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걸린 쥐
김석순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 간간이 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맞춰 뒤쪽의 대나무 잎이 사르륵사르륵 스치는 사이사이로 웬일인지 마당의 강아지 녀석도 밤새도록 징징대던 초여름이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 출근을 도와준다고 같이 현관을 나섰더니 아뿔싸! 강아지가 묶인 채로 징징거리고 있었습니다. 엊저녁에 우리가 대문을 열 일이 있어 잠시만 개를 묶어 놓는다는 것이 그만 그대로 잊어버렸더군요. 평소 개를 묶지 않고 키우는 남편은 몹시 미안해하였습니다.
“어이구, 우리 멍멍이, 그래서 밤새도록 칭얼댔구나.”
하고 목을 풀자 이 녀석은 잽싸게 앞으로 달려가더니 나무판자로 만든 낡은 창고문 앞에 코를 갖다 대어 킁킁거렸습니다. 남편과 같이 다가가 보니 철제로 된 시꺼먼 벼락틀이 문에 걸려 있고 쥐틀에는 쥐의 다리가 하나 끼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드디어 한 녀석 잡았다고 좋아라면서 희색이 만면했습니다. 사실 시골 우리집은 대밭에, 돌담에, 천장은 물론 벽까지 나무를 엉성하게 붙여 쥐들의 천국이라 이 녀석들의 마릿수가 엄청 많아 발에 채일 정도이거든요. 그래서 벼락틀만 해도 다섯 개가 넘고, 쌀알 쥐약에 끈끈이까지 온통 쥐 사냥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산을 받쳐 든 남편이 창고 문을 빼꼼히 열자, 창고 안에는 빗물에 젖은 큰 쥐가 동그란 눈을 새까맣게 뜨고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짝짝 벌리며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옆의 시멘트 바닥에는 방금 낳은 발가숭이 새끼 예닐곱 마리가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순간, 우리 내외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새끼 쥐 중에 서너 놈은 약하게 꼼지락거리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꿈쩍 않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밤에 벼락틀에 다리가 잡힌 녀석이 쥐틀을 끌고 이 창고 쪽으로 와서는 또 필사적으로 구멍을 뚫고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저가 뚫은 조그만 구멍으로 쥐틀을 끌고 갈 수가 없어 몸만 안으로 들어가 새끼를 낳은 모양입니다. 아마도 긴급한 상황을 당하여 어쩔 수 없는 조산(早産)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어쩐지 ‘오늘은 운 좋게 이놈들을 떼거리로 몽땅 잡았구나!’ 하는 생각보다도 마음 한구석에 안쓰러움이 더 크게 젖어왔습니다. 출근 시간은 촉박하고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데 남편은 뭔가 짧은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개를 다시 묶었습니다. 그러고는 양복 윗도리를 벗어주더니 작은 막대 하나를 들고 벼락틀 앞에 앉습니다. 쥐틀에는 핏물이 밴 앙상한 뼈가 드러난 작은 다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과연 이제는 남편의 막대 세례가 닥칠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나는 지레 징그러워서 도망갈 준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오므라진 벼락틀을 조심스레 벌리는 것이었습니다. 쥐가 구멍에서 도로 나와 몸을 돌려 물려고 하자 막대로 이 녀석을 누르더니 끙! 하고는 쥐틀을 벌렸습니다. 순간 어미 쥐는 후다닥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튀어나오다가 아차! 싶은지 다시 180도 회전을 하여 창고 안으로 달려갔습니다.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니 새끼 쥐들만 젖은 채 뒹굴고 있고 어미 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막대로 새끼 쥐를 비가 들치지 않는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 창고 문을 꼭 닫고는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때야 나도 이 긴 느낌의 짧은 시간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말없이 시동을 걸고 차를 대문 밖으로 뽑아낸 다음에야 잘 다녀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남편 출근 후 나는 겁이 나서 창고 근처는 얼씬도 못 하고는 그만 방에 들어박혀 버렸습니다. 다리가 부러졌을 어미 쥐와 비에 젖은 새끼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면서 이런저런 막연한 느낌들만 뇌리를 스칠 뿐, 딱히 이유도 없이 마음이 무척 우울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방금 겪은 쥐에 대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기를 맞은 어미 쥐의 절박한 출산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겁이 난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새끼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몇 마리가 무사할까 등등을 생각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고 인간이 쥐를 잡는다는 행위에 대한 반성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슬레이트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여전히 추적거리고, 갑갑한 마음에 창문을 열어보아야 멀리 보이는 뿌연 들판이 펼쳐질 뿐 무슨 생각이 떠오르지도, 일손도 잡히지 않는 한나절이었습니다. 괜히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강아지 녀석에게만 ‘너 또 무슨 장난을 치는 거야!’ 하면서 승강이를 벌이며 시간을 죽여갔습니다.
오후가 되자 날씨가 조금 맑아 오는 기미가 보이더니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제서야 나도 마루로 나가 이것저것 정리를 하며 어정거리다가 늦은 점심 몇 숟갈을 참 맛없게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개를 데리고 창고 앞으로 가서 어슬렁거려 보았습니다만 혼자서는 창고를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스스로 기운을 차리는 의미로 쥐는 일단 무조건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자문자답을 하며 다시 방으로 와버렸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면서 시간이 지나자 생각은 차츰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쥐는 징그러운 동물이므로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 단 한번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런 마음이야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마찬가지 사정이겠지만 막상 내 눈으로 그런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보니 이런저런 경험들을 한번 돌아보게 되는가 봅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내외가 숱하게 잡아서 묻은 놈 중에는 새끼를 밴 놈, 젖먹이를 둔 어미도 있었을 것입니다. 일 년에 만 원짜리 쥐약을 몇 개나 사들이면서 열심히 소탕전을 벌여왔음에도, 오늘 아침에는 그 어미 쥐를 살려준 남편의 마음이 참 깊었노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그냥 몽땅 죽여버렸으면 그 고물거리는 새끼들 모습이 두고두고 얼마나 긴 세월을 내 눈에 아른거리며 나를 괴롭히겠습니까.
남편 퇴근 후 둘이서 창고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니 쥐 가족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삶에도 바람이 분다> 2023. 북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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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평범한 진술의 잔잔한 감동
서태수
‘좋은 작품’과 ‘훌륭한 작품’은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마음에 든다’라는 의미로 취향에 따른 주관적 가치가 개입하고, 후자는 ‘나무랄 곳이 없다’라는 의미로 평가에 따른 객관적 판단이 작용한다. 이는 곧 객관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거나 적은 경우로 수필 미학의 필요충분조건 - 제재, 주제, 구성, 문체, 정서 등 동시대에 용인되는 최대공약수로서의 보편성을 지닌 미적 요소가 고루 용해된 작품이다.
세상은 적은 수의 훌륭한 사람에 수많은 좋은 사람들로 엮여가듯 수필가도 모든 작품을 훌륭하게 쓸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자칫 신변잡기로 흐를 수 있는 범속한 제재나 서사라도 최소한의 수필 미학 요건을 동원함으로써 ‘좋은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이런 작품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석순의 「덫에 걸린 쥐」(『삶에도 바람이 분다』(2023. 북랩)는 평범한 사연을 추보식으로 구성한 평범한 진술이다. ‘평범한 사연’, ‘추보식 구성’, ‘평범한 진술’로는 좋은 수필이 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위 작품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덫에 걸린 쥐를 그 새끼와 함께 살려 준 이야기다. 전원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이야기로서 굳이 새끼 달린 쥐를 살려준다는 점이 다소 의외일 뿐이다. 이런 제재의 수필은 작법의 기본 요소인 구성과 문장 표현이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그런데 구성도 문체도 특별할 게 없는 신변 이야기이면서도 「덫에 걸린 쥐」는 ‘좋은 작품’의 감동을 준다.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전개된 8개의 화소를 분석해 보자.
<1. 묶어 놓은 강아지 /2. 벼락틀에 걸린 쥐 /3. 새끼를 낳은 쥐 /4. 남편이 쥐를 살려 줌 /5. 쥐 생각에 우울한 마음 /6. 우울한 마음 합리화 /7. 살려주기의 안도감 /8. 흔적 없는 쥐 가족>
구성면에서 단일 사건을 단일 구성으로 팽팽하게 전개한 점이 독자 시선의 응집력을 받쳐준다. 이른바 주제를 향한 통일성이다. 사연 전개도 문장 표현도 군더더기가 없다. 이 점에서 단순명료한 추보식이 오히려 돋보이게 되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서 전개된 화소들이 양적 균형을 잡고 있어 시각적으로도 편안하다.
내용상 전반부의 쥐잡이 행위는 관찰자 시점이고 후반부의 생각들은 주관적 시점이다. 남편의 행위를 묘사함으로써 자기 생각으로 주제를 강조하지 않는 담담한 전개가 오히려 이 글의 주제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여기에 경어체를 구사한 점도 아름답게 맛을 더 보태었다.
굳이 구성상의 별다른 의도를 찾는다면 마지막 화소 <남편 퇴근 후 둘이서 창고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니 쥐 가족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한 문장으로 독립시킨 점이다.
--------------------- 2024. 봄 [산문의 시]
첫댓글 김석순 작가의 수필처럼
부부가 사는 모습도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