협상>>이었고, 아울러 <<다음 세대를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신이 내리려 하는결단의 실체가 이와 같은질데 대체 어따대고 함부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광고에 등장시켜 팔아먹는가.
북한과의 관계 다 말아먹고 개성공단까지 씨를 말려 북한과의 공존공영은 물론이고,설상가상으로 눈 뜨고 중국에 잇권 다 뺏기고 중국에 붙들려 짓눌린상황, 그리고 그것으로인해 국내 중소기업을 다 말아먹어버린 상황에서, 그러한 상황을 만든 주범인 당신이 내리려하는 FTA관련한 결단에 대체 <<무엇이 남아 있기에>>, 이처럼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님까지 끌어들여 그분을 욕보이려 한단 말인가 그말이다.
이러고도 니놈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필자가 노무현 대통령님을 광고에 악용한 이명박씨를 비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님을 누가 죽였는가 하는것이다.
이명박 당신 아닌가. 이명박 당신이 전임 대통령 운운하며 뒷구멍으로 정치검찰 동원해서 결국에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잡아죽인것 아닌가 그말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당신은 해당광고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그 책임까지 뒤짚어 씌우고 있다.
허구헌날 모든 국정실패에 대해<<노무현 탓>>만 하는것도 모자라서 심지어는 자신이 죽음으로 내몬 그분 죽음 앞에대고<<차명계좌>>운운했던 당신이, 이제는 FTA만 노무현 대통령님 덕분 이고 업적 이라고 하는것또한 참으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파렴치한 태도인데,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그 책임을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뒤짚어 쒸우다니?
이처럼 정치보복으로 전직 대통령님을 잡아죽인 당사자가 그것에 대해 반성하고 평생 뉘우치고 살아도 모자란 판국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덤에서 또다시 끄집어내 책임을 묻는다는 행위는 소위 부관참시에 다름아닌 행동인데, 이것은 참으로<<개 망할 후레자식>>이 아니면 감히 할 수 없는<<패악질>>이 아니고서 대체 무엇인가 하는것을 생각해볼때도, 노무현 대통령님을 광고에 악용해먹은 이명박씨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것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님의 FTA관련한 실패와 그 책임이 아주 없다고 말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FTA가 <<등신외교>><<퍼주기 외교>>로 대표되는 <<MB표 FTA>>와는 분명 다르다는사실과, 한반도 정세속에서의 당시의 미국과의 FTA를 결정할 수 밖에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존재는 그 자체로 우리 대한민국의 우울한 자화상임을볼때, 우리 국민들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살해한 피해자인 노무현 대통령님을 무덤에서 다시 끄집어내,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개망나니같은 패륜적행위>>를 자행하는 당신 이명박을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님이 미국과의 FTA에 관해 얼마만큼의 깊은 고뇌에 쌓였였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자료 하나를 첨부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댓글 개인이 가진 정치적 편향성이야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현재의 사안인 FTA만 가지고 얘기를 하면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열렬한 지지자가 썼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한 제목이....글을 읽고 싶지 않게 만듭니다.
도대체 그분은 다 잘 하신 건지....잘못하신 건 하나도 없으신 건지....
재임기간 동안 전지전능한 신이셨던 것인지....
내용을 끝까지 다 읽어보셨는지요 제목만 보고 판단하시고 댓글은 다신거 같은데 노무현 대통령도 분명 잘못이 있다고 쓰여있구요 전지전능한 신으로 표현되어 있지도 않는데요ㅎㅎ
개인적으로 열렬한 지지자 맞습니다. 미국에서 꼿꼿하게 서서 부시와 악수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가
맞습니다. 그리고 미국가서 골프차 운전하겠다고 드민 이명박의 안티가 맞습니다...저는...
글을 읽기 싫으셨다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는 자유게시판이니깐요...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다 잘했다는 말이 아니니 참고바랍니다...
단지 그 양반의 막걸리 잔이 그리울뿐이니깐요...
네..안 읽었습니다.
다만...미국에 인사하러 가지는 않겠다셨던 분께서, 당선자 자격으로 인사를 가셨고, 거기서 '수용소' 발언도 하셨던 것이 새삼 떠오를 뿐.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고, 역사가 평가할 중요한 자리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현대통령과 비교를 해서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그 지지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준비해야겠지요.
편향적 시각으로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서, 그 분의 성함이 자꾸만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려야 하는지......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