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부대 (보병 제9사단) The 9th Division (White horse)
보병 제9사단(백마)사단은 1950년 10월25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29호에 의거, 서울에서 창설, 예하부대로서는 제 28연대가 대전, 제29연대가 공주, 제30연대가 청주에서 각각 창설 되었으며, 이듬 해 1월 포병사령부가 광주에서 편성되었다.
(백마부대는 6.25동란이 한창이던 해에, 역사적으로 충과, 효의 본고장인 충청도 공주와, 청주에서 병력을 충원하여 만들어진 충성의 부대이다. 그러한 유서깊은 부대이니 편성된지 1개월도 못 되어 승승장구하며 역사에 빛나는 한국육군의 위대한 전사들을 쓰기시작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백마사단은 편성 1개월도 못된 1950년 11월23일부터 경북지구(영주, 김천, 문경)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하였고, 1951년 1월25일 연합군의 제2차 총 반격시는 제1군단 예하부대로서 북괴군 제10사단의 주력을 포착 섬멸하여 적 사살 5,549명, 화기 노획 1,622정의 대전과를 올렸으며, 그후 철원지구 반격작전, 금화지구 방어작전, 사두봉 전투를 거쳐 한국전사에 빛나는 유명한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중공군의 정예부대인 제38군의 12차에 걸친 인해전술에도 불구하고 처절한 피아 공방전 끝에 적병 8,234명을 사살하고 백마고지를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휴전이 되기까지 8개월동안 중부 및 중,동부 전선에서 삼각고지, 금화 저격능선등지에서 전투를 계속하였으며, 휴전 이후 금화, 포천, 인제, 화천, 양평, 양주등지에서 부대정비와 전선 방어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투력을 배양하여 오던중 1966년 6월 1일 국방부 지령 제3호에 의거, 제2차 파월 전투사단으로 지명됨으로써 자유십자군의 일원으로 해외에 파병하게 되었다.
1966년 8월27일 중앙청 광장에서 환송식을 갖고 출범한 보병 제9사단 백마부대는 사단장 이소동 소장의 지휘하에 1966년 9월16일 부산 3부두를 통해 출진,1966년 9월22일 월남 나트랑에 상륙하여 인근 지역에 주둔했다. 백마사단은 월남 중동부 해안지력의 1번 도로와 해안을 따라 길이270Km, 폭 50Km에 달하는 책임전술(TAOR)지역을 확보하고,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 주요도시와 항만에 있는 군사시설을 보호 해 왔으며 또한 전술지역 내외의 침투하고 있는 적을 격멸하여 왔다. 초대 이소동 사단장의 뒤를 이어 박현식, 유창훈, 정규환, 조천성, 김영선 소장이 지휘를 맡았다.
파월기간중 478회 대부대 전투와 211.236회의 소부대 전투를 실시하여 총211,714회의 전투를 치루었다.
전투중에도 대민농사, 노력봉사, 의료봉사, 도로건설 및 주택건설, 급수시설 등 많은 대민사업을 지원했으며 1967년 1월29일 혼바산에서 벌인 백마 1호작전을 비롯하여 1967년 3월8일 맹호부대와 합동으로 월남의 동맥인 1번도로 개통의 오작교 작전과 1967년 7월9일 투이호아에서 실시한 홍길동 작전을 비롯하여 박쥐작전, 도깨비 작전등 전사에 길이 빛낼 많은 전과를 올려 천하무적 백마부대의 전설을 남겼다.
파 월 : 1966. 9. 16 부산 3부두를 출발, 1966. 9. 22 월남 나트랑에 상륙, 닌호아에 주둔.
사 령 관 : 초대 이소동소장에 이어 박현식, 유창훈, 정규환, 조천성, 김영선 소장이 지휘
참전기간 : 1966. 9. 22 - 1973. 3. 11
참전군인 : 100,336명 (장교 6,445명, 사병 98,891명)이 참전
희 생 : 전사 1,328명 (장교 78명, 사병 1,250명) 부상 2,410명 (장교 160명, 사병 2,250명)
전 투 : 211, 714회 (대부대 전투 478회, 소부대 전투 211,236회) 1967. 1. 29 혼바산에서 벌인 백마 1호 작전을 비롯하여,
1967. 3. 8 맹호부대와 합동으로 월남의 대동맥인 1번도로를 개통한 오작교 작전과 1967. 7. 9 투이호아에서 실시한
홍길동작전을 비롯하여 박쥐작전, 도깨비작전 등 전사에 길이 빛낼 많은 전과를 올렸다.
특히 월남국민의 숙원이었던 남북을 관통하는 국도 1번도로 주변을 장악하여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오작교작전"은 이제까지 월남군과 연합군이 공격기도조차 하지 못했던 적의 지배구역이었으나 1967. 3. 8부터 맹호부대와 백마가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월맹군과, 베트콩을 단박에 쓸어버리고 자유월남의 대동맥인 1번도로를 완전개통함으로써 한국군 백마의 위용을 다시한번 과시했다. 전투외에 대민사업으로 대민농사지원, 노력봉사, 의료봉사, 도로 및 주택건설, 급수시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상승백마, 무적백마의 위대한 전통과 명예를 1979년 노태우소장이 반란군으로 부대를 동원하여 그 이름을 더럽혔다. 백마의 후예들에게는 비록, 부대장이라고는 하나, 반란의 수괴였던 노태우소장을 즉결처단하고 헌정질서를 수호하지 못한 빛을 국민에게 지고있는 것이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충절과 효의 고장 충청도 공주에서 발족한 백마부대가 6.25동란과, 월남전에서 쌓은 그 혁혁한 무공을 더럽히고 반란군의 더러운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것은 충청인과, 특히 공주시민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이기도하다. 애초에 부대의 상징을 공주에는 별로 있지도 않은 "백마"로 정한 것 부터가 문제가 아니었는가 한다. 공주에서 창설된 정예사단 답게, 공주의 상징인 "곰"을 상징으로 "웅진부대"라 부대명을 바꾸고 새출발하여 "한국육군의 최강부대"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첫댓글 선배님 잘 앍었습니다.....
답글 감사해요. 최장식 후배님!...
백마부대,출신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상식입니다.
~1971년도 월남 파병시, 투이호아 해변에서
서귀포 거주 지덕홍 전우와 나!~
선배님역사깊은상승백마이군요~귀한자료잘읽고감니다~백~마~
답글 감사해요. 허진호 후배님!...
백마부대,출신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상식입니다.
~1971년도 월남 파병시, 투이호아 해변에서
서귀포 거주 지덕홍 전우와 나!~
역시 백마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뭉클합니다. 선배님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
답글 감사해요. 전병문 후배님!...
백마부대,출신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상식입니다.
~1971년도 월남 파병시, 투이호아 해변에서
서귀포 거주 지덕홍 전우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