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우상에 빠진 것은 아닙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bx6jTO492ps?si=sxNyhwmYZ1lhBAUC
2월 10일
우상에 빠진 것은 아닙니까?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 이사야 40장 26절
이사야 선지자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상을 바라보느라 마음이 기갈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이사야는 그들로 하여금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그들이 바르게 생각하도록 돕습니다.
자연은 성도들에게 영적인 영양분을 줍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연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보화입니다.
산들바람, 매일의 밤과 낮, 하늘의 모든 별들, 꽃들의 피고 지는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며 마음을 열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영적 집중력이란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우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까?
당신 자신이 우상은 아닙니까?
당신의 일이 우상입니까?
'사역은 어떠해야 한다'는 사상적 우상에 빠진 것은 아닙니까?
당신의 구원과 거룩의 경험이 우상은 아닙니까?
우상에 빠져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기갈된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어려움이 오면 이길 힘이 없기 때문에 어둠 가운데 머물게 됩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이 기갈되어 있다면, 당신의 경험을 돌아보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자신에게 얽매이지 말고 자유하십시오.
우상으로부터 멀어지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갉아먹는 어떤 것도 허락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일으켜 세우고 이사야가 백성들에게 주었던 내용을 붙드십시오.
마음을 다해 당신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십시오.
기도가 막히는 이유는, 기도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자신을 집중시킬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도 좋지만,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통해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가 되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강한 마음을 주셔서 자신에게서 벗어나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인격적 관계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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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영적으로 곤비합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MZS1a6geQE4?si=dAvMh7_WiLe7_Yj5
2월 9일
영적으로 곤비합니까?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 이사야 40장 28절
피곤과 곤비는 생명력이 고갈된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 고갈은 죄가 아닌 섬김을 통해 옵니다.
영적으로 고갈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21장17절)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에게 양들을 먹일 아무 음식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찢겨진 살이 되고 부어지는 포도주가 된다는 뜻은, 그들이 영적으로 자라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이 그들에게 영적 영양분을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때 그들은 당신을 밑바닥까지 고갈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 스스로 충분한 공급을 받고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에 완전히 고갈될 것입니다.
다른 영혼들이 주 예수님의 생명으로부터 직접 영양분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은 당신을 통해 영적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영양분을 취할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은 그들에게 영양분을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주님의 양들을 위해 주께로부터 최고의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영적으로 고갈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관심사들을 모으십시오.
어떤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점검하십시오.
당신의 동정심 때문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때문입니까?
당신이 애착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 계속 점검하십시오.
또한 생명력의 근원이 어디인지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 주님! 제가 지쳤습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 당신이 고갈되게 하시려고 당신을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고갈되십시오.
그러나 모든 공급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모든 신선한 샘물은 그분 안에 있다네"(시편87편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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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거룩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j0ko-4VXgWA?si=pLSljIHB1TcrN6SF
2월 8일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거룩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당신이 거룩해지기를 기도할 때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기준을 맞출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거룩'을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정말로 거룩을 위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치러야 할 대가란 이 땅에서의 관심을 지극히 줄이고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무한히 넓히는 것입니다.
즉, 거룩이란 하나님의 관점을 향한 집중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혼육이 서로 연결된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목적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따로 구별하신 목적을 당신 안에 이루고자 하실 때,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또한 예수님처럼 당신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룩하게 하신 후에 하나님만을 위해 자신을 따로 구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요한복음17장19절)
많은 사람들이 거룩의 체험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거룩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룩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 예수님을 다스렸던 성향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에 호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주님, 주께서 은혜로 죄인을 구원하심같이 나를 거룩하게 하소서"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인 것처럼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에서 가장 뚜렷하고 유일한 특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닮게 만들면서 예수님과 관계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나 자신을 따로 구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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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낙심의 훈련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HbXClWFm3N0?si=C8pnsN08ElxG5Yxi
2월 7일
낙심의 훈련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요
- 누가복음 24장 21절
제자들이 언급한 모든 사건은 사실이었지만 그 사건으로부터 그들이 추론한 내용들은 틀렸습니다.
영적으로 낙심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만일 마음이 우울하거나 무거워지면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책망하거나 다른 사람을 책망할 일이 아닙니다.
낙심은 둘 중 하나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죄의 정욕을 만족시켰을 때 혹은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옵니다.
정욕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당장 취하려는 성향입니다.
영적인 정욕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구하기보다 당장 기도응답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뭔가를 행하시기를 기대했습니까?
응답을 기다린지 오늘이 벌써 삼일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셔야 한다는 고집은 정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기도의 의미는 기도의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낙심의 상태에서는 몸이 평안할 수 없습니다.
낙심은 영적으로 병든 증거입니다.
낙심의 책임은 언제나 내게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환상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인 것처럼 지진과 천둥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실망과 우울함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변의 평범한 일들과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가까이 있는 책임을 다할 때 우리는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평범한 것들 속에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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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제물로 드려질 준비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E-3pp5eJ0O0?si=ZpKfyUferEK94ueJ
2월 6일
제물로 드려질 준비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 디모데후서 4장 6절
"전제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감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당신이 전제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시오.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 상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선택하시든 이제는 작은 불평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위기를 지나게 하십니다.
아무도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이때 외적으로는 삶의 모습이 이전과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의지에 차이가 발생합니다.
의지로 내적 위기를 겪어냅니다.
그러면 외부적으로 어떤 위기가 닥칠지라도 희생을 감수하며 나아갑니다.
만일 하나님께 의지를 드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자기연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시편118편27절)
제단은 불을 의미합니다.
제단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태우고 거룩하게 하고 구별합니다.
곧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은 모든 것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킵니다.
이 일은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단지 제물을 제단 뿔에 묶는 것입니다.
이제 그 제물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이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 불이 다 타오른 후에는 더 이상 짓누르는 것도 없고 비참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위기가 발생해도 이제는 과거처럼 당신을 위협하지 못합니다.
당신을 태우는 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전제로 드릴 준비가 되었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이 바라던 하나님보다 훨씬 크신 분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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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낮아지고 닳아질 수 있습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wl4N4SIg9x8?si=2yf0fC_tyBu8l1Rt
2월 5일
낮아지고 닳아질 수 있습니까?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 빌립보서 2장 17절
당신은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 위해 믿음의 제물로 자신을 드릴 수 있습니까?
당신의 생명의 피를 다른 사람의 믿음을 위한 전제로 부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아직 나 자신을 다 드릴 수 없어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내가 어떤 희생을 할 수 있는지 내가 결정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잘했다'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영웅심에 빠져 외로운 길을 걷는 것과,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발털이개'가 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남에게 천시받고 낮아지는 비결'을 가르치신다면 당신은 그 가르침대로 바쳐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물동이에 떨어지는 한방울의 물처럼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 소망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별볼일 없는 사람, 당신의 섬김마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섬김을 받지 않고, 오직 섬기기 위해 당신의 삶을 바치며 그 삶이 다 닳아지기를 원할 수 있습니까?
어떤 성도들은 성도이기를 원하면서도 천하고 궂은 일들은 싫어합니다.
자신들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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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무엇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AKFJkUuJXro?si=4VJNzy2P-Vne7Pi1
2월 4일
무엇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고린도후서 5장 14절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사로잡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보통 자신들의 경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사로잡고 있었던 유일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강권함을 받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그 사람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그 사람의 삶 가운데서 자유롭게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직후에 우리의 주된 간증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세례를 받고 나면 그러한 간증은 사라지고 "너희가 .....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1장8절)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증거하는 초보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 그분의 증인"이 됩니다.
이후 우리는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영광이든 비난이든 핍박이든 칭찬이든 예수님께 친히 발생하는 일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인격적인 능력의 영광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런 자세를 취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사역자들이 꺠달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혔으며 그 사랑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그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쑥덕거려도 그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직 그가 살아가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을 완전하게 내어맡기는 것만이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비결입니다.
이러한 삶은 내가 얼마나 거룩한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주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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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세상에 찌꺼기 같은 우리 |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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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세상의 찌꺼기 같은 우리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
- 고린도전서 4장 13절
위 구절은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위 내용이 오늘날 소위 복음 사역자들인 우리에게 행당되지 않는 이유는, 바울이 이 내용을 쓸 당시 정확한 의미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세상의 애착들이 남아 있어서 우리는 만물의 찌꺼기가 되기를 스스로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서 거룩하게 될 때 누구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 따로 구별된 자"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게 됩니다.
베드로는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베드로전서4장12절)고 말합니다.
우리가 겪는 여러 고난을 이상하게 여긴다면, 이는 우리 마음이 겁으로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 시험을 피할수만 있다면 약삭빠르게 빠져나갈 것입니다.
"나는 복음 떄문에 부끄러움을 당하고 싶지는 않아. 사람들에게 굽히고 싶지 않아."
물론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구원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든지 복음을 위해 당신을 따로 구별하시는 하나님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은 "복음이 증거된다면 나는 이 땅에서 찌꺼기같이 대우 받아도 상관없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하나님의 복음의 실체를 위해 순교할 각오를 한 자들입니다.
단지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부끄러움이나 부도덕을 경험하거나 배신을 당하게 될 때 그 악영향이 그의 '선함'에 너무나 큰 충격을 주기에 그의 마음은 절망으로 닫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의 실체'의 놀라움이란, 아무리 나쁘고 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훌륭한 사람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자신을 구별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여주기 위해" 구별되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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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강권하시는 부르심 | 주님은 나의 최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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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강권하시는 부르심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 고린도전서 9장 16절
당신의 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할까 주의하십시오.
구원을 얻은 모든 주의 백성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부르심은 복음 선포의 부르심과 다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은 단지 복음 선포를 위한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심적 부담에 대해 말합니다.
위의 내용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만나려는 영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주님은 구원의 조건으로 어떤 제자 훈련을 내걸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면 구원에 이르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 훈련은 선택 사항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마가복음8장34절)
위의 바울의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려는 자들과 관련됩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할 것이며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우리를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주님의 찢겨진 살과 쏟으신 피를 의미함)로 만드십니다.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을 건성으로 듣게 되면 그 사람은 주의 종으로서의 이름에 합당한 고통을 받기 시작합니다.
모든 야망은 꺾이고 인생의 욕망은 잠들게 되며 외적인 자랑들은 철저하게 제거되고 사그러듭니다.
오직 한 가지만 남게 되는데, 그것은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데도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발을 옮기려는 자들에게 얼마나 불행한 일들이 발생합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주의 복음의 종으로 부르시는지 확인하십시오.
주께서 당신을 부르실 때 그 부름을 방해하는 것들을 주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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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하나님의 부르심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yPx3Wp0HncA?si=aNLHJllaS014ISDG
2월 1일
하나님의 부르심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 고린도전서 1장 17절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의미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의 실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거룩을 복음 선포의 주요 목적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는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구원이나 거룩의 체험을 말할 뿐, 결코 개인 체험을 선포의 목적으로 삼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자신의 구원이나 거룩을 선포하도록 의탁 받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의탁 받은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요한복음12장32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성자로 만들기 위해 구속의 고난을 당하셨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주장은 진리를 모르는 말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속의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온 세상을 구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잘못된 것들을 고치시고 다시 새롭게 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 앞에 두시기 위한 것입니다.
구속이 각 개인에게 체험될 수 있다는 사실은, 구속의 실체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체험이 구속의 목표는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면, 구원 및 거룩을 위한 우리의 끝없는 요청으로 인해 얼마나 피곤하고 귀찮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얼마나 하나님을 조릅니까?
우리가 복음의 실체의 반석에 접할 때만이 더 이상 사소한 번민으로 하나님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 속에서 한 가지 열정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마음의 고통과 환멸과 환난을 환영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것들마저 그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의 복음을 향해 요동함이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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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복음 전파의 소명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FCnWrvAtIVQ?si=RM7gXN-67lXNlyef
1월 31일
복음 전파의 소명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으니
- 로마서 1장 1절
주님은 우리를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의 실체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실체는 인간의 선행이나 거룩이 아니고 천국이나 지옥도 아니며 바로 '구속'입니다.
현재 복음 사역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속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주의 사역자로서 우리는 구속만이 유일한 실체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은 우리 안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구속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선함에 둔다면, 시험이 올 때 그 믿음은 무너집니다.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구별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갈라디아서1장15,16절)
바울은 자신의 성품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깨끗함에만 신경을 쓰는 자는 결코 구속의 실체에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사역자들이 실패해서 쓰러지는 이유는 그들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을 보이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인생 그대로 오직 십자가의 구속의 흉한 실체만을 의지하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나 자신이 보기에 더욱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할뿐입니다. 하나님,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십시오."
이들은 아직 하나님의 복음의 실체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무작정 맡기지 못합니다.
오직 나 자신의 성품 개발에만 관심이 있는 한,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구별된 바울은, 자신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이 목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로마서9장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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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 주님, 말씀하소서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HIAMfeU2MNM?si=0UHewI_ZJLqsQaG
1월 30일
"주님, 말씀하소서"
사무엘이 ......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 사무엘상 3장 15절
하나님은 깜짝 놀랄 만한 방법이 아니라 오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음성이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인가"하고 의아해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강한 손으로"(이사야8장11절) 곧 섭리를 통해 강권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을 만지시는 분은 말씀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발생하는 상황을 우연으로 봅니까, 아니면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분별합니까?
"주님, 말씀하소서"(사무엘상3장9절)라고 말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인생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연주곡이 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주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경책은 징계를 위한 수단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주님, 말씀하소서"라고 고백하는 자리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잊었습니까?
주의 음성을 들으면서 우리의 귀는 예민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항상 들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들려주신 것을 나의 '엘리 제사장'에게 말해야 합니까?
바로 여기서 순종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엘리 제사장'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불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엘리의 조언을 들으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그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쩌면 당신의 '엘리 제사장'에게 아픔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의 고통을 막으려다가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방해물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결정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에 대해 굳이 다른 사람의 조언을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만일 조언을 얻으려 하면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사탄의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라디아서1장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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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겸손과 온유로 섬깁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Or9BjPb-Oz8?si=S387h81m4nshrsCR
1월 29일
겸손과 온유로 섬깁니까?
주님 누구시니이까
- 사도행전 26장 15절
"그러므로 주께서 강한 팔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8장11절)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당신에게 직접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이 가장 잘 아는 언어로 친밀하게 말씀하신 그분의 뜻을 놓칠 수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당신의 귀가 아니라 환경을 통해 말씀하실 때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신념을 고집스럽게 확신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확신을 부수십니다.
"이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그때 갑자기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무지가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냅니다.
주님을 내 방식대로 섬기겠다고 할 때, 주님을 향한 우리의 무지가 드러날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영이 아닌 다른 영으로 주를 섬기려고 합니다.
주님을 돕겠다고 나서지만 주님께 상처를 드립니다.
심지어 주님의 요청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면서 악한 영을 가지고 밀고 나갑니다.
또한 우리의 입술은 옳은 말을 하는데, 마음은 미움의 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며 말씀하시길 너희는 너희가 어떠한 마음으로 말하는지 알지 못하느냐."
주님을 섬겨야 할 자가 지녀야 할 주님의 영이 어떠한지에 대해, 고린도전서 13장에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열성이 있지만 내 방식대로 주님을 섬기겠다는 고집 때문에 예수님을 핍박해온 것은 아닙니까?
내 의무를 마쳤다고 느끼지만 그 의무를 수행하면서 주님께 상처를 드린 적은 없습니까?
진정 주께서 맡기신 의무라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수고할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달갑지 않은 것은 뭐든지 지겨운 의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서 말씀하실 때는 "나는 주의 뜻을 행함으로 기쁩니다. 오 나의 하나님"(시편40편8절)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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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습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fDs2LN3yG6E?si=4TaN0jz9uzXVsAdu
1월 28일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습니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 사도행전 26장 14절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 고집스러운 방법을 주장하지는 않습니까?
성령과 불 세례를 경험하기까지는 이 덫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고집과 자기 주장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밀쳐냅니다.
이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피해를 주지 않을지 몰라도 성령을 근심케 합니다.
고집을 부리며 자기 주장대로 하면서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자기 존중을 주장할 때마다 우리는 체계적으로 주의 성령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울처럼 지식만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을 때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핍박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찔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때 그 말씀이 내게도 놀라울 만큼 생생합니까?
혹시 나의 삶은 내가 진리라고 고백하고 가르치는 그 내용을 거짓말로 만들지는 않습니까?
나는 거룩을 가르치면서 여전히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탄의 영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오직 한 가지만 의식합니다.
곧 아버지 하나님과의 완전한 하나됨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태복음11장29절)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오직 주님과 완전한 하나됨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거룩해지려는 자세를 버리십시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우습게 여기며 무시를 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께 순복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핍박 받으시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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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세상 염려와 주님 사이의 경쟁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SBbdY6WDxbI?si=ca6sbFSHVO7onE-q
1월 27일
세상 염려와 주님 사이의 경쟁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 마태복음 6장 25절
성경은, 이 세상의 염려, 부의 유혹, 다른 여러 정욕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넣으신 것을 질식시킨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경고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 살면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이런 것들로부터 결코 완전하게 자유하지는 못합니다.
비록 옷과 음식의 문제는 아니더라도 돈, 친구, 인생의 여러 다른 어려움의 문제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밀려올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대항해 높은 방패막을 쌓지 않으면 이러한 것들은 홍수처럼 우리 안에 들어올 것입니다.
"목숨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한 가지는 '주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상식적으로는 크게 외칩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해. 내가 무엇을 먹고 마실지 걱정해야 해."
그러나 주님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특별한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하신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우리의 상황을 훨씬 더 잘 아십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우리의 상황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함으로써 그것이 우리 삶의 염려가 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염려와 주님에 대한 생각이 우리 마음 속에서 경쟁할 때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6장34절)
오늘도 얼마나 많은 고생스러운 일들과 악한 일들이 당신을 위협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짜증스러운 염려들이 마음속에서 솟아납니까?
"자, 다음 달에 무엇을 할 거야? 이번 여름은?"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생각하십시오.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마태복음6장30절)라고 말씀하시는 당신의 하늘 아버지를 마음속에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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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하나님을 불신하면 염려가 들어옵니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dNvqhzt0PxU?si=TDIU4euLBeVxQOJm
1월 26일
하나님을 불신하면 염려가 들어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마태복음 6장 30절
우리가 진실하지 않으면 주님의 진실하신 말씀도 언제나 수수께끼처럼 들립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이 진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진실할 수 있습니까?
주의 성령을 받음으로, 성령을 인식하고 의지함으로, 성령께서 하나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때 성령을 순종함으로, 우리 삶은 놀랍도록 진실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무례하게 예수님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영적으로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이는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는 하늘 아버지의 약속을 불신하고 마음속에 염려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마태복음6장26절)
새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본능에 따라 살아갑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보살피십니다.
즉, 당신이 당신 안에 계신 성령을 순종하는 가운데 주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깃털들'을 보살피실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마태복음6장28절)
이것들은 심기운 곳에서 자라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심기운 곳에서 자라나는 것을 거부합니다.
결과적으로 아무 곳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것을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습니까?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새 생명에 순종하지 않고 여러 복잡한 고민들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마음껏 주님의 사역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질문으로 하나님께 걱정을 끼칩니까?
성결이란 어떤 특별한 한 가지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구별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결심을 통해 영원토록 성결할 수 없습니다.
매일 자신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나는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따로 구별해 드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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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5일 청라호수공원에서 전도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
[1월 25일] 우리의 삶을 양보하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D8_ir6MvgTQ?si=8cp-FBA5VoGtPYt4
1월 25일
우리의 삶을 양보하십시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해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 갈라디아서 1장 16절
하나님을 위한 일꾼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양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곧 하나님께 우리의 '안방'을 비워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계산과 측정에 따라 이런저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도록 양보하는 것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전혀 기대하지 않은 가운데 설교나 만남 중에 주님이 찾아오시면 우리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우리가 예상한 특별한 방법으로 주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단지 주님을 앙망하십시오.
그러한 자세가 곧 주님께 우리의 삶을 양보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시기를 기대하되 내 생각대로 오실 것이라고 확신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많이 알아도 주님은 어느 때나 상관없이 우리를 간석하실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주님의 역사에 우리는 깜짝 놀라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갑자기 인생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그때에."
항상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분의 놀라운 능력이 당신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도록 하십시오.
언제나 기대에 찬 상태에 계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도록 우리의 삶을 양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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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주의 비전에 순종하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ZYogiOA5ZE4?si=zTmzs5K3q_1OG93j
1월 24일
주의 비전에 순종하십시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 사도행전 26장 16절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본 비전은 그에게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방향을 주는 비전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였다"(사도행전26장19절)라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주님이 강력하게 주신 말씀은, "너의 모든 삶이 나에 의해 사로잡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너의 목적과 계획과 꿈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선택하였다."(요한복음15장16절)
거듭날 때 우리는 모두 비전을 갖게 됩니다.
또한 성령으로 충만하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주의 비전을 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비전을 받았을 때 그 비전에 불순종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 비전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속하셨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바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떤 메시지나 교리를 받아 선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가운데 주님과 아주 분명한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놀라운 명령을 하십니다.
"내가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니라"(사도행전26장16절)
이 명령은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바울은 주님께 인격적으로 헌신한 것이지 어떤 명분에 헌신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완벽하게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다른 비전을 본 적이 없으며 다른 것을 위해 산 적이 없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린도전서2장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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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3일
[1월 23일] 거울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foKSRMMfYW4?si=1b1vPJZfoVEMzXXp
1월 23일
거울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고린도후서 3장 18절
그리스도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숨김없이 정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삶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거울이 됩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변화하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우리를 보는 자들에게 거울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 보아왔다면, 그는 거울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를 보면 자신의 깊은 영혼 속에서 그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 안의 거울을 더럽히는 것들을 주의하십시오.
가끔 최선의 것이 아닌 차선의 것들이 우리 영혼을 더럽힐 때가 많습니다.
당신의 삶과 내 삶에서 가장 귀한 진리는 우리의 삶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계속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만 남겨두고 일, 옷, 음식 등 다른 부수적인 이 땅의 모든 것들은 다 곁으로 흘려 보내십시오.
다른 것들로 인해 마음이 분산되고 급해질 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집중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영적인 삶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오고 가도록 두고, 사람들의 비판과 수군거림도 내버려 두십시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진 그 생명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절대로 마음속에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조급함 때문에 주님 안에 거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가끔 소란한 일들이 발생해도 그 소란이 마음을 동요케 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어려운 훈련은 우리 마음의 거울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계속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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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나는 무엇을 바라봅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
https://youtu.be/bvICNmOta8c?si=vXXPkOtS83JNRYAm
1월 22일
나는 무엇을 바라봅니까?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 이사야 45장 22절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며 구원을 베푸시기를 기대합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영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고난은 거의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반면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것을 보게 하기 쉽습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사실 모든 관심을 줄이고 우리의 마음과 뜻과 몸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 앙망하라."
우리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이 어떠해야 한다는 지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비성경적인 개념도 많습니다.
최근에 소위 '성자들'(금욕주의자나 경건주의자)의 삶은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원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오직 주만 앙망할 때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편견 및 지적 개념을 가진 자들은 주님께서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못마땅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할 때만이 우리 마음을 짓누르는 어려움과 고난들, 그리고 내일에 대한 염려들이 다 사라집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우리를 압박하는 일들이 많더라도 그 모든 염려를 곁으로 밀어두고 주님만 바라보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나를 앙망하라."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당신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구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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