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에서 온 한 대학 교수가 지혜를 얻기 위해 유명한 Zen을 만났다. Zen은 그를 티타임에 불렀다. Zen은 교수의 컵에 차가 넘칠 때까지 붓고 또 부었다. 교수가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자신을 만나러 온 방문자를 가득 차 있는 컵으로 비유했다. 그리고 그 컵을 채우려면 먼저 컵이 비워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러남-유기체내에서의 쉼(휴식)
여기서 다루고 있는 상담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물러남(이전의 게슈탈트로 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나는 독자들에게 상담과정에 크고 작은 주기가 있었고 물러남이 마지막 단계가 아님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사실상 자각 주기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역시 작은 주기들이 있다. 물러남은 반드시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활발한 물러남은 한 세션에서도 여러 번 일어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물러남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상담자가 여름 휴가를 가야 하는 것과 같이 유기체의 시간에 맞추기보다는 달력에 맞추어서 물러남의 과정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삶에서 이러한 변화(상담과정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들은 끝과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빈 공간에 친숙할 필요가 있으며, 빈 공간을 참아내고 탐색함으로 무익한 공간을 기름지고 필요한 공간으로 바꿀 필요도 있다. 이러한 빈 공간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비워짐과 넘쳐남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며, 또한 게슈탈트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한다. 동시에 적당한 시간이 되었을 때 움직일 줄(변화할 줄) 아는 책임감과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상태를 견딜 수 있는 의지도 이러한 빈 공간에는 필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변화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상담과정의 핵심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기가 태어나는 것, 배우자의 죽음, 병으로 진단되는 것, 직장에서의 승진, 식단의 변화, 습관적으로 사람을 불신하는 태도에서 사람을 믿고 열려진 태도로 변하는 것과 같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의 변화 등을 포함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의 시점에서 자기 조절 과정에 물러남이라는 기간을 갖게된다.
게슈탈트가 형성되고 없어지는 과정에서 물러남이라는 것은 쉼을 의미하고, 심리적 에너지를 이전에 몰두해 있던 것에서 새로운 욕구가 다시 나타날 수 있도록 비워진 상태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 게슈탈트적인 의미에서 배경은 전경이 될 수 있다. 상담자가 변화과정에서 필수적인 물러남과 고립됨을 내담자가 탐색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구체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여 삶의 다른 부분과의 연결을 다시 확립하도록 하는 실험을 격려함으로 균형을 잡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종 사람들은 짧게 끝나는 과정만을 원하고 개체 내에서 발생하는 불편한 과정에서는 달아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질적이고 주의를 기울이며 의도적인 기능을 하는 자각만이 빈 공간이 무익한 것인지 아니면 필요한 것인지의 차이를 밝힐 수 있다.
끝나는 것에 대한 내담자의 정서적인 반응은 분노, 슬픔, 좌절, 무기력함, 슬픔, 죄책감 등이 있을 수 있다. 내담자는 자신이 더 나아져야 했어야 한다거나 상담자가 말했던 것을 더 많이 기억했어야 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더 이상 비밀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기도 한다.
정서적 반응 단계에서 인내심과 참을성과 신뢰는 치료적 자질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내담자의 정서적인 반응을 억압하거나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유기체가 몰두하는 것을 차단하기 때문에 치료적으로 심각한 오류이다. 정서적인 반응에 대한 유기체의 욕구가 달라짐에 따라 치료자도 그 과정을 따라가 줘야 하며 지지해주어야 한다.(Clark, 1982: 56)
애도과정의 측면에서 마지막 단계는 실존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사람에게 이 과정은 매우 독특하다. 처음에는 부정을 하다 분노가 발생하고, 상실을 인정하는 협상과정 후에 우울감이 찾아오고 그 뒤에 따라오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인지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종결-상담의 관계를 종결
모든 내담자 뿐 아니라 게슈탈티스트들도 종결에 대해 특별히 선호하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자마자 종결로 급하게 가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이는 이 종결을 가능한 한 늦추려고 하기도 한다. 종결은 상담 과정 중에서 연구되어져 온 것들 중의 하나이며, 과거에 미해결 된 과제나 회피되어져 온 과제로 인해 현재나 미래의 굿바이를 완전하게 접촉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여전히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가 된다. 혹자는 hello라는 말을 충분히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굿바이를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전 게슈탈트를 해소하는 것은 반드시 이전에 형성된 게슈탈트에 내재되어 있던 사람이나 삶에 대한 태도가 손실되는 것을 의미한다. 종결에 대해 불만족했었던 경험을 가졌던 내담자들에게 종결은 불안과 고통의 단계일 것이다.
‘게슈탈트 주기 내에서 게슈탈트를 해소하는 과정에는 슬픔이 필수적인 감정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변화의 과정에서 슬픔이 상실감에 필수적인 것처럼 슬픔은 삶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다.’(Clark, 1982: 50)
게슈탈티스트들은 슬픔을 경험되어져야하고 완전히 내담자 안에서 살아져야 하며 음미되어져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슬픔은 극복되어져야하거나 끝내져야 하는 문제가 아닌 삶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적당한 시기에 그리고 동시에 종결의 시기에 들어가야 하며, 이 종결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상담자는 내담자가 그 중요한 관계의 끝을 인지적으로 자각하도록 도우면서 내담자 스스로가 감정을 정리해서 표현하도록 하게 한다. 보통 많은 인간관계는 안 좋게 끝나기 때문에 이 종결과정은 특별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종종 죽음이라는 것은 준비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갑작스런 종결을 가져오며, 이혼에 대한 결정은 다른 한쪽은 예기치 못하게 한쪽 측면에 치우쳐진 결정들이다. 직장에서의 사직이 많은 외부적인 일들과 집단의 기대로 인해 무산될 수 도 있다. 상담 관계의 만족스런 종결에 대한 치료적 경험은 특별히 종결에 대한 이전의 경험에 대해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현재에 잘 이루어진 모든 굿바이는 과거에 완결되지 못했던 굿바이를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자연스럽거나 혹은 부자연스러운 결말을 내담자가 잘 종결하도록 도울 수 있는 교육적인 가치도 있다.
모든 종결이 이전의 사별이나 상실에 대한 경험을 심리적으로 다시 일으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 죽음으로 인한 종결을 해야할 때, 보다 생생하게 고통이 강화된 어린 시절의 상실감을 기억해내곤 한다. 내담자들은 또한 슬픈 감정을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가족들의 오래된 내사를 만날 수 도 있다. Jemima는 크리스마스축제에서 칠면조 고기가 식탁에 차려졌을 때 칠면조에 대한 불쌍함을 표현했고 그것에 대해 바보라고 놀림받던 기억에 다시 접촉했다. 심지어 자동차를 파는 것조차도 오래 전의 슬픔에 고착된 게슈탈트를 다시 자극할 수도 있다. 이 단계는 회피의 가능성이 많은 단계이다. 예를 들어 내담자들은“우리는 또 다시 볼 수 있어”“나는 연습해보고 싶은 거야”“이것은 진짜 굿바이가 아니야. 난 널 보고싶을 때나 필요할 때 볼꺼니까” 라고 할 수도 있다.
상담자에게도 이 단계는 종종 문제가 되기도 하여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당신이 그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나서 건강하고 실제적인 상태에서 또 다른 사람과 완전한 관계를 충분히 느끼는 것과 같다. 친밀감과 진정한 대화의 상호작용은 종종 진실로 서로를 존중하고 좋아하게 되는 이 마지막 단계에서 성립될 수 있다. 이것은 아이에게 독립할 것을 원하는 부모와의 갈등과는 다른 것이다. 어떤 상담자는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기 때문에 소중하게 길러왔던 관계를 상실해버린, 내키지 않은 경험에 오랫동안 집착하기도 한다. 또 다른 상담자는 자신이 버렸던 이 주제를(상실) 방어하면서 ‘새가 날아갈 수 있도록 새를 둥지 밖으로 차내는 것’처럼 너무 빠르게 행동할 수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서비스하는 차원에서 자신에 관한 비슷한 정보를 충분히 잘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기 자각을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도 종결을 성공적으로 완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내적으로 상담자가 내담자와의 관계 뿐 아니라 그 순간 순간의 경험에 살아서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능력이다. 내담자는 또한 이러한 매혹적인 여행에서 뉘앙스나 작은 측면에 섬세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격려 받고 도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의 목적대로 게슈탈티스트들이 어떻게 종결을 상담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연적인 과정으로 다루는지 기술했다. 독특하게 종결에 접근하는 게슈탈트적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시작으로부터 중심적인 주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담자는 세션 후에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할지 안 할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책임 및 선택, 치료의 목표, 자발성, 치료자에 대한 마술적인 귀인, 예전의 소망 등의 주제가 바로 시작부터 탐색의 초점이 될 수 있게된다.
게슈탈트 치료의 핵심적인 특징은 치료자는 관찰자나 설명해 주는 사람으로 또는 인도자로서 옆에 서 있으면서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이 치료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담자에게 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무엇을 얻어 갈 것인지, 치료를 충분히 계속해 나가기 위해 이 치료에 가치를 둘 것이지를 결정하는 책임감을 내담자에게 넘겨주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된다.(Enright, 1971:120)
몇몇 게슈탈티스트들은 경험의 주기를 되풀이하면서 관계의 끝으로 향해 가는 종결이라는 주제를 기다릴 것이다. 어떤 내담자는 이 과정에 잘 맞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맞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단계의 전형적인 주제들
이 단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접촉혼란은 융합이다. 몰입하거나 적절한 공감은 이 단계에서 융합의 건강한 측면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르시스틱한 내담자가 자신과는 다른 욕구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독립되고 분리된 상담자에게 공감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내담자가 상담관계를 종결할 때 융합으로부터 물러나기 싫어하는 것은 장애가 될 수 있으며 물러남에 대한 게슈탈트적인 경험에 만족스런 결론을 제한할 수 있다.
종결을 꺼려하거나 또는 너무 끝내고 싶어하는 것
상담이 일단 시작되면 그것이 줄어들었거나 또는 변형되었을지라도 내담자는 어떠한 습관적인 형태로든 종결의 패턴을 나타낸다. 고통에 대한 공포심이 강박적으로 있는 사람은 그들이 고통을 피하려 시도할 때마다 종결을 빨리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직면할 필요가 있다. 자기를 고통으로(강아지 꼬리를 자르는 경험처럼) 학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서둘러서 강하고 완전하게 상담자와의 분리를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 내담자는 11년간 이전의 상담자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태가 좋아졌다.. 그녀는 이전의 상담자와 종결을 한 직후에 다른 상담자와의 관계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이 내담자에게서 시작부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과제는 시간제한을 둔 관계에서 그녀가 종결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애착과 분리에 관한 주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애착과 분리 또는 물러남이라는 주제는 다시 작업될 필요가 있다. 내담자와 상담자는 이 주제들이 이미 다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그러나 그들은 유아적 또는 아동기 시절의 애착과 분리에 대한 주제에 관해 다시 작업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 그들이 문제를 경험한 이후로 많은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 주제는 복잡하고 다양한 수준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내담자에게는 버려지는 것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 상담자가 자신을 버리기 전에 먼저 상담자를 버리려는 바램들이 상징적으로 종종 활성화 될 수 있다. 이미지나 꿈을 회상하는 것, 탄생에 대한 공포를 덜어주는 것 등이 이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다. 게슈탈티스트들이 이 단계에서 할 수 있는 특이한 반응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상담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작업할 때 내담자가 분리를 경험하는 것을 곁에서 같이 참고 견디어 주는 것이 전부이다.
상담이 종결로 향할 때쯤 Ruth는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는 훈련여행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꿈의 또 다른 부분을 확인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그 훈련의 운전자임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운전자로서 그녀 자신에 대한 유능함과 선택할 수 있음과 힘에 대한 느낌을 자신의 경험으로 확인하고 통합시켰다.
일반화와 통합
비록 상담자나 외부 관찰자에게는 명백하게 보일지라도 대부분의 내담자는 상담과정에 배운 것을 일반화하고 삶에 적용하고 그것을 통합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
상담 중에 Janet은 그녀 자신의 부드러운 면을 포용함으로 항상 강하고 독립적인 모습에서 도움을 쉽게 구할 줄 아는 모습으로 변화했다. 예전에는 항상 두 가지 모습이 싸웠던 것에 반해 그녀가 만든 마스크를 사용하여 과장되게 말하고 연기함을 통해 자신 안의 두 가지 극단적인 모습을 탐색함으로 종국에 이 두 가지 자질을 통합하였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동료와 친구들 사이에서 배웠던 행동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인지적인 것과(이해) 행동적인 것(리허설과 상상), 두 가지를 모두 준비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명백한 퇴행
많은 내담자들은 상담의 마지막과정에서 그들이 이전 단계로 돌아갔다거나 예전의 증상으로 돌아갔다고 불평한다. 때때로 그들은 ‘내가 처음 당신을 보러 왔을 때 보다 더 나빠졌어요’라고 말한다. 사실, 내담자들이 훨씬 예전에 풀었던 되풀이되는 주제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해결되었다. 아마도 내담자들이 말하는 그것은 해결된 사실에 대해서 진단하는 것일 것이다. 치아가 하나 비어져 있던 사람이 새롭게 해 넣었을 때 그 새로운 느낌에 대해 이미 알고 있고 시술을 한 것도 알고 있지만 계속 예전의 빈자리를 혀로 굴려 보듯이 마찬가지로 내담자도 다시 돌아가 보려는 것 일 수도 있다.
내담자와 상담자 모두 이러한 현상이 상담과정의 종결시점에서 예견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이고 독특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두려움과 의심에 대해 확대해보거나 과장해보는 것은 좀더 현실성을 부여해줄 것이다. 스스로 내담자가 해결이 된 문제들에서 새로운 문제점을 다시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탐색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하며 우리의 탐색이 끝나는 것은 다시 시작하는 장소에 서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 장소를 아는 것이다.(Eliot, 1959/1986: 48)
실험의 예
이 책의 목적대로 물러남의 단계에서 어려운 경계혼란은 융합이다. 4장에서 기술한 것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의 경계선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다른 것과 구별되는 ‘다른 것’에 대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해서, 개체와 개체 사이의 경계선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 융합이 발생한다.
경계선 작업
경계선 작업은 내담자가 과거의 미해결된 사건과 융합되어 있기 때문에 상담과정의 시작에 중요한 반면에 현재 작업하는 과제와도 융합될 수 있으므로 상담을 종결하는 마지막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내담자가 상담자나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기’를 확인하고 남의 의견을 거절해보거나 다른 사람과 의견이 불일치 해보는 것을 연습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Farrel가 경고했던 상담자의 말하는 방식을(W. O. T) 내담자가 무조건 허용하는 것을 피하는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융합 관계를 맺고, 옳고 좋으며 아름다운 것과 같이 권위 있는 정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던 Emma에게 특이한 경계선 작업이었다. 그녀는 비록 항상은 아니었지만 몇 날 동안 계속 그녀의 경험 중에서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실험을 했다. 예를 들어, 길을 걸으며 그녀가 말했다. ‘나는 저 낙엽보다 이 낙엽이 더 좋아. 이 도보의 돌 모양은 나를 즐겁게 해주지만 저 돌 모양은 별로야. 나무보다 잔디가 더 좋고 신발보단 바지가 좋아’
게슈탈트 기법처럼 이것들은 보다 간단하고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각 심리학(사람들은 자신의 지각에 가치를 둔다)에 기초한 것이다. 이렇게 연습함으로 Emma는 자신과 다른 것 사이의 경계선을 강화했으며, 평범한 주제에 관해서는 자신이 선호할 권리와 분리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초로 하여 무엇보다 자신의 내적인 의식을 강화시켰다. 그녀는 강화된 자기 의식과 그녀의 행동이 기준에 부합하던지 아니던지 간에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책임감을 가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보고했다. 그후에 그녀는 사람들과 역기능적으로 융합된 오랜 관계를 풀게 되었다.
리허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어려움이 예상될 상황을 리허설 하는 것은 일단 상담이 끝난 후에 내담자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강화시키는 방법이 된다. 몇 가지는 계획하고 또 몇 가지는 예상을 할 수 있다. Vera는 우선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부모들을 초대할 것이다. 그녀는 어릴 때 심하게 학대받았으나 상담과정에서 깨어진 부모와의 관계를 다시 접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그녀는 정서적으로 강해졌으며 또한 부모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가 늙어 가고 있으며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조명을 비추어 부모들을 다시 보았다. 그녀는 만나는 장면을 리허설을 했으며 부모 역할을 해보기도 했다. 그녀는 그녀가 생각하기에 아직도 자신의 균형을 깨트리고 그녀가 실패하도록 만들 말한 부모의 행동이나 말들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경험적으로 깊게 탐색하였다.
리허설의 또 다른 형태는 낮은 자기 존중감을 지지하는 주제에 관하여 치료적 둔감화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때때로 이것을 ‘심리적 강건함’이라고 부른다. 자신을 방어하기를 잘 하거나 강한 사람에게는 이것은 유용한 절차는 아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이거나 상상한 상황에서 분노에 대해 압도되는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상담의 목표는 단지 현재의 위기에 어떻게 잘 대처하는가를 배우는 것만이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유기체의 자기 조절과정을 개선하고 미래의 어려움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존은 키가 작기 때문에 매우 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비교적 키가 작은 것을 강조하는 사람이나 상황은 그를 당황하게 하거나 창피함을 느끼게 한다. 상담의 종결시점에서 그는 자기 가치 및 잠재성을 회복하고 한 여성과 만족스런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러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에 굴욕적이거나 조롱 당하는 것을 견딜 자신의 능력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한 워크샵에서 상담자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설정했다.-학교 상황에서 사람들은 아이들처럼 그에게 ‘숏다리’라고 놀리고 소리지르고 비웃었다. 존이 이 작업을 하기로 요청했다. 그는 숨을 깊이 쉬고 균형을 잡고 자신의 확고함을 통해 자기지지를 다시 확인하는 경험을 했고 이러한 자극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강하고 좋은 부분과 접촉하는 능력을 다시 확인했다.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이것은 인위적인 상황이지만 연습의 처음부터 끝까지 심리적인 반응의 변화로 볼 때 존에게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후에 자기 존중감과 유능함에 있어서 오랫동안 지속되고 깊이 형성된 이점을 보고했다.
예전 자기 상실을 관리하는 것
내담자는 종종 예전의 자기 모습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사실 예전의 자기와 확실히 분리되었을 때, 내담자가 더 이상 예전의 자아상과 융합되지 않을 때 상담과정이 종결시점에 들어섰다고 우리는 기대한다. 그러나 예전의 모습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것이라면 더더욱 예전 모습을 좋아할 수 있다. 더 이상 술도 마시지 않고 동료와 직장에서 잘 지내는 유능한 교수가 넉다운 될 정도로 마셨던 예전의 상태와 술 따르는 여인, 외로운 이가 되었었던 그 때의 그 감정들을 기억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순수했던 젊은 날의 로맨스적인 죽음에 또한 다가 갈 수 있는 것이다. 내담자는 예전의 젊은 날의 자아상을 위해 애도할 필요가 있으며 종종 그 시절의 순진 무구함을 위해 흐느끼며 그를 지켜왔던 ‘자기’에게 감사함으로 애도할 수 있다. 누군가 말하길 상담은 ‘자기의 수프에다 침을 뱉는 거와 같다. 너는 그 수프를 먹을 수 있지만 뱉은 침이 들어 간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굿바이라고 인사하기
상담과정에서 내담자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이나 상황, 사건에게 고별을 해야 하는 때가 있다. 이 작업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원리나 역동은 상담관계에서 굿바이로 고별하는 것과 유사하다. 굿바이라고 고별하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있다. 죄책감, 분노, 두려움, 슬픔, 감사, 안도감등을 표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내담자와 미해결된 과제가 있었던 사람이 죽게되었고 내담자가 그에게 고별 인사를 하길 원한다면 상담자는 다음의 절차들을 따를 수 있다.
빈 의자를 가져와 내담자 앞에 놓고 죽은 이가 앞에 앉아 있다고 상상하도록 하십시오. 내담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 또는 죽은 이에게서 느껴지는 것을 말하도록 격려하십시오. 이것은 충분히 사랑 받지 못함으로 인한 분노일 수도 있고 임종에 가지 못한 죄책감일수도 있습니다. 내담자에게 의자의 위치를 바꾸어 죽은 이의 역할을 하도록 하고 무엇을 말할지 대답하도록 하십시오. 대화는 내담자가 왔다갔다하면서 이루어지며 많은 정서가 표현될 것입니다. 내담자가 해결점에 도달하면 고별인사를 할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은 내담자가 관계의 시작과 끝에 대한 책임을 가져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종종 슬피 울거나 안도감 또는 즐거움을 통해 애도과정이 마무리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더 이상의 반추를 사라지게 하며 삶에 대한 흥미나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더 많은 흥미와 에너지를 확립시켜 줄 것입니다.
어떤 기법들은 매주 또는 반복적으로 여러 세션에서 계속 사용될 수 있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고별을 고하는 방법들은 사람이 관계를 맺어 가는 방식만큼이나 다양하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내담자가 상담자와 미해결된 과제를 가능한 한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만족할만한 물러남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실제적인 시간이 요구된다. 아마도 다른 무엇보다도 시간이라는 것이 끝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며 완전한 풍부함이 아닐까 싶다.
몇몇 내담자는 이 단계에서 상담자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상담 기간동안에 그려온 그림일 수도 있고 어려웠고 즐거웠던 여행에 대한 간단한 감사 편지일수도 있다.
애도
상담의 마지막 단계에서 내담자들은 과거에 애도작업이 완성되지 못했던 사람이나 피해왔던 사람과 만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 애도 작업은 다른 단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때때로 내담자는 애도작업을 하기 위해 상담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것은 참으로 인생의 시작과 끝에 대한 내적인 풍파를 조명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애도작업은 상담자와의 종결이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게슈탈트로 전치 되지 않기 위해서 완성되어야 하는 생생한 작업이다.
서부 문화에서는 종종 애도과정을 최소화하도록 강요받으나 이와 반대로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는 필요한 만큼 애도과정을 가지는 것을 지지하며 그 공동체에서 슬픔은 하나의 의식으로 표현이 된다. 서부에서는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안 좋게 보며 윗입술을 굳게 다무는 것이 존경받는 것이다.
Elsa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가능한 한 목숨을 부지하기 그리고 아이에 대한 상실감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Elsa는 일에 몰두하고 사회활동에 열중하였다. 일년 후에 그녀는 신경쇠약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하였다.
그녀를 위탁받은 상담자는 그녀가 혼란된 애도작업에 다시 접촉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그녀가 아기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편지로 쓰도록 했고 아기를 기억하면서 초를 태우도록 격려했다. 그녀는 고통이 다 겪어질 때까지 가까운 친구, 가족과 함께 반복적으로 희망과 잃어버린 꿈과 절망에서부터 안도감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들을 겪어나갔다. 이것은 그녀가 그녀의 애도 작업을 마무리하고 완전한 회복에 이르도록 도왔다.
이전 접촉에 대해 필요한 빈 공간(비워짐) : 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것
환자는 그들이 비워진 공간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환자 일 수밖에 없다. 만약 그들이 비워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생산적이 사람이 될 것이다. 만약 치료자도 비워짐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환자를 돕지 못할 것이다. 비워짐의 의미와 그것이 어떻게 전이 관계에서 나타나는가가 각각의 사례에서 새롭게 밝혀져야 한다.(Van Dusen, 1975b :92)
비워짐에 대한 두려움을 만나고 탐색하고 견디어 내는 것은 출발 신호를 울리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욕구를 완성하고 만족시키는 것으로 비워짐이 나타나고 거기서 새로운 욕구가 드러날 수 있다. 비워짐이란 새로운 종류의 경험에 완전히 몰입되기 위해 이전의 경험을 놓아주는 것이며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빈 공간을 말한다.
전환에 대한 대부분의 의식과 신화는 상징적인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이것은 요나가 고래 배속에서의 보냈던 시간, 오르페우스의 지하세계로의 여행했던 것 또는 시간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함만이 있는 어둠의 세계에서의 여행같이 은유법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은 상담에서 말하는 종결에서 일어나는 물러남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삶이 존재하는 한 물러남은 새로운 것을 일으킬 것이다.
지금과(now) 나중(next)이 서로 얽히는 것은 연속적인 모션이 다음과 연결됨으로 만들어지는 영화 또는 엔진과 유사하다. 이러한 연결 속에서 조화롭게 처음과 끝이 결합됨으로 서로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성경을 인용해서 말하자면, 끝나는 곳, 그곳에서 다시 시작이 된다."(Polster, 1987: 54)
Gary의 굿바이
Gary와의 상담과정 중 마지막 단계에서 Gary는 퇴행 욕구를 느끼고, 상담자 없이 실제 세계를 다루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Gary는 한 세션에서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내사를 되풀이하고, 상담하는 동안 완성된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여 여러 날 동안 우울해 했었다. 또 다른 때에는 그가 배운 것에 대해 감사하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는 비록 자신이 얼마나 많이 상처 입었고 두려움과 화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안에서 새롭게 발견한 모습과 즐거움이 충분히 그것들을 보상해 줄 것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때때로 Gary는 예전의 자기 모습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으며 그가 예전에 사용해 온 걱정 없던 옛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는 실습할 때 그 자신의 삶에 가져온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또 더 이상 자신에게 예전의 모습이 필요 없다는 것을 과거의 자신에게 말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Gary는 자연스런 유기체의 주기 내에서 욕구가 커지고 작아짐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유기체적인 자아와 접촉하는 경험을 했다. 그는 아빠에게서 분노를 그리고 엄마에게서는 죄책감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서도 같이 부모님과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하면서 부모와 분리됨을 경험했다.
Gary는 또한 나와의 관계가 종결되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했고 나 또한 역시 그랬다. 잠시동안 그는 나와 함께 했던 훈련의 시간들을 생각해 보았다. Gary가 도움을 받았던 상담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이 게슈탈트 자체를 공부하고 직업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훈련을 하는 현실적인 바램보다 상담자인 나와의 관계를 더 가지고 싶어한다는 자신의 바램을 자각했다.
이것은 상담자와의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마지막 병리적인 융합이다. 상담자에게서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작업을 함으로 상담자가 그를 버리기 전에 먼저 그가 상담자를 거절하려는 소망과 삼켜져있던 나머지 감정들을 Gary와 함께 이 마지막 단계에서 천천히 다루어야 한다.
상담과정을 회상하면서 Gary는 이 장에서 기술했던 그리고 자신의 길에 지표가 되어주었던 많은 실험들을 기억했으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담자와의 관계였다고 했다.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 나는 당신이 나를 변화시키길 원했다. 당신이 나에게 마술적이고 쉬운 무언가를 처방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실망했었다. 당신이 그렇게 했다면 앞으로 어려움이 생길 때 당신을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되돌아보면 그렇게 대해주지 않았던 것에 기쁘다. 나에게 가장 치료적인 것은 탐색할 것이 아무리 많아도 당신이 항상 일정하게 나와 함께 있어주었던 것이다. 당신은 나와 분리되어 있지만 항상 나와 함께 있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내 인생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책임지고 미해결된 것과 해로운 것들을 다시 배열하기에도 충분히 안정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