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 🌟
2024년 4월 21일 주일 예배
( 인도,설교: 정성욱 선교사 )
🌟 다 같이 기도함으로 4월 21일
주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4월
셋째 주 주일을 허락해 주시고 전국
각지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에 다 함께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시간 이곳에 임재하여 주셔서
저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고 저희들이 주께 드리는 기도의
응답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시는 말씀의 은혜받게
하옵시고 저희와 가족들에게 주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찬송가
https://youtu.be/BJJC8qX5YMk?si=_aRppuD76SXmkmv0
🌟 교독문입니다.
시편 84편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 본문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 한주간도 평안하셨는지요?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으시길
축원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이어서
계시록 4장 말씀을 주석 등을 인용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 4-20장까지는 “장차 될 일”을 말합니다. 특별히 여기 장차 될 일들 가운데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중심 주제들 가운데 하나인 종말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 종말론과 관련하여 20:1-6절을 근거로 하여 천년왕국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무천년, 전천년, 후천년 등 대표적인 세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 천년 왕국 설을 따른다면 이 기간은 “휴거”와 7년 대 환란 그리고 주님의 지상 재림과 천년 왕국이 이루어 질 시기가 될 것입니다.
요한은 4장을 열면서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4:1)”는 계시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4장부터 전개되는 내용은 미래에 대한 예언적 성격이 강합니다. 여기 4, 5장은 제3부의 서론에 해당하며, 보좌(4장)와 어린 양 및 두루마리(5장)가 합하여 하나의 환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실제에 있어서는 보좌의 환상(4,5장)과 더불어 일곱 인봉 전부를 떼는 일(6:1-8:1)이 하나의 연속된 환상을 이루고 있으므로 분리시켜서는 안 됩니다. 사실상, 보좌의 광경(4,5장)이 일곱 인봉 환상 전체(4:1-8:1)를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존슨, 계시록 주석에서)"
"하늘." ; - 이것은, 종교적 이상(理想)이나 심령적 상태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영화로운 하늘 장소를 의미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곳에 올라 가셨고(행 1:9; 엡 4:10; 고후 12:1-4), 그곳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고(창 28:17; 시 80:14; 사 66:1; 마 5:12-16,45,48, 23:9), 그곳에 천사들이 있고(마 24:36, 28:2; 막 13:22; 눅 22:43), 그곳에 구원 받은 성도들이 거하며(마 5:12;, 6:20, 18:10; 엡 3:14; 벧전 1:4; 계 19:1,4), 그곳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오셨고(요 3:13), 그가 장차 그곳에서 다시 오십니다(마 24:30; 살전 4:16; 빌 3:20, 21).
그런데 우리가 하늘 나라에 관계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현세(現世)에서는 기독 신자가 성령님의 감화로 말미암아 심령으로 그곳을 알며, (2) 기독신자가 별세하는 때에는 그의 영혼이 완전히 그곳에 들어가며, (3)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신자의 몸까지 부활하여 영혼과 몸이 함께 하늘 나라에 들어갑니다.
요한계시록 4장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특별히 계시록 4장 1절 말씀은
이중적 계시로 살아있는 우리들도
사도 요한 처럼 주의 날에
"이리 올라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하여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요한계시록 1장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나팔소리'는 구약 시대에 백성을 불러 소집하거나 군사적으로 경고할 때(겔33:6), 전쟁 때(겔7:14), 그리고 특별한 의미로 절기 때(레23:24)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한 징표로 나타납니다(마24:31; 살전4:16). 본서에서 70회나 사용되며 종말론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본문의 '나팔소리'는 심령들을 일깨우는 천사의 음성으로 이해됩니다 (Morris, Mounce, Ladd).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요한계시록 1장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주의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테 퀴리아케 헤메라'는 문자적으로 주께 속한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식후 첫날'(막 16:2; 눅24:1; 요20:19; 행20:7) 혹은 '매주일 첫날'(고전16:2)과 같은 뜻이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유대교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이 사도시대부터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로 대치된 것을 가리킵니다(요20:19; 행20:7; 고전16:2, Morris, Lenski, Ladd).
고린도전서 16장
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처럼 초대 교회는 안식일 다음날인
첫날 주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한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우리가 앞으로 있을 부활과 휴거를
사모하고 기다리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처럼 "주의 날"은 살아있는
우리의 "휴거의 날"로 믿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베드로후서 3장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한편 '성령에 감동하여'의 헬라어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는 문자적으로 '내가 성령 안에 있었다'는 뜻으로 이는 단순히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황홀한 상태에 있게 되었음을 암시합니다(4:2; 17:3; 21:10; 행10:10; 11:5, Lohmeyer, Ladd, Johnson,Mounce).
"보좌."
이것은 하나님의 우주 통치(宇宙統治)를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앉으신 이."
그의 "앉으심"은 그의 대 주재권(大主宰權)의 부동(不動)을 상징합니다.
그는, 불안전 불확실의 태도가 전연
없으신 대 주재이십니다(Greijdanus).
"벽옥."
헬라 원어로 '이하스피디'라고 하는데, 21:11에 다시 나오는 바, 거기에서는 수정처럼 맑은 빛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여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의 성결의 영광이 이 "벽옥"으로 상징된 것이 확실합니다.
"홍보석."
헬라 원어로 '살디오'라고 하는데, 그 홍색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고 생각됩니다.
"일반적으로 벽옥은 다이아몬드, 홍보석은 루비, 녹보석은 에메랄드를 말합니다. 이 보석들은 장래 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실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여기 벽옥과 홍보석은 하나님의 처음과 나중 되심을 나타냅니다. 제사장이 제사 드리기 위하여 입는 옷 가운데 흉배가 있습니다. 흉배는 열두 개의 보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장자 루우벤을 상징하는 첫 번째 보석이 벽옥이고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막내인 베냐민을 상징하는 보석이 홍보석입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다”는 것은 하나님의 처음과 나중 되심을 나타내는 계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되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리고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만유의 주로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주권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고 고백했습니다."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이 말씀은 계 1:28의 말씀을 인용한 듯합니다. 이 "무지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그의 계약에 대하여)을 상징한 듯합니다(창 9:13). 그의 세우신 계약은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사람과 관계하심에 있어서 계약적(契約的)으로 하십니다. 이 계약은 스킬더 박사의 말대로(Dr. K. Schilder, Wat is de Hemel?) 사중(四重)으로 되었습니다.
(1) 행위계약(Werkverbond)이니(창 2:16, 17), 인간이 이 계명(율법)을 순종하면 생명을 얻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되는 계약입니다.
(2) 은혜계약이니, 그리스도의 은공(恩功)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자들을 무조건 용서하시고 축복하시는 계약입니다.
(3) 자연계약(自然契約)이니, 주님께서 그 지으신 우주의 현상을 불변의 법칙 대로 유지하심입니다(창 8:22).
(4) 평화계약(平和契約)이니, 인생과 우주가 그 본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또 그로 더불어 거룩하게 평화로이 함께 있던 원상으로 회복되게 하리라는 계약이십니다.
우리는, 스킬더와 같이 하나님의 계약을 4종(四種)으로만 분류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대하여 신실하시고 자비하신 계약으로 관계하시면서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인생과 우주를 계약적(契約的)으로 관계해 오시는데, 이 계약 관계의 요점은 하나님의 신실과 자비의 덕입니다. 그는 인류와 피조물에 대하여 자비롭게 한번 작정하신 것을 영원히 변치 아니하십니다. 그는 무지개로 그 계약 행위의 신실성과 자비성을 상징하셨습니다(창 9:12-17). 랍비들은, 무지개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에 대한 연구를 금했으니(Chagiga. 16. a), 이것은 너무 치우친 것입니다.
"이십 사 장로."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천사들이 아니므로 천사들과는 따로 분별되었습니다(7:11). 그들의 직명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옷과 그들의 행동 성격이 구속 받은 자의 그것과 같으므로(7:14, 5:8). 그들이 교회의 대표자들임에 틀림 없습니다. 교회의 대표자들인 그들이 신구약 교회의 어떤 실재 인물들로 생각될 것인가? 혹은 단순한 환상인가?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1:1에 있는, "지시하신"이란 말씀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보고, 계시록 책이 상징체로 되었다고 하여, 상징적 환상으로 간취(看取)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계에 이런 장로들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는 못합니다. 이들은 천계에 실재(實在)한 인물들에게 대한 환상일 것입니다. 천계에는 장로들의 일을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입니다.
매튜헨리(Matthew Henry)는 말하되, 여기 24 장로들이 앉은 보좌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두룬 것은, 그들이 오직 하나님을 즐거워함과 및 계속적으로 그를 알고 접근하는 생활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모팟트(Moffatt)는 말하기를, 여기 24 장로란 말은, 본서 저자(本書著者)가 바벨론의 24 성신 신화(星神神話)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한 말입니다. 24 란 수효가 바벨론 신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구약에도 있으니, 요한은 구약에서 24 수호의 사상을 취했을 것입니다. 구약(대상 24:1019)의 제사장의 24 반렬(班列)은 여기 24 수와 통합니다.
혹은 사도 요한이, 여기서 이스라엘 12 지파(支派)의 12수로써 구약 교회를 대표하게 하고, 12 사도의 12 수로써 신약 교회를 대표하게 하였을 수 있습니다(21:12, 14).
특별히 랜스키는 “장로”라는 말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위탁받은 말씀의 사역자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어느 사역자는
24 장로를 휴거 신부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흰 옷."
이것은, "어린 양"의 피에 죄를 씻고서 칭의(稱義)의 인격을 얻고, 또 천계의 영광에 참예한 것을 가리킵니다(계 7:14).
"금 면류관."
이것은 승리의 상징이며, 또 왕적(王的) 영광의 상징도 됩니다. 이런 영광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인데, 그들은 주님의 공로(功勞)를 힘입어서 거기에 동참한 것 뿐입니다(딤후 2:12).
"5. 번개와 음성과 뇌성."
출 19:16-19 참조. "번개"와 "뇌성"은 하나님의 위엄, 능력, 진노, 심판에 대한 상징입니다(시 29:3-11). 그러나 "음성"이란 것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상징한 듯합니다. 시내산에 나타난 그 위엄스러운 현상(우뢰,번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세에게는 "음성"으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출 19:19). 그는, 죄에 대하여 엄위로우시되 그 택한 백성에 대해서는 일향(一向) 자비로우십니다.
"일곱 등불."
이것은 구약의 성막(聖幕)에 있는 등불의 시설과 같습니다. 성막에는 지성소(보좌)가 있고 지성소의 전면(前面)에 일곱 등불이 있습니다. 그처럼 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일곱 등불"은 하반절이 밝힌 바와 같이, 성령님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헬라 원어로 "호스 달랏사 휘알리네 호모이아 크뤼스탈로(ως θαλασσα υαλινη ομοια κρυσταλλω)” 라고 하는데 개역하면,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 같이 있고"라고 할찌니 곧, 수정 같은 유리 바다 같은 무엇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맑고 투명(透明)하고 동요(動搖)없는 것을 특성으로 합니다(21:11). 이것도 성막(聖幕) 혹은 성전의 시설과 같습니다.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사역하기 전에 먼저 그 손을 씻는 큰 대야가 성전 안에 있습니다(출 30:18-21; 왕상 7:23).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義)와 성결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의와 성결을 힘입지 않고, 하나님에게 나아갈 자는 없습니다.
이것에 대한 해석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도들”을 상징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수정 같이 맑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성결을 말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그의 권능과 통치와 주권에 대한 광대하심을 말한다고 합니다.
"네 생물."
이들에게는 그 몸 전체에 두루 눈이 있다고 했으니, 불휴(不休)의 관찰과 부단(不斷)의 경성과 통찰을 할 수 있는 그들임을 상징합니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이들이 단순한 상징적 의의를 가지어 피조물들을 대표할 뿐이고 실재물(實在物)은 아닌 듯이 말하였습니다(Het zijn wedrom symbolische gestalten).
그러나 사 6:2과 창 3:24을 보면, 스랍이나 그룹과 같은 실존들이 하늘에 있습니다. 요한이 본 바 생물들은, 천계(天界)에 있는 이런 실존들이나 혹은 기타 영물들의 상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마치, "어린 양"으로 상징된 그리스도께서 확실히 천계의 실존이심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1) 그들은 하나님의 근위(近衛) 시종(侍從)하는 자요(11:5, 10:2), (2) 그들은 주야로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입니다(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로서야 어찌 찬송을 끊으랴? (3) 일곱인 뗄 때에 말 탄 자가 나온 일과, 일곱 대접 재앙을 쏟는 일이 이들의 인도로 시작됩니다(6:1, 15:7).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일을 땅 위에 개시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직전에서 사역하는 가장 성엄(聖嚴)한 영물들입니다. 그러나 혹자들은, 이 네 가지 생물들을 실재의 영물(靈物)들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攝理) 행사의 네 가지 형태에 대한 상징으로만 봅니다. 또 혹자들은, 이 생물들이 피조계를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합니다.
모팟트(Moffatt)는, "네 생물"에 대하여 잘못 말하기를, 이것은, 생명과 지능의 완전성을 가리키는 괴기(怪奇)한 상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대 영물(四大靈物)의 실존(實存)을 무시하는 견해입니다. 에녹서(40:2)에도 하나님 앞에 있는 네 천사에 대한 말이 있으나, 거기서는 내왕하는 천사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보좌를 두루고 체재(滯在)하는 실존들을 말하니 계시록의 것은 독특한 것입니다.
"사자"
용기와 힘의 표상이고,
"송아지"
충성과 희생의 표상이고,
"사람"
지혜의 표상이고,
"독수리"
영적 생명의 표상입니다. 여기 네 가지 형상은, 하나님께 근시(近時)하여 사역하는 영물들이 이런 능력들을 가진 사실을 상징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도 이런 능력들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 네 생물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어떤 영적 존재일 것이라는 견해며, 다음은 하나님의 속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입니다. 이 생물들에 대한 묘사, “앞뒤에 눈이 가득 하더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상징하고, 또 네 생물들이 각각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같다고 한 것은 이들 동물들의 우수성(사자는 짐승의 왕자이고, 소는 가축의 왕자이고, 독수리는 조류의 왕자이고, 사람은 만물의 영장)을 생각할 때 이것은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이 네 짐승을 주님의 인격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네 생물을 4복음서에 나타난 주님의 인격이라고 합니다. 사자는 마태복음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메시아이신 주님 즉 주님의 왕 되심을 말하고, 소는 마가복음을 상징하며 주님의 인격 중에 인내하심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가복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주님의 인자되심 또는 형제 사랑을 나타내고, 독수리는 요한복음을 상징하며 주님의 권세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상징적 언어로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앞뒤에 눈이 가득 하더라”는 것은 모든 방향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하며 날개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속히 성취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보좌 주위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네 생물은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영적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특별히 보좌 주위에 않은 이십 사 장로가 지상을 대표한다면 여기 네 생물은 영적 세계를 대표하는 영적 존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석하든지 하나님께서 이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자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보좌 앞에 찬송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은 보좌 앞에서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것은 이십 사 장로가 지상을 대표하고 네 생물이 천상을 대표한다면 보좌 앞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 장엄한 모습은 장차 지상에 있는 모든 것과 천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찬송할 것을 계시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섯 날개."
이사야 6장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영광과 존귀."
이것은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품성의 광휘(光輝)를 이름이니, 인간의 표현이 부족하므로 이 말로 밖에는 말할 방도가 없습니다.
"감사"
하나님의 하신 일 곧, 그의 창조 사역의 위대함을 인함입니다. 본장에서는 생물이나 장로가 같이 하나님의 창조를 찬미합니다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이것은, 그들이 받은 금관(金冠)의 영예가 실상은 하나님께만 적합하고, 그 자신들에게는 그것을 받음이 오히려 감당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능력" 은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능이니 그것이 우주 만물로 증명됩니다. 피조물들의 지혜로운 구조는, 그것들의 자작 속성(屬性)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입니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헬라 원어에는 이 문구가 "왜 그런고 하면"이라는 말 '호티'로 시작하여, 그위의 말씀의 이유를 보여 줍니다.
"주의 뜻대로 있었고."
여기 "주의 뜻대로"란 말은, 헬라 원어로 '디아 토 델레마 수'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당신의 뜻 때문에(혹은 위하여) 있었고"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의미는, 만물 조성(造成)의 방법 뿐 아니라, 그 원인(意志的原因)을 보여 줍니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이것은 만물 성립의 방도를 말할 뿐 아니라, 만물 존재의 기원(起源)을 말합니다. 따라서 만물이 그 현상, 그 유지(維持), 또는 그 양상(樣相)에 있어서 전혀 하나님의 무상적(無上的) 주재(主宰) 의지에 의뢰되어 있고, 그로 말미암아 결정되어 그에게 안식하고 있음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있었고"라는 말은, 만물이 그 창조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예정적 계획 가운데 있었다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4장의 내용도 계시록의 이와 같은 흐름(예배의) 가운데 한 모습으로 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4장은 생물들이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과 이십 사 장로들이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모습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4:8-11).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그리고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만유의 주되심과 통치하심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분”으로서 “만물을 지으시고 자신의 뜻대로 존재케 하시는 분”을 찬송했습니다. 여기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란 단순히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만이 아니고 영원토록 존재하시며 활동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밤낮 쉬지 않고 예배 드렸는데 이것은 이들의 삶의 중심이 예배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즉 우리가 보좌에 좌정하신 주를 뵈올 때 예배는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여기 면류관은 주권과 승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주께 드렸다는 것은 영광과 헌신을 돌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24 장로처럼 우리의
모든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됩니다.
또한 우리는 천국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주님 다시 오심이 가까운 마지막 때를
맞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서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도 시작되는
것 같아 주님 오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 모두 깨어있어 주님 맞을 준비를
하며 에녹처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여 주의 날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휴거 되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드리겠습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마지막 때 핵을 동반한
세계 전쟁의 소식이 들리니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도하옵기는 우리들이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휴거를 기다리는 제2의
에녹과 같은 사명자들이 되고 휴거
방주를 예비한 노아와 같은 의인들이
되어 주의 날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휴거 되게 하옵소서!
믿음이 없는 가족들에게는 믿음을
주옵시고 믿는 자에게는 마라나타
신앙으로 휴거를 기다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