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크라(UNKRA)와 반월저수지
신 대 광
(원일중학교, 안산향토사연구소)
1950년 6월 25일.
우리 역사에 오래도록 아픔으로 기억될 전쟁이 발생하였다. 이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건물이 부서지는 등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당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유엔이 전세계 회원국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 민간 기구들에게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민들을 도와줄 것을 호소하자 구호의 손길이 한국으로 밀려들었다. 초기 유엔의 지원은 미국 중심의 유엔군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1950년 10월 7일 유엔은 통일 한국의 건설과 지원을 위해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서 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i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UNCURK)을 설립하였다. 그동안 한국과 관련된 유엔 결의안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통과되었지만 1950년 8월 이후 소련이 안보리에 참석하여 거부권을 행사하자 미국과 서방 진영은 총회를 통해 한국을 돕기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마침내 1950년 12월 1일 유엔 총회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유엔한국재건단’(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UNKRA)을 창설하였다.
유엔군 사령부는 유엔주한민사처(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를 설치하여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 하에 교전 지역을 제외한 한국의 전 지역에서 민간인 구호 및 지원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개입으로 전쟁 상황이 악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경제적 재건은 유엔이 의도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 후 1952년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유엔의 지원을 받아 운크라가 한국 경제 개건을 위한 대규모 부흥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운크라는 한국에 대한 구호의 차원을 넘어서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경제를 전쟁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시켜 한국 경제 재건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운크라의 지원 활동은 경제 영역뿐 아니라 교육, 아동 문제 등에까지 크게 기여했다.
한국 경제 재건을 위한 운크라의 지원은 시설투자와 원자재를 도입하고 한국 사회의 교육, 문화적 기반을 확충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한국의 농업 및 자연자원 개발을 위한 기반 시설투자도 이루어졌다. 연탄, 판유리, 제지, 농기구, 시멘트 공장들이 설립되어 한국의 공업 부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고, 공업발전의 기초가 되는 송․배전 시설의 확충과 전력 개발에도 많은 기금이 투입되었다. 나아가 교통운수, 보건위생분야에도 운크라의 지원금이 할당되었는데, 특별히 전후 폐허가 된 학교시설·병원을 복구하고 수많은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고아원들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안산 반월중학교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남산뜰이 나오고 그 위로 조금 올라가면 반월저수지가 나온다. 최근 저수지 주변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옛날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 저수지 제방 동쪽 끝에 가면 조그마한 석판(石板)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半月水利組合 운크라 韓美合同事業地區 竣功 4290年 12月 15日’라고 적혀있다. 이것은 반월저수지가 1957년 12월 15일 운크라의 지원으로 농업 기반시설 조성용 저수지로 만들어 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월저수지는 그 후 남산뜰을 비롯한 주변지역에 중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하였다.
50년이 훌쩍 지난 그 오래된 석판을 바라보며 어려웠던 시절 옛 어르신들의 힘겨웠던 삶을 되짚어 본다. 그 분들이 흘리신 땀방울이 오늘날 우리에게 풍요로운 결실이 되었음을 감사드리며, 이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다른 나라를 도울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