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일지5: 소리명상

[봄날의 정원]

운동과 업무 사이, 업무와 다른 업무 사이에 10분~15분 정도 잠깐 눈을 붙인다. 

예전에는 낮잠 자는 동안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면 꿀잠을 방해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짜증이 났다. 오늘도 잠시 눈을 붙였을 때 사람들이 떠들고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났지만 이것을 명상의 재료로 삼기로 했다.

나에게도 수렵채집사회의 조상들의 유전자가 전해졌을 것이다. 돌발적인 어떤 소리는 자동적으로 청각기관과 복측피개영역의 도파민을 활성화시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주의력을 돌출시킨다. 우리 조상들은 풀 숲의 바스락 소리나 무게감이 느껴지는 소리에 뱀이나 곰 같은 천적들의 소리일 거라 여겼을 것이다. 예민하게 받아들인 조상들은 투쟁하거나 도피해서 살아 남아 나에게까지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조상들의 친척들은 잡아 먹혔을 것이다) 설령 백 번 중 99번이 바람소리이거나 돌이 떨어지는 소리일지라도 단 한 번이라도 이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실제 위협 앞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훨씬 올라간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들의 생존과 안녕을 위협할 맹수들이 거의 없다. 도시라면 제로로 수렴한다. 그럼에도 우리 유전자와 두뇌시스템은 문명의 발전속도에 궤적을 함께 하지 못하고 여전히 수렵채집사회나 농경사회의 두뇌시스템을 애용한다. 그만큼 유전자는 진화를 싫어하고, 변화하더라도 매우 느리다. 그래서 내 두뇌는 갑자기 들려오는 큰 소리에 주의력을 환기시키고 "어떤 중요한 일인지 알아보라고" 신경계를 활성화시킨다.

여기까지 숙고해보니 소리는 어떤 물리적 고체들의 진동으로 인해 생긴 압력을 받은 공기입자들의 변화일 뿐이다. 그것들은 내 생존을 위협할만한 신호(실체있는 정보)가 아니라 단순한 소음(영향력없는 정보)들이다. 여기에 예민하게 대처해봤자 진짜로 중요한 나의 안녕(낮잠으로 회복될 집중력과 피로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들이다.  (물론 내가 가자지구나 우크라이나 전선에 있다면 늘 조심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더 이상 그 소리들은 내 마음을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활기가 넘치네, 행복한가보다, 좋아 좋아~ 하면서 꿀잠 속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파아랗게 맑은 하늘 아래 서울의 낮시간은 평화로웠다. 감사했다.

[이정현]

봄날의 정원님 반갑습니다. 낮잠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아는데 그것을 실천하시는 점이 우선 놀랍습니다. 번뇌 즉 보리라면 소음 즉 고요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짜증일으키는 것도 짜증을 잠재우는 것도 다 마음인데 소음을 활기가 넘치는 소리로 변환시켜서 꿀잠을 자셨다니 멋지십니다. 명상일지 자주 올려주시니 좋습니다.^^