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사건 중 상당수는 건물과 토지가 전부 경매에 부쳐지기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물건에서는 건물이나 토지가 따로 경매로 넘어가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경매로 넘어간 물건 용도에 따라 지상권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입찰자들은 조심스러워 한다. 여기에 임차인까지 포함돼 있다면 예상 배당표 짜는 일이 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그러나 임차인이 적법한 조건에 의해 대항력을 갖췄다면 적어도 건물이나 토지 중 하나만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임차인 배당에 관해서는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없다. 특히 임대차계약의 대상이 되는 건물이 아니라 판단이 쉽지 않게 토지만 경매로 넘어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오늘 소개할 판례는 이처럼 임차인이 거주 중인 주택의 대지만 경매로 넘어가자 우선변제권을 요구하면서 발생한 분쟁에 관한 것이다.
# A씨는 2002년 2월 전세집을 구해 이사했다. A씨는 이사 전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임대인 부부와 인사를 나눴고 이사 후에는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 적법한 대항력을 확보한 뒤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임대인 측에서 토지와 건물을 매도했고 이를 매수한 B씨는 다시 C씨에게 토지 중 일부(1필지)를 매각했다. 그러나 C씨에게 채무 연체가 발생했고 채권자 D씨는 이 1필지에 대해 임의 경매를 청구했다. 결과적으로 건물과 대지 소유주가 달라진 상황에서 경매로 넘어간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전세 보증금을 둘러싼 A씨와 채권자 D씨의 입장 차이. A씨는 임차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다른 집을 구할 수 있었고 D씨 또한 보증금이 배당되면 채권 전액 회수가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A씨는 대항력을 가졌기 때문에 당연히 보증금에 대해 우선변제권을 행사하려 했다. 그러나 D씨는 A씨가 체결한 임대차계약이 묵시적 갱신됨에 따라 우선변제권이 소멸됐고 전체 대지 중 이 사건 토지가 차지하는 면적 비율에 한해서만 우선변제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원심 법원의 판단은 D씨의 견해와 달랐다. 먼저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임대차는 반드시 임차인과 주택 소유자인 임대인 사이에 임대차계약이 체결된 경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주택 소유자는 아니더라도 주택에 관해 적법하게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임대인과 임대차계약이 체결된 경우도 포함된다"고 밝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적법함을 명시했다. 법원은 A씨가 임대차계약을 맺을 당시 임대인과 적법한 계약을 맺었고, 이 사건 임대차계약서에 B씨가 소유권을 이전 받으면서 임대차계약을 승계한다고 기재된 점, A씨가 임대차계약 체결 이후 보증금이나 다른 임대조건의 변경 없이 거주해 왔던 점 등을 들어 A씨의 임대차계약이 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정당한 계약으로 봤다.
이와 함께 건물과 토지 전체가 아닌 토지만 경매 처분됐다 해도 임차인은 그 환가대금(낙찰대금)에 대해 우선변제권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도 나왔다. 법원은 임차인 우선변제권이 법정담보물권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임대차 성립 시의 임차 목적물인 임차주택 및 대지의 가액을 기초로 임차인을 보호하고자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처럼 임대차 성립 당시 임대인의 소유였던 대지가 타인에게 양도되어 임차주택 건물과 대지 소유자가 서로 달라진 경우에도 임차인은 대지가 낙찰되면 임차보증금 전액 상당액에 대해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봤다.
원고가 불복해 이어진 상고심에서도 판결은 변하지 않았다. 상고 법원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적법한 임대권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 판단유탈 등의 위법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상고 법원은 상고심 판결문을 통해 "임차인이 대항력과 확정일자를 갖춘 후에 임대차계약이 갱신되더라도 대항력과 확정일자를 갖춘 때를 기준으로 종전 임대차 내용에 따른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여러 필지의 임차주택 대지 중 일부가 타인에게 양도되어 그 일부 대지만이 경매되는 경우도 임차인이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이번 판례는 건물과 토지 소유주가 다를 때 임차인 보증금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임대차계약이 적법하면 현재 소유주 상황과 관계없이 종전(대항력 및 확정일자를 갖춘 때)에 계약한 내용대로 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점 ▲임차주택 대지 중 일부만 타인에게 넘어가 경매되는 경우라도 임차인은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정리된다. 이 중에서도 경매인에게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은 건물과 토지 소유주가 다른 물건이 경매로 넘어갔을 경우에 대한 판단이다. 임차인이 있을 경우 배당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명도 난이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경매는 가장 높은 값을 써내고 부동산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간단한 행위지만 이를 위해 미리 습득하고 준비하고 대처해야 하는 분야는 광범위하다. 그러나 간단한 지식이라도 하나 둘 내 것으로 만들다보면 생각보다 짧은 기간에 경매실력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