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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노량진 상권
<시험 따라 두 번 호․불황 교차 >
서울 노량진상권은 외환위기 덕을 톡톡히 봤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노량진 고시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상권이 활성화됐다. 노량진역을 가로질러 300m도 안 되는 거리에 노량진수산시장이 있지만 상권 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지역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이 상권은 철저히 공무원시험 준비생을 주 고객으로 움직인다. 김일식 희소부동산 사장의 말대로 "고시생의 일정과 생리도 모르면서 노량진에서 장사하겠다고 나섰다가는 투자비만 날리기 십상"이다. 1년에 두 번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현상은 고시생을 상대하는 상권의 숙명이다. 권인권 한교고시학원 기획실 과장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2,000~3,000명 선이던 수강생이 2~3배까지 늘어난다"고 밝혔다. 동작교육청에 허가된 수강생 인원은 재수학원 9개에 1만9,200명, 고시학원 23개에 1만5,259명이지만 성수기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찾는다.
이때가 대목이다. 첫 번째 대목은 4월에 9급 시험이 끝나면서, 두 번째 대목은 8월에 7급 시험과 10월에 서울시 9급 시험이 끝나면서 막을 내린다. 정교상 홍문관서점 사장도 "7월과 12월에는 매출이 두 배로 오른다"고 말했다.
노량진은 서울에서 2,000원 안팎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서상원 우리공인중개소 사장은 "전국에서 가장 싼 식당이 모여 있는 곳으로 TV에 소개될 정도"라고 말했다. 밥집거리에는 10장짜리 식권을 1만8,000원이나 2만원에 판다는 전단이 곳곳에 붙어 있다. 8개월째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김모씨(25)는 이보다 더 싼 값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식권 50장을 사면 100원, 100장을 사면 200원 깎아줘요. 저는 친구들과 함께 대량 구매를 해서 밥값을 줄입니다."
10년 전과 같은 밥값을 받다 보니 상인들은 힘겨워한다. "요즘은 하루에 500~600명 오는데 적자입니다. 매출은 뻔한데 반찬 8가지를 내면서 아줌마 4명 쓰면 뭐가 남겠습니까. 돼지고기만 하더라도 3년 전 1근에 1,200원 하던 것이 지금은 2,000원입니다." 4년 전 권리금 1억원 등 2억원 가까이 투자해 사업을 시작한 신동수 통통이네 식당 사장은 방학만 바라보고 있다. 하루에 700~800명 정도 오면 수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입소문이 빠르다는 것도 노량진상권의 특징이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업소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퇴출된다. 한 밥집 사장은 2~3년 전 뷔페식 저가 밥집 주인들이 가격 담합을 시도했다가 얼마 못 가서 두 손 들고 말았다고 털어놨다. "음식 맛에 비해 값이 조금이라도 높다 싶으면 손님 발걸음이 하루아침에 두절되더군요. 결국 가격을 내려야 했지요." 고시생 소비자들의 네트워크파워가 그만큼 무섭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은 3~4개월마다 손님이 바뀌는 상권 특성 때문에 상인들이 불친절하고 단골 예우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이에 대해 한 호프집 주인은 "고시생들에겐 너무 잘해줘도 장사가 안 된다"고 푸념한다. 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인 박모씨(29)는 "호프집에서 아는 체하면 공부는 안 하고 노닥거렸다는 말밖에 더되겠어요. 얼마 전 술집에서 공짜 안주를 주길래 '너무 놀았구나' 싶어 즉시 발걸음을 끊었어요"라고 말했다.
추종식 사이버파크 PC방 사장도 "시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서 그런지 손님들이 내성적이고 까탈스럽다"면서 "객단가가 서울에서 제일 싼 상권인데도 까다롭기는 압구정보다 더 할 것"이라고 말했다. PC방은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에겐 잘 먹히는 장사다. 6개월 전 개점한 추 사장은 하루 7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자평했다.
노량진상권도 가난(?)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커피전문점 파스쿠찌는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소비액)가 7,000원임에도 불구하고 전년 동월 대비 30%의 신장세를 이뤘다는 사실이 '상권 업그레이드'를 웅변하고 있다. "예전엔 공무원 준비생들은 가난한 시골 출신이 많았지만 요즈음은 강남 출신들도 많아지면서 씀씀이가 예전에 비해 차츰 세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1인분에 3,000원 하는 삼겹살집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최근 들어선 5,500원짜리 식당도 성업 중이다. 일반직 9급 수험생 진모씨(27)는 "밥값에 민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몸보신을 위해 6,000원이나 8,000원짜리 삼계탕을 먹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 23만평에 뉴타운...민자역사 이르면 연말 착공 >
노량진상권은 장기적으로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노량진상권은 서울시 도시계획 차원에서 이뤄지는 종합재개발사업인 지구단위지역으로 지정됐지만 토지주와 건물주 등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해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다. 상권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데 반해 상권 배후지역에서 추진 중인 주택 재개발사업인 뉴타운, 국철 민자역사 건설, 지하철 9호선 개통 등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노량진뉴타운사업이 완료되면 노량진 1,2동과 대방동 일부를 포함해 약 23만평에 3만여명의 인구가 상주하게 될 예정이다.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노량진1 재개발구역이다. 이곳은 작년 4월 기본계획 승인이 났고 현재는 아파트 분양신청까지 끝난 상태다. 인근 송학공원 조성사업도 작년 12월부터 활발히 진행 중이다. 정비예정 1구역은 재개발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상태고 나머지 지역은 아직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철도 민자역사는 지난달 교통영향평가를 통과해서 건축심의에 들어갔다. 앞으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이르면 연말부터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쇼핑몰 등을 갖춘 민자역사는 대지 면적 1만1,692평에 연면적 3만6,724평 규모로 지상 17층 높이로 건립될 전망이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도 시작됐다. 수협 소유인 수산시장 부지 2만여평과 농림부 부지 6,700평에 연면적 17만여평, 지상 40층 규모의 상업건물을 짓는 청사진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작년 초 기획예산처의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예산 배정이 안 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노량진 일대의 교통 여건을 개선하는 공사도 진행 중이다. 여의도 KBS 별관에서 사육신공원까지 이어지는 지하철 9호선 건설공사는 총 연장 2.1km 구간에 정류장 2개소가 지어지며 내년 12월 완공, 2008년 초 개통된다.
< 고시원은 '리모델링 중‘ >
○ 고시원에도 럭셔리(?) 바람
'공무원 고시원의 메카' 노량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무조건 싸야 했던 80년대와 달리 90년대 후반 웰빙 바람과 함께 고시촌도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에어컨, 텔레비전, 냉장고가 한 방에 갖춰져 있는 건 이젠 기본이다. 새소망 고시원의 김창준 사장(64)은 "좀 비싸더라도 원룸 형태의 방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주변 3~4군데 고시원도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고 말했다. 3층 건물 70평에 25개실인 이곳의 권리금은 3억원이고 보증금은 5,000만원. 개업한 지 4년 만에 리모델링 공사로 1억원을 더 투자했다. 개조 덕에 공실률은 10%대로 떨어졌다.
최신식 고시원의 한 달 입실료는 대체로 25만~40만원 수준이다. 9급 공무원 준비생 이철두씨(29)는 "몇 만원 더 주고라도 방음시설도 잘 돼있고, 쾌적한 곳으로 가려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학원가에서 약간 떨어진 B고시원의 경우 차별화된 시설로 학생들을 모으고 있다. 수험생들이 언제나 운동할 수 있게끔 고시원 옆에 헬스장을 만들어 놓은 것. 사우나 시설까지 완비해 이들의 지친 심신을 풀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경찰 공무원 준비생인 김지훈씨는 "저희에게 체력장 시험이 매우 중요하죠. 공부하면서 운동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 고시원 사업 수익은 안정, 충분한 여유자금 있어야
일일 유동인구가 10만여명의 학원 대표상권이지만 창업하려면 신중을 기해야 할 곳이다. 맥도날드 뒤에 위치한 먹자골목의 경우 1층 30평이 권리금 1억5,000만~3억원, 보증금 1억~2억원, 임대료는 300만원 정도이다. 임대료의 경우 신림동과 비슷하나 신촌보단 100만원 정도 낮은 수준이다. 우리부동산의 김영미 대표는"지갑이 얇은 학생들이 중심이라 객단가(고객 1인당평균지출액)가 매우 낮은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대형 체인점이 아니라면 문구점이나 분식점을 해 볼만하다"라고 말했다. 소비심리가 매우 약한 곳이라 큰 돈을 벌기 위한 창업은 무리라는 얘기.
고시원 사업의 경우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130여개가 넘는 고시원은 현재 포화 상태이다. 고시원과 학원위치, 내부 시설에 따라 매매가는 천차만별. 학원 근처의 A고시원의경우 연면적 175평, 64실이 17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연면적 353평, 82실인 B고시원은 26억원을 호가한다. 이레부동산의 황영진 사장(63)은 "학생 유치를 위한 고시원 간 경쟁이 치열하다"며 "연 순이익은 8~12%로 괜찮은 편이나 충분한 여유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일대 고시원 평균 매매가는 17억~18억원 선. 하루 2~3건의 문의가 꾸준히 들어온다고 전했다. 한국고시원협회의 김병선 고문은 "노량진은 투자대비 수익률이 낮은 곳이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강화된 소방법에 따라 고시원의 소방시설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 신선식품. 반찬 전문점 등 유망 >
노량진 상권도 대로변의 유동인구는 서울 어느 상권 못지않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취업준비생과 고시생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쇼핑이 아니다. 오로지 시험에서 합격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대로변 패스트푸드가게에서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대화의 주제는 시험이고, 시험에 관한 정보다. 취업준비생과 고시생들이 먹여 살리는 노량진 상권은 그래서 독특한 성격을 띤다.
이 상권도 대략 세 곳으로 나눠볼 수 있다. 노량진역과 육교 건너편 등에 형성된 대로변 상가, 배후 주택가로 올라가는 2차선 도로변 상가, 그리고 동작경찰서 뒤쪽에 형성된 이면골목 상가 등이 바로 그것. 이들 세 구역은 한눈에 보아도 뚜렷이 구별될 만큼 각기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 역을 끼고 있는 대로변과 맞은 편 대로변에는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점, 신발, 의류, 화장품 가게가 주류다. 여느 대로변처럼 판매업종 중심이며 유명 브랜드 체인점이 자리 잡고 있어 개인이 넘보기에는 벅찬 곳이다. 최근 나온 의류 가게 매물의 경우 권리금 호가만 5억원이다.
신동아아파트와 단독주택가로 올라가는 2차선 도로변은 근린 업종이 유망하다. 이 지역 주민들이 장보기나 외식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상가뉴스레이다 서준 상권분석팀장은 "6,000여세대의 아파트 단지와 단독주택가가 배후 수요기반을 이뤄 업종만 잘 선택하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선식품 소매점이나 배달전문점, 반찬전문점 등을 유망 업종으로 꼽았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베이커리점은 이미 문을 열고 있어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가족단위 외식 수요를 충족할 유명 브랜드 체인점도 실패 확률이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이면골목에서 장사할 경우 초점은 이 일대 30여개 공무원시험고시학원에 다니는 학원생과 5,000여명에 이르는 고시원 거주 인구에 맞춰야 한다. 이들의 특징은 주머니가 얇다는 것이고,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트레이닝복과 슬리퍼가 가장 잘 팔리는 곳도 바로 노량진이다.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장은 "옷 가게보다는 고시생들의 필수품인 트레이닝복과 슬리퍼, 방석 등을 파는 잡화점이 더 짭짤하다"면서 "화장품 가게도 미샤, 더페이스샵 등 저가만 먹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음식점을 한다면 가격의 상한선은 3,000원이다. 그 이상이면 곧바로 경쟁력을 잃는다. 실제 이면골목 초입에서 손님이 가득 찬 설렁탕 집 메뉴 가격을 보면 설렁탕, 해장국, 냉면이 각각 3,000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분식집에서 1,000원짜리 한 장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처럼 이면골목은 전형적인 박리다매형 장사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준 FC창업코리아 이사는 "노량진 이면골목 음식점들은 '가격파괴'를 넘어 '가격붕괴'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권에서 객단가가 5,000원이 넘는 메뉴만 취급한다면 금방 도태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골목을 가득 메우는 유동인구를 감안하면 분식점이나 테이크아웃 커피점도 유망하지만 거품을 완전히 뺀 가격을 감당할 만한 노하우가 필수적이다. 고시원생들은 대부분 야행성 체질로 변하게 된다.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은 바로 이면골목에서 제격인 업종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담배 한 종류만 팔아도 가게 꾸려가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다.
< (인터뷰) 박정호 '춘천 막국수' 노량진점 점장 >
박정호 춘천닭갈비 막국수 노량진점장(34)은 맷돌순두부 등으로 유명한 ㈜한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맥주집 가든파티, 노원 맷돌순두부 등을 운영하며 얻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노량진에 진출한 그의 전략은 특이하다. "주머니가 가볍고 맛집에 대한 입소문이 빠른 수험생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이니만큼 '싸고 맛있게' 하게 마련이지만, '약간 비싸더라도 잊을 수 없는 맛'을 구사하는 방법을 택했죠."
박리다매가 제격인 노량진에서 1인분 5,500~7,000원의 닭갈비가 부담스러울 법도하다. 들어와서 메뉴판을 보고 비싸다고 나가는 고객도 있지만 결국 맛에 이끌려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27개 테이블에 60평 규모로 노량진상권 황금입지에 자리한 매장은 월세 1,000만원, 평균 테이블 단가 1만4,000원에 회전율은 4~5회 정도다. 하루 평균 100~120테이블 정도를 채운다. 박씨는 "경기를 타지 않고 학원의 개강과 공무원시험 합격자 발표 등 일정에 따라 매출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며 "3~4월에 바닥을 찍고 학원이 개강하기 시작하는 5월부터 매출이 10%씩 상승해 7~8월에는 현재 매출의 150% 정도에 이른다"고 전했다.
노량진에는 고시 준비생들과 달리 수험 기간이 짧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잠시 머물면서도 잊지 못할 장소로 학생들에게 자리매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곳은 춘천닭갈비 막국수 직영점 중 매출 4위를 자랑한다. 비결은 소스와 서비스. 매콤한 소스에 1인분을 시키면 2인분이 나오는 푸짐한 볶음밥 서비스가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점장이 직접 닭갈비를 구워주며 고객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수험생활 중 식생활과 건강 잘 챙기라는 격려와 응원입니다." 그는 고객의 90% 이상인 노량진 학원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기본적인 배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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