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아픔, 육지를 붉히다/글:김종섭 월간리뷰대표
‘넓디 넓은 바다에 태왁 하나 의지하고
오늘도 구덕 채워야 내 아들 등록금 주련만,
내맘은 석양보다 붉은 그리움 일렁이네
바다에 갈 때마다 붙잡는 그리움, 해녀어멍’
2018년 어느날 서울 성수동 ‘사진창고’의 해녀사진전을 보고 크게 감동해서 쓴 즉석 자작시다. 제주의 바다는 궁창을 담은 미학의 창고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뻥 뚫린다. 그러나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들도 그럴까? 특히 해녀들은 그 바다가 그리도 아름다워 보일까?
‘강가를 왕래하는 저 사람들은 농어 및 좋은 것만 사랑하누나.
그대여 일엽편주 가만히 보게 정작은 풍파 속을 출몰한다데.’
송나라 시대 범중엄(989~10532)이 쓴 ‘강상어자’(江上漁者)라는 싯구다. 농어맛은 좋을 지 몰라도 그 농어를 잡는 어부들은 바다에서 사투를 벌인다는 뜻이다.
“해녀박물관애는 해녀를 두고 ‘저승에서 돈을 벌어서 이승에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해녀들이 바닷속에 뛰어드는 것은 스쿠버 다이빙이 아닙니다. 물속 저승으로 뛰어듭니다. 그 노동으로 이승의 자녀들 등록금 내고 밥상을 차립니다."
돌 많고 바람 많은 제주는 지극히 척박한 땅이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 물속에 기꺼이 뛰어들고 싶은 해녀가 누가 있을까. 그래도 눈을 질끈 감고 한숨 크게 쉬면서 망각처럼 뛰어든다.
해녀의 삶이 그렇다.
“해녀의 얼굴은 제주의 돌, 현무암처럼 시커멓습니다. 그 돌덩이가 되도록 고생한 얼굴로 자식 교육 다 시켰으니 훈장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제주도 오페라 해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우리 해녀의 애환과 고통, 그리고 삶의 보람까지도 보듬어서 표현하고 싶은 겁니다.”
오는 4월 23일(토) 오후 4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해녀의 애환을 육지 사람들에게 전하는 특별한 오페라가 무대에 오른다. 해녀 2(Revision)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19년 초연된 후 지금까지 전막 3회를 비롯, 소극장 오페라용까지를 포함해 일곱 차례 공연한 작품이다.
작품이란 하나의 발원지다. 데미샘에서 발원해 섬진강을 이루고, 태백산 검룡소에서 물길이 시작돼 한강을 이룬다. 금강은 또 어떤가. 장수 뜬봉샘에서 시작해 구절양장의 물길을 헤쳐나간다. 무릇 뜻이 있는 오페라는 제자리에서 머무는 법이 없다. 제주에서 발원했지만 육지를 덮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오페라 해녀가 그렇다.
오페라 해녀의 제작자 강용덕 이사장은 발원지에서의 감동을 제주 밖으로 전하기 위해 창작 이후 최초로 성남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리기로 했다.
“원래 건축 디자인 비즈니스가 전문입니다. 기부활동을 많이 하다보니 예술계에서 후원 요청도 많았죠. 그러다 오페라 시장을 검토하고 제주의 토속적인 내용을 콘텐츠로 한다면 해볼 만하다 싶어서 직접 제작에 나섰습니다. 그 첫 작품이 바로 ‘해녀’입니다. 물론 오페라에 잔뼈가 굵은 분들은 오히려 말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걸려도 제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작품, 큰소리칠 만한 작품, 다음 세대가 이어가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을 만들자는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강용덕 이사장은 오페라 해녀를 완성된 작품으로 보지 않는다. 푸치니가 '라보엠'을 처음 작곡한 상태 그대로 공연하지 않았듯이 완성될 때까지 수정한 것처럼 해녀 역시 제작자와 관객이 공히 만족할 때까지 절차탁마하겠다는 각오다.
그래서 이번 작품의 정확한 명칭이 해녀2(Revision)다. 일부에서는 첫 작품으로 라 트라비아타 등 고전작품을 제안했으나 강용덕 이사장은 그럴 바에야 오페라를 하지 말자고 할 정도로 제주 창작을 확실한 표적으로 정했다.
강용덕 이사장은 기왕에 오페라를 한다면 작품내용을 미리 파악하는게 옳다고 판단, 내용을 웹툰으로 만들어 미리 공개했다. 그래야 오페라를 감상하러 오기 때문이다.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도 좋겠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웹툰에 익숙합니다. 결국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제작한 작품이 감동적인지 미리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 덕분에 정말 어린이들까지 많이 감상했습니다.”
웹툰을 죽 훑어보았다. 미주는 평대리에서 어촌일을 하던 중 남편을 잃고 만다. 아들 현석과 뱃속에 둘째를 가진 미주에게는 다행히 친절한 이웃 상군해녀 ‘명자’와 ‘정숙’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도움만을 바라고 살수는 없어 직접 해녀가 된다.
해녀가 어디 쉬운가. 괴롭고 힘들지만 그를 지탱케 한 것은 아들 현석을 육지에서 공부시켜야 한다는 꿈이었다. 정숙은 구덕을 더 채우는 방법으로 복대에 더많은 돌멩이를 넣을 것을 권한다. 아들을 위해 구독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욕심에 미주는 돌멩이를 더 넣었지만 그만 복대가 해초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
“그 사건 이후 ‘명자’는 슬픔을 안고 계속 물질하지만 돌멩이를 권했던 ‘정숙’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후 정숙의 딸 ‘선희’는 제주 사회운동가가 되어 국회에 등장해요. 그녀는 제주해녀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구합니다. 그래야 해녀정신을 유네스코에 등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선희는 자신의 어머니 정숙과 젊은 시절 숨을 거둔 미주 아주머니를 생각하며 무형문화재 지정은 여성인권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선희의 주장에 비판의 날을 세운 신문사의 김 기자는 ‘선희’에게 독설을 날린다. 이때 ‘명자’가 지팡이를 끌고 들어와 지금까지 살아온 해녀의 애환을 들려준다.
“김 기자는 어머니가 혼자 되었을 때 도와주었던 분이 바로 ‘명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와 감동의 눈믈을 흘립니다. 김 기자가 바로 미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죠.”
오페라 전문가 이상의 식견으로 ‘해녀’의 내용을 설명해주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건축디자인너가 아닌 통섭(通涉)의 달인 같았다. 건축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제주특별시의 미술작품과 중대형 건물의 디자인을 평가해주는 심의위원으로서 미술분야에서도 혜안이 깊은 디자이너다. 지난 2014년에는 제주아트페어를 개최해 정부의 관심을 받았고 이듬해 아트페어의 주최를 정부로 돌리기도 했다.
“아트페어를 직접 운영하기보다 기부활동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자는 생각으로 공동 모금회에 연 1억 이상 기부하곤 했죠.”
그렇게 기부활동만 하던 어느날 직원 결혼식에 참가했다가 축가를 부르던 성악가들의 애환을 귀뜸으로 듣게 됐다. 강 이사장 원래 뮤지컬에 관심이 있어 실제 뮤지컬 레슨을 받기도 했다. 성악가들과의 대화는 강 이사장의 예술 공연에 대한 관심에 불을 댕겼다.
“제주도 오페라를 할 만한 예산이 부족해 공연을 못한다는 말을 듣고 후원을 해주기 시작했죠. 그게 단초가 되어 직접 제작까지 오게 된 온 겁니다.”
강용덕 이사장은 기왕에 오페라를 제작한다면 확고한 원칙을 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몇가지 ‘오페라인제주’만의 헌법과 같은 규칙을 정했다. 가능하면 지원사업이나 정부 후원없이 자체기금으로 제작하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지원을 받으면 그만큼 눈치를 보게 되어 창작의 자율성이 퇴보할 수 있는 만큼, 예산이 적더라도 그에 맞게 우리 힘으로 만들자는 개념이다.
안정적인 제작비를 토대로 다양하고 공정한 캐스팅을 통해 지역예술가 및 신인들에게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기로 정했다. 여기에 더해 제주만의 고유한 창작오페라를 제작 발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연까지 펼칠 수 있는 80석의 ‘스튜디오 오페라인제주’를 오픈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 문화교류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지난 해에는 이 장소에서 '해녀'를 소극장용으로 편곡해 세 차례 걸쳐 공연하고 추자도에 얽힌 사연을 듣고 ‘눈물의 십자가’를 제작해 제주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죠.”
2020년에는 제주 오페라 아카데미를 개설해 소프라노 김정희, 강혜명, 메조 양송미, 테너 김동원, 바리톤 연광철 김승철 등 마스터클래스도 개최했다.
오페라인제주는 이외에도 끊임없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나가고 있다. 2020년 11월에는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를 공연한데 이어 온라인 오페라 하멜의 눈물과 바이로이트의 영웅 테너 김석출의 연출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발퀴레', '탄호이저', '로엔그린' 등 바그너 오페라 갈라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강용덕 이사장은 음악가를 찾는데 특정 라인을 따지지 않는다.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결정한다. 친구와의 만남에서 우연히 알게 된 테너 김석철을 즉각 예술감독으로 선임하고, 성악 능력이 출중함에도 무대를 멈추었던 소프라노 임서영의 성악 및 코칭 재능을 발견, '순이삼촌' 무대에 세우는 한편, 오페라인제주 총감독으로 임명해 오페라와 음악회를 기관차처럼 거침없이 개최해나갔다.
이외에도 오페라를 만들기 위한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JFAC 아트러닝’ 코스를 두어 작곡가 현석주, 테너 김석출, 작가 이난영, 연출 유철우 등이 강사로 출연 오페라를 제작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시(詩)를 '언어(言)로 지은 성스러운 집(言)'이라고 한다. 오페라는 오푸스로 지은 소리건축물이다. 강용덕 이사장은 건축디자이너다. 어쩌면 오페라 안에서 오페라를 바라본 전문가보다 더 멋진 오페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가 제작한 해녀의 성남공연이 기다려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 해녀의 삶과 해녀의 아픔을 위로하는 감동은 얼마나 클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